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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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운 작가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었다.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26번째 작품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보이는 이번 작품은 읽는 내내 엄청난 몰입감과 독특한 구성으로 소설 속에 풍덩 빠지게 만드는 강렬한 매력을 뿜뿜 보여준다. 1장과 2장의 구성이 다른데, 1장에서는 공상표이자 강은성의 주변 인물들이 중심으로 나온다. 강은성의 엄마와 누나, 그리고 엄마의 예전 애인까지. 강은성은 꽤나 유명한 감독에게 생애 첫 작품의 주인공으로 선택되어 탄탄대로의 배우가 된다. 배우로서의 가명을 공상표로 택하고 강은성의 엄마인 김미승은 결국 강은성의 누나 강은진과 함께 1인 기획사를 설립하여 아들에게 모든 것을 집중한다. 그런데 강은성은 점점 이상한 행동을 보이며 가출을 감행하고 급기야 엄마가 자신을 찾아내면 또 다른 곳으로 숨어드는 행동을 반복한다. 그러다 누나와의 저녁 식사에서 강은성은 자신이 게이라고 고백한다. 이미 어릴때부터 지켜봐왔던 강은성의 행동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 은진은 애써 외면하려 한다. 1장에서 나온 강은성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커밍아웃을 할 것 같은 기세였는데, 2장에서부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강은성에게는 나름의 다른 이유가 있었다. 2장에는 강은성의 연인 김영우 감독이 나온다. 은성은 대학에서 우연히 선배였던 김영우 감독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는 계기로 안면을 트게 된다. 이후 개인적인 자리에서 김영우 감독은 은성이 게이 아니냐고 묻는 물음에 정색을 하며 부정하지만 결국 김영우 감독의 구애와 같은 집요한 물음에 끌려가는 듯한 좋은 감정을 느끼며 자신은 게이라고 고백한다. 이후 그들은 연인이 되어 서로의 가장 아픈 상처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강은성이 왜 마마보이처럼 엄마의 말을 따르며 살아야만 하는지, 그리고 김영우는 가족들로부터 아웃팅 당해 의절하게 된 사연을 들려준다. 그리고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랑을 주고 받지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단편 영화를 만들고 나서 큰 갈등이 생겨난다. 실제로 영화에서 영화감독과 주연배우의 사랑이 담긴 퀴어물인데, 영화를 다 찍고보니 강은성은 누가봐도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두려워 영화를 엎어달라고 부탁한다. 강은성을 사랑한 김영우는 만일 이 영화를 엎는다면 자신과는 끝이라고 말하지만 결국 강은성은 그의 연인과의 이별을 택한다. 시간이 흐른 후 타지에서 촬영중인 강은성은 김영우가 평소 그들만의 성지처럼 생각한 클럽에서 불이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 기사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에 그곳에 김영우가 있었다는 소식또한. 
2장에서는 그 방화사건으로 죽게된 이들을 기리며 만든 다큐멘터리 제작자와 강은성의 인터뷰 내용과 교차하며 김영우와 강은성의 만남이 마치 시퀀스의 여러 장면처럼 펼쳐진다. 그래서 그런지 인터뷰에 응한 강은성이 사랑하는 형과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영화의 한 장편이 눈앞에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이제는 단순히 게이나 레즈비언의 대한 선입견과 그 높은 벽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퀴어를 넘어서 LGBT 곧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서 젠더를 거론한다는 것은 결국 인간 삶에 대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서른 해 가까이 살면서 그가 분명히 알게 된 것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아무리 밝고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제 몫의 어둠과 그들이 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꼭꼭 숨겨 두어서 자신조차도 그 모양과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우물을 누군가에게 열어 보이다는 건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이었다.(169-170)”
“나라는 사람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하는 문제요. ‘진짜 나’는 숨기고 억누른 채 ‘꾸며진 나’로만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했던 문제요. 제가 연기를 아주 얕봤던 거죠. 아무리 보잘것 없는 캐릭터라도 ‘진짜 나’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건데, 나를 전부 내어 주지 않고는 그 캐릭터에 다가갈 수 없는 건데 나는 ‘꾸며진 나’로도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자만하면서 요행을 바랐던 거죠. 
내 연기가 나와 겉돌면서 형편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니까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연기는 애초에 ‘꾸며진 나’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아니, 어떻게 한다고 해도 그건 진짜아 아닐뿐더러 어느 누구의 마음에도 가닿지 못한다는 걸.(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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