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방콕 - 방콕은 또 한 번 이겼고, 우리는 방콕에 간다 아무튼 시리즈 11
김병운 지음 / 제철소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병운 작가의 아무튼 시리즈 11번째로 [아무튼, 방콕]을 읽었다. 부제는 "방콕은 또 한 번 이겼고, 우리는 방콕에 간다" 김병운 작가의 신작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고 푹 빠져 내처 다른 작품에는 뭐가 있나 찾아보니 아무튼 시지가 있었다. 역시나 [아무튼, 방콕]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고 앞으로의 작품이 몹시 기대된다. 이야기의 시작은 저자가 생애 처음 미국 서부를 여행하려고 준비하다가 어떤 기대나 설레임 보다는 미국 여행에 대한 부담과 여러가지 조건들로 인해 망설임과 갈등에 휩싸이다 그만 미국 여행을 취소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스스로 말하길 여행을 함에 있어 첫째 비교 기준을 방콕에 두게 되니 방콕이 지닌 효율성과 여유와 즐거움을 견줄 곳을 찾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아직 방콕을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 책을 읽으며 조만간 방콕을 꼭 한 번 가봐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여행기를 볼때마다 이 나라는, 이 도시는 꼭 가야지라고 다짐을 하면서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뭘 또 그렇게 먼데까지라고 자기합리화를 하지만 말이다. 저자의 방콕 여행이 항상 즐겁고 만족스러웠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애인과의 동반이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여전히 방콕을 가보지 않아서 저자가 설명하는 거리와 주요 장소의 언급이 눈에 확 들어오지는 않지만 그가 왜 그렇게 방콕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팁을 얻게 되었는데, 방콕을 가게 된다면 호텔을 잘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여러 관광지를 쉴세 없이 돌돌아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맛있는 음식과 괜찮은 카페 그리고 새로운 거리를 산책하며 낯선 공기를 마시는 것에 열렬히 공감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다면 잠시 머물며 멍을 때리거나 들고간 책을 읽는 것, 꽤나 기대되는 코스이다. 


"하지만 잠시 후 캐리어를 꺼내주겠다며 차에서 내린 노인을 똑바로 마주하니, 내 생각이 너무 순진했구나 싶어서 면구스러워진다. 나무껍질 같은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과 무거운 것을 짊어진 듯한 구부정한 자세는 노인의 고단함이라는 게 고작 몇 푼으로 무마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일러준다. 그러니까 이건 오랜 세월 성실하게 쌓아 올린 견고하고 육중한 철옹성 같은 피곤이다. 노인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내게 감사를 표하고, 나는 갑자기 내 여독이 좀 부끄럽고 겸연쩍어서 적당히 고개를 숙인다.(21)"

"내가 이렇게까지 겨울을 싫어하는 건 원체 추위에 취약한 체질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사상의학의 체질 분류에 따르면 나는 '소음인'인데, 몸이 차고 신경이 예민하고 소화 장애가 있다는 소음인의 특징을 이보다 더 확실히 증명해 보일 수 있는 몸뚱어리가 있을까 싶은 그런 몸뚱어리가 바로 내 몸뚱어리다.(60)"

"나는 잠시 숨을 멈추고 애인의 얼굴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고,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눈가에는 눈곱이, 입가에는 음식 양념이 묻어 있지만, 그러니까 이보다 더 꾀죄죄할 수가 없고 이보다 더 생활적일 수가 없지만, 바로 이 장면을 만나려고 내가 방콕에 온 게 아닐까 싶다. 나는 환한 빛이 마음 한쪽을 간질이는 것 같은 지금 이 순간을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리라 예감하면서 다시 젓가락을 집어 든다.(1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병운 작가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26번째 작품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보이는 이번 작품은 읽는 내내 엄청난 몰입감과 독특한 구성으로 소설 속에 풍덩 빠지게 만드는 강렬한 매력을 뿜뿜 보여준다. 1장과 2장의 구성이 다른데, 1장에서는 공상표이자 강은성의 주변 인물들이 중심으로 나온다. 강은성의 엄마와 누나, 그리고 엄마의 예전 애인까지. 강은성은 꽤나 유명한 감독에게 생애 첫 작품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어 탄탄대로의 배우가 된다. 배우로서의 가명을 공상표로 택하고 강은성의 엄마인 김미승은 결국 강은성의 누나 강은진과 함께 1인 기획사를 설립하여 아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한다. 그런데 강은성은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가출을 감행하고 급기야 엄마가 자신을 찾아내면 또 다른 곳으로 숨어드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 누나와의 저녁 식사에서 강은성은 자신이 게이라고 고백한다. 이미 어릴때부터 지켜봐왔던 강은성의 행동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은진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1장에서 나온 강은성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커밍아웃을 할 것 같은 기세였는데, 2장에서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강은성에게는 나름의 다른 이유가 있었다. 2장에는 강은성의 연인 김영우 감독이 나온다. 은성은 대학에서 우연히 선배였던 김영우 감독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는 계기로 안면을 트게 된다. 이후 개인적인 자리에서 김영우 감독은 은성이 게이 아니냐고 묻는 물음에 정색을 하며 부정하지만 결국 김영우 감독의 구애와 같은 집요한 물음에 끌려가는 듯한 좋은 감정을 느끼며 자신은 게이라고 고백한다. 이후 그들은 연인이 되어 서로의 가장 아픈 상처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은성이 왜 마마보이처럼 엄마의 말을 따르며 살아야만 하는지, 그리고 김영우는 가족들로부터 아웃팅 당해 의절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그리고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을 주고 받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를 만들고 나서 큰 갈등이 생겨난다. 실제로 영화에서 영화감독과 주연배우의 사랑이 담긴 퀴어물인데, 영화를 다 찍고보니 강은성은 누가봐도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두려워 영화를 엎어달라고 부탁한다. 강은성을 사랑한 김영우는 만일 이 영화를 엎는다면 자신과는 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강은성은 그의 연인과의 이별을 택한다. 시간이 흐른 후 타지에서 촬영중인 강은성은 김영우가 평소 그들만의 성지처럼 생각한 클럽에서 불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곳에 김영우가 있었다는 소식또한. 
2장에서는 그 방화사건으로 죽게된 이들을 기리며 만든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강은성의 인터뷰 내용과 교차하며 김영우와 강은성의 만남이 마치 시퀀스의 여러 장면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에 응한 강은성이 사랑하는 형과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영화의 한 장편이 눈앞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이제는 단순히 게이나 레즈비언의 대한 선입견과 그 높은 벽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퀴어를 넘어서 LGBT 곧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젠더를 거론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서른 해 가까이 살면서 그가 분명히 알게 된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무리 밝고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제 몫의 어둠과 그들이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꼭꼭 숨겨 두어서 자신조차도 그 모양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우물을 누군가에게 열어 보이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다.(169-170)”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요. ‘진짜 나’는 숨기고 억누른 채 ‘꾸며진 나’로만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던 문제요. 제가 연기를 아주 얕봤던 거죠. 아무리 보잘것 없는 캐릭터라도 ‘진짜 나’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나를 전부 내어 주지 않고는 그 캐릭터에 다가갈 수 없는 건데 나는 ‘꾸며진 나’로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자만하면서 요행을 바랐던 거죠. 
내 연기가 나와 겉돌면서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니까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연기는 애초에 ‘꾸며진 나’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건 진짜아 아닐뿐더러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가닿지 못한다는 걸.(18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의 엄마 오늘의 젊은 작가 25
강진아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진아 작가의 [오늘의 엄마]를 읽었다. 오늘의 젊은 작가 25번째 작품인데, 저자는 원래 영화감독이었고 이번 작품을 처음 투고했는데 이렇게 장편소설로 나오게 되었다니 놀라운 일이다. 민음사 유투브의 인터뷰 내용을 보니 소설에 나오는 엄마의 투병 상황은 실제 저자의 경험담이기도 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번 작품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정아는 3년 전에 사랑하던 애인을 갑작스런 사고로 떠나보내 여전히 슬픔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아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거라는 말을 믿고 싶지 않았고 그런 동정을 받는 것조차 싫어하던 어느날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정아의 언니 정미는 건강검진을 받은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다며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정아와 정미의 엄마는 폐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게 되고 자매는 엄마의 병간호를 위해서 전심을 다하게 된다. 정아와 정미가 엄마를 간호하면서 잊고 있었던, 숨기고 있었던 서로의 싫은 점이 드러나 갈등을 겪기도 한다. 정아는 엄마의 죽음이 가까이 오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엄마를 돌보느라 그를 떠나보낸 슬픔을 잠시 잊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서울의 종합병원에서 고향 부산의 다른 병원으로 그리고 경주의 요양원으로 병실을 옮기며 엄마와의 시간이 더 길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엄마의 소식을 들은 지인들이 병문안을 와주고 정아가 태어날 때 아빠가 죽은 이후로 홀로 두 딸을 키워낸 엄마에게 숨겨놓은 애인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기도 한다. 정아는 엄마와의 이야기를 남겨 놓으려고 부단히 옛날의 기억들을 떠올려보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고 와서 엄마에게 엄마가 영어로 뭐냐고 물었던 장면을 떠올린다. 엄마는 중학교도 가지 못해 영어를 읽을 줄 몰랐는데, 그런 엄마에게 영어를 자랑하고 싶었던 정아에게 등짝 스매싱으로 상황을 무마한 정미의 모습도 떠올린다. 오랜 투병을 하는 환자와 간호하느라 지쳐가는 보호자들의 모습이 마치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그려졌다. 
특히나 수술실 앞에서 커다란 전광판에 올라온 가족의 이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박선희 53 수술 중’이라는 말이 대체 언제 ‘회복실로 이동중’라는 말로 바뀔 것인지 애타게 기다리는 모습은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서 멈춘 듯한 시간을 재며 식은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인지? 자그만한 병실의 침대 양편에서 이제 그만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충동의 짜증과 무력함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아직 알지 못하는 엄마의 이야기를 물어보라고 권한다. 그렇게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엄마를 조금 더 알게 된다면 아마도 아마도 다시금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힘이 생겨날 것이라고...

“처음 병원에서 말한 게 길어도 4개월이었더든?”
“응”
“그걸 넘으니까, 일상으로 돌아가 버렸어. 후회할 텐데.”
말하고서야 깨닫는다. 그랬구나, 싶다. 마침 기다리던 버스가 달려와서 칙, 둘 앞에 문을 연다. 고호민이 움직이지 않자 정어가 묻는다. 
“안 타?”
“다음 거 타지, 뭐.”
떠나는 버스를 잠시 바라보던 고호민이 천천히 입을 연다. 
“근데, 후회는 뭘 해도 하게 돼 있어.”
평소답지 않게 정갈한 말투다. 
“그래?”
“응, 나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 봤는데. 피할 수가 없더라고.”
그 말이 마음에 들어 정아는 자기 입으로 중얼거려 본다. 
“뭘 해도 후회하는 거구나.”
고호민은 약사처럼 절망이라는 면죄부를 처방해 주고 다음 버스를 탔다. 정아는 자신에게 필요한 게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었음을 깨닫고는 다시 엄마에게 미안해졌다. (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기창 작가의 공간 3부작 중 첫 번째 소설인 [모나코]를 읽었다. 두 번째 작품인 [방콕]을 읽고 매료되어 2014년에 발표된 작품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 역시나 작가만의 고유한 색감이 확실히 드러나는 특색있는 작품이었다. 현대 사회의 부각되는 문제점 중의 하나인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렇게 쓸쓸하거나 외롭거나 비참한 말로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노인의 사랑의 재확인에 대한 욕망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주인공은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져 노인으로 지칭된다. 노인은 꽤나 부유한 저택을 소유하고 있지만 부인은 10년 전 세상을 먼저 등졌고 아들 셋은 아버지를 잘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노인인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를 차근차근 아들들이 말아먹고 있는다는 표현이 나온다. 작품 말미에 둘째 아들이 나오는데, 아들은 아버지가 행여나 젊은 여자와 정분이 나 재산을 잃게 될까봐 아버지의 뒤를 캐는 못난 놈으로 그려지며 노인의 시니컬함은 지독한 고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노인에게는 둥과 흰눈이라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고, 노인은 때때로 둥과 흰눈에게 말을 걸며 그들과 대화를 한다. 노인에게는 덕이라는 가사도우미가 있는데, 덕의 치매에 걸린 엄마까지 챙기며 덕과의 보이지 않는 애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노인은 자신의 저택에서 가까운 보육원에 머무는 진이라는 미혼모를 알게 되고, 진에게 자신의 욕망을 시험해보고자 한다. 진은 유부남의 아이를 갖게 되어 노인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인지 노인과의 만남을 시도한다. 진은 노인의 집에 가서 노인이 원하는 것이 진의 몸일 거라 생각하지만 노인은 그저 진과 진의 아기를 바라보며 자신의 죽음을 생각한다.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며 진과의 로맨스에 설레여 하기도 한다. 
여기에 또 다른 등장인물들이 있는데, 뜬금없이 현관벨을 누르며 신문을 구독하라고 화를 내는 중년의 남자와 노인이 집을 나와 눈이 내린 비탈길을 내려갈 때면 등장하는 캐리어를 끄는 할머니가 나온다. 캐리어 할머니는 부자인 노인에게 마주칠때마다 걷기도 힘든 자신을 데려달라고 칭얼대는데, 노인은 싫은척 하면서도 그녀에게 도움을 준다. 진은 노인에게 해외로 같이 나가자며 자신과 아이의 삶을 기대려하지만 노인은 진의 아이의 아빠가 이혼을 하고 진과 함께 살련 한다는 것을 알고 진을 보내준다. 
노인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것인지 진과의 관계를 염려한 둘째 아들에게 덕과 덕의 딸과 손녀와 떠날 여행 준비를 맡긴다. 아들은 당연히 노인이 함께 여행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노인은 치매를 앓던 엄마를 떠나보낸 덕과 덕의 딸과 손녀만 유럽여행을 보내주고 홀로 쓸쓸히 집아 안락의자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두 달이 지나서야 썩어서 악취가 진동하는 채로 노인은 발견되는데, 그 전에 노인의 집 주변 눈을 정리하던 나이든 인부와 젊은 인부가 노인의 집에 도둑질 하러 들어갔다가 겁이나 도망가는 장면, 그리고 노인의 집에서 시가를 움쳤던 두 명의 청소년이 노인의 죽음을 발견하지만 모르척 가버리다. 
[모나코]의 독거노인의 고독사는 스스로가 준비한 완벽한 죽음이었다. 평균수명 90세에 달하는 장수국가의 이름이지만 그러한 공간이 과연 노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것인지? 단지 수명의 길이가 인간에게 삶의 충만함을 가져다 주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노인은 안락의자의 죽음에서 증명하려한다. 그리고 그 노인을 지키며 끝까지 그의 공간을 함께 한 존재가 둥과 흰눈이라는 사실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온다. 

“막스 쿠르츠바일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105)”
“모리츠 루드비히 폰 슈빈트 <아침 시간>, 마리아노 포르투니 이 카르보 <포르티시 해변의 누드>, 요제프 리플 로나이 <새장을 든 여인>(1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 밖의 모든 말들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금희 작가의 산문집 [사랑 밖의 모든 말들]을 읽었다. 저자가 지난 10년 동안 느껴왔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김금희 작가의 팬이라면 그녀의 첫 장편 소설이 출간되기 전의 모습이나 그 이후 우리 사회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또는 작가 개인의 이야기들을 통해 인간 삶에 대한 그녀의 통찰을 엿볼 수 있어 참 좋았다. 특히나 저자의 인스타그램에서도 느껴졌던 저작권에 대한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시간들을 묵묵히 견뎌낸, 하지만 그로 인해 건강의 무리가 온 것은 아닐지 염려되는 이야기들도 솔직 담백하게 털어놓는다. 소설이라는 픽션이 아니라 이렇게 산문집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을 때에 꽤나 큰 용기가 필요할텐데, 작가들은 그런 용기마저 어디서 생겨난 것인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그렇게 자신에게 뼛속 깊이 솔직할 수 없다면 진짜 이야기를 전해줄 수 없다는 확신에서만이 가능한 일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도 신자들에게 진짜 신앙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전심을 다하여 나 자신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할텐데, 그럴만한 용기가 그렇게 떳떳하게 살 자신이 점점 없어진다. 원론적인 이야기나 재미있는 우화나 비유들은 누구나 쉽게 찾아 인용할 수 있다. 그런데 강론을 쓰고 그 내용을 선포하며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으려면 염치를 모르는 철면피가 되거나 진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입으로만 좋은 말을 정의로 똘똘 뭉친듯한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그 옛날의 은수자들은 사막으로 달려간 것이 아닐까? 

“지금 당장은 곁에 없지만 어딘가에 분명 사려 깊게 자리하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 믿는 일이었다.(27)”
“사랑은 우리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 최후의 온기인데 그런 것에까지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식이라는 식의 냉소를 퍼부으면 곤란하다.(115)”
“죽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근원적으로 품고 가야 하는 고통이자 딜레마다. 죽음이 어떻게 다뤄지는가는 어떻게 사는가  만큼이나 중요하다. 죽음을 덮거나 피하지 않고 진정으로 애도할 수 있는 그런 사회 그럴 수 있도록 사회의 공기를 조성하고 충분히 슬퍼하고 분노할 수 있게 하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만이 삶은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이 된다. 죽음이 고유해질 때 우리 모두는 숫자 속에 숨은 익명이 아니라 고유한 개인이 되어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안녕이라고 말하지 못한 이별들은 은폐되거나 덮이는 것이 아니라 기억되고 말해져야 한다. 그런 비극이 우리 삶과 얼마나 가까운 것이 될 수 있는지를 지금 또다시 보고 있기 때문에, 더이상은 겪고 싶지 않은 무참한고통이기 때문에.(2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