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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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의 [달까지 가자]를 읽었다. 데뷔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단숨에 그녀의 팬이 되어 첫 번째 장편 소설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역시나 독보적인 페이저 터너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직장생활을 하며 작가로 등단했기 때문인지 저자가 그려내는 직장생활의 묘사와 설정은 마치 꾸며낸 창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옆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삶을 24시간 밀착 취재해서 그려내는 것 같은 현실감이 느껴졌다. 


이번 이야기는 제과회사인 마론제과를 다니는 세 명의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다. 그 중에서 화자는 다해이고 은상 언니와 지송이 회사에서 만난 절친한 관계로 설정되어 있다. 일상적인 직장생활을 그려내는 것으로 시작한 다해의 이야기는 어느덧 돈에 관해 철투철미한 은상 언니의 이야기로 이어지고 조금은 철없는 것으로 비춰지는 지송의 연애 이야기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이들이 친해지게 된 계기는 조금은 어이없고 조금 더 부조리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 의식에서 비롯되었다. 공채 채용으로 동기그룹이 형성되는 것에 반해 다해, 은상, 지송은 정식 채용 기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회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들은 입사한 시기가 비슷해 입사동기로 치부되고 공채들의 그룹에는 인정받지 못하기에 그들만이 채팅방을 개설하여 친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은상 언니가 비트코인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시작된다. 바로 제목과도 직결되어 있는 가상화폐에 투자를 하여 한 몫 크게 잡고 싶은 욕구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은상은 다해와 지송에게 비트코인은 이미 값이 오를만큼 올라 큰 이익을 내기 힘들기에 새롭게 부상중인 이더리움을 소개하고 자신이 현재 얼마나 이득을 올리고 있는지 보여준다. 다해와 지송은 은상의 설명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다해는 점점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지송은 절대로 그런 것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후 세 명의 주인공이 이더리움의 그래프에 따라 떡상, 떡락하는 모습은 마치 나 또한 영혼까지 끌어모아 이더리움을 산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다. 이러다 세 명다 쪽박차는 것은 아닌지 날짜가 표기되며 이더리움의 가치가 변해가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제발 어서 빨리 상한가일 때 팔고 나오기를 바라게 만들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들의 투자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지만 그 이후에 다해, 은상, 지송이 만나 혹시나 전 재산이 거덜났다면 어찌했을까 라는 가정에서 나온 말들은 잔혹한 현실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하다. 재물에 욕심을 내지 않고 주어진 분수에 만족하며 살기를 바라는 옛 현인들의 말씀은 자본주의에 파도에 휩쓸려 수저론을 탓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일상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것만 같다. 비록 전후시대의 배고픔을 걱정하던 시기와 비교할 수 는 없겠지만, 풍요로움의 시대에 태어났음에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노력과 성실함만으로 보람과 기쁨을 얻을 수 없다는 비관론적인 세태를 견뎌내야하기에 지송이 '오피스 오퍼레이터 직렬'로 채용되어 승진도 없고 팀 사람들이 밥도 같이 먹지 않기에 일주일에 한 번 다해, 은상과 점심을 먹는 시간이 가장 기다리고 좋아하는 시간이라는 내용에서는 가슴이 먹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식의 박음질이 더는 지겨웠다. 나는 그냥 부스터 같은 걸 달아서 한번에 치솟고 싶었다. 점프하고 싶었다. 뛰어오르고 싶었다. 그야말로 고공 행진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98)"이라는 갈망을 가진 다해가, "은상 언니, 지송이, 그리고 나. 우리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던 건 암묵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같은 부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몇년간 깨닫게 된 것 중에 하나는 같은 회사에 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과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었다.(103)" 라고 스스로를 다른 부류로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은 "여유 있는 집안에서 자란 게 부러운 게 아니라 사람을 그 사람의 존재만으로 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이 부러웠다. 반대로 나는 속으로 이렇게 좀스럽게 굴면서 쉽게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다.(105)"라는 자조적인 고백을 토해내게 했다. 다해와 같은 이 시대의 청년들이 속물적인 근성에 몰입되어 수저론에 자신을 대입시켜 못나 보이는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건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만든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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