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되어버린 남자
알폰스 슈바이거르트 지음, 남문희 옮김, 무슨 그림 / 비채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이 책을 만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혹시.. 내가 책이 되어버릴까봐....

나는 그렇게 겁을 내며 책을 펼쳤다. 오래된 비밀의 문을 열듯...

남자의 커다란 입 속에는 책이 새처럼 날아다닌다.

겁에 질린듯 눈을 뜨고, 입에 비해 턱없이 작은 두 손을 펼쳐 내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나는 겁이 많은 여자이다.

책이 되어버린 여자가 될까 나는 조바심이 난다.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못박힌 듯 나의 시선은 책표지에 머문다.

.....

용기를 내어 책장을 힘겹게 열어 넘겨낸다.

그리고 그 남자 비블리씨를 만난다.
 

내 책방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을 살핀다.

'저 책들 가운데... 나를 자기 안에 가둬 놓으려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책이 있지 않을까?'

괜한 걱정에 침이 바싹 마른다.

'운명이란,,, 바로 그대들이 지닌 책, 책을 저마다 운명을 품고 있으니....'

나는 어렸을 적 부터 지독한 책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남에게 책을 빌리는 행동조차가 싫어 엄마에게 걱정을 들으면서도 꼭 내 책을 만드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책을 사는 행위 그리고 내 방, 내 책장에 책을 가둬버리는 행위.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들의 운명을 거스르는 중죄를 범한 것인지도 모른다.

비블리씨가 우연찮게 만난 낡은 <그 책>을 발견하고 자신의 소유물로 만들기 위해 유유히 그 책을 손에

쥐고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그는 자신이 책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책 속에 갇혀버렸다.

책의 운명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를 아니 그 책을 경멸의 눈초리로 맞이하는 이들을 응징한다.

책의 성질을 살려 모서리로, 책 등으로 사정없이 그들을 내려친다.

 

책을 가지고 온 후 비블리씨는 전보다 더 심한 허리통증을 호소하고 급기야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가고

.... 책이 되어 낯선이들과 만나고, 새로운 주인을 만나며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결국 무덤에도 주인과 함께 들어가는 책.

어쩌면 책의 운명은 주인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되는지 모르겠다.

책을 사서 단순히 모으는 주인을 만나며 평생 어두운 방에서 곰팡이 냄새를 맡으며 누렇게 변해가는

자신의 몸뚱아리를 보아야 하는 고통이 있고, 책을 함부로 대하는 주인을 만나면 추운 겨울 뜨거운 라면 냄비를

업고 있거나 화장실에서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물론 나는 전자(前者)이다.

나는 책을 너무 아끼고 아껴 마음의 담을 쌓아올리듯 책을 쌓아 내 세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가끔 창을 열어 새로운 공기를 마시게 하고, 종종 먼지를 털어내고, 찢어지고 낡은 부위에 깜찍한 스티커를

붙여 나 자신을 위로하는 책을 가둬 놓으려는 사람.
 

책을 덮으며 나는 책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류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그릇....'

책 끄트머리에서 발견한 이 문구가 마음에 든다.

비블리씨처럼 책이 되어 운명을 함께 하기보다 책에서 새로움을 얻고 공유할 누군가를 찾아내야

할 것 같다.

나는 책이 되지 않았다...

다만 책에게서 무언가를 얻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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