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러스킨의 드로잉
존 러스킨 지음, 전용희 옮김 / 오브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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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에 보니 존 러스킨은 19세기 영국의 작가이자 화가, 예술비평가인 동시에 위대한 사회개혁 사상가였다는 말이 나온다. 이 책을 읽다보니 과연 그의 지식과 지혜에 감탄하게 되면서, 다방면에 걸친 그의 관심과 열정에 고개가 숙여진다. 

 

이 책은 특이하게도 하나의 장이 시작될 때마다 존 러스킨이 <친애하는 독자들에게>란 소제목으로 온갖 설명과 충고를 제시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전수하고픈 그의 진정성과 애정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장은 기본 연습편이다. 드로잉에 임하는 자세를 비롯해 선긋기, 그러데이션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장에서는 알파벳 그리기, 둥근 돌 그리기 등의 실습이 이어진다. 

 

2장에서는 나무가지, 사진, 나뭇잎, 구름, 물 등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실물을 관찰해 스케치하는 설명이 이어진다. 

 

3장은 색과 구성편이다. 드로잉을 가르칠 때 그는 누누히 색에 대해선 잊으라고 강조하는데, 그 때문에 색 다루기와 채색에 관한 장이 따로 있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든 감상은 일종의 경이와 놀라움이다. 그림 그리기에 관한 실용서가 변변한 그림 한 점 없이 오로지 글로 시작해 글로 끝내는 이 우직함에 대해 마음 기픈 곳에서부터 존경심이 솟아오른다. 오늘날의 차고 넘치는 처세서와 실용서들 사이에 <존 러스킨의 드로잉>은 괴이스럽게조차 느껴진다.

 

그런데 노랍게도 이 책은 그림이나 사진, 도표 없이도 드로잉에 대해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다. '실용서의 고전' 이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 저자의 철학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그는 '정확성이야말로 드로잉을 가르치는 데 가장 신경 써야 하는 요소'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정확성은 '사물을 인지하는' 높은 수준에서 나온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위대한 예술의 공통점은 정교함이라고 말한다.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을 그리는 데 거의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림을 그리는 기술보다는 사물을 관찰하는 시각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주장은 나처럼 그림에 문외한인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학생들이 '자연을 관찰하며 그것을 어떻게 그려야하는지 가르쳐주기보다는 드로잉을 통해 어떻게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싶다' 고 했다. 정말 대가다운 발언이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완성한 예술작품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는 주장은 내가 이 책을 읽은 목적이기도 하다.

 

세부적인 기법에 들어가서도 그의 설명에는 철학이 엿보인다. 그는 그러데이션의 중요성을 누누히 강조하는데, 이것은 그림자와 사물의 윤곽성을 어떻게 인지할 것인가? 하는 철학과 맞닿아있다.

 

'그림자를 어떻게 그러데이션할 것이냐'는 문제는 '윤곽선을 어떻게 그릴'까의 문제와 이어진다. 나 역시도 타성에 젖어 사물에는 정확한 윤곽선이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존 러스킨은 이 표현은 틀렸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윤곽선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그림자의 가장자리라는 표현이 정확하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사물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업은 '윤곽선 자체를 그리는 능력'이 아니라 '사물의 윤곽선을 정확히 관찰하고 손을 훈련시키는' 일이다. 우리는 사물을 편견으로 외곡하지 말고 그의 표현대로 '그것을 그리기 편하게 함부로 바꾸지 말고'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해 표현해야 한다.

 

이런 깊이있는 차원에서의 설명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다.   

 

이 책은 한번 읽기도 힘들지만, 두고 두고 오래오래 읽어야 한다. 그렇게 읽다보면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 그런 책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책의 철학은 그림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의 예술에 접목해 이해해도 모두 다 맞아떨어지는 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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