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에 목이 마른 계절은 가을이다.

그런데 봄에 그것도 가슴이 뜨겁다 못해 아린 사랑이야기를 읽고 나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도

목련도 다 지겨워졌다.

"불의 꽃 (김별아 장편소설, 해냄 펴냄)"은 조선을 배경으로 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이야기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아프고 아름다운 간통에 대한 이야기이다.

간통을 아프고 아름답다 표현하는 건 어딘지 어색하지만 내가 느낀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적어도 지저분하거나 칙칙한 더불어 손가락질받을 만한 사랑은 아니였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첫 이야기는 녹주가 형장에 가기 전 묶인 채로 사람들의 조롱과 욕설, 돌을 맞으며 옛 기억을

더듬어내며 시작된다.

사랑이며 동시에 죄였던 그들의 이야기는 녹주가 어릴적 처음 서로를 만났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재로 인해 가족과 기억, 이름을 잃은 소녀와 극성 엄마 밑에서 조신하게 자라던 소년의

첫 만남은 황순원의 <소나기>를 기억 저편에서 끌어 올렸다.

심약한 소년은 소녀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노력하지만 소녀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소녀는 이제 고아가 되었다는 두려움과 자신을 보살피던 부모가 없음에 그 상실감에 낯선

소년의 집이 편치 않다. 소녀의 죽은 어미를 딸처럼 여기던 청화당 노마님은 그런 소녀를

아끼고 노마님의 딸 이씨는 소녀의 모습에서 죽은 소녀의 엄마를 보는 듯해 소녀를 시기한다.

소년은 소녀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던 날 뛸 듯 기뻐했다. 그리고 소녀에게 푸른구슬이라는

뜻을 가진 녹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이씨의 아들인 소년 서로는 녹주의 피리 소리를 듣고,

여린 듯 강한 녹주의 성품을 곁눈질해가며 성장한다. 10대의 녹주와 서로는 청화당 노마님을

잃고 각자의 길로 떠나게 된다. 그렇게 그와 그녀의 사랑이 끝나는 줄 알았다. 이씨의 내침으로

서로의 곁을 떠난 녹주는 비구니가 되지만 마음 속 말을 따라 40대에 이귀산의 부인이 되어

산을 내려온다.

조서로와 다시 만났을 때 녹주는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서로와 녹주는 남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고, 그 사랑이 죄가 됨을 알면서도 운명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간통이 밝혀지고 나라의 공을 세운 조반의 아들은 서로는 유배되고 녹주는 고스란히 죗값을

홀로 치루게 된다. 그리고 말미에 왕 역시 그 때 판결을 후회한다 말한다.

바들바들 가슴 떨리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어지는 그들의 사랑을 엿보다 문득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살아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들의 엇갈림은 시기와 자존심 그리고 오만이 몰고 온 폭풍같았다.

 

'만약 그 때 서로의 어머니가 그런 일만 벌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행복했을까?'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시로의 어머니 이씨를 탓하고, 술김에 비밀을 폭로한 김이를 미워했다.

녹주의 마지막이 외로울까 아팠고, 남겨진 서로를 어떻게 해야할까 걱정했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몰입해 그와 그녀를 쫓아 호흡하는 내내 나는 사랑이 죄라는 녹주의

소리없는 울부짖음을 들어야 했다.

나는 그저 그들을 눈감아 주고 싶었다.

사랑이 죄가 아니기에 하지만 죄가 될 수 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양 그저 침묵하고 싶었다.

사랑이며 또한 사랑이 아닌 그와 그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피우지 못하고 떨어져버린 꽃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