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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별이에게 ㅣ 꼬마도서관 18
한정영 지음, 남성훈 그림 / 썬더키즈 / 2022년 9월
평점 :
"격동의 역사 속에서 피어난 별이와 나무 이야기"
그림책 표지 속 문구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저 문구를 읽지 못했다면 표지 속 아이는 그저 나무를 좋아하는 해맑은
말썽꾸러기로 보인다.
그런데 격동의 역사라니...
격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아함과 궁금증에 그림책 속 그림을 먼저
보고 내용을 유추해보았다.
그리고... 가슴이 먹먹해 그림을 설명하듯 써내려간 이야기를 읽을
자신이 없어졌다.
난 의외로 소심한 어른이니까.
"나무가 별이에게 (한정영 글, 썬더키즈 펴냄)"는 나무의 친구 별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마에 별모양 흉터가 있는 아이, 나무는 그 아이를 별이라 불렀다.
아이의 집은 나무가 자리한 근처에 그림처럼 놓여 있었고, 봄이면 개나리가
피어 집을 노랗게 물들인다는 나무의 설명에 절로 가슴이 콩닥거려졌다.
별이에겐 누나가 있었다.
논밭으로 일을 나간 부모님 대신 누나는 별이를 업고 다니며 엄마처럼
돌봤다.
항상 나무는 별이를 보기 위해 목을 길게 빼고 살폈지만, 여섯 살이 된
별이는 나무가 궁금해하기 전에 나무를 찾아와 놀곤 한다.
누나 등에 업혀 밤하늘을 바라보던 아이는 이제 혼자 걷고 뛰며 자라
있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별이는 인생 첫 이별을 경험한다.
낯선 일본군에게 끌려가던 누나는 별이에게 돈을 벌어오겠다 안심
시키지만, 어쩐지 별이는 누나를 보내고 싶지 않아 울고 또 울었다.
매일 별이는 누나를 기다린다. 나무에 기댄 채 혹은 돌탑을 쌓으며 홀로
누나를 기다리던 별이에게 또래 친구가 생긴다.
나무는 별이처럼 그 아이의 이름 역시 그저 진달래처럼 예쁘다 하여
달래라고 부른다.
둘은 나무 근처에서 놀며 누나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만세를 부르며 잔치가 벌어진 것 같은 날이 지나고, 누나와 같이
떠났던 다른 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오는데 누나는 돌아오지
않는다.
총소리가 이어지는 날에도 별이네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누나때문이었지만 이제 더 이상 별이네 가족은
집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나무 역시 총알이 불덩이가 떨어져 예전같은 모습이 아니다.
반쯤 허물어진 별이의 집 앞에 달래가 찾아와 나무를 쓰다듬으며
별이의 집을 한참이나 보고 또 보고 사라졌다.
별이네가 다시 돌아와 집을 치우고 예전 모습을 찾아가지만 별이가 나무
곁에 올 순 없었다.
남과 북으로 나누어진 그 사이 어딘가에 나무는 아직 그대로 서있기
때문이다.
갈라진 땅의 사람들은 이제 서로를 그리워하지만 좀처럼 만나기는
쉽지 않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나무는 별이에게 이야기를 한다.
다시 만날 그날까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책 속 누나 등에 업힌 별이의 모습에서 박수근 선생님의 '아기 업은
소녀'가 떠올랐다.
뒤이어 내용이 전개될 수록 몽실언니와 노근리가 떠올랐지만, 그것들과
달리 잔잔한 전개와 나무가 사람에게 전하는 미묘한 감정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누군가를 기억 속에 묻고 있는지
모른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을 그 자리를 지켜낸 나무가 있을
그곳에도 곧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릴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시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