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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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수록작에는 강화길 [음복],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김봉곤 [그런 생활].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김초엽 [인지 공간], 장류진 [연수], 장희원 [우리의 환대]  이렇게 일곱 작품이다. 이미 다른 작품을 통해서 만나본 작가들도 있었고, 이번에 처음 읽어본 작가들도 있었다. 나중에 심사위원들의 평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첫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완성도가 높게 느껴졌다. 그리고 당연히 그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되었다. 등단하지 10년 미만의 작가들의 모음집이기에 그런지 몰라도 단순히 소설 속의 세계로만 그려볼 수 없는 현시대의 많은 문제들이 직, 간접적으로 언급되고 있었다. 특히나 젠더와 퀴어, 자기결정권과 같은 주제들은 생각보다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있고 그러한 주제들에 대한 언급이 터부시되던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꼰대로 취급되어버린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내 문제가 아니면, 또 나와 관련된 가족이나 지인의 문제가 아니라면 소위 급진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소수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에도 이런 문제와 논쟁은 소수만의 일이 아니었다. 전통적인 관습과 문화에 길들여진 사회적 흐름이 도덕적 선과 가치를 만들어버리고 그러한 배경에 자동적으로 이득을 얻는 지위에 탑승한 이들은 그 체계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차별과 편견으로 계급을 나누고 갈등을 부추겨왔다. 이러한 급속한 변화의 귀결점은 당연히 고착화된 선과 가치에 대한 전복을 종용한다. 전통적 가족 구성과 사랑에 대한 부정과 인간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주장은 앞으로 더욱 더 세차게 우리 삶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작품집의 소재로 쓰인 이야기들은 허무맹랑한 소설 속의 가상의 세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언젠간 나에게 다가올 일들의 파급효과를 미리 맛보게 해준 것 같아 그냥 맘편히 읽을 수 만은 없었다. 어딘가 뜨끔한 구석이 보이고, 어딘가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 펼쳐지고, 어딘가 그냥 망연자실 넋 놓고 있을 수 밖에 없는 너와 내가 있을 것 같아 조금은 겁이 난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75)”
“생존의 외상은 깊어, 요즘에도 내가 디딘 땅이 실은 허상이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리라는 진실이 끝내 밝혀질 것이라는 부적절감에 휩싸이고 하니까요.(180)”
“요즘 소설 외에 관심을 갖는 또하나의 분야는 장애학이다. 장애학에서는 몸의 손상이 장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손상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구조가 장애를 만든다고 말한다. 특정한 형태의 몸에 맞추어 설계된 세계가 어떤 종류의 몸을 장애화하는 것이다.(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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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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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었다. 순삭이라는 요즘 말처럼 한 번 펼치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멈출수가 없는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주 옛날 이야기가 아니지만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금방 잊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을 이들의 역사가 심금을 울린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을 읽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멕시코 이민사에 대한 내용을 접하며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역시나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일어난 하와이 이민사에 얽힌 이야기이다. 1905년부터 시작된 하와이 이민은 일제 치하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던, 그리고 나라 잃은 슬픔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이들로부터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전인 그 때 가족을 떠나 생면부지의 땅으로 이민을 간다는 것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비행기만 타면 하루에 전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때도 아니고, 전세계 어디에 있든지 오지가 아니라면 인터넷으로 아무때나 친지, 지인들과 연락을 할 수 있는 때도 아닌, 어쩌면 떠남 그 자체가 영원한 이별일수도 있는 때에 그 머나먼 여행을 결정할 수 밖에 없는 시대적 상황이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그렇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 사탕수수밭의 노동자로 떠난 이들은 대부분 젊은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포와라 불인 하와이에서 돈을 벌어 조선에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막상 그곳에 자리를 잡고 일하다보니 그렇게 쉽게 돌아올 수 없었고, 그 시기가 길어지다보니 결혼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와이 이민이 시작된지 몇년 후 사진신부라는 말이 생겨났다. 하와이에 정착한 총각들이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을 보내 조선의 신부를 구한 것이다. 조선의 어린 소녀들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고향을 떠나 사진만 보고 하와이에 도착하여 결혼을 하고 삶을 꾸려나가게 된다. 사진만 보고 결혼을 결정했을 터라 그리고 막상 하와이에서 만난 신랑은 생각보다 나이가 너무 많거나 꾸며낸 이야기로 부풀어진 일들이 다반사라 처음만난 자리에서 신부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작가는 버들, 홍주, 송화라는 가상의 사진신부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똑같은 삶을 산 사람은 없겠지만 그와 유사한 삶을 산 이들은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척박하고 모진 상황에서도 삶의 끈을 놓치 않은 익명의 이민자들이 너무나도 위대해보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 버들, 홍주, 송화는 18살 밖에 안된 앳된 소녀들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나이지만 그 당시에는 다들 그 나이에 시집, 장가가고 그랬다고 하니 사진신부로 나오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그 어린 나이에 아이를 낳고 병든 시아버지 수발을 하고 일주일에 반나절도 쉬지 못할 정도로 강도높은 노동을 하며 악착같이 모은 돈을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송금했던 우리의 조상들. 주인공 버들의 남편 서태완은 독립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버들을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태완의 독립운동을 묘사하며 당시 조선 독립을 위한 두 가지 상반된 노선으로 이민자들 또한 여러 패로 갈라져 갈등을 겪게 된 이야기도 나온다. 외교를 통해 강대국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하자는 이승만파와 무장군을 육성하여 스스로의 힘으로 독립을 하자는 박용만파가 대표적인 두 노선으로 나온다. 버들의 아버지는 의병활동을 하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고 버들의 오빠 또한 아버지의 억울함 때문에 역시나 왜놈들에게 상해를 입어 죽게 된다. 버들의 어머니는 독립도 나라도 다 필요없다며 대체 무엇을 위해 이런 희생을 치뤄야 하는 것인지 고통스러운 삶을 살며 절대 살아남은 자식만은 그런 소용돌이에 휩싸이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버들이 포와에서 만난 신랑 태완은 어린 아들 정호와 버들을 남겨둔채 중국으로 떠나 본격적으로 박용만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게 된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버들의 딸 펄이 나로 등장하며 마무리 된다. 펄은 고지식하고 고집센 엄마보다 자유롭고 활기찬 홍주 이모가 더 좋다. 그리고 남편 떠난 여자, 남편 죽은 여자,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자라고 세 이모를 지칭하지만 송화만은 한 번도 못적이 없다. 송화는 누구일까 궁금하던 차에 홍주 이모의 상자에서 이상한 사진을 발견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송화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의 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인지 알려준다. 

“어디서나 흔히 들을 수 있는 ‘알로하’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배려, 조화, 기쁨, 겸손, 인내 등을 뜻하는 하와이어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그 인사말 속에는 서로 사랑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자는 하와이 원주민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했다. 레이 또한 단순한 꽃목걸이가 아니었다. 누군가 두 팔로 아는 것과 같은 의미의 레이는 사랑을 뜻했다.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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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 만한 인간 - 개정증보판
박정민 지음 / 상상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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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 배우의 산문집 [쓸 만한 인간]을 읽었다. 몇년 전에 서점을 갔다가 진열대 위에 놓여진 걸 보기는 했었는데,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이번 책도 권남희 번역가의 [귀찮지만 행복해 볼까]의 연속성으로 상상출판사의 에세이 시리즈를 관심있게 보다가 고르게 되었다. 그런데 2016년에 출판되었음에도 벌써 개정판까지 나오는 걸 보니 꽤 많은 독자가 선택했음에 나도 동참하기로 했다. 저자의 의도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제목이 ‘쓸 만한 인간’라는 건 중의적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어디든 분명 쓸모 있는 인간으로 태어났다라는 사실과 더불어 저자 스스로가 개인적으로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이제는 어느 정도 쓸 만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보다 박정민 배우가 나오는 영화를 많이 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본 ‘시동’에서의 모습이 자꾸 떠오르고, 글에서 진동하는 날것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져 정말 배우 본래의 모습대로 연기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연기에 대한 강렬한 애정과 더불어 그냥 이시대의 보통 청년으로서의 고민과 사색을 가감없이 전해주어 인기가 많은 것 같다. 특히나 저자가 몇년 동안의 에피스도를 통해서 전해주고자 하는 단 한가지 중요한 진리는 바로 인간 존중에 대한 본인의 생각이다. 이래저래해서, 어떤 처지가 되었든지 간에 이 세상에서 무턱대로 무시당할만한 사람은 없다는 사실! 그 당연하면서도 잘 지켜지지 않는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 이 배우는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의 그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또 다른 그의 신작이 나오면 이 책에서 읽었던 구절들이 떠오를 것 같다. 

“지금 이 불행을 떠나보내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그다음엔 또 어떤 불행이 찾아올까. 그불행을 대비해 이것저것 무기를 마련해놓는다. 그러면서도 제발 이 수류탄을 깨물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불행, 불안, 불확실.
알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고민. 다가오지 않은 것들에 대한 걱정. 그것들은 보통 일어나지 않아서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래서일까. 걱정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을 땐 차라리 그 일들이 일어나버리길 바랄 때도 있다.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강박 증상들이 지금 내 속이 썩어 있다는 걸 증명한다. 끝까지 일어나지 않는 그 불안들이 나를 증명하는 셈이다. 
‘네가 걱정하는 그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
사실이다.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그 모든 불안들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이런 모순 따위에 무릎 꿇어봤자 나가는 건 무릎뿐이다. 태생이 사이즈가 요만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리 떳떳하게 살지 못한 과거에 대한 노파심일 수도 있다. 별수 없다. 지나간 어제 때문에 오지 않은 내일을 걱정 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결국엔 난 오늘도. 
다 잘 될 거라고 주문을 걸고,
소주 한 잔을 털어넣는다. (26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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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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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그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따스한 감성이 느껴져 마음에 훈훈함이 가득해지는 기분이다. 이번 작품은 번역가의 말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원 저자의 나라에서 먼저 출판되고 그 이후에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아직 일본에서도 출판되기 전에 원고를 받아서 번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 한국, 중국, 대만 이렇게 동시에 책이 출간된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 저자의 책을 그 나라 독자들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기쁨이었다. 안그래도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대체 히가시노 게이고는 1년에 얼마나 많은 책을 쓰는가였다. 대체 이 사람은 글쓰기 기계인가? 아니 어떻게 1년에 신간이 이렇게 자주 나오지? 라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여년 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그의 이전 작품들도 많이 번역되기 시작해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신간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번역가의 말에서 분명하 사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지난 35년 동안, 무명일 때도, 유명해진 뒤에도, 1년에 2,3권이라는 일정한 페이스를 놀랍게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거대한 녹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일과 관련되어 있다. 녹나무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풍문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신화같은 이야기로 생각한다. 주인공 레이토는 유부남인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불륜으로 태어나게 되어 아버지가 누군인지도 모른채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엄마마저 어릴 때 돌아가시게 되고, 레이토는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억울한 해고를 당하고 공장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을 훔치다 걸려 유치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레이토는 의뢰하지도 않은 변호사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가 내민 조건을 수락할 경우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한다. 레이토는 어쩔 수 없이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초로의 여인을 찾아가게 된다. 그 여인은 60대 초반의 치후네인데, 그녀는 자신이 레이토의 엄마와 이복형제간이라고 말한다. 치후네의 아버지는 야나기사와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지내다 아내가 죽게 된 후 그 집안을 나와 레이토의 할머니와 재혼을 하게 된다. 치후네의 아버지는 레이토의 할머니와 레이토의 엄마를 낳게 되지만, 레이토의 엄마는 어린 나이에 유부남과 불륜을 저질러 그만 레이토를 낳게 된 것이다. 레이토의 엄마와 치후네는 자매간 이지만 20살 차이가 나고, 치후네는 매정하게 레이토 엄마와의 관계를 끊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치후네는 야나기사와 가문에서 유일하게 녹나무 파수꾼으로 지내왔기에 그 자리를 유일한 혈육인 레이토에게 건네주려한다. 이제부터 녹나무 파수꾼으로서의 레이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녹나무가 있는 신사를 관리하게 된 레이토는 대체 그 녹나무에서 보름달과 그믐달이 뜨는 날 밤에 사람들이 와서 홀로 기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채 파수꾼의 역할을 맡게 된다. 녹나무에서 기념을 하는 사람들은 철저한 예약제로 이루어지고 파수꾼이 주는 밀초를 갖고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기념을 마치고 돌아간다. 녹나무의 큰 기둥에 사람이 들어갈만한 공간이 생겨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혼자서만 기념할 수 있다. 레이토가 파수꾼이 되고 난 후 사지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지가 기념하러 들어갈 때 몰래 사지의 딸이 염탐하려다 레이토에게 발각되고 사지의 딸 유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혹시나 아빠 사지가 바람이 난 것은 아닌지 의심되어 따라온 것이다. 사지가 그럴만한 의심을 사게 된 것은 그의 딸 유미가 한 번도 본적 없는 사지의 형에 남긴 예념을 수념하다가 생긴 발자취 때문이다. 사지의 형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음악가가 되려고 했으나, 이래저래 좌절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지내다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 몸이 망가져 그만 죽고 만다. 사지의 형은 죽기 전에 머물던 요양원의 동료에게 소개받아 녹나무에 기념을 하게 된다. 그 기념은 바로 유언으로는 남길 수 없는, 글자로만 전할 수 없는 한 인간이 혈육인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생각과 고마움, 미움, 아쉬움 등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사지의 형은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자신이 스스로 인생을 놓아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예념으로 남겨놓았다. 하지만 사지의 어머니는 그만 치매에 걸려 사지의 형이 남긴 내용을 수념할 수 없었고, 그것을 알게 된 동생 사지는 녹나무에 기념하러 온 것이다. 형이 남긴 내용은 바로 어머니를 위해 작곡한 곡이었다. 녹나무에서 기념하며 형의 진심을 알게 된 사지는 어떻게 해서든 녹나무 안에서 들었던 그 곡을 재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콧노래만으로는 도저히 머리속에 맴도는 음을 재현할 수 없기에 작곡가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사지는 딸 유미의 도움을 받아 형이 만든 곡을 재현할 수 있게 되고,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어 형의 곡을 어머니에게 들려준다.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녹나무와 관련된 어떤 설화를 모티브로 삼아 녹나무가 염원을 전해준다는 설정을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신비롭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죽은 누군가가 살아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할 무엇인가를 남겨놓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미움과 오해도 다 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부단히 노력한다 하더라도 순간의 방심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버리곤 한다. 후회하고 뉘우친다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이후에 시간은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인생의 커다란 숙제처럼 남아버린다. 비록 지상에서의 삶에서 완전한 화해와 이해가 힘들다 하더라도, 녹나무처럼 혈육인 자녀에게, 형제에게 온전히 나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다면 인간이 가진 진짜 선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 멀리 깊은 심해에 빛도 들어오지 않고 검은 흙에 덮혀 감춰진 한 인간의 좋은 면을 녹나무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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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6 - 초기 자본주의와 르네상스의 확산 : 시장이 인간과 미술을 움직이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6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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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6]을 읽었다. 이번 호는 알프스 산맥 북쪽의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통 북유럽 하면 스칸디나비아에 위치한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와 같은 나라들만의 지역을 떠올리는데, 북유럽과 남유럽의 구분점은 알프스 산맥으로 한다고 말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구심점이 피렌체였다면, 북유럽 르네상스의 중심은 플랑드르 지역, 오늘날의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도시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르네상스인 베네치아 미술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지금은 피렌체와 베네치아 모두 이탈리아에 속한 도시들이지만, 중세 말기인 르네상스가 꽃피는 시기만 하더라도 전혀 다른 도시국가였으며 심지어 사용하는 말도 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과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성당의 겉모습과 내부 장식이 판이하게 다를 수 밖에 없었음을 알려준다. 특히나 플랑드르 지역의 상업 자본주의 형성의 흐름을 통해 번화한 도시들이 형성되고 상업 주도권이 바뀌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역사적 변화와 이권과 경제, 정치적 상황이 접목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은 결국 예술은 특정한 몇몇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 공유하고 나눌 수 밖에 없는 문화적 산물임이 여실이 드러난다. 당장이라도 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작품들이 너무도 많아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고 어느 곳에 전시되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1. 페터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611-1614년,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안트베르펜 : [플란더스의 개]의 주인공 넬로가 보고 싶어 했던 그림, 성당 앞의 넬로와 파르라슈 기념 조각
2. 랭부르 형제, 베리 공의 호화로운 기도서, 1411-1416년, 콩데미술관 : 성무일도서, 사시사철 생활상을 담은 삽화
3. 휘베르트 반 에이크+ 얀 반 에이크, 헨트 제대화, 1432년, 성 바보 대성당 : 벨기에 헨트, 세폭화
4. 틸만 리멘슈나이더, 예수 성혈 제대화, 1501-1505년, 성 야고보 성당, 로텐부르크 : 성혈 세방울이 들어간 십자가, 성당의 창과 동일한 제대화의 속의 창
5. 마티아스 그뤼네발트, 이젠하임 제대화, 1515년경, 운터린덴미술관 : 프랑스 알자스로렌 지역의 콜마르, 맥각 중독증 환자들을 수용하던 병원 제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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