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을 도는 여자들 오늘의 젊은 문학 3
차현지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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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무언가 안정감이 느껴지지 않는 달이다.

갑작스런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고, 새로운 공부로 정신이 없었으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에 충분한 이유가 있는 때였다.

그럼에도 공허함에 사로잡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해대는 걸 보면 나는 의사의 말대로 일중독이 확실하다.

삶의 의미, 나의 의미에 대한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릴 무렵 독특한 책을

만났다.

 

"트랙을 도는 여자들 (차현지 소설, 다산북스 펴냄)"이 그 책인데 제목이 주는 느낌과

표지가 주는 느낌이 너무 달라 '이건 뭐지?'라며 나 자신에게 물음을 던지며 읽기 시작

했다.

총 10편의 이야기가 담긴 트랙을 도는 여자들은 여성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줘 살짝

우울했고, 사회 속 여자들의 자리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책 제목과 같은 첫 번째 이야기 트랙을 도는 여자들은 딸과 둘이 살던 303호 여자가

누군가가 휘두른 칼에 찔려 죽는 사건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분명 그녀는 비명을 질렀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주택 한가운데서 죽음을 맞는

여자를 돕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자신들의 일상에 그녀를 끼워주고 싶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전염병처럼 떠돌았고, 그녀의 죽음이 수많은 남자들을

집으로 끌어들여 생겨난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니까.

름이와 마주한 그녀의 딸 우지.... 둘은 트랙을 돌지만 명확한 이유는 없다.

그저 삶이 주는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눌러 잠시라도 잊고 싶은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 밖에.

미주와 근화의 쌍둥이 썰이라는 이야기는 방송국 임시 구성 작가로 일하는 근화는

주변 사람들의 무시, 폭언을 견디기 위해 매일 밤 자극적이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밀

어 넣으며 미주라는 여성의 개인 방송을 시청하는 재미로 하루를 버텨낸다.

미주는 통통하고 자신을 아름답게 꾸밀 줄도 알고 삶에 대해 자신감도 있어 보여 미주에

대한 동경같은 것이 생겨난다. 미주가 방송 중 단추가 터졌다는 말에 사람들을 악플 아닌

악플을 달고 그 일로 개인 방송을 그만 둔 미주를 찾다 근화는 미주 행세를 하게 된다.

미주 행세를 하는 근화는 행복할까?

어쩌면 바지 단추가 터지는 건 일상다반사일지 모른다. 그게 미주라서 미주가 여자라서 단추가

터지는 일이 수치스럽고 흉한 일이라 이야기 하는 건 누군가 잣대를 만들어 두고 그 잣대에

끊임없이 나를 우리를 대어 보는 행위가 아닌가 싶다.

그 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들 역시 여성이 주인공이다.

미성년인 미치의 일상, 학교를 벗어나면 자기 나이의 옷을 벗어던지고 아저씨와 만나 모텔을

들락거리고, 미치의 감성과 달리 아저씨는 그저 미치를 성적 대상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취급을

한다. 정신을 놓아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무같은 할머니의 말, 괜찮다는 그 말이 위로가 되었는지

아님 독약이 되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미치는 미치의 자리를 찾아가려고 한다.

10편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상처들은 그 깊이가 상당하고, 살기위해 애쓰는

모습들이 너무도 아프게 보여서 아직도 남아있는 가부장 의식과 매일을 공포 속에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느껴져 읽는 내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죽음을 바라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를 위태롭고 불안정한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애씀이 헛되지 않게 누군가

손을 내밀고 안아주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 채 살아가는 여성의 삶, 그것은 비단 여성의 삶 뿐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에 보내는 미치 할머니의 당부가 자꾸 떠오른다.

"잘 지내야 된다. 단디 몸 챙기고,. 매사 조심하고, 매사 감사하고, 알제"

언젠간 괜찮다고, 이젠 안전하다고 답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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