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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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녹나무의 파수꾼]을 읽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아’하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그야말로 히가시노 게이고 만의 따스한 감성이 느껴져 마음에 훈훈함이 가득해지는 기분이다. 이번 작품은 번역가의 말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 원 저자의 나라에서 먼저 출판되고 그 이후에 책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아직 일본에서도 출판되기 전에 원고를 받아서 번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일본, 한국, 중국, 대만 이렇게 동시에 책이 출간된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다른 나라 저자의 책을 그 나라 독자들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는 것 또한 큰 기쁨이었다. 안그래도 궁금한 점이 하나 있었는데, 대체 히가시노 게이고는 1년에 얼마나 많은 책을 쓰는가였다. 대체 이 사람은 글쓰기 기계인가? 아니 어떻게 1년에 신간이 이렇게 자주 나오지? 라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10여년 전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그의 이전 작품들도 많이 번역되기 시작해서 이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신간이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도 번역가의 말에서 분명하 사실은 히가시노 게이고가 다작을 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지난 35년 동안, 무명일 때도, 유명해진 뒤에도, 1년에 2,3권이라는 일정한 페이스를 놀랍게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거대한 녹나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일과 관련되어 있다. 녹나무는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풍문이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신화같은 이야기로 생각한다. 주인공 레이토는 유부남인 아버지가 어머니와의 불륜으로 태어나게 되어 아버지가 누군인지도 모른채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엄마마저 어릴 때 돌아가시게 되고, 레이토는 이런 저런 일을 하다가 억울한 해고를 당하고 공장에서 돈이 될 만한 것을 훔치다 걸려 유치장에 가게 된다. 그곳에서 레이토는 의뢰하지도 않은 변호사의 방문을 받게 되고 그가 내민 조건을 수락할 경우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한다. 레이토는 어쩔 수 없이 그 조건을 받아들이고 초로의 여인을 찾아가게 된다. 그 여인은 60대 초반의 치후네인데, 그녀는 자신이 레이토의 엄마와 이복형제간이라고 말한다. 치후네의 아버지는 야나기사와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지내다 아내가 죽게 된 후 그 집안을 나와 레이토의 할머니와 재혼을 하게 된다. 치후네의 아버지는 레이토의 할머니와 레이토의 엄마를 낳게 되지만, 레이토의 엄마는 어린 나이에 유부남과 불륜을 저질러 그만 레이토를 낳게 된 것이다. 레이토의 엄마와 치후네는 자매간 이지만 20살 차이가 나고, 치후네는 매정하게 레이토 엄마와의 관계를 끊고 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치후네는 야나기사와 가문에서 유일하게 녹나무 파수꾼으로 지내왔기에 그 자리를 유일한 혈육인 레이토에게 건네주려한다. 이제부터 녹나무 파수꾼으로서의 레이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녹나무가 있는 신사를 관리하게 된 레이토는 대체 그 녹나무에서 보름달과 그믐달이 뜨는 날 밤에 사람들이 와서 홀로 기념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채 파수꾼의 역할을 맡게 된다. 녹나무에서 기념을 하는 사람들은 철저한 예약제로 이루어지고 파수꾼이 주는 밀초를 갖고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기념을 마치고 돌아간다. 녹나무의 큰 기둥에 사람이 들어갈만한 공간이 생겨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혼자서만 기념할 수 있다. 레이토가 파수꾼이 되고 난 후 사지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사지가 기념하러 들어갈 때 몰래 사지의 딸이 염탐하려다 레이토에게 발각되고 사지의 딸 유미는 자초지종을 이야기한다. 혹시나 아빠 사지가 바람이 난 것은 아닌지 의심되어 따라온 것이다. 사지가 그럴만한 의심을 사게 된 것은 그의 딸 유미가 한 번도 본적 없는 사지의 형에 남긴 예념을 수념하다가 생긴 발자취 때문이다. 사지의 형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음악가가 되려고 했으나, 이래저래 좌절을 경험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며 지내다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 몸이 망가져 그만 죽고 만다. 사지의 형은 죽기 전에 머물던 요양원의 동료에게 소개받아 녹나무에 기념을 하게 된다. 그 기념은 바로 유언으로는 남길 수 없는, 글자로만 전할 수 없는 한 인간이 혈육인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의 생각과 고마움, 미움, 아쉬움 등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다. 사지의 형은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과 자신이 스스로 인생을 놓아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을 예념으로 남겨놓았다. 하지만 사지의 어머니는 그만 치매에 걸려 사지의 형이 남긴 내용을 수념할 수 없었고, 그것을 알게 된 동생 사지는 녹나무에 기념하러 온 것이다. 형이 남긴 내용은 바로 어머니를 위해 작곡한 곡이었다. 녹나무에서 기념하며 형의 진심을 알게 된 사지는 어떻게 해서든 녹나무 안에서 들었던 그 곡을 재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콧노래만으로는 도저히 머리속에 맴도는 음을 재현할 수 없기에 작곡가의 도움을 받게 된다. 결국 마지막에 사지는 딸 유미의 도움을 받아 형이 만든 곡을 재현할 수 있게 되고, 어머니가 머무는 곳에서 작은 콘서트를 열어 형의 곡을 어머니에게 들려준다.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녹나무와 관련된 어떤 설화를 모티브로 삼아 녹나무가 염원을 전해준다는 설정을 만들었을지 모르겠다. 신비롭고 불가능한 일이지만 죽은 누군가가 살아있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할 무엇인가를 남겨놓을 수 있다면 그 어떤 미움과 오해도 다 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완벽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기에 부단히 노력한다 하더라도 순간의 방심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다시는 회복될 수 없는 관계를 만들어버리곤 한다. 후회하고 뉘우친다 한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그 이후에 시간은 스스로 감당해야만 하는 인생의 커다란 숙제처럼 남아버린다. 비록 지상에서의 삶에서 완전한 화해와 이해가 힘들다 하더라도, 녹나무처럼 혈육인 자녀에게, 형제에게 온전히 나의 마음을 전해줄 수 있다면 인간이 가진 진짜 선함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저 멀리 깊은 심해에 빛도 들어오지 않고 검은 흙에 덮혀 감춰진 한 인간의 좋은 면을 녹나무를 통해서 찾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이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말을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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