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여행 I LOVE 그림책
피터 반 덴 엔데 지음 / 보물창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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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의 날들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일중독에 가깝게 나는 일에 매달렸고, 끝도 없는 의미를 부여하며 나를

동기화시키기에 좀 지쳐있었던 것 같다.

제목이 묘한 그림책을 만나고 나는 또 다른 길 앞에서 망설이는 나 자신

과 마주해야 했다.

 

"먼 여행 (피터 반 덴 엔데 지음, 보물창고 펴냄)"은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묘해지는 그림책이다.

어두운 바다 위에 뜬 종이배, 수많은 별들이 쏟아지듯 하늘을 채우고, 별빛인가

싶어 바라본 바다 아래는 물고기인 듯한 검은 형체들이 별빛과 마주해 종이배를

비추고 있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니?'

종이배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실상 그 질문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그림책은 글자가 없는 그림책이다. 글자없는 그림책의 묘미는 상상력인데

종이배의 여행을 따라가며 나 역시 말라가고 있는 상상력을 끄집어내야 했다.

커다란 종이배를 접어 바다로 보내는 두 사람, 그들은 이 종이배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다. 그저 제 몫읭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릴 뿐.

종이배는 바다 위에서 자신보다 몇 백배는 큰 배를 만나고, 바다 생물들과 여행

친구 삼아 바다를 누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갈수록 종이배는 처음보다는 지친 모습이지만,

바다와 하늘이 그들을 품은 풍경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종이배의 여행은 우리의 인생과도 같았다.

 

평온함을 지나 당혹스럽거나 힘겨운 순간을 지나고, 다시 평온함이 찾아온다.

때때로 종이배는 자신이 흘러가는 곳에서 만나는 위험요소들을 피하지 못해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럼에도 종이배는 멈추지 않고 흘러간다.

 

 

마침내 종이배는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어쩌면 이 곳이 종이배의 목적지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종이배는 끝까지 자신의 모습을 지켜내며 자신의 길을 걸어냈다.

삶이 힘들고 버겁다 말하는 우리에게 종이배는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지칠 땐 흘러가는대로 몸을 맡겨도 좋다고, 다시 걸을 힘을 얻었을 때

길 위에서 길을 찾아 떠나면 된다고.

십일월 그림책 읽기, 또 이렇게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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