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미녀들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오언 킹 지음, 이은선 외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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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과 오언 킹의 [잠자는 미녀들 1-2]을 읽었다. 이번 작품은 스티븐 킹이 아들 오언 킹과 함께 쓴 작품이다. 분량도 많고 등장인물도 꽤 많아서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조금 힘이 들었다. 둘링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진 판타지 사건으로 인해 남자와 여자 그리고 관계에 대한 고착된 시선을 들뜨게 만들어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여자들이 잠이 들면 깨어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여자들은 그냥 잠이 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감싸는 실에 덮이기 시작하며 여자의 몸은 고치로 둘러 싸이게 된다. 가족 중의 누군가가 고치로 된 모습을 발견한 남자가 아내 혹은 어머니, 딸을 깨우기 위해 고치를 헤집는 순간 잠에 빠진 여자는 괴력을 발휘하며 고치를 손상시킨 남자를 잔혹하게 죽이거나 상처를 낸다. 그래서 남자들은 고치에 들어간 여자를 그냥 놔둘 수 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고치에서 나쁜 바이러스가 나와 깨어있는 여자들까지도 잠들게 한다는 가짜뉴스로 인해 과격한 남자들은 화염방사기로 고치를 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게 된다. 이번 작품의 주요 배경은 둘링의 어느 여자 교도소인데, 그러다보니 그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정신과 의사 클린트 노크로스와 그의 아내 라일라 노크로스가 주인공이다. 라일라는 그 마을의 보안관으로 일하며 남편이 오랜 시간 다른 여자와 낳은 딸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갖고 이야기는 시작된다. 
결국 전세계의 거의 대대수의 여자들은 잠에 빠져 고치 속에 들어가게 되고, 몇몇 깨어있는 여자들은 약물의 힘을 빌려 초인적인 힘으로 버티게 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분노 조절 장애가 있는 프랭크 기어리라는 사람이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여자들이 잠에 빠져 들게 된 원인으로 발견된 이비 블랙이라는 여자가 둘링 여자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고, 그녀는 유일하게 잠이 들었다가도 다시 깨어나며 클린트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제안을 건넨다. 프랭크는 이비 블랙을 데려와 자신의 딸 나나를 깨우게 하기 위해 사람들을 모아 조직하며 클린트에 대항하게 된다. 그러한 가운데 교도소에서 이비를 지켜려는 자와 이비를 끌어내려는 남자들끼리의 작은 전쟁이 벌어진다. 
그러면 잠이 든 여자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잠이든 라일라를 중심으로 여자들만이 존재하는 저 너머의 세상이 소개된다. 잠에서 깨어난 여자들은 둘링의 시간이 몇 배나 빠르게 흘러 갔음을 알게 된다. 폐허가 되어버린 둘링에서 그리고 남자가 없는 동일한 공간에서 여자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꾸려나가려 노력한다. 

이비라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등장과 두 가지 세상을 넘나드는 통로가 있다는 설정으로 인해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것 같은 그림이 그려지지만, 여자들이 잠든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인간의 잔혹함과 폭동은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여자들만의 세상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며 남자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이유의 설명 또한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의 선택으로 여자들만의 세상이 아닌 남편과 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겠다는 선택을 한 모두는 현실로 돌아와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마도 작가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것을 상실했을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상실을 맞이하기 전에 그 소중한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주려고 한 것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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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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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대건 작가의 [GV 빌런 고태경]을 읽었다. 영화를 소재로 한 소설이라서 그런지 잘 만들어진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가독성이 좋았다. 먼저 제목에 나온 ‘GV’는 Guest Visit 를 줄임말로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의 대화’를 말한다. 여기에 ‘빌런’이라는 말을 붙였으니, 관객들과의 대화에 등장하는 악동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까? GV 빌런 고태경은 관객들과의 대화에 참석하여 베레모를 쓰고 ‘우선 영화 잘 봤습니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혹독한 비평과 독설을 서슴치 않고 말하며 극장을 갑분싸하게 만든다. 그래서 고태경에게는 빌런이라는 호칭을 붙인다. GV에 참석해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런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꽤 오래전에는 나도 영화를 아주 많이 봤었다. 개봉작들은 거의 다 봤고, 예술 영화관도 찾아가서 보곤 했었다. 극장에서 두 번 본 영화도 간혹 있었다. 그래서 씨네21이나 키노 같은 영화 잡지들도 사서 보곤 했었다. 지금도 시간이 되면 영화를 즐겨보긴 하지만 주로 인기 많은 입소문이 난 영화들을 보게 된다. 아마도 나와 같은 변화를 겪은 청춘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살아본 현실은 영화 속 세계처럼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여운만을 남겨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 소설은 영화 같은 삶을 꿈꾸는 이들에게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자신을 값싸게 대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준다. 그래서 더욱 고맙고 나도 누군가에게 당당하고 싶은 영화 같은 삶을 살아야겠구나라고 다짐하게 만든다. 작품 속 주인공 조혜나 감독은 ‘원찬스’라는 영화가 별로 주목받지 못하고 실의에 빠지고 영화인의 삶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생계의 위협까지 받는 상황 속에서 GV 초대 받게 되고 그곳에서 빌런 고태경을 만나게 된다. 고태경은 갑작스럽게 조혜나 감독의 ‘원찬스’에 대한 혹평의 질문을 날리고 조혜나는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눈새’라는 말을 해버리고 만다. 이후 조혜나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던 ‘초록사과’의 조감독이 고태경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가 꽤나 많이 이들이 알고 있는 GV 빌런 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된다. 불현듯 조혜나 감독은 고태경을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을 진행한다. 
소설 속에는 영화 제작과 관련된 정보들도 있어 소소한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 자신이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기에 스스로의 이야기가 접목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관심의 공산주의가 필요하다. 관심의 재분배, 최소생계 유지처럼 최소관심 유지가 되는 사회. 아무도 내게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60)”
“극장이라는 곳이 참 재미있지. 결국 우리는 스크린에 쏘아진 빛을 보기 위해 일부러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거 아닌가.(98)”
“어떻게 버티느냐고 물었지. 진정으로 응원해주고 지켜봐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돼. 나는 고태경의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건 내가 가지고 싶었으나 갖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 가슴이 달래기라도 할 것처럼 술을 들이켰다. 술기운이 올랐다. 내가 고태경에게 정말 하고 싶던 질문은 단순히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버티느냐가 아니었다. 영화 속 친구들 말고는 외톨이로 홀로 살면서, 어떻게 버티세요. 사람들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함께 일상을 나누고, SNS를 열심히 하는 것도 삶의 목격자가 필요해서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삶을 너무 너무 쓸쓸하잖아요. 그 외로움과 고독을 어떻게 버티세요.(217)”
“누군가 오랫동안 무언가를 추구하면서도 이루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비웃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비웃거나 미워하죠. 여러분이 자기 자신에게 그런 대접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냉소와 조롱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값싼 것이니까요. 저는 아직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꿈과 열망이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제 영화를 상영하는 겁니다.(241)”

아무런 목격자가 없는 것 같아도, 나에게만 관심이 배제듯한 지독한 외로움에 사로잡혀도 결단코 삶을 내려놓지 않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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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메모 -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28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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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피디의 [아무튼, 메모]를 읽었다. 제목을 보고 메모에 대한 재미있고 의미있는 에피소드 모음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메모를 통해서 한 사람의 삶을 바라보고 삶이 주는 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를 깨닫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메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느냐고 저자는 권하고 있다. 사실 메모에 대한 중요성은 아주 오래전부터 공감해왔던 바이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고 좀 있다가 어딘가에 적어두어야지 생각하다가도 금방 잊어버리고 그런 좋은 문장이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 조차 기억하지 못할 때가 많다. 특히나 강론을 매일 쓰던 시절에는 좋은 에피소드를 위해서 메모는 아주 중요했다. 어디선가 들은 감동적인 이야기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사항들을 다 기억할 수 없어 반드시 그 이야기의 출저에 대한 메모가 필요했다.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그냥 사진을 찍어 저장해 두곤 하는데, 그것도 다시 찾아보지를 않으니 그 또한 문제이다. 그래서 인별그램으로 나만의 메모장을 만들어가고 있다. 저자들의 주옥같은 문장을 타이핑하며 그 문장과 글귀를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겨보려 한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메모해 두었던 내용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대로 살아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메모의 내용들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나를 구성하고 내 모습의 단 1%라도 차지할 수 있다면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고, 다른 이에게 조금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며, 나로 인해 누군가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부제를 이렇게 붙인 것 같다.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한 외로운 사람이 불을 켜고 책을 읽는다면 그 시간은 ‘영혼의 시간’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 덕분에 좋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육체적 기쁨’인 것을 알게 되었다. 좋은 이야기가 나를 공기처럼 에워쌀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8)”
“다들 이 사회에 사느라 괴로운 부분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실체를 알고 싶던 말이 있었다. ‘너도 사회 나가봐라!’ 대체 사회의 힘이란 얼마나 막강한 것일까? 지금까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회는 숫자와 상식, 규율과 보고서로 가득 찬 곳이다. 숫자와 상식 규율로 모든 것이 환원될 때 우리 마음은 괴롭기 짝이 없다. 사회는 언제나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괴로움을 주는 사회를 그대로 따라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이 사회와 좀 다른 인간이 될 필요도 있지 않을까? 다행히 사회에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는 수많은 능력들이 있다. 우리를 덜 우울하게 만드는 능력들이다. 상상력과 호기심, 다른 사람을 덜 수치스럽게 하는 배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개의치 않는 고독한 열정,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자제하는 마음... 그래서 세상은 아침에 눈뜨고 일어날 만하다.(44)”
“소득의 불안정은 꾸준히 사람을 위축시킨다. 꿈은 근심 걱정 없이 생계를 유지하는 삶을 누리지 못하게 할 수 있다.(110)”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책을 아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무슨 뜻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 삶과 고민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죽겠는데 세상은 나의 무거움과 아무 상관 없이 왜 이리 가볍나. 나의 무거움의 가벼움이 참기가 힘들다. 이렇게 나의 무거움이 아무 가치도 없는 사회에 대한 괴로움을 저희는 반드시 만난단 말예요. 카프카의 말대로 ‘나는 나 자신에게는 너무 무겁고 타인에게는 너무 가볍습니다.’(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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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멀었다는 말 - 권여선 소설집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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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 작가의 [아직 멀었다는 말]을 읽었다. 단편 소설집으로 {모르는 영역}, {손톱}, {희박한 마음}, {너머}, {친구}, {송추의 가을}, {재}, {전갱이의 맛}이 실려 있다. 뒷편에 수록된 해설 부분에서 평론가는 저자를 ‘슬픔의 마에스트로’라고 칭한다. 전작 [레몬]에서 보여주었던 살아가는 것에 대한 진수를 이번 단편집에서 좀 더 다양한 군상들의 모습으로 세분화 한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손톱}을 읽고 나서 답답함, 무력함, 자책감, 미안함, 뻔뻔함이 동시에 밀려와 내가 지금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아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차라리 몰랐으면 마음 편했을 것이라고,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내는 힘을 얻는 것인지란 의문들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동료가 중요한 일을 결정하기 위해 엄마와 상의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주인공 소희는 언니가 열 달 동안 저금한 칠백만원과 언니 이름으로 대출받은 천만원을 들고 내뺀 엄마를 생각하다 그만 박스를 옮기기 위해 사이에 손을 넣다가 굵은 고정쇠에 오른손 엄지손톱을 푹 뚫고 나와 손톱 절반이 뒤로 꺾이고 살이 찢기는 상처를 입고 만다. 끔찍한 통증과 기괴한 모양으로 변해가는 손톱은 결국 병원비 칠만원을 날아가게 만들었고, 소희는 “손톱 없이도 된다. 엄마 없이도 살았고 언니 없이도 사는데 그깟 손톱 없어도 된다.(73)”고 되뇌인다. 
책 제목은 [아직 멀었다는 말]인데, 같은 제목의 단편은 없다. 아마도 수록된 단편들을 아우리는 제목으로 만든 것 같다. 표지에는 어느 대교의 중간 쯤을 달리는 전철을 담고 있다. 노을이 지는 순간인지, 아니면 아침 해가 떠오르는 순간인지 모르겠지만 전철은 사람들을 실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슬픔의 마에스트로’라는 칭호가 어울릴만큼의 이야기를 전해준 작가이지만, 아직 멀었다는 말은 각자가 겪고 있는 슬픔의 무게만으로 모든 것을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전해주는 것 같다. 겸손함이나 삶에 대한 기쁨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관찰하며 느껴지는 것들을 인정하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 멀었다는 말은 가야할 길이 한참 남았다는 막막함도 아닌, 누군가를 무시하고 깔아뭉개기 위한 조소의 말도 아닌 그냥 알고 싶은 것이 더 많은 그리고 슬픔의 마에스트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마나 이야기의 주인공의 마음에 머물러 보는 것. 그래서 아직 더 듣고 싶은, 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면에서 우리는 부자라고 말하고 싶다. 

“계량기 소리 때문만은 아닌데 언제부터인지 데런은 잠들지 못하고 몇 시간씩 어둠 속에서 눈을 감고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심신이 나른해지고 불면의 두께가 조금씩 얇아지면서 투명한 비눗방울 같은 잠이 자신을 감싸는 느낌이 들면 이제 곧 맥을 놓고 눈먼 누에처럼 잠에 빠져들 수 있으리라 여기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미간 안쪽 깊은 곳에서 기괴한 눈이 반짝 떠지고 흉부가 고장난 승강기처럼 난폭하게 덜컹거리면서 잠의 비눗방울은 감쪽같이 터져버리고 말았다.(87)”
“아무 기댈 곳도 없고 아무 쥘 것도 남지 않은 이제 와서야 그는 비로소 겉돌던 세상의 틀 속에 겨우 들어앉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회오리치던 그의 가르마를 누군가 단정히 잡아준 것만 같았다.(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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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당 오가와 - 오가와 이토 에세이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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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이토의 에세이 [양식당 오가와]를 읽었다. 몇 년 전에 강의록 번역을 하다가 오가와 이토의 [달팽이 식당]이 나와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고전이나 유럽 작품이 아니라 일본의 현대 소설을 스페인 교수는 왜 언급했던 것일까 궁금해 구입해 읽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보다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했었는데, 그 이후에 나온 [츠바키 문구점]이나 [반짝반짝 공화국]은 꽤 인기가 생겨난 것 같다. 이번 에세이는 저자가 [츠바키 문구점]을 쓰고 출판된 무렵의 1년 동안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오가와 이토는 펭귄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편과 유리네라는 이름의 하얀색 몰티즈와 살고 있다. 그래서 에세이에는 펭귄과 유리네가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저자는 독일 베를린을 너무나도 사랑해서 아마도 매해 여름을 그곳에서 보내는 것 같다. 제목에 양식당이 붙은 것으로도 예상해 볼 수 있듯이 저자는 소소히 음식도 잘하는 것으로 보인다.  에세이 중간 중간에 이런 저런 음식을 만들어 먹고 큰 기쁨을 누리는 저자의 소박한 삶은 잔잔한 여운을 남겨준다. ‘아! 나도 그렇게 제철 음식을 간간히 만들며 살고 싶다’라는 소망이 솟구치게 만드는 에너지를 전해주지만, 그게 말처럼 잘 안되니 문제이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소소한 일상의 단편들이 사실 실제로 매일 살아보려고 하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많은 이들이 경험해보았기에, 그의 작품들이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닐까 싶다. 걱정거리와 고민이 없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어차피 나를 떠나지 않을 것들이라면 필요한 순간에 그것들을 나에게서 좀 멀리 떨어뜨리는 방법, 이왕이면 그 고민과 걱정들을 다스릴 정도의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는 방법을 매일 매일 마주치는 소소한 것들에 최선을 다하는 것임을 오가와 이토가 유리네와 함께 산책하며 전해준다. 

“신문에 실린 모리 쿠미코 씨 인터뷰를 읽고 아침부터 눈물이 쏟아졌다. 오페라 가수를 꿈꾸며 밀라노 음악대학에 유학 간 모리 씨. 하지만 문득 돌아보니 그날그날 주어진 일만 간신히 해내는 날들. 일본인인 자신이 과연 오페라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모리 씨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훌륭한 오페라 가수가 되지 못할 것 같아요.’
약한 소리를 하는 모리 씨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생활해봐. 돌아와서 아버지한테 스파게티 두세 가지라도 만들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잖냐.’
이 말에 모리 씨는 어깨 힘을 뺐다. 하루하루 열심히 사느라 버둥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술집 아저씨와 대화를 하고,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요리를 배우는 동안에 이탈리어가 점점 늘었다.(13)”
“내가 지향하는 것은 틈. 
시간에도, 공간에도, 인간관계에도 틈을 만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생각 없이 살다 보면 물건은 계속 늘어나니 의식해서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필요 없는 물건은 손에 넣지 않는다, 집에 들이지 않는다. 인생에 덧붙이지 않는다, 이런 의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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