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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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 작가의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읽었다. 기후변화라는 말과 사랑이라는 말이 어울려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저자의 참신한 아이디어에 놀람을 금치 못하며 책장을 넘기다 어쩌면 실제로 일어날지 모를 일이라는 생각에 섬뜩함과 책임감이 몰려왔다. 스웨덴에서는 십대 소녀인 그레타 툰베리가 벌써 몇 년 전부터 환경운동가로서 기후변화의 심각함에 대해 토로하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해마다 경이로운 날씨 변화를 체감하면서도 오히려 너무 강력한 변화를 일찌감치 겪어서인지 별다른 자극을 받지 못하며 여전히 환경파괴를 일삼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어제 뉴스 보도에서 다회용 컵에 대한 인식개선과 더불어 스타벅스에서는 2025년까지 일회용 컵을 아예 사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를 듣게 되었다. 코로나 사태로 집집마다 배달음식을 먹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리고 덕분에 수익을 올려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지만, 배달음식을 한 번만 시켜보면 깨닫게 된다. 대체 나 하나 배부르자고 얼마나 많은 플라스틱을 소비하게 되는가 하고 말이다. 그동안 특별히 환경오염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하더라도 순식간에 플라스틱이 쌓이는 모습을 보면 덜컥 겁이 난다. 대체 저 많은 플라스틱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런데도 플라스틱 사용의 편리함을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내 일상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은 마치 마약처럼 우리의 몸을 중독시켜 플라스틱 사용의 폐해를 너무나 잘 알면서도 멈추지 못한다.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 상황에서 도덕적 양심과의 저울질에서 불편함을 무릅쓰고 기후변화를 악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때로는 나 자신을 별종으로 여겨지게 한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 자동차 광고에서 ‘용기맨’이라는 카피를 쓰며 어느 기업의 간부가 불편해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 위해 각종 용기를 가지고 다니는 모습은 퍽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실제로 그렇게 멋져 보이기 위해서는 다양한 용기 자체가 음식을 담기에 그럴듯한 미적 품격을 지녀야 할테지만 말이다. 

저자가 열 개의 단편에서 보여주는 기후변화가 심각해진 시대의 모습은 지금의 모습을 그려내기도 하고, 상황이 너무나도 심각해져 특별한 장치(커다란 돔시티 같은) 안에서만 생존이 가능한 시대를 그려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지금 사랑 같은 걸 운운할 때냐고 누구가가 한심한 투로 말을 건넨다 하더라도 사랑은 피어나고 지속된다. 왜냐하면 사랑을 하지 않으면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니까 말이다. 결국은 우리가 기후변화를 가져온 삶의 행태들을 반성하고 자본주의가 가져다 준 편리함에 익숙함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이유는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나의 온전한 몸을 따스하게 비추는 햇살을 사랑하고, 을씨년스러운 축축함을 안겨주지만 어떤 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을 정도로 안심하고 맞을 비를 사랑하고, 산길을 걷다 마주친 짐승이 물을 마시다 놀란 눈으로 도망치는 모습을 지켜보며 목을 축일 수 있는 샘물을 사랑하며 살고 싶어서이다. 마스크를 쓰고서라도 벚꽃 눈을 맞고 봄햇살을 즐기는 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 없이는, 초록이 없이는 우리의 본성도 사라질 것만 같다. 추천의 말에서 나온 “인간성을 상실하면서까지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는 걸까. 대체 누구를 위하여”라는 구절이 자꾸만 귓가에 맴돈다. 

“안다. ‘지구 온난화’라는 말을 들을 때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안다. ‘기후 변화’의 경종을 울릴 때 당신의 기분이 어떻게 변하는지.
안다. ‘환경 보호’라는 말이 당신에게 얼마나 공허하게 들리는지. 
그것은 맞지만 지겨운 말. 옳지만 무미건조한 말. 
머리로 이해하는 건 쉽다.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움직여야 한다면, 참여해야 한다면, 그래서 바꾸거나 변화해야 한다면, 그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캠페인이 일상의 등을 떠밀 때, 구호와 선전이 동참과 참여의 언어로 바뀔 때, 듣는 자는 망설이게 된다. 올바른 그 말이 싫어진다. 부담스럽다. 번거롭기만 하다.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그냥 이대로 조용히 살다 적당히 죽고 싶은 마음뿐. - 정용준 작가의 서문 중에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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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 - 2014년 제10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리커버 개정판
정재민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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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민 작가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읽었다. 퀸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2018년에 개봉되어 꽤나 큰 인기를 누렸고 이미 오래전 노래임에도 다시 한 번 퀸의 저력을 느낄 만큼 꽤나 자주 들려왔다. 이 소설이 영화 개봉 이후에 출판되었다면 영화와 노래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제목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했겠지만, 개정판 이전의 출판은 이미 2014년에 이루어졌기에 저자가 아주 오래전부터 퀸의 노래를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책의 제목이면서도 소설 한 가운데에 추억의 턴테이블 또는 늘어지도록 들은 공테이프에 녹음된 노래로 빈번히 등장한다. 그리고 노래 가사까지도 인용되어 소설의 복선을 암시한다. 

개정판을 내며 저자가 추가적으로 쓴 앞부분을 읽게 되면 소설의 내용이 대충 그려지며 자발적인 스포일러의 경향이 농후해서 김이 새는 기분이 적지않게 들지만, 오히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의 말도 안되는 일들이 어쩌면 정말로 저자가 판사로서 겪은 억울하고도 원통한 일이 아닐까란 의구심을 폭증시켰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저자처럼 역시 판사이다. 하지환 판사는 그의 고향인 신해시로 내려가서 추억을 더듬다 대학 후배를 만나게 되고 고향집에서 우연히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본 후배는 돌아가신 엄마가 류마티스 관절염을 앓은 사람의 손가락이 아닌 것 같다는 황당한 얘기를 듣게 된다. 후배의 이야기가 귀에 맴돌던 지환은 신해성모병원을 찾아 엄마를 진료했던 우동규라는 류마티스 전문의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서 류마티스 환자도 아닌 퇴행성 관절염 환자에게 오랜 시간 항류마스티제를 투여했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격분한 지환은 우동규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 위해서 동분서주하지만 든든한 뒷백이 있었던 우동규를 처벌하기란 쉽지 않은 어이없는 현실이 묘사된다. 

소설속에 나오는 우동규란 인물은 자신의 말을 동전 뒤집듯이 손쉽게 바꾸는 야비하고 비열한 인간의 전형으로 나온다. 자신이 이뤄놓은 부와 명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가리지 않고 사용하여 자신의 치부를 알고 있는 이를 매장시키려 하는 극악무도한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우동규가 그렇게 철면피의 행동을 서슴치 않고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잘못을 알고도 눈감아 주는 법원의 관행이 한 몫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든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판결이 내려지기 전에는 그를 범죄자로 간주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행한 거짓말과 악행이 너무나도 뻔하게 증거로 남아 있음에도 그를 변호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기막힌 핑계들은 그들만의 논리를 내세우며 지환의 분노를 부추겼다. 

지환이 판사라는 직함을 갖고 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우동규의 계략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힘없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억울한 일을 겪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과연 법이 정말로 정의를 제대로 실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인지, 아마도 요즘 사람들은 더더욱 깊은 회의를 갖지 않을까 싶다. 지환은 우동규의 법적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할 것을 알게 되자 분노에 휩싸이게 되고 정신분석학의 도움을 받게 된다. 지환의 내면적 두려움은 아주 어린시절부터 형성된 엄마와의 분리불안에서 시작되고 소중한 이들의 죽음을 경험하며 이별은 곧 죽음이라는 등식으로 말미암아 자신을 힘들게 하는 연인과도 이별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지환은 두려움과 상처를 극복하는 심리적 상담을 통해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파악하게 되고 민사 소송을 통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지환은 그의 어린 시절 친구를 통해 조금은 과격하고도 반전인 일을 저지르게 된다. 과연 그가 말하는 정의란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본질이 달라요.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정신적으로 성장시키고 확장시키는 것이죠. 반면 사랑에 빠지는 것은 과거에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 심리적 패턴에 빠지는 것에 불과해요. 진정한 사랑을 하는 것은 꾸준히 근육 운동을 하는 것처럼 힘든 일이지만 사랑에 빠지는 데는 마약에 빠지는 것처럼 아무런 노력이 필요치 않죠. 정신적으로 홀로 설 힘이 부족해 타인에게 의존하는 것을 사랑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사람들은 늘 외로움과 허기를 느끼면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구걸하는 데만 급급해요. 이들은 상대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상대에게 기생하려는 것에 불과하죠.(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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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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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를 읽었다. 데뷔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단숨에 그녀의 팬이 되어 첫 번째 장편 소설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역시나 독보적인 페이저 터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직장생활을 하며 작가로 등단했기 때문인지 저자가 그려내는 직장생활의 묘사와 설정은 마치 꾸며낸 창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옆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삶을 24시간 밀착 취재해서 그려내는 것 같은 현실감이 느껴졌다. 


이번 이야기는 제과회사인 마론제과를 다니는 세 명의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화자는 다해이고 은상 언니와 지송이 회사에서 만난 절친한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일상적인 직장생활을 그려내는 것으로 시작한 다해의 이야기는 어느덧 돈에 관해 철투철미한 은상 언니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조금은 철없는 것으로 비춰지는 지송의 연애 이야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이들이 친해지게 된 계기는 조금은 어이없고 조금 더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공채 채용으로 동기그룹이 형성되는 것에 반해 다해, 은상, 지송은 정식 채용 기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회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입사한 시기가 비슷해 입사동기로 치부되고 공채들의 그룹에는 인정받지 못하기에 그들만이 채팅방을 개설하여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은상 언니가 비트코인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시작된다. 바로 제목과도 직결되어 있는 가상화폐에 투자를 하여 한 몫 크게 잡고 싶은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은상은 다해와 지송에게 비트코인은 이미 값이 오를만큼 올라 큰 이익을 내기 힘들기에 새롭게 부상중인 이더리움을 소개하고 자신이 현재 얼마나 이득을 올리고 있는지 보여준다. 다해와 지송은 은상의 설명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다해는 점점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지송은 절대로 그런 것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후 세 명의 주인공이 이더리움의 그래프에 따라 떡상, 떡락하는 모습은 마치 나 또한 영혼까지 끌어모아 이더리움을 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이러다 세 명다 쪽박차는 것은 아닌지 날짜가 표기되며 이더리움의 가치가 변해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제발 어서 빨리 상한가일 때 팔고 나오기를 바라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투자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만 그 이후에 다해, 은상, 지송이 만나 혹시나 전 재산이 거덜났다면 어찌했을까 라는 가정에서 나온 말들은 잔혹한 현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고 주어진 분수에 만족하며 살기를 바라는 옛 현인들의 말씀은 자본주의에 파도에 휩쓸려 수저론을 탓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일상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것만 같다. 비록 전후시대의 배고픔을 걱정하던 시기와 비교할 수 는 없겠지만, 풍요로움의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노력과 성실함만으로 보람과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비관론적인 세태를 견뎌내야하기에 지송이 '오피스 오퍼레이터 직렬'로 채용되어 승진도 없고 팀 사람들이 밥도 같이 먹지 않기에 일주일에 한 번 다해, 은상과 점심을 먹는 시간이 가장 기다리고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내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98)"이라는 갈망을 가진 다해가, "은상 언니, 지송이, 그리고 나. 우리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년간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같은 회사에 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과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103)" 라고 스스로를 다른 부류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란 게 부러운 게 아니라 사람을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부러웠다. 반대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좀스럽게 굴면서 쉽게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다.(105)"라는 자조적인 고백을 토해내게 했다. 다해와 같은 이 시대의 청년들이 속물적인 근성에 몰입되어 수저론에 자신을 대입시켜 못나 보이는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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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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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었다. 서점에 갈 때마다 항상 판매대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뒷편을 펼쳐보고 출판된지 1년도 안 되었는데 400쇄가 넘었다는 서지정보를 보고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렇게 인기가 높은 것일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영화와 드라마의 주요소재로 등장하는 판타지물이기에 인기상승에 한 몫을 했겠지만 어찌보면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이 꿈에라서도 위로를 받기를 원할만큼 무엇인가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잠든 사람들이 꿈을 구입할 수 있는 백화점이 있는 특별한 거리이다. 이곳에는 잠옷을 입은 사람들이 즐비하게 거리를 누비며 오늘 밤에는 또 달디단 낮잠에도 원하는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며 꿈 백화점에 들어간다. 주인공 페니는 꿈에도 그리던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거쳐 드디어 신입직원이 된다. 신입사원 페니는 1층 프런트부터 5층에 이르기까지 각 층을 담당하고 있는 개성만점의 매니저들을 만나고 1층에서 일하고 싶은 포부를 피력하여 달러구트와 웨더 아주머니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다. 


달러구트가 운영하는 꿈 백화점의 직원들과 주인공 페니가 백화점 일에 적응해 나가는 구도를 토대로 꿈에 관련된 에피소드의 작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특히 페니를 비롯한 직원들과 꿈 제작자들의 이름은 모두 외국 사람처럼 보이지만 꿈을 꾸는 실제 현실의 주인공들은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을 갖고 등장한다. 꿈 백화점이 있는 곳은 어떤 특정한 나라라기 보다는 우리가 현실에서 볼수 없는 저 너머의 세상이라는 가정하에 우리는 잠결에 꿈 백화점을 방문하여 그날 꿀 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은 반복된 꿈을 꾸거나 특정한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게 되면 혹시나 내 무의식의 발로에서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꿈에 대한 정신분석학의 이론은 차지하더라도 꿈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은 각양각색이다. 


특히나 이야기의 발미에 나온 도제 꿈 제작자가 만든 죽은 사람들이 나오는 꿈은 뻔한 내용이 이어질 것을 알면서도 저절로 눈물이 맺히는 그리움과 아련함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가족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들이 꿈에서 그리던 사람을 만나고 깨어 한참을 울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했다. 얼마나 많이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많이 그리웠을까? 언젠가는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의 이별을 그렇게 꿈으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음을, 그 꿈은 정말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보내준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저는 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이 질문을 떠올려요. '사람은 왜 잠을 자고 꿈을 꾸는가?' 그건 바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제자처럼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든, 두 번째 제자처럼 과거에만 연연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신은 세 번째 제자에게 잠든 시간을 맡겨서 그들을 돕게 한 거예요. 왜, 푹 자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31-32)"


"모두가 제 꿈을 꾸고 극한의 자유를 느꼈다는 찬사를 보낼 때, 어린 저는 자유의 불완전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꿈에서는 걷고 뛰고 날 수 있는 저는, 꿈에서 깨어나면 그러지 못합니다. 바다를 누비는 범고래는 땅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정도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유를 누립니다.(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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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지음 / 미디어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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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카피라이터의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읽었다. 어쩌면 근래에 여행을 자유롭게 다닌 세대의 사람들은 인류가 아우 우연히 받은 선물을 누린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이 왠지 모르게 동의가 되면서도 슬프게만 느껴진다. 만일 어떤 경제적인 또는 물리적인 이유를 떠나서 다시는 예전처럼 자유롭게 어딘가를 갈 수 없다면 생각보다 우리 삶이 갑갑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며 특별한 누군가에게 혹은 그냥 스쳐 지나간 익명에게 보내는 편지는 작금의 고통을 감내하는 모든 이들에게 절대로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언젠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거라는 희망의 서를 건내는 듯하다. 


70년대 이전의 세대들은 해외 어딘가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아니 그런 2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사치한 일이었기에 언감생심이라는 말로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선택하라는 종용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분들 덕택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견문을 넓힌다는 명목하에 아무런 준비와 목적없이 그저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기다리는 여유로운 여행자의 코스프레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몇번의 여행 끝에 모든 떠남이 나를 만족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오히려 그 떠남의 시간이 현재에 만족하기 위한 하나의 훈련이었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면 여행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 마냥 편안하고 행복한 일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커다란 캐리어에 짐을 꾸려넣으며 설레여 하고 여행지에서 소소한 기념품과 선물을 구입하며 언젠가 떠올릴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저자가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도 재미있고 당황스러운 기억과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해결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글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은 역시나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사람들이기에 그냥 무심히 지나칠수도 혹은 차갑고 무뚝뚝한 만남에 불과할수도 있는 찰나의 순간들을 고이고이 간직했다가 뒤늦은 편지의 주인공으로 소환한다. 그러한 만남이 차곡차곡 쌓여 한권의 책이 되고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당신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화자가 될 수 있다고 초대한다. 아쉽고 그립고 답답하지만 견디고 기다리는 이가 편지를 받을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어보자고 위로해주는 듯 하다. 


"점을 선으로, 한 번의 만남을 긴 인연으로,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는 만남에 물을 주고 결국 꽃피우도록 하는 정성. 저에게 없는 단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그 정성일 거예요. 낯가림이 심하다고, 심하게 내성적이라고 아무리 변명을 해보아도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그 핑계로 딱 한 뼘의 공간만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있거든요. 그 좁고 그늘진 공간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는 인연들에게만 겨우 물을 주는 형편이거든요. 그 밖의 인연들은 다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면서요. 제 마음대로 인연을 재단하면서요.(297-298)"


"우리, 다시 여행을 하는 거야.

시간 속에서, 기억 속에서, 이미 네게 기억이 많잖아.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잖아. 곱씹고 싶은 얼굴도, 혀끝에 미세하게 남은 맛도, 한없이 헤매고 싶던 오전도, 더 바랄 게 없다 싶었던 오후도, 웃다 지친 밤도, 잠들도 싶지 않던 새벽도, 네 속에 다 남아 있잖아. 여행 가방이 턱턱 튕기던 돌길도, 해보다 먼저 올랐던 성곽도, 비가 오던 숲길도, 구원처럼 나타났던 찻집도, 아주 다 사라진 건 아니잖아. 그곳을 여행하는 거야. 생생하게 되살리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어. 간절한 사람이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어. 여행을 좋아하는 네가, 먼저 여행을 시작하는 거야. 좋아하는 여행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야. 가장 좋아하는 집에 앉아서 가장 멀리 떠나보자. 그러기에 딱 좋은 시간이 우리에게 도착한 거야. 문득 기억이 간절해지는 시간이 찾아오면 다 또 펜을 들자. 편지를 쓰는 거지.(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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