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처한 미술 이야기 7 -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 미술의 시대가 열리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7
양정무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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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무 교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7]을 읽었다. 부제는 “르네상스의 완성과 종교개혁: 미술의 시대가 열리다”이다. 난처한 이라는 줄임말로 시작된 미술 이야기가 어느덧 7권에 이르렀고 이번 시리즈도 역시나 방대한 양과 수많은 작품 사진을 함께 둘러보느라 완독하기에 시간이 꽤 걸렸다. 문제는 읽을 때는 다 알것 같고 역사적 배경과 위대한 작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곁들여저 작품에 대한 이해가 잘 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거의 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르네상스의 절정에 달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작품들과 하이 르네상스를 지나 후기 르네상스라고도 불리는 매너리즘의 대한 설명 등은 중세 이후의 유럽 사회의 변화에 대한 개괄적인 흐름을 인상깊게 남겨주었다. 


코로나 이전에 마지막 해외여행이었던 이탈리아의 여정에 바티칸 박물관과 우피치 미술관 투어를 신청했다. 바티칸 박물관은 3번째였고 피렌체에도 여러번 갔었지만 해설사 투어를 신청한 것은 처음이었다. 막상 투어를 신청하고 해설사의 진행대로 설명을 들으니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던 미술 작품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바티칸 박물관 투어에서는 한적한 공간의 바닥에 앉아 무려 1시간 넘게 미켈란젤로의 생애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미켈란젤로의 오래된 작품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생각에 그의 생애가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졌지만 자세한 내용 또한 휘리릭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번 르네상스 부분에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작품들이 나오자 그당시 해설사에게 들었던 내용들이 희미하게 떠오르며 사진첩을 뒤적거려 내 손으로 찍은 사진을 확대해서 살펴보았다. 사람에 치이면서도 해설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점점 지쳐가던 모습이 떠올라 잠시 여행에 추억에 빠져들었다. 특히나 시스티나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대체 이곳에 사람이 없을 때가 과연 있기는 한걸까란 생각이 들며 여전히 ‘사일런스’를 반복적으로 외치는 안전요원들의 목소리가 맴도는 듯하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성당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는 이 성당이나 저 성당이나 다 비슷해보여 감흥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사실 신자가 아니고 미술과 건축에 관심도 없다면 아마 그런 생각이 드는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신앙 유무와 미술, 건축에 대한 노관심이어도 몇 백년 전에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지금의 서유럽 국가들이 형성되기까지의 이야기에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평범한 성당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알아갈수록 지금의 가톨릭과는 사뭇 다르게 이어져온 교회의 흑역사에 암담함과 더불어 언제든 그러한 일들이 반복될 수 있음을 항상 상기해야 함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상당수의 유럽 사회에서 성당들이 카페와 레스토랑, 박물관 또는 숙박시설 심지어 나이트클럽으로 팔려나가는 상황과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종교에 관심이 전혀 없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게 된 것은 그런 과거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상 유지만 해온 결과가 아닌가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적 부유함과 종교적 신심활동은 반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교회에서는 사적인 모임이 권력과 부를 공유하는 모임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국가적으로 봤을 때 부유한 나라보다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이 종교에 더욱 깊에 빠져들게 된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 해외선교사들의 원조를 받으며 밀가루 신자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많은 이들이 젯밥에 관심을 기울이다 열성신자가 된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에 반해, 우리보다 훨씬 먼저 경제적 부를 이루며 안정된 선진국에 진입한 유럽의 가톨릭 국가들은 종교세로 성당을 운영하는 곳이 많고 종교 분열 이후에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을 벌였던 몇 나라에서는 아직도 신교와 구교의 지역 감정이 남아있기도 하다. 어찌보면 비운의 역사를 들여다보다 화려하게 꾸며진 성당에 대한 설명을 읽게 되면, 결국 성경에 나온 진리를 따르는 삶보다 빛좋은 개살구처럼 겉치장에만 열을 올린 결과물들이 후대에 이르러 귀중한 유물로 여겨지고 보호를 받게 되는 현실이 조금 어이없기도 하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코로나 이전의 피렌체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라 냉정과 열정사이의 아오이와 준세이가 오른 두오모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약을 해야만 한다고 했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피렌체의 명물이 베끼오 다리 또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진촬영은 불가능하다. 독사진을 찍으려 아무리 기다려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대충 한장 찍고 지나가버리게 된다. 그런데 그 베끼오 다리의 아래 상점가 위가  코지모 1세라는 강력한 군주 개인을 위한 통로로 사용되었다니 그것 또한 놀랍기도 하고 암살에 대한 그의 두려움이 오늘날의 고풍스러운 다리로 남게 되었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하기만 하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16세기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소개하며 팔라디오라는 건축가의 이름이 꽤 낯익게 다가왔다. 팔라디오 건축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템플 포르티코는 이미 우리나라의 건축물에도 볼 수 있는 그리스 로마식 기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의 이름이 친숙하게 다가온 이유는 바로 비첸자에서 팔라디오가 설계한 극장에 가본 적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테아트로 올림피코의 사진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고 실내 극장임에도 절묘하게 적용된 원근법으로 너무나 입체적으로 다가오던 무대 위의 구조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베네치아의 르네상스를 마무리하며 예고된 바로크 미술은 어떨지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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