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 샘터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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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봄을 즐기지 못하고 있다.

향기로운 꽃들이나 시리도록 푸른 잎사귀들을 볼 때마다 내 가슴은 찌릿

통증을 만들어낸다.

이 즈음 내가 만난 책 중 자연을 담은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해본다.

"낯선 정원에서 엄마를 만나다 (오경아 지음, 샘터 펴냄)"

표지 속 넓은 정원에는 두 사람이 꽃을 손질하고, 물을 주고 있다. 고양이

쯤으로 보이는 녀석이 물호스를 잡으며 장난을 치고, 아무도 살 것 같지 않은

크고 높은 집 뒤로 바다가 보인다.

여기는 천국일까?

방송작가로 활동하던 작가는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정원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한다. 영국 북서쪽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여행하며 그녀는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한 시간을 갖는다.

마치 영화처럼 그녀는 딸과 함께 묵었던 숙소, 숲, 산, 동네를 자세하게 묘사해

읽는 내내 나는 영국의 어느 마을을 마음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빠르게 지나는 세월을 거슬러 그녀가 배운 것은 정원을 디자인하는 어떤 행위가

아닌 쉼을 즐기고, 여유로운 눈과 마음이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제목을 읽으며 나는 엄마가 아닌 꽃을 좋아하던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ㄷ'자 한옥 뒤꼍에는 마법같은 할머니의 정원 아니 텃밭이 있었다.

반질반질 윤이 나게 닦은 항아리들과 살구, 앵두나무, 가지와 고추, 오이, 호박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딸기를 심어 할머니 매일 아침 내게 딸기를 따주곤했다.

나는 유독 할머니의 뒤꼍을 좋아했다. 소꼽놀이를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뒤꼍

평평한 돌에 앉아 있곤 했으니까.

계절마다 피고지는 이름모를 꽃들도 바람이 불면 달콤하고 짭쪼름한 냄새가 훅

끼쳐오는 것도 광목 이불을 빨아 너른마당 구석에 널어 두었다가 뒤꼍으로

향하는 문을 열고 다듬이질을 하던 그 소리마저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런 유년의 기억 때문인지 나는 유독 촌스럽고, 느리고, 애어른같은 생각을 하곤

한다. 지금 엄마의 화단 역시 할머니의 영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러고보니 우린 3대가 꽃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

작가의 정원은 꽃을 만지고, 나무를 가꾸는 것이 아닌 마음을 다듬고, 정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매일매일 정해진 을 해대는 자판기 인생이 아닌 왜 그런지, 어떻게 할지 보고

생각할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책을 다 읽고 나는 다시 한 번 책 표지를 들여다 보았다.

썰렁한 초록 정원 위에 나만의 상상을 담아내고, 기운내서 다시 걷자 나를 다독이며.

딸이 없는 나는 엄마와 이런 여행을 꿈꾸어 본다.

멋진 식당이나 휴양지가 아닌 사람들이 웃고, 이야기 나누는 이웃집 느낌이 나는 그런

곳으로 쉼표를 찍을 여행을.

 

"정원이 자연과 다른 건, 인간과 식물 사이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난 그게 식물과

인간이 나누는 정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원은 정원庭園이기도 하지만, 정원

情園이기도 하다." - p.316

 

아마도 내가 외할머니의 뒤꼍을 할머니의 정원이라 기억하는 것처럼... 작가도 그곳에서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어떤 정을 느끼고 왔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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