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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 (체험판)
임지호 지음 / 샘터사 / 2013년 7월
평점 :
언젠가 다큐 프로그램에 등장한 신기한 요리사를 본 적이 있다.
'어떻게 저런 것들로 요리를 하지?'
내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마술처럼 그는 멋진 밥상을 차려냈었다.
전국을 때때로 해외를 누비며 누군가에게 밥을 해주는 남자, 그는 방랑식객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임지호이다.
"마음이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 (임지호 펴냄, 샘터 펴냄)"는 임지호의 인생과
음식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볼 수 있는 책이다.

독특한 조리복을 입은 그의 사진에 나는 오래 전 보았던 영화 <식객>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는 요리를 하지 않았으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말한다.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를 표현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희망과 기쁨이 되는 일을 좋아한다
설명한다. 멋내지 않고 툭툭 내뱉는 그의 말을 그대로 살린 글에 괜히 마음이 놓인다.

건강한 밥상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그저 유기농 식재료와 저염식 식단, 소식과 절식
정도로 생각하기 십상인데 그의 건강한 밥상은 좀 다르다.
어릴적 불우한 자신을 이야기하며 아들이라 먹는 설움은 덜했다는 그의 말에 난
고개만 끄덕였다. 그 땐 다 그랬으니까...
배고픔과 설움 그리고 부모를 향한 작가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는 담담한 맛이 나는
듯하다.
최근 들어 마음 그릇에 대한 이야기가 갑자기 쏟아져 나오며 그 그릇을 채우는데
급급한 우리는 정작 먹는 일에는 인색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그의 음식은 자연을 그대로 밥상에 옮겨 놓은 것만 같다.
담 아래 혹은 바닷가에 돋은 풀마저 멋진 요리로 변신해 우리의 마음 그릇을 채운다
생각하니 그가 요리하는 마술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먹는 이의 생각과 상태를 고려해 레시피가 없는 요리를 한 상 가득 차려내는
그 솜씨가 놀라워 책 속으로 들어가 맛을 보고 싶다 중얼거렸다.
나는 집밥에 후한 점수를 주는 여자이다.
물론 나의 요리 솜씨는 하위 5% 이내에 들어갈 수준이지만, 밥상을 맛있고 정갈하게
차려내는 두 분의 어머니와 한 분의 외할머니를 가졌던 행복한 사람이라 불만은 없다.
난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니까.
생각해보니 외할머니는 오래 전부터 내게 갖가지 음식을 만들어 주시며 단 한 번도 '네가
크면 이 할미에게 만들어주렴.'이라는 소리를 하지 않으셨고, 두 분의 어머니 역시 내게
음식을 해보라 권하지 않으셨다.
난 입만 가진 어른이 되었고 대신 그 음식들을 맛있게 먹고 최고의 찬사를 할 줄 아는
음식에 대한 예의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음식에 있어서는 마이너스의 손인 내가 이 책을 보며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 결심한 건
몇 년 전 내 몸을 향해 돌진해온 종양때문이다.
큰 수술 후 오랜 치료를 받았고 지금도 온전한 몸이 아닌 나는 무엇을 먹거나 마실 때
내 몸에 어떤 건지를 먼저 생각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내가 먹고 마시는 것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는지 모른다.
의사는 내 병의 일등공신이 스트레스라 말했고 나는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연습을 차근
차근 해왔었다.
그런데 신이 아닌 나는 비움과 내려놓음에 인색하다.
그가 말하는 마음 그릇에 채울 욕심과 이기를 매일 생성해내며 거기에 꾸역꾸역 음식까지
채우고 있으니 탈이 날 밖에.

음식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사뭇 진지한 인생 공부를 하는 듯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갖가지 재료들의 조화는 인생에서 내가 풀어내야할 문제들에
얽힘같고, 화식과 생식의 어울림은 제각각인 우리의 모습같아 음식 구경보다는 마음 공부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는 내가 하는 생각이 나의 몸을 얼마나 지배하는지
하찮은 풀마저 우리 몸에 얼마나 이로운지를 알게 하는 시간을 제공하는 책이다.
나도 비움과 채움, 내려놓음을 적절히 요리하는 내 인생의 요리사가 되고 싶다 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