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의 드로잉
존 러스킨 지음, 전용희 옮김 / 오브제(다산북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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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에 보니 존 러스킨은 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화가, 예술비평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회개혁 사상가였다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읽다보니 과연 그의 지식과 지혜에 감탄하게 되면서, 다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과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하나의 장이 시작될 때마다 존 러스킨이 <친애하는 독자들에게>란 소제목으로 온갖 설명과 충고를 제시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고픈 그의 진정성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장은 기본 연습편이다. 드로잉에 임하는 자세를 비롯해 선긋기, 그러데이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장에서는 알파벳 그리기, 둥근 돌 그리기 등의 실습이 이어진다. 

 

2장에서는 나무가지, 사진, 나뭇잎, 구름, 물 등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실물을 관찰해 스케치하는 설명이 이어진다. 

 

3장은 색과 구성편이다. 드로잉을 가르칠 때 그는 누누히 색에 대해선 잊으라고 강조하는데, 그 때문에 색 다루기와 채색에 관한 장이 따로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든 감상은 일종의 경이와 놀라움이다. 그림 그리기에 관한 실용서가 변변한 그림 한 점 없이 오로지 글로 시작해 글로 끝내는 이 우직함에 대해 마음 기픈 곳에서부터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오늘날의 차고 넘치는 처세서와 실용서들 사이에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괴이스럽게조차 느껴진다.

 

그런데 노랍게도 이 책은 그림이나 사진, 도표 없이도 드로잉에 대해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실용서의 고전' 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저자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는 '정확성이야말로 드로잉을 가르치는 데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확성은 '사물을 인지하는' 높은 수준에서 나온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예술의 공통점은 정교함이라고 말한다.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그리는 데 거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보다는 사물을 관찰하는 시각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주장은 나처럼 그림에 문외한인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학생들이 '자연을 관찰하며 그것을 어떻게 그려야하는지 가르쳐주기보다는 드로잉을 통해 어떻게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고 했다. 정말 대가다운 발언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완성한 예술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는 주장은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이기도 하다.

 

세부적인 기법에 들어가서도 그의 설명에는 철학이 엿보인다. 그는 그러데이션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림자와 사물의 윤곽성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하는 철학과 맞닿아있다.

 

'그림자를 어떻게 그러데이션할 것이냐'는 문제는 '윤곽선을 어떻게 그릴'까의 문제와 이어진다. 나 역시도 타성에 젖어 사물에는 정확한 윤곽선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존 러스킨은 이 표현은 틀렸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윤곽선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림자의 가장자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윤곽선 자체를 그리는 능력'이 아니라 '사물의 윤곽선을 정확히 관찰하고 손을 훈련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사물을 편견으로 외곡하지 말고 그의 표현대로 '그것을 그리기 편하게 함부로 바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표현해야 한다.

 

이런 깊이있는 차원에서의 설명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한번 읽기도 힘들지만, 두고 두고 오래오래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다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그런 책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철학은 그림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예술에 접목해 이해해도 모두 다 맞아떨어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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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인의 패션 -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BIG IDEA
보니 잉글리시 지음, 김정은 옮김 / 미술문화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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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사, 미술사, 문학사, 음악사.......

 

어떤 분야가 되었던 그 분야의 역사를 더듬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우주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이 책도 예외가 아니네요.. 패션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19세기부터 오늘에 이르는 시간의 흐름을 쫓다보니,, 그 주제만 다를 뿐 철학사를 읽을 때와 똑같은 기분이 듭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A라는 거장이 나타나 한 분야에 일가를 이루면 그를 추종하는 세력, 이를 테면 모방자나 계승자 같은 이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흐름은 A가 이끄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모든 이들이 A와 유사한 사고를 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A가 대세가 된 거지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A에 반기를 들고 나타나는 인물이 생겨납니다.. 그는 B입니다.. B는 A에 반하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자로서 그동안 A가 구축해놓은 세상에 혁명을 도모합니다.. 사람들은 B의 생각을 아주 새롭게 여기며 그 독창성에 감탄을 하지요..

 

이제 B가 주류가 될 차례입니다..

 

제가 감탄하는 부분은 A도 B도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라는 사실입니다.. A가 틀렸고 B가 옳다는 논리는 있을 수 없으며,, A도 B도 저마다 옳은 하나의 소우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의 패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찰스 프레더릭 워스라는 인물이 나타나 최초로 '쿠튀리에'라는 개념을 확립니다..

(참고로 이 책에 등장하는 패션 전문용어들을 패션사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따로 각주를 달아 설명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독서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 아쉬운 감이 있었어요..)

그는 방대한 부피의 드레스가 주류를 이루는 세상에서 좁은 스커트 같은 새 패션을 선보여 섬유산업 전반에 충격을 주었다고 하네요..  

 

뒤를 이어 마들렌 비오네라는 인물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분은 재료 사용에 있어 천재적이었다고 합니다.. 

다들 옷감을 펼쳐놓고 재단을 할 때 이 분은 인체에 직접 천을 둘러보는 방식으로 재단을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이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말이 있는데,, 인상적이네요..

 

"옷은 인체에 걸려 있으면 안 되고, 인체의 곡선을 따라 흘러야 한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을 한가지 덧붙이자면 패션사진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겁니다.. 모델은 누구이며 의상은 어떤 곳에 소개된 누구의 작품인지 등등,, 아주 기본적인 정보도 소개되어 있지 않아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진 옆에 인용된 글도 누가 한 말이 추측할 수밖에 없는 상황 역시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처럼 저마다의 철학으로 패션의 흐름을 이끈 거장들이 죽 소개되고 있습니다.. 

몇몇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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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한계를 거부하는 발칙한 도전 상상에 빠진 인문학 시리즈
임정택 지음 / 21세기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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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 책의 구성이 마음에 듭니다.

 

1부 영원히 상상하는 인간, 호모이마기난스

2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소망, 이야기

3부 상상력의 끝없는 욕망, 무한한 시간

4부 차원의 벽을 넘어서, 공간 상상

 

저는 이 책의 차례를 읽으며 생각했습니다.

'이야기와 시간과 공간이라.....!'

 

그걸로 족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얼핏 간단해 보이지만 이 세 가지 주제만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모두 여기로 귀결된다는 확신이 들었고, 그런 확신을 저자와 나누고 있다는 생각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부를 읽다보니 실망감이 듭니다.

"또 서구인가!" 하고 저는 생각했지요. 

 

이야기와 시간과 공간...... 인간의 상상력.......

태고의 생명력과 토테미즘과 숲과 별과 깊은 어둠과,, 아무튼 이런 류의 것들을 떠올리며 적어도 이 책은 인류 공통의 이야기를 하겠구나,, 하고 기대했던 것이지요.

  

1부에서는 상상력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서구의 역사를 조망하고 있는데, 상상력이 어떤 과정을 거치며 정의되고 억압되고 발전되어 왔는지는를 더듬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출판물이 이런 우를 범하고 있지요. 제목에서는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면서 막상 책장을 열고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서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용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서구문화를 통해 본 인간의 상상력> 하는 식으로 제목을 지으면 될 텐데!

 

영원히 상상하는 인간, 호모이마기난스는 서구인만을 의미하는 걸까요?

 

아시아의 민족들, 아프리카의 민족들, 아메리카의 그 많은 민족들의 상상력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다음부터는 머릿말에 이렇게 밝혀두고 글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의 역사와 문화를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서구문화의 전문가입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빌어 상상력이란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책의 서평과는 별 관련이 없는 이런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는 이유는,   

오늘날 대다수의 인문학 출판물들이,

저자는 물론이고 독자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구가 인간의 역사과 문화를 대변한다는 식의 전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2부입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도 이야기에 매달리는 걸까? 하는 의문이 평소에 있었던 탓입니다.

 

과연 2부의 소제목처럼 이야기는 인간의 원초적 소망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이야기는 본능이었습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우주를 파악하는 데 있어 상상력은 필연적'입니다. '상상력은 인간의 무한으로의 의지 표상'이며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려는 상승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상상력은 필요불가결'입니다.  

'그리고 미지의 타자를 의식의 지평속에서 이해하기 위해 상상이 시작되었다'는 저자의 설명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신화가 있는 것입니다. 신화(즉 상상력은) '결핍을 충족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부터 탄생' 했습니다. '결핍된 현실로부터의 해방, 자유와 행복의 유토피아적 꿈에서 이야기의 상상력은 시작되었'습니다. 

 

신화는 곧 문학적 상상력입니다. '시인은 보이지 않는 사물을 보이게 함으로써 마치 그것이 현실인 것처럼 묘사하는 창조자'라는 정의도 마음에 듭니다.

 

이 책의 2부는 문학평론이자 영화평론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저자가 다루고 있는 문학(동화)과 영화는 거의 서구의 작품들이며 다소 생소한 작품에 관해서도 길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3부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시간'이란 개념을 만들어내었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의 시간관, 하이데거의 시간관 등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4부에서는 <신세계>와 <걸리버 여행기>같은 문학작품에 나타난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등을 조망합니다. 영화 <아바타> 등을  통해 환상과 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원격조종과 게임 등의 문제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간의 '모든 상상은 현실과 더 나은 세상이라는 구도 속에서 작동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상상은 나쁜 현실과 더 좋은 세상이라는 수레바퀴를 영원히 돌리고 있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 상상은 혁명적이라고 정의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혁명'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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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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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 해독

여기 하찮은 흔적이 있습니다. 왼쪽 모서리에 있는 저 갈색 얼룩을 보세요. 보시기에 그냥 평범한 얼룩이지요? 아닙니다. 잘 못 보신 겁니다.  

'자기 도취적으로 끓어오르는 힘의 유희가 만들어 낸 팽창하는 부드러운 구조.'

저 얼룩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당신은 현대 예술을 좀 아시는 분입니다.  저기 두 개의 테두리 줄도 좀 봐주세요. 평론가들은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이 테두리를 이렇게 해석하는군요. 

'리듬을 넣은 선의 아폴로적 완성.'

텅 빈 캔버스(물론 뒷면에 작가의 사인이 있는)도 훌륭한 현대 예술입니다. 이를 두고 알아먹지도 못할 평가들이 난무하니까요. 아무것도 없는 이 캔버스는 '멜로디의 과잉에 대한 시각적 거리로서 스케치된 흔들리는 진테제'입니다. 이브 클라인 같은 작가의 작품이 이런 류에 속하겠지요. 단지 액자로만 되어 있는 단 한 장의 그림같은 것들요. 

현대 예술, 어떻게 봐야할까요? 

넝마 조각들의 조합, 관념의 쓰레기들, 내용없는 천박함, 예술은 무조건 새로워야한다는 강박. 현대 예술은 이런 것에 다름 아닐까요? 작가들은 광기의 경쟁에 사로잡힌듯 파편화되고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인 창작품들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가격을 요구합니다. 평범한 관객들이 이해하기엔 너무나 심오한 진리가 이 작품들속에 담겨 있는 걸까요. 

현대 예술에 대한 저의 관점은 결론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은 이 책의 논점에 충실해보겠습니다. 정치를 예로 든다면 이 책의 저자는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극우에 자리하고 선 저자는 왼쪽을 향해 통렬한 비평을 날립니다. 현대 예술하는 자들은 익살꾼이다, 이것이 저자의 평가입니다.  

'낡은 가족 사진에서, 그리고 망가진 재봉틀과 몇 가지 부엌 집기들을 가지고 5분 내에 현대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고는 자신의 '콜라주' 옆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는 예술가들은 고단수의 익살꾼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저자에게서 익살꾼 정도의 평가도 받지 못한 어중이 떠중이는 하나의 산업이 된 현대 예술에 빌붙어 돈 버는 직업인에 다름 아닙니다. 사실, 오랜 시간을 투자해 완성한 고전적 의미의 그림보다는 끄적거리는 식의 그림 몇 장이 현대 예술에선 돈벌이가 더 잘됩니다.

현대 예술가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코미디언

이 책의 저자는  앤디 워홀을 미국의 위대한 구입자 라고 부릅니다. 앤디 워홀의 예술이 기성품을 사들여 쌓거나 늘여놓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을 붙인 것이지요. 저자는 적어도 이 정도되는 익살꾼들의 재능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이 계열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 피카소이며, 요셉 보이스가 피카소의 후계자 정도는 된다고 평가합니다.

문제는 코미디를 코미디로 끝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박물관 정책과 문화 정책이 우중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미술관엔 고철더미만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현대의 미술작품은 전적으로 미술 비평가와 미술 장사꾼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입니다. 현대 미술은 '상인의 장삿속과 이를 뒷받침이라도 해주는 듯한 몇몇 이름있는 비평가들의 수사 능력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관객은 철저히 배제됩니다. 

이렇게 쏟아져나온 예술품 앞에서 관객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해야 겠지요. 겁에 질리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어리둥절하거나, 침묵하거나, 그도 아니면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아래는 피카소의 유언 중 일부입니다. (진위를 두고 말이 많긴 하다네요.)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안, 렘브란트와 고야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피카소는 스스로를 어릿광대로 자처했지만 그것은 겸손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이해한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니까요. 저자 역시 피카소를 '혼란스런 20세기를 신랄하게 비꼰 시대의 해설가이자 인간적인 어리석음을 수집한 위대한 기록가'였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피카소가 전통적인 그림을 포기한 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피카소는 '사람들이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파격적인 것이나 억지로 꾸며 맞춘 이상한 것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또 그것을 통해 자신이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상상한다'는 걸 깨닫고 난 후 전통적인 그림을 포기했습니다. 그런 그였지만 자신의 가족을 그릴 때만은 리얼리즘에 입각해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우리는 이 대목에서 피카소의 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대가는 이 비밀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현대 예술 비평가 집단에 대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해석입니다.
 

진정한 예술은

이 책엔 독자들의 편지가 다수 실려 있습니다. 현대 예술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저자에게 보내온 공감의 뜻입니다. 아래에 두 편 인용해보겠습니다. 이 편지들엔 현대 미술에 대한 보통사람의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편지1>
예술가들이 이번엔 어떤 오물을 들이대고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할지. 실제로 우리가 정상인가? 아니면 그러한 비정상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우리를 정신적으로 좀 모자란다고 여기고 있는가? 현대 예술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전세계적인 파괴 정신은 현세태의 도덕적 타락과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편지2>
불평 한마디 없이 이 모든 것을 그대로 삼켜야 합니까? 아무런 저항 없이 예술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저에게 말하는 몇몇 전문가의 명령하는 식의 설명이나 판단에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까? 그들은 근사하고 그럴듯한 말로 저에게 말해 주고 있지만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차갑고 오만한 태도로 설명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지는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관객에 대한 사랑 없이는 진정한 예술이 존재할 수 없다고 이 책의 결론을 맺습니다. 관객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결여되는 순간 그 작품은 효과만을 노리는 무엇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관객들 역시 얼토당토않은 짓거리를 예술로 떠받들며 박수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관객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분위기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아름다움이 예술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하게 될 날이 멀지 않다, 예술에 대한 사랑 역시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식자층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라는 논지로 이 책은 끝을 맺습니다.  

저의 관점은

현대 예술에 대한 저의 관점은 말 그대로 예술 전반에 걸친 의견입니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현대의 예술은 공통적으로 파괴적인 성향이 강하고 파편화되는 추세입니다. 위에 인용한 편지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이러한 파괴적 성향은 당연히 현세태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니까요. 

예수와 석가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인류는 이미 진리를 규명했습니다. 고전적인 작품 하나를 떠올려 봅시다. 그것이 고전문학이든 전통적인 그림이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김홍도의 그림을 예로 들겠습니다. 달빛에 걸린 나무가지 하나가 떠오르는군요. 이 나무가지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습니다. 달빛을 받고 있는 이 나무가지를 보고 있으면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응축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 정서는 슬픔의 색채를 띠고 있지만 이상하게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킵니다. 고요하면서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이 무엇을 예술, 아니고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칭할 수 있겠습니까?

서양의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고전은 그 하나하나가 우주를 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작가를 이해한다는 건 곧 우주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모조리 파편화됩니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작품도 작가도 하나의 파편일 뿐입니다. 현대 예술하는 작가 한사람 한사람을 파고드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르네 마그리트, 잭슨 폴록은 하나의 파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예술은 작품 하나 작가 한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출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이 파편들이 구사하고 있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대한 퍼즐 맞추기 게임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작품 하나하나에 공격을 가하고 있지만, 저로선 이런 입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은 고전 예술에 적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예술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려면 남는 건 고혈압뿐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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