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 티처 -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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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진 작가의 [코리안 티처]를 읽었다.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 마지막 저자의 말에서 이 소설을 쓰는 도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져 한국어학당의 수많은 강사가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저자 역시 실직 상태가 되면서 벼랑 끝에서 소설을 쓰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다행히 이 소설은 살아남았고, 이 어려운 순간에도 삶을 간신이 버텨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닿아 위로를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273).

이 소설은 명문 H 대 한국어학당에서 강사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네 명의 여성 선이, 미주, 가은, 한희의 이야기이다. 추천사에서 어느 작가가 언급했듯이 네 명의 주인공들이 이래서 옳고 저래서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묘사하며 서로의 관계를 언급한 부분이 더욱 공감되었다. 큰 대학에서 마치 장사를 하듯이 비자를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학생들과 강사들의 갑을 관계를 조종하며 운영되는 모습은 그냥 소설 속에만 비춰진 상상속의 무대가 아니라 급속도의 경제발전으로 위상이 높아진 우리나라의 숨겨진 부패한 민낯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어학당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도 외국어를 공부할 때 만났던 어학원 선생님들이 생각났다. 실비아, 마우리지오, 타마라. 6개월쯤 어학원을 다니자 어학원 선생님들이 하는 말을 대부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학원 수업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전쟁터였다. 예를 들어서, 어학원에서 배우기를 슈퍼에 가서 물건을 사고 봉투가 필요하면,  ‘una busta, per favore’ 라고 말하면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며칠 후에 슈퍼에 갔더니 점원이 내게 먼저 물었다. ‘un sacchetto?’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멍하니 있었더니 내게 봉투를 내밀었다. 뭐야 내가 배운 말을 그게 아닌데. 또 다른 날 다른 점원은 ‘una borsa?’라고 물었다. 또 바보같이 서 있었더니 그 사람도 봉투를 내밀었다. 세상에 봉투를 사람마다 다른 단어로 사용하다니. 나중에 알고보니 각 나라의 언어마다 특징적으로 발달된 부분이 달랐다. 

이 소설에서 언급된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접미사가 무려 14개나 되었다. ‘-아/어서, -(으)니까, -더니, -(으)므로, -길래, -느라고, -(으)니, -(으)니만큼, -기 때문에, -는 바람에, -는 통에, -(으)ㄴ/는 탓에, -아/어 가지고, -아/어(172)’ 자세히 보니 모국어를 쓰는 우리들은 이런 말을 별 생각없이 자연스럽게 사용해왔다. 그런데 만일 외국인이 우리나라 말을 배우면서 14가지나 되는 이유를 말할 때 쓰는 문법을 외워야 한다면 정말 미칠 것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 문법을 일상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것은 정말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한국어에는 왜 이유 문법이 많을까? 가은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유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고 가은은 생각했다. 왜? 도대체 왜? 왜 그렇게 된 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결과가 있으니 원인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 끊임없이 묻고 대답하다 보니 이렇게 많은 이유 표현이 생겨난 거 아닐까. 결과 표현은 ‘-(으) ㄴ 결과’, ‘-(으)ㄴ 끝에’, ‘-(으)ㄴ 나머지’ 정도로 적은 걸 보면 정작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겠다는 건가. 이미 벌어진 일에는 순응하면서도, 그 일의 이유는 끝까지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언어.(173)”

“외국인 화자는 한국어 발음에서 거센소리와 된소리를 구별하기 어려워한다고 배웠다. ‘ㄱ,ㄷ,ㅂ,ㅈ’이 초성에 있는 경우 외국인 화자에게 ‘ㅋ,ㅌ,ㅍ,ㅊ’으로 들린다고 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감사합니다’를 ‘캄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김치’를 ‘킴치’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귀에는 한국인이 ‘김치’를 말할 때 ‘킴치’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감사합니다’를 말할 때 ‘캄사합니다’라고 발음하는 것으로 들린다. 그래서 한국인이 ‘배트’를 말하면 외국인의 귀에는 ‘페트’라고 들리고 ‘조커’를 말하면 ‘초커’라고 들리는 것이다. 된소리를 구별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서 외국인 화자로서는 몇 년이 지나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굴’과 ‘꿀’을 구별할 수 없고, ‘담’과 ‘땀’ 역시 똑같은 단어로 들린다. 세계에 존재하는 3000여 개의 언어 중에서 ‘ㅅ’과 ‘ㅆ’을 구별하는 것은 한국어와 아프리카계의 언어 하나뿐이라고 하니, ‘사다’와 ‘싸다’를 다른 뜻으로 말하는 건 엄청나게 특이한 일인 것이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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