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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첫 문장 -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윤성근 지음 / MY(흐름출판) / 2015년 7월
평점 :
마음이 요동치는 날 이 책을 만났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 (윤성근 지음, MY:흐름출판 펴냄)"이라는 제목이 주는
느림과 여유 때문인지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이동하는 중에도 한 페이지씩 읽게
되었다.
아마도 표지에서 주는 나른함이 나를 더 목마르게 했는지 모른다.
'나도 저렇게 편한 몸과 마음으로 책을 읽고 싶다.'
뭐 이런.

'처음'이란 의미는 언제나 낯설고 설레인다.
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어느 때부터 제목과 표지 그리고 이야기로 들어가는 첫 문장에 알게
모르게 주목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은이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상한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한다는 지은이의 소개를 읽고 나는 또 그가 부러워졌다.
종일 책을 읽고, 책과 함께 하는 삶. 내가 어릴적부터 동경했던 삶을 사는 그의 모습은
어떨까 상상하며 그가 소개하는 세계문학의 명장면 그것도 첫 문장을 만나 보았다.
마침 수업에서 아이들과 이상의 <날개>를 함께 읽은 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라는 책의 첫 문장을 두고 우리는 이야기 꽃을 피웠었다.
그리고 지은이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얼마 전 내가 읽었던 <인간실격> 속 요조와 <날개>
속 나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보다는 그저 그런 하루를 보냄으로 생을
연명하는 듯한 그 암울한 느낌이 시대적인 이유인지 환경적인 이유인지 따져보고 싶어졌다.
결국 <날개>의 첫 문장이 주는 묵직함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에게 틀림없이 아내가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은 널리 인정된
진리다."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지은이의 표현대로 이 첫 문장은 그저 담담하다.
오만과 편견이라는 제목을 대변하는 듯한.
인간 관계는 언제나 비슷하고, 홀로 지내기에는 무언가 허전함이 남는다.
아내나 남편이 혹은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어야 안정이 되고, 삶을 이끌어나갈 힘이
생기듯 제인 오스틴 역시 사람과 함께 하는 삶, 사랑이 존재하는 삶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샤데크 헤다야트 <눈먼 부엉이>
지은이의 설명을 빌자면 샤데크 헤다야트의 작품 세계는 염세주의라고 한다.
삶에 어떤 희망도 기대도 없는 듯한 느낌을 주는 눈먼 부엉이의 첫 문장이 주는 암울함...
마음이 요동치고, 우울함이 극에 달한 요즘 나에게 이 문장은 암울함과 동시에 안도감을
주었다.
'나만 이런 건 아니구나...'라는.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젊었을 때는 젊은 나이에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안에 너무나 많은 젊음, 너무나 많은 시작이 있었으므로 끝이란 것은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것이었고 또 아름답게만 생각되었다. 서서히 몰락해가는 것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모니카 마론 <슬픈 짐승>
이 부분을 읽을 무렵 그와 나는 암병동에 있었다.
하루에도 수많은 만남과 이별을 하는 곳이기에 모두가 숙연하고, 모두가 하루를 감사하게
여기는 그런 곳에서 나는 입버릇처럼 늙어 힘이 없어지기 전에 죽고 싶다 말을 했었다.
병마와 싸우기에도 지친 육신을 눕힌 침대 위에서 호흡기에 연명해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이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렸다.
아마도 슬픈 짐승에서 말하는 시작과 끝, 만남과 이별에 있어서도 때때로 고통이 아픔이
묻어나 더 격렬하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른다.
아름답게 끝을 내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책 뒷장에 "시작은 이렇다"라는 말이 와닿는다.
책이든 인생이든 언제나 시작이 있고 과정와 맞물려 결과를 만들어 낸다.
첫 문장에서 주는 느낌을 오롯이 느껴 독서를 하며 내 삶을 들여다 보는 동안 나는
그 어떤 처음보다 많은 생각과 반성을 했다.
내가 사랑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콜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모든 것은 빛과 그림자, 동전의 양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