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 현대예술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
에프라임 키숀 지음, 반성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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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하찮은 흔적이 있습니다. 왼쪽 모서리에 있는 저 갈색 얼룩을 보세요. 보시기에 그냥 평범한 얼룩이지요? 아닙니다. 잘 못 보신 겁니다.  

'자기 도취적으로 끓어오르는 힘의 유희가 만들어 낸 팽창하는 부드러운 구조.'

저 얼룩에서 이런 느낌을 받았다면 당신은 현대 예술을 좀 아시는 분입니다.  저기 두 개의 테두리 줄도 좀 봐주세요. 평론가들은 그들만의 전문용어로 이 테두리를 이렇게 해석하는군요. 

'리듬을 넣은 선의 아폴로적 완성.'

텅 빈 캔버스(물론 뒷면에 작가의 사인이 있는)도 훌륭한 현대 예술입니다. 이를 두고 알아먹지도 못할 평가들이 난무하니까요. 아무것도 없는 이 캔버스는 '멜로디의 과잉에 대한 시각적 거리로서 스케치된 흔들리는 진테제'입니다. 이브 클라인 같은 작가의 작품이 이런 류에 속하겠지요. 단지 액자로만 되어 있는 단 한 장의 그림같은 것들요. 

현대 예술, 어떻게 봐야할까요? 

넝마 조각들의 조합, 관념의 쓰레기들, 내용없는 천박함, 예술은 무조건 새로워야한다는 강박. 현대 예술은 이런 것에 다름 아닐까요? 작가들은 광기의 경쟁에 사로잡힌듯 파편화되고 기형적이고 비정상적인 창작품들을 쏟아냅니다. 그리고 이 작품들에 대해 천문학적인 가격을 요구합니다. 평범한 관객들이 이해하기엔 너무나 심오한 진리가 이 작품들속에 담겨 있는 걸까요. 

현대 예술에 대한 저의 관점은 결론에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은 이 책의 논점에 충실해보겠습니다. 정치를 예로 든다면 이 책의 저자는 오른쪽 끝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극우에 자리하고 선 저자는 왼쪽을 향해 통렬한 비평을 날립니다. 현대 예술하는 자들은 익살꾼이다, 이것이 저자의 평가입니다.  

'낡은 가족 사진에서, 그리고 망가진 재봉틀과 몇 가지 부엌 집기들을 가지고 5분 내에 현대적인 예술작품을 만들어 내고는 자신의 '콜라주' 옆에 서서 엄숙한 표정으로 포즈를 취하는 예술가들은 고단수의 익살꾼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저자에게서 익살꾼 정도의 평가도 받지 못한 어중이 떠중이는 하나의 산업이 된 현대 예술에 빌붙어 돈 버는 직업인에 다름 아닙니다. 사실, 오랜 시간을 투자해 완성한 고전적 의미의 그림보다는 끄적거리는 식의 그림 몇 장이 현대 예술에선 돈벌이가 더 잘됩니다.

현대 예술가들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코미디언

이 책의 저자는  앤디 워홀을 미국의 위대한 구입자 라고 부릅니다. 앤디 워홀의 예술이 기성품을 사들여 쌓거나 늘여놓은 것들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을 붙인 것이지요. 저자는 적어도 이 정도되는 익살꾼들의 재능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판단에 의하면 이 계열의 선봉에 섰던 사람이 피카소이며, 요셉 보이스가 피카소의 후계자 정도는 된다고 평가합니다.

문제는 코미디를 코미디로 끝내지 않는 데 있습니다. 저자는 박물관 정책과 문화 정책이 우중화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갈수록 미술관엔 고철더미만 쌓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현대의 미술작품은 전적으로 미술 비평가와 미술 장사꾼들을 위해서만 만들어진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입니다. 현대 미술은 '상인의 장삿속과 이를 뒷받침이라도 해주는 듯한 몇몇 이름있는 비평가들의 수사 능력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관객은 철저히 배제됩니다. 

이렇게 쏟아져나온 예술품 앞에서 관객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해야 겠지요. 겁에 질리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어리둥절하거나, 침묵하거나, 그도 아니면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거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아래는 피카소의 유언 중 일부입니다. (진위를 두고 말이 많긴 하다네요.) 

'나는 오늘날 명성뿐만 아니라 부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홀로 있을 때면, 나는 나 스스로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 생각하지 않는다. 위대한 화가는 조토와 티치안, 렘브란트와 고야같은 화가들이다. 나는 단지 나의 시대를 이해하고, 동시대의 사람들이 지닌 허영과 어리석음, 욕망으로부터 모든 것을 끄집어 낸 한낱 어릿광대일 뿐이다.'

피카소는 스스로를 어릿광대로 자처했지만 그것은 겸손입니다. 자신의 시대를 이해한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니까요. 저자 역시 피카소를 '혼란스런 20세기를 신랄하게 비꼰 시대의 해설가이자 인간적인 어리석음을 수집한 위대한 기록가'였다고 평가합니다. 이런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피카소가 전통적인 그림을 포기한 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피카소는 '사람들이 자신의 독자적인 생각을 갖고 있지 않고,  파격적인 것이나 억지로 꾸며 맞춘 이상한 것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또 그것을 통해 자신이 뭔가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고 상상한다'는 걸 깨닫고 난 후 전통적인 그림을 포기했습니다. 그런 그였지만 자신의 가족을 그릴 때만은 리얼리즘에 입각해 그림을 그렸다고 하니, 우리는 이 대목에서 피카소의 진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대가는 이 비밀과 함께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바로 이것이 현대 예술 비평가 집단에 대한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저자의 해석입니다.
 

진정한 예술은

이 책엔 독자들의 편지가 다수 실려 있습니다. 현대 예술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저자에게 보내온 공감의 뜻입니다. 아래에 두 편 인용해보겠습니다. 이 편지들엔 현대 미술에 대한 보통사람의 정서가 녹아 있습니다. 

편지1>
예술가들이 이번엔 어떤 오물을 들이대고 그것을 예술이라고 말할지. 실제로 우리가 정상인가? 아니면 그러한 비정상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들이 우리를 정신적으로 좀 모자란다고 여기고 있는가? 현대 예술 내부를 지배하고 있는 전세계적인 파괴 정신은 현세태의 도덕적 타락과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편지2>
불평 한마디 없이 이 모든 것을 그대로 삼켜야 합니까? 아무런 저항 없이 예술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저에게 말하는 몇몇 전문가의 명령하는 식의 설명이나 판단에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까? 그들은 근사하고 그럴듯한 말로 저에게 말해 주고 있지만 '너는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차갑고 오만한 태도로 설명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요지는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관객에 대한 사랑 없이는 진정한 예술이 존재할 수 없다고 이 책의 결론을 맺습니다. 관객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결여되는 순간 그 작품은 효과만을 노리는 무엇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관객들 역시 얼토당토않은 짓거리를 예술로 떠받들며 박수 보내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관객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분위기는 이 정도로 충분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아름다움이 예술로부터 완전히 추방당하게 될 날이 멀지 않다, 예술에 대한 사랑 역시 사라져 버릴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식자층은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라는 논지로 이 책은 끝을 맺습니다.  

저의 관점은

현대 예술에 대한 저의 관점은 말 그대로 예술 전반에 걸친 의견입니다.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현대의 예술은 공통적으로 파괴적인 성향이 강하고 파편화되는 추세입니다. 위에 인용한 편지에도 그런 말이 있지만 이러한 파괴적 성향은 당연히 현세태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니까요. 

예수와 석가와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시대에 인류는 이미 진리를 규명했습니다. 고전적인 작품 하나를 떠올려 봅시다. 그것이 고전문학이든 전통적인 그림이든 상관없습니다. 저는 김홍도의 그림을 예로 들겠습니다. 달빛에 걸린 나무가지 하나가 떠오르는군요. 이 나무가지 하나에 온 우주가 담겨있습니다. 달빛을 받고 있는 이 나무가지를 보고 있으면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응축된 기운이 느껴집니다. 이 정서는 슬픔의 색채를 띠고 있지만 이상하게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킵니다. 고요하면서 모든 것을 포괄하고 있는 이 무엇을 예술, 아니고는 다른 어떤 이름으로 칭할 수 있겠습니까?

서양의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고전은 그 하나하나가 우주를 담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작가를 이해한다는 건 곧 우주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현대에 와서는 모조리 파편화됩니다. 우주의 입장에서 보면 작품도 작가도 하나의 파편일 뿐입니다. 현대 예술하는 작가 한사람 한사람을 파고드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르네 마그리트, 잭슨 폴록은 하나의 파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현대의 예술은 작품 하나 작가 한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출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혀 이 파편들이 구사하고 있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거대한 퍼즐 맞추기 게임입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작품 하나하나에 공격을 가하고 있지만, 저로선 이런 입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 방법은 고전 예술에 적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예술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려면 남는 건 고혈압뿐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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