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 인문학 여행 -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소울 플레이스를 동행하는 즐거움
박소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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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님의 [랜선 인문학 여행]을 읽었다. 부제로 ‘우리가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소울 플레이스를 동행하는 즐거움’으로 되어 있다. Vincent van Gogh, Ernest Hemingway, Johann Wolfgang von Goethe, Charles Dickens 이렇게 4명의 예술가에게 중요한 삶의 자리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저는 항상 마음이 섬세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는지, 아니면 감성적이지 않던 사람들도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서정성을 갖게 되는지 궁금했습니다. 무엇이 먼저인지 궁금했죠. 하버드대학의 심리학 교수 스티븐 핑거가 쓴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은 책을 읽으면서 조금 더 섬세한 결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책, 소설의 강력한 역할은 아무래도 ‘공감’인 것 같습니다. 폭력적이었던 인류가, 로마시대 검투사 경기와 중세시대 종교재판의 고문을 보며 남의 고통에 쾌락을 느끼던 인류가, 점차 책의 보급과 독서의 확대로 공감력을 갖게 되면서 폭력성이 현격히 줄었다는 증거도 있으니까요. 스티븐 핑거 교수의 말대로 감성적이지 않던 사람도 책을 읽으면 공감력이 더 확장되는 듯합니다.(20)”

고흐는 화가이면서 많은 책을 읽었기에 평생 어렵고 빈곤한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평생 지독한 외로움과 가난 속에서 허덕이며 살았고, 살아 생전에 그의 그림은 거의 팔리지 않는 무명의 삶을 살았다. 고흐의 괴로움은 동생 테오와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는데, 결국 정신착란 증세까지 보이며 자살로 비극적인 삶을 마무리 한다. 고흐가 37살에 죽기까지 약 10년 동안 그림을 그린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작품을 완성해 거의 2-3일 하나 꼴로 그림을 그린 셈이다. 고흐의 자살 이후 동생 테오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미망인이 된 테오의 부인 요안나는 고흐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는데 온 힘을 다했고 고흐의 조카는 삼촌의 그림을 기증하여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뮤지엄이 문을 열게 된다. 

“헤밍웨이는 인문학적 통찰을 지닌 기자였습니다. 그는 사실만 나열하듯이 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지요. 또 인간을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글로 옮겨야 하는데, 일생을 다 바쳐도 둘 중 하나 제대로 배우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가져야 한다고도 했지요.(134)”

헤밍웨이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프랑스 파리의 라탱 지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라탱 지구에는 제임스 조이스도 살았는데 여기서 [율리시스]를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실제 얼굴 사진을 보니 리즈 시절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톰 크루즈를 반반 섞어놓았다는 저자의 말에 맞장구를 칠 정도로 잘 생겼다. 유명한 예술가들은 흥정망청 살면서 개판인 생활습관을 지니고 영감이 불현듯 떠올라 위대한 작품을 쓴 것은 아닐까 싶지만, 헤밍웨이, 괴테, 디킨스도 모두 공통적으로 아주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아침에 일찍 일어나 정해진 몇 시간 동안 열심히 글을 쓰고 오후에는 산책과 운동으로 체력을 비축하며 글쓰기를 이어나갔다고 한다. 고흐 하면 압생트라는 엄청난 도수의 초록색 술이 떠오르는데 고흐가 압생트라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시각에도 문제가 생겨 ‘별이 빛나는 밤에’와 같은 작품에 나타난 것처럼 짙은 파랑과 노란색을 많이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실제 고흐가 십년간 그린 그림의 양은 너무나도 방대해서 그가 과연 그렇게 매일 술에 취한 상태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결국 인생이란 어떤 상처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상처를 어떻게 극복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나 괴로움은 대부분 자기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님이 급작스럽게 돌아가시거나, 집이 파산하거나 혹은 부모님이 사랑을 주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어린아이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인생이 왜 이 모양이지?’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 지레 포기합니다. 하지만 그 상태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통제하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괴로운 어린 시절을 눈부신 보석으로 탈바꿈시키는 예술가들의 DNA가 빛을 발하죠.(260)”

“디킨스는 스스로를 ‘이니미터블inimitable’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단어는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뜻이지요.(237) 모든 예술가는 규칙적인 생활과 더불어 산책에서 영감을 받곤 하는데 디킨스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산책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책에 있어서는 정말이지 이니미터블, 그 표현이 딱 맞습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아침식사를 한 뒤 집필하기 시작해 점심쯤 글을 마무리하고, 하루에 20킬로미터에서 30킬로미터, 많을 때는 50킬로미터 가까이 산책을 했습니다.(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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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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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진 작가의 [코리안 티처]를 읽었다.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마지막 저자의 말에서 이 소설을 쓰는 도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져 한국어학당의 수많은 강사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저자 역시 실직 상태가 되면서 벼랑 끝에서 소설을 쓰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다행히 이 소설은 살아남았고, 이 어려운 순간에도 삶을 간신이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아 위로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273).

이 소설은 명문 H 대 한국어학당에서 강사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네 명의 여성 선이, 미주, 가은, 한희의 이야기이다. 추천사에서 어느 작가가 언급했듯이 네 명의 주인공들이 이래서 옳고 저래서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묘사하며 서로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이 더욱 공감되었다. 큰 대학에서 마치 장사를 하듯이 비자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학생들과 강사들의 갑을 관계를 조종하며 운영되는 모습은 그냥 소설 속에만 비춰진 상상속의 무대가 아니라 급속도의 경제발전으로 위상이 높아진 우리나라의 숨겨진 부패한 민낯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어학당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도 외국어를 공부할 때 만났던 어학원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실비아, 마우리지오, 타마라. 6개월쯤 어학원을 다니자 어학원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학원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전쟁터였다. 예를 들어서, 어학원에서 배우기를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고 봉투가 필요하면,  ‘una busta, per favore’ 라고 말하면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며칠 후에 슈퍼에 갔더니 점원이 내게 먼저 물었다. ‘un sacchetto?’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있었더니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뭐야 내가 배운 말을 그게 아닌데. 또 다른 날 다른 점원은 ‘una borsa?’라고 물었다. 또 바보같이 서 있었더니 그 사람도 봉투를 내밀었다. 세상에 봉투를 사람마다 다른 단어로 사용하다니. 나중에 알고보니 각 나라의 언어마다 특징적으로 발달된 부분이 달랐다. 

이 소설에서 언급된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접미사가 무려 14개나 되었다. ‘-아/어서, -(으)니까, -더니, -(으)므로, -길래, -느라고, -(으)니, -(으)니만큼, -기 때문에, -는 바람에, -는 통에, -(으)ㄴ/는 탓에, -아/어 가지고, -아/어(172)’ 자세히 보니 모국어를 쓰는 우리들은 이런 말을 별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해왔다. 그런데 만일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배우면서 14가지나 되는 이유를 말할 때 쓰는 문법을 외워야 한다면 정말 미칠 것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법을 일상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어에는 왜 이유 문법이 많을까? 가은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가은은 생각했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렇게 된 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결과가 있으니 원인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다 보니 이렇게 많은 이유 표현이 생겨난 거 아닐까. 결과 표현은 ‘-(으) ㄴ 결과’, ‘-(으)ㄴ 끝에’, ‘-(으)ㄴ 나머지’ 정도로 적은 걸 보면 정작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겠다는 건가. 이미 벌어진 일에는 순응하면서도, 그 일의 이유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언어.(173)”

“외국인 화자는 한국어 발음에서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워한다고 배웠다. ‘ㄱ,ㄷ,ㅂ,ㅈ’이 초성에 있는 경우 외국인 화자에게 ‘ㅋ,ㅌ,ㅍ,ㅊ’으로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감사합니다’를 ‘캄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김치’를 ‘킴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귀에는 한국인이 ‘김치’를 말할 때 ‘킴치’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감사합니다’를 말할 때 ‘캄사합니다’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래서 한국인이 ‘배트’를 말하면 외국인의 귀에는 ‘페트’라고 들리고 ‘조커’를 말하면 ‘초커’라고 들리는 것이다. 된소리를 구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서 외국인 화자로서는 몇 년이 지나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굴’과 ‘꿀’을 구별할 수 없고, ‘담’과 ‘땀’ 역시 똑같은 단어로 들린다. 세계에 존재하는 3000여 개의 언어 중에서 ‘ㅅ’과 ‘ㅆ’을 구별하는 것은 한국어와 아프리카계의 언어 하나뿐이라고 하니, ‘사다’와 ‘싸다’를 다른 뜻으로 말하는 건 엄청나게 특이한 일인 것이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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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안전거리
박현주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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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작가의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를 읽었다. Like-it 시리즈 7번째 책이다. 표지에 한 여인이 세워진 오픈카에서 내려 사막과도 같은 곳에 놓인 도로 한 가운데에 서 있다. 그리고 오픈카 보조석에는 유령처럼 커다란 보자기를 뒤집어 쓴 것 같은 사람이 앉아 있다. 아마도 내가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다 하더라도 나의 영혼은 그대로 남아 있다라는 것을 암시하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표지에 차가 나와 있어서 그런지 제목에서 안전거리가 씌어서 그런지 저자가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유명한 저자의 책들과 연관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지금 운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당신이 면허 취득할 때부터 지금까지 에피소드를 말해달라고 하면 아마 다들 한 두 가지 이상은 기막히고, 가슴철렁하고, 어이없는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또 다른 장소로 이동시켜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많은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차를 통해서 타인을 평가하고, 또 차를 통해서 꽤 많은 즐거움을 얻기도 한다. 더군다나 가족 중에 노약자와 어린이가 있다면 차야말로 가장 필요한 필수품이 되고 만다. 운전을 즐기지 않기에 차를 몰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먼 곳에 가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기질과 운전 하기를 싫어하는 성질과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인지 그럭저럭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그리고 타인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타고 가끔씩 기분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니 운전을 싫어하는 게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다. 

“우리의 평생은 내 자리를 찾기 위한 순례와 같다. 돈, 명예를 비롯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들은 차와 집 같은 물리적 공간을 얻어내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회에서 내가 있을 적절한 자리를 찾아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애정, 호의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 이 자리에 당신이 있어도 된다는 환대를 뜻하는 모든 것들, 우리는 늘 그것을 찾아서 헤매고, 그를 얻지 못한다면 댈 자리 없는 주차장에서처럼 비참하고 괴롭다. 무엇보다 끝없이 빙글빙글 돌아야만 한다.(76)”

“S와 나는 같은 나이이다. 그리고 인생에서 닥쳐와야 할, 닥쳐올 변화에 대한 유사한 고민을 한다. 우리의 삶은 왜 이리로 흘러와버렸을까? S는 이렇게 말했다. ‘몸은 늙어가지만 정신은 자라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성장이 언제 멈춘 것인지 모르겠어.’ 나도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왜 마음은 몸에 맞춰 늙지 않는 걸까? 그러나 내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고 해서 여전히 어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어리지도 않지만 성장하지도 않는 마음을 갖고 살아간다. 아마 더 나이가 들어도 그 마음의 핵심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리나의 얼음이 녹아 물이 되듯이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코어가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내 마음의 성질이다. 우리는 마음의 성질을 안고 상태 변화를 겪는다.(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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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과 열심 - 나를 지키는 글쓰기
김신회 지음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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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작가의 [심심과 열심]을 읽었다. 최근에 [아무튼 여름]을 잼나게 읽었는데, 이렇게 빨리 또 다른 책에서 만나게 되니 작가의 성실함이 느껴진다. 부제가 ‘나를 지키는 글쓰기’라고 붙인 것으로 보아, 그리고 본문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김신회 작가는 정말로 글쓰기를 사랑하는 것 같다. 특히나 마지막 부분에서 글쓰기를 통해서 누군가를 위로하고 그의 눈물을 닦아주고 또 작가의 글을 읽은 독자들이 작가의 눈물을 보듬어 준다는 내용이 담긴 ‘우리는 서로 때문에 운다’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13년동안 에세이스트로서 부단히 노력해온 혼자만의 투쟁과도 같은 시간들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는 듯하다. 10년 이상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 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그 열매로 세상에 나온 책을 통해 나 또한 이렇게 하루를 마감하게 되니 그 영향력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 아닐까. 그럼에도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글쓰기는 좀처럼 쉽지가 않다. 

나 또한 오랜시간 글을 써왔기에 그 고충은 충분히 공감된다. 특히나 전업작가로서 마감을 지키는 일은 곧 생계와도 직결된다고 생각하니,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아왔을 것임에도 작가 홀로 지켜낸 시간들 덕분에 나와 같은 독자들은 오늘도 기쁘고 만족스럽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다. 김신회 작가는 초등학교 6학년 때에 제출한 작문 숙제에 담임 선생님이 ‘넌 작가가 될 거야.’라는 코멘트를 달아주신 것을 보고 뛸듯이 기뻤다고 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당시 대학마다 본고사를 따로 보는 전형이 생겨 본수업 외에 따로 특별반이 운영되었다. 본고사는 주로 국영수 위주였고 특히 국어 과목은 문학작품에 대한 독후감을 쓰는 게 중요했다. 당시 매주 선생님이 내주는 단편문학을 읽고 한 장짜리 독후감을 써야 했다. 독후감을 쓰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지만, 단편문학을 읽는 것은 입시에 찌든 고등학생에게 샘물과도 같은 기쁨을 주었다. 당시 그 특별반에 나보다 공부 잘하는 녀석들이 상당히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써온 독후감을 한 번씩 발표하자고 하면 대부분 독후감을 써오지 못해서 나 혼자 발표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얼마 후 국어과목을 맡았던 담임 선생님은 나를 부르시던니, 나중에 글쓰는 사람을 해보는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김신회 작가는 어릴 때 그 말을 들어서인지 지금 전업작가가 되었고 베스트셀러도 출판했지만, 나는 이렇게 지금도 독후감을 쓰고 있다. 

전업작가가 되지 못한 대신에 거의 매일 독자들과의 만남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일매일 준비한 강론을 신자들에게 언제나 생방으로 들려주는 몫을 맡게 되었으니 어쩌면 그때 선생님의 말씀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나보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해나가기 위해 김신회 작가의 조언들을 귀담아 들어야겠다. 

“글 쓰는 데 가장 필요한 것 역시 체력이다. 체력이 끈기고 곧 재능이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원래부터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버티고 많이 쓰는 사람이 곧 잘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해가 갈수록 실감한다. 글은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들이 그렇게 운동을 하는 걸까.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있는데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다 쓰고 나면 달린다는 그의 생활은 이미 많은 독자들이 알고 있어서 ‘달리기=하루키’라는 비공식적인 공식이 있을 정도다. 소설가 김연수 역시 매일 달리기를 하고 있다고 하고, 내가 사랑하는 소설가 기쿠다 미쓰요도 몇 년 전부터 마라톤에 빠져 오직 달리기 위해 해외 원정까지 떠난다고 한다. 작가들만의 체력 관리법을 접할 때마다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잘 쓰는 사람들도 이 정돈데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 하고 주먹을 쥐지만 그렇게 쥔 주먹은 매번 금세 풀린다.(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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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클래식 수업 4 - 헨델, 멈출 수 없는 노래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4
민은기 지음, 강한 그림 / 사회평론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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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은기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4]를 읽었다. 이번 호는 ‘헨델, 멈출 수 없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히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별칭한다면,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라 불러왔다. 이렇게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칭한데에는 당연히 위대한 음악적 과업을 남겼기에 가능하겠지만, 바흐와 헨델은 둘 다 지금의 독일 지역에서 같은 해에 태어났고 심지어 고향도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바흐가 고향 주위의 곳에만 한 평생 머물며 활동하고 수많은 자식들을 낳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면, 헨델은 고향을 떠나 이탈리아, 영국, 아일랜드에 머물며 생전에 이미 유명한 작곡가였다. 헨델은 바흐와 반대로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으며 제자 양성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바흐와 헨델은 노년에 똑같이 안과 질환으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되는데, 둘 다 똑같은 돌팔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다가 실명하게 된다. 

헨델의 수많은 오페라 곡 중에 그래도 많이 들어본 것은 ‘리날도’였다. 1995년 개봉한 영화 ‘파리넬리’를 통해서 처음 듣게 된 ‘리날도’의 삽입곡 ‘울게하소서’는 소프라노와는 다른 소년 시절 거세한 후 성인으로 자란 카스트라토만의 특징을 그려내고 있다. “카스트라토는 일단 남성의 몸이라 폐활량 자체가 좋아요. 길게 음을 낼 수 있는데다 성량도 큰데, 음역대는 여성이에요. 게다가 완전히 여성의 목소리라고 할 수 없는 묘한 소년의 음색은 소프라노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 있었죠.(123)” 영화 ‘파리넬리’를 본 날은 추석 연휴를 마치고 학교로 다시 등원하는 날이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들어가는 날 선배들과 함께 서울까지 가서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뭔가 맘에 들지 않았는데, 듣보잡 영화라니 심드렁한 마음이 들었다. 영화에 대한 그리고 당시 카스트라토에 대한 사전 정보가 전혀 없이 노래 잘하는 어린이들이 울음을 터트리며 거세당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최고가 되기 위해 자연적인 생식과정조차 포기해버린 파리넬리는 엄청난 부와 명성을 얻게 되지만, 사랑하는 여인과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적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이 못내 안타깝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헨델의 아버지는 63살에 헨델을 낳은 외과의사이자 이발사였다고 한다. “과거 유럽에서 이발사는 보통 외과 의사 역할까지 했거든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이발소 앞에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흰색 띠가 돌아가는 삼색 등이 꼭 달려 있었죠. 이발소를 상징하는 이 삼색등은 이발사가 외과의사를 겸했던 역사의 흔적이에요. 빨간색이 동맥을, 파란색이 정맥을, 흰색은 붕대를 의미한대요. 흰색의 경우, 신경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지만요. 이발사와 의사가 모드 흰 가운을 입는 것도 이들이 같은 직업에서 갈라졌기 때문입니다.(65)”

말년의 헨델은 오라토리오에 집중하며 어쩌면 헨델의 가장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메시아’를 작곡한다. 할렐루야가 수없이 반복되는 합창곡이 들어간 ‘메시아’는 아마도 전세계 사람들을 모두 헨델이 팬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곡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만나요, 꿈에서도 그리고 꿈보다 행복한 현실에도 
예술가라면 궁핍한 생활과 무너지는 마음을 견디며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고 여기는 편견이 간과하는 것은 
예술 그 자체가 얼마나 현실을 꿈보다 아름답게 만들어주는지가 아닐까. 
몇백 년 동안 뭇사람들의 입을 타고 계속 불리는 헨델의 노래는 
단단히 뻗은 뿌리를 타고 올라 믿음을 지탱해주는 기둥을 키우고
햇살을 머금는 가지와 잎을 피우게끔 모두를 응원한다.(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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