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너에게 줄게
잰디 넬슨 지음, 이민희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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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디 넬슨의 [태양을 너에게 줄게]를 읽었다. 원제는 “I’ll give you the sun”이다. 이란성 쌍둥이 노아와 주드는 미술계의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 노아와 주드의 엄마는 쌍둥이를 CSA예술고등학교에 보낼 계획을 세우게 되고 노아는 비범한 실력을 보여주며 예술계 학교에 가려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주드는 엄마의 참견과 계획에 반항하며 자신의 재능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노아의 관점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들이 열셋 일때, 그리고 주드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는 그들이 세살 더 먹은 열여섯 때의 일이다. 그리고 노아와 주드에게 3년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되고 그들은 절대로 회복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처럼 보인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틴에이저의 발랄하고 예민한 모습을 그리고 있기에 개방적인 미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도 성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고 때로는 큰 상처가 되는 다루기 힘든 재료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노아의 이야기 시작부분에서는 어디나 그렇듯 등치 큰 몇명 아이들의 무리를 형성하여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장면이다. 노아 또한 아직 여린 몸과 마음으로 그들을 애써 피하려 하지만 결국은 고약한 장난의 희생자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노아가 몸부림 치는 사이 노아를 괴롭히던 제퍼는 노아의 성정체성을 눈치채게 되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가 순탄치 않음을 예고한다.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노아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듯 엄마와 합심하여 CSA에 들어가 무지몽매한 무리에서 벗어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노아의 계획은 차근차근 잘 진행되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노아의 옆집에 나타난 브라이언이라는 고등학교 야구선수가 등장하며 노아의 마음을 한 순간에 잡아간다. 노아는 브라이언에게 순식간에 빠져들지만 브라이언이 자신과 같은 감정인지 확신하지 못하며 안절부절하게 된다. 이에 반해 주드는 엄마의 간섭에 보란듯이 반항하며 ‘그런 애’가 되어간다. 엄마의 사랑과 관심이 노아에게만 집중된 것 같아 주드는 그 나이 때가 아이들이 그렇듯이 못된 짓을 일삼으며 자신을 학대하게 된다. 하지만 열여섯살이 된 주드는 뭔가 달라졌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사람들이 누군가를 비난할 때 흔히 곁들이는 말이 있다. ‘곱게 자라서 그래. 뭐 고생을 해 봤어야 알지’ 라는 말들. 사실 곱게 자라는 게 나쁜 일이 아닐 뿐더라, 그렇게 자란 사람의 잘못 또한 결코 아니다. 좋은 부모님을 만나 쓸데없는 고생을 하지 않고 양질의 교육을 받으며 세상 모든 일이 잘 될거라는 밝고 희망찬 마음가짐을 갖게 된 것이 어찌 나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자란 사람을 바라보면 속이 뒤틀리게 된다. 특히나 그렇게 곱게 자란 사람이 나보다 잘나가고 높은 지위에 까지 오르게 된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깎아내리고 싶어한다. 상대적 박탈감과 못난 자신에 대한 불만족을 그렇게 애둘러 드러내게 된다. 속좁은 이들이 곱게 자란 이를 폄훼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는 것은 그도 나와 같은 굴곡진 삶을 살아야 인생이 공평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태생부터 출발점이 다르고 누릴 수 있는 혜택의 차이가 너무나도 크기에 불행은 왜 나에게만 주어진 것일까란 좌절감과 염세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한 번 뒤틀어진 마음은 쉽게 곧아지지 않는다. 나쁜 말과 마음을 습관적으로 내뿜다보면 어느덧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있게 된다. 스스로를 망가뜨릴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이다. 

노아와 주드는 순서를 바꾸며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선택을 한다. 상처를 극복하고 마주하며 회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서로를 외면한다. 그렇게 시간이 더 많이 흘렀다면 어쩌면 영영 그 회복의 씨앗이 매말라 버렸을지 모른다. 하지만 노아와 주드에게는 그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엄마와 브라이언과 오스카 랠리가 있었다. 그들과의 소모적인 감정 싸움 속에서 노아와 주드는 브라이언과 오스카의 진심을 알게 되고 서로의 용서를 위해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노아와 주드의 엄마는 마치 혼령처럼 주드의 곁을 맴돌며 노아와 주드가 스스로의 삶을 놓아버리지 않도록 도와준다. 

“애도의 눈물은 한데 모아 영혼을 치유하는 데 써야 한다.(213)”

“플라톤의 설화에 의하면 원래 인간은 머리 둘, 팔 넷, 다리 넷이었는데, 워낙 강하고 자아도취가 심해서 제우스가 모드 반으로 갈라 전 세계에 흩어놓았대. 결국 인간은 평생 자신의 다른 반쪽, 즉 영혼을 나눠 가진 이를 찾아 헤매는 운명이 되었지. 가장 운 좋은 인간들만이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내는 거야.(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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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미술 이야기 7 -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 미술의 시대가 열리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7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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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7]을 읽었다. 부제는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미술의 시대가 열리다”이다. 난처한 이라는 줄임말로 시작된 미술 이야기가 어느덧 7권에 이르렀고 이번 시리즈도 역시나 방대한 양과 수많은 작품 사진을 함께 둘러보느라 완독하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문제는 읽을 때는 다 알것 같고 역사적 배경과 위대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곁들여저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잘 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거의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르네상스의 절정에 달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들과 하이 르네상스를 지나 후기 르네상스라고도 불리는 매너리즘의 대한 설명 등은 중세 이후의 유럽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개괄적인 흐름을 인상깊게 남겨주었다. 


코로나 이전에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던 이탈리아의 여정에 바티칸 박물관과 우피치 미술관 투어를 신청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3번째였고 피렌체에도 여러번 갔었지만 해설사 투어를 신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막상 투어를 신청하고 해설사의 진행대로 설명을 들으니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던 미술 작품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바티칸 박물관 투어에서는 한적한 공간의 바닥에 앉아 무려 1시간 넘게 미켈란젤로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미켈란젤로의 오래된 작품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생각에 그의 생애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자세한 내용 또한 휘리릭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번 르네상스 부분에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작품들이 나오자 그당시 해설사에게 들었던 내용들이 희미하게 떠오르며 사진첩을 뒤적거려 내 손으로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살펴보았다. 사람에 치이면서도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점점 지쳐가던 모습이 떠올라 잠시 여행에 추억에 빠져들었다. 특히나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대체 이곳에 사람이 없을 때가 과연 있기는 한걸까란 생각이 들며 여전히 ‘사일런스’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안전요원들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하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성당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이 성당이나 저 성당이나 다 비슷해보여 감흥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사실 신자가 아니고 미술과 건축에 관심도 없다면 아마 그런 생각이 드는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신앙 유무와 미술, 건축에 대한 노관심이어도 몇 백년 전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금의 서유럽 국가들이 형성되기까지의 이야기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평범한 성당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알아갈수록 지금의 가톨릭과는 사뭇 다르게 이어져온 교회의 흑역사에 암담함과 더불어 언제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될 수 있음을 항상 상기해야 함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상당수의 유럽 사회에서 성당들이 카페와 레스토랑, 박물관 또는 숙박시설 심지어 나이트클럽으로 팔려나가는 상황과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종교에 관심이 전혀 없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 것은 그런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상 유지만 해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 부유함과 종교적 신심활동은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교회에서는 사적인 모임이 권력과 부를 공유하는 모임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국가적으로 봤을 때 부유한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종교에 더욱 깊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해외선교사들의 원조를 받으며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젯밥에 관심을 기울이다 열성신자가 된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에 반해, 우리보다 훨씬 먼저 경제적 부를 이루며 안정된 선진국에 진입한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은 종교세로 성당을 운영하는 곳이 많고 종교 분열 이후에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벌였던 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신교와 구교의 지역 감정이 남아있기도 하다. 어찌보면 비운의 역사를 들여다보다 화려하게 꾸며진 성당에 대한 설명을 읽게 되면, 결국 성경에 나온 진리를 따르는 삶보다 빛좋은 개살구처럼 겉치장에만 열을 올린 결과물들이 후대에 이르러 귀중한 유물로 여겨지고 보호를 받게 되는 현실이 조금 어이없기도 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이전의 피렌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라 냉정과 열정사이의 아오이와 준세이가 오른 두오모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한다고 했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피렌체의 명물이 베끼오 다리 또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진촬영은 불가능하다. 독사진을 찍으려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충 한장 찍고 지나가버리게 된다. 그런데 그 베끼오 다리의 아래 상점가 위가  코지모 1세라는 강력한 군주 개인을 위한 통로로 사용되었다니 그것 또한 놀랍기도 하고 암살에 대한 그의 두려움이 오늘날의 고풍스러운 다리로 남게 되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16세기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소개하며 팔라디오라는 건축가의 이름이 꽤 낯익게 다가왔다. 팔라디오 건축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템플 포르티코는 이미 우리나라의 건축물에도 볼 수 있는 그리스 로마식 기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이름이 친숙하게 다가온 이유는 바로 비첸자에서 팔라디오가 설계한 극장에 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테아트로 올림피코의 사진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고 실내 극장임에도 절묘하게 적용된 원근법으로 너무나 입체적으로 다가오던 무대 위의 구조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마무리하며 예고된 바로크 미술은 어떨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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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살고 있습니다 - 유튜버 하루데이가 기록한 낭만적인 도시 풍경
하루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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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작가의 [뉴욕에 살고 있습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유튜버 하루데이가 기록한 낭만적인 도시 풍경"이다. 저자의 유튜브 채널을 찾아본다면 책에 나오는 장면들을 상상이 아닌 직관적으로 볼 수 있을테지만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고 간간이 나오는 사진에 대리만족을 하며 뉴욕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읽어나갔다. 군 제대 후 미국에서 6개월 간 어학연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려서 그런건지 그 이후로는 미국에 갈 기회가 생겨도 도통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특히나 총기 사고가 빈번이 일어나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더더욱 미국에 대한 흥미는 줄어들었다. 대체 저렇게 불안한 나라에서 어떻게 사는 것일까란 생각이 증폭 될 때마다 우리나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상도 비슷하다는 반응을 떠올리곤 한다. 어디 출신이냐는 질문에 한국이라고 하면 항상 따라 붙는 질문은 남이냐 북이냐이다. 농담섞인 질문일수도 있고, 진짜 아무것도 몰라서 그냥 물어보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질문 이면에는 대체 한국 사람들은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듯 사느냐라는 의구심이 담겨 있다. 하기야 잊을만 하면 미사일을 동해상에 쏘는 북한을 24시간 적대해두고 사는 것이 빈번한 총기 사고보다 더 위험하게 보일 수 도 있겠다만, 그래도 미국의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꽤나 많다. 


어쩌면 이런 나의 편견과 선입견에 불과한 생각들을 오랜만에 접어둘 수 있는 글을 읽게 되어서 반가웠다. 하루 저자의 뉴욕에 대한 글은 미국 사회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했던 내 마음에도 맨하튼의 거리를 한 번 걸어보고 싶다는 작은 새싹을 틔우게 했으니 말이다. 사실 부르마불에서 가장 비싼 도시라인에 있는 뉴욕, 파리, 런던, 도쿄 등은 대도시답게 사람도 엄청 많고 높은 빌딩이 즐비한 마천루가 상당하며 덕분에 이래저래 볼거리도 많을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하루 관광객이 로마 내의 주민들보다 더 많이 오는 곳에서 살아봤기에 그 대도시의 정신없음과 더러움에 상반된 활기와 열정을 잘 알고 있다. 로마에서 사람에 치이다가 한 적한 작은 소도시를 방문할 때면 '그래 이 한적함이야 말로 진짜 이탈리아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로마에 돌아와 하교길에 은은한 불빛에 반사된 그윽한 시간의 향기를 내뿜는 콜로세움을 지나치도라면 그 여운은 어느 곳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러니 그 고유한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으려면 길가에 치이는 개똥과 홈리스들의 구걸과 지리내를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리라. 


뉴욕은 어쩌면 세계 경제의 심장부라고 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해관계로 모여들었다가 떠나는 곳이기에 저자의 글처럼 '어디 출신이냐'는 보편적 질문도 쉽게 던지지 못하는 세계화가 이루어진 도시가 아닐까 싶다. 요즘처럼 인종차별에 대한 각별한 시각이 두드러지는 세기를 살고 있음에도 여전히 피부 색깔이나 인종, 국가에 대한 무지몽매한 차별이 남아 있기에 해외에서 행여나 억울한 대우를 받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센트럴파크의 공원이 주는 자연에 대한 공존과 여유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는 산이 많기도 하지만 인위적으로 형성된 대형 공원이 많지 않아서 센트럴파크와 같은 공원이 무척이나 부럽기만 하다. 제주도의 걷기 좋은 숲길에 항상 사람들이 붐비는 것처럼 서울 한복판에 몇 시간 동안 걸을 수 있는 공원이 조성된다면 지금의 삭막함은 조금이나마 상쇄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양이와 개의 천국인 뉴욕에서는 자신이 키우지 않는 동물에 대한 배려심이 돋보이고 홈리스와 함께 지내는 것에 대한 자연스러운 모습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약물 복용에 대한 지나친 관용과 아플 때 상상을 초월하는 병원비에 대한 공포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브로드웨이와 같은 문화와 예술을 언제든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펼쳐져 있다는 것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이 소장한 위대한 예술작품을 관람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가게 된다면 하루 작가의 글을 떠올릴 것이고 가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유튜브를 통해 대리만족하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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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아래
이주란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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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란 작가의 [수면 아래]를 읽었다. 얼마전 종영한 ‘나의 해방일지’에서 질리도록 말이 없던 구씨와 3남매의 아버지 염제호가 나오는 장면을 글로 쓴다면 이런 느낌일까. 해인, 우경, 성규, 장미, 유진 그리고 환희라는 꼬마 아이까지 등장인물은 그렇게 많지 않고 때로는 따분함이 느껴질 정도로 격동치는 사건조차 하나 없다. 너무나도 잔잔하고 희미해서 졸음이 올 정도이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수면 아래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잔잔한 모습의 수면에 이르기까지 어떤 격랑을 겪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만 아는 슬픔의 시간, 오롯이 스스로 견뎌내야만 하는 지독한 고독의 시간을 수면 아래에 감춘 채 해인과 우경의 서사가 조금씩 펼쳐진다. 이야기 속에서는 해인과 우경이 예전에 결혼한 부부 사이였음을 알려주지만 그들이 왜 헤어졌으며 지금은 어째서 친구처럼 지내는지, 우경은 하노이에 가서도 왜 해인에게 지속적인 사랑의 고백을 하는 것인지 친절히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고뇌속에 술 한 잔을 들이키는 근심이 가득한 동료의 얼굴을 바라보며 막연히 염려하는 것처럼, 독자에게도 해인과 우경의 사연을 시시콜콜 알려고 하지 말고 그저 방관자처럼 지켜봐 줄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해인이 일하는 곳은 중고물품을 다시 깨끗이 닦아서 파는 해동중고라는 곳이다. 해인과 사장과의 대화는 사뭇 노사관계의 전형적인 틀을 벗어난 것처럼 그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한 장소를 함께 공유한 것처럼 비춰진다. 그들에게 일할 곳을 공유한다는 것은 마치 중고물품을 깨끗이 닦는 것처럼 함께 일하는 데 방해가 되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깨끗이 정리하고 새로운 주인을 만나는 것과 같다. 사장이고 직원이지만 그저 이곳을 스쳐지나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처럼. 외딴 곳에 있어서 그런지 한적해 보이는 해동중고의 주차장에는 마을 아이들이 종종 놀러온다. 그리고 그 무리 중에 유난히 해인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아이는 환희이다. 다른 아이들은 그냥 환희와 등장한 주변 인물에 불과하지만 환희는 혼자서도 공터에 놀러와 해인이 팔기 위해 준비한 물품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해인에게는 동네 친구라 할 수 있는 장미씨가 있고, 우경과 함께 오래된 친구인 성규까지 종종 해인의 적적함을 달래준다. 그들은 특별할 것도 없는 우동집에서 짜장면을 먹고 치킨집에서 닭에 소맥을 마시며 회포를 풀고 갑자기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해인은 마치 감정의 파고가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해인에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이들 또한 해인의 감정을 도발시키는 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애써 단어 하나 하나를 심혈을 기울여 골라낸 것처럼 그렇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말을 건넨다. 상대가 대답을 빨리 하지 않아도 보채지 않고 묵묵히 먼산을 쳐다봐도 기다려준다. 말하고 싶지 않는 질문에는 동문서답을 하거나 딴 얘기로 돌려도 처음 하려고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지 않는다. 해인의 주변 인물들은 마치 운명 공동체처럼 엄청난 태풍과도 같은 큰 재난을 이겨낸 것처럼 우리가 평소에 예민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해인과 우경의 수면 아래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야 어떤 특정한 고통을 겪는 이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해도 그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누군가는 극심한 트라우마로 평생 고생하는 사람도 있지만, 반면에 훌훌 털고 일어나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누군가는 아주 작은 일에도 행복하고 만족해하지만, 반면에 소확행 따위는 관심도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다름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면 언제나 누군가를 평가하게 된다.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수면 아래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한 개인의 역사에는 어떠한 절대적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해인과 만난 사람들 특히 하노이에서 전해오는 우경의 메일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아침부터 김치를 담그느냐 마느냐 상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대로변 마트에 나가 총각무를 사가지고 들어와 다듬고 씻고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버무린 것치고는 소박한 양의 김치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김치 한 통을 만들기 위한 일들. 이렇게 하여 밥을 먹고 김치를 먹고 사는 것. 하루가 다 간 느낌이었는데 엄마가 먼저 하루가 다 갔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느꼈지만 괜히 아직 여섯시밖에 안 되었는데? 라고 말해보았고 엄마는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다 간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도 거의 다 간 거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지나지 않았으나 다 지나가버린 거라고 생각하는 하루하루를 살면 조금 가벼워지는 것인가 생각하며 초록색 둥근 컵에 믹스커피 봉지를 뜯어 쏟았다.(42)”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요즘 나는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아야만 자유로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냥, 난 우리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순간에, 정말로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지금 내게 남은 마음은 그것뿐이라고, 구도심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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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2 불편한 편의점 2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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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 2]를 읽었다. 신간소개에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을 보고 베스트셀러가 되어 또 다른 에디션이 나왔나 싶었는데, 옆에 숫자 2를 보고서야 드디어 소설에도 OTT 드라마처럼 시즌제가 시작되는 것인란 설렘이 느껴졌다. 발행일을 기다리며 불편한 편의점에는 또 어떤 알바생이 등장하고 어떤 사연이 담긴 이들이 그윽한 감동을 전해줄 것인지 기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건 편의점 이름이 ‘always’라는 점이다. 마치 노랫말처럼 지치고 힘들 땐 언제나, 항상 기댈 곳이 있는 편의점의 함의는 유년시절 좋아했던 가수의 앨범 제목이기도 해서 익숙하고도 편안했다. 시즌1에서 이야기의 중심에 독고라는 노숙자가 있었다면, 시즌2에서는 홍금보라는 수다스럽고 조금은 산만하지만 붙임성이 좋은 새로운 인물이 중심을 잡고 있다. 독고는 마음 따듯한 편의점 사장인 염여사를 통해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면, 홍금보는 독고라는 인물을 연극의 주인공으로 낙점한 인영과의 인연으로 불편한 편의점 야간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 소설 초반엔 홍금보도 독고처럼 특이한 이력에 깊은 상처를 가진 인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황근배라는 이름을 놔두고 홍금보라는 별명이 쓰인 이름표를 달고 시키지도 않은 말을 건네며 때로는 불편함과 어색함을 가중시키는 인물이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편의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사연에 집중하며 홍금보와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특히나 코로나 시국에 대한 어려움과 답답함을 여러 곳에서 묘사하고 있기에 벌써 2년 반이나 넘는 시간을 보내온 전염병에 대한 지나온 시간이 역사의 한 장면들처럼 곳곳에 스며들어 있었다. 특히나 취준생 소진과 오랜 시간 정육식당을 운영하다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최 사장의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한 다리만 건너면 마주할 이웃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마음 아프고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이 힘겨운 시기를 견디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뉴스를 통해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에 읽은 [안녕하세요, 자영업자입니다]와 이번 소설에 나온 최 사장의 이야기를 보며 실제로 내가 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지 감히 헤아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는 현상만큼이나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의 기운마저 사라졌다는 것이다. 소설에서처럼 최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맥 한잔에 옥수수 수염차 한잔이라도 건배를 하며 힘을 북돋워주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은 나을텐데, 실제로 전쟁같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는 그런 행운과 여유가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홍금보란 별명의 근배가 어떻게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하게 된지에 대한 사연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들, 비교는 암이고 걱정은 독이야. 안 그래도 힘든 세상살이, 지금의 나만 생각하고 살렴(186)”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수록 심해지는 가장 나쁜 버릇이 남에 대한 손쉬운 판단과 뒷담화 그리고 타인과의 끝없는 비교, 부질없는 걱정이 아닐까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고 했는데, 그만큼 뒷담화의 마력은 엄청나서 누군가를 험담하고 욕할 때 나는 꽤나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 때문에 멈출수가 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그런 뒷담화를 아무 생각없이 장시간 내뱉은 대화를 마치고 나면 뭔가 몹시 쓴 음료를 마신 것처럼 입안이 텁텁하게 느껴지고 뒤끝이 좋지 않다. 비교도 마찬가지이다. 분명 지금의 나에게도 좋은 장점과 재능과 복이 있을텐데도 끊임없이 타자의 삶과 견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보면 내일에 대한 걱정이 늘어가고 나 자신을 점점 좀 먹게 된다. 엊그제 읽은 하현 작가의 [아이스크림]에서 소포모어 징크스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2년차 징크스라는 말로 신입생, 신인 시절에는 좋은 성적을 내다가도 2학년, 2년차가 되어서는 슬럼프에 빠지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하현 작가는 이 징크스에 빠지는 마음은 바로 의심때문이라고 말한다. 내 마음에 독이 쌓이게 만드는 걱정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 시국을 보내며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점점 더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라는 속된 말처럼 아무도 나의 고통과 슬픔을 대신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각자도생이라는 말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고 일단 선부터 긋는 것처럼 차갑게 느껴진다. 우리가 무인도에서의 고독한 삶을 꿈꾸는 것이 아니기에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타고났음에도 결정적인 순간엔 각자 혼자라는 말이 어딘가 우리의 본성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성인이 된 이상 각자의 삶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도저히 혼자서 헤어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때가 있다. 그 우연의 순간이 언제 다가올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든 무상의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 마음을 나눌 때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감격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 무상의 주고받음에는 귀찮음과 손해를 각오해야 할 때가 많다. 모든 것을 유용성의 원리로 계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에 그 무상의 논리가 하찮고 무의미해보인다. 그래서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이다. 청파동에 있는 유명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이 아닌 좁고 품목도 부족한 불편한 편의점 Always는 각자도생이 인생의 해법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삶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고 피 한방울 섞이지 않는 남이라 해도 내 마음을 헤아리며 약을 발라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어딘가에 홍금보 같은 야간 알바생이 있으면 좋겠다. 무너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따뜻한 캔커피 한 모금이라도 마시기 위해 들어간 편의점의 한밤중에 쓸데없는 얘기로 말을 걸며 수다스럽게 TMI를 전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뭐야 엄청 특이한 알바생이네’ 라며 이죽거릴 수 있겠지만 그의 친절과 수다로 입가에 주름이 처지듯 올라간다면 조금은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에게 있는 세 가지를 잘 파악해야 한다더라. 먼저 내가 잘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다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알아야 하고, 마지막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을 알아야 한다더라고. 여기서 잘하는 일은 특기야. 하고 싶은 일은 꿈이고, 그리고 해야 하는 일은 직업이라고 하자. 이것에 모두 해당하는 교집합이 있을 거란 말이야. 그 교집합을 찾으면 돼. 그러니까 특기가 꿈이고 그게 직업이 돼서 돈도 벌면 최곤 거지.(143-144)”


“시간, 새삼스럽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이란 걸 체감하는 날들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래시계가 머리 꼭대기에 놓여 있고 거기서 흘러내리는 시간의 가루가 뇌를 채워가는 기분이었다.(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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