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벌목꾼들과의 대결은 계속되었고, 
우리의 초기 무기는 말이었다.

이곳 사람들을 붙잡고 이야기를 해댄 통에 우리의 인도네시아어 실력은빠르게 향상되었다.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는 토론과 숙고라는 무시아와라의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은 서구에서 행해지는 다수결의 원칙에 의거한 민주주의를 단순히 51%의 49%에 대한 압제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만장일치의 결정이 내려져야 한다고 믿는다.

여론이나 여론의 형태를 띤 것은 모두 대단한 중요성을 지니며, 모든 이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는 것 또한 상당히 중요한 일이다. 물론 나이 든 사람과 지위가 높은 사람의 의견을 더 중시하기는 하지만, 이들은 모두의 의견을 소중히 여긴다.

전통적인 사회가 그러하듯, 지역민들이 단체로 이야기를 하는 행위는공식적인 발언으로 간주되었고, 즉석에서 유창하게 말하는 것은 대단히가치 있는 능력이었다. 나는 평소에는 절대로 나서는 법이 없는 인도네시아인들이 마치 며칠 동안 연설문을 작성한 듯, 한 시간 동안 점잖고 품위있는 태도로 이야기하는 것에 놀라곤 했다. 이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토론으로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말하는 법을 배웠다. 무슨 일이 있었든, 어떤 일을미룰 수밖에 없었노라고 이야기하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하는한 남을 설득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인도네시아 사회에서는 말이밀림과 오랑우탄을 보호하는 무기가 되었다.  - P404

아무도 여기서 나무를 벨 수 없었다. 이곳은 보호 구역이니까. 오랑우탄뿐 아니라 다른 모든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곳인 이곳은 미래를위한 씨앗의 저장고, 즉 구당 비지였다.

나는 그 벌목꾼에게 칼리만탄의 밀림이 모두 사라져 버린 후에도 그의손자는 탕중 푸팅에서 경목과 크루잉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성숙한 크루잉 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면 어디서 그 씨앗을 얻을 것인가? 

따라서 미래를 위해 최소한 어느 한 곳은 보호되어야 했고, 그곳이 바로 탕중 푸팅이었다. 나는 그가 데리고 온 스무 사람은 물론, 다른 어느 누구도 이곳에서 벌목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모두의 손자를 위해 이 밀림은 보호되어야 했다. - P406

"약속이 되었어. 자네가 탕중 푸팅에서 오랑우탄 연구를 하고 있는 한은카마스와 허가권자들이 벌목을 하지 않을 거야."

나는 이 일로 인해 동남아시아에서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에 대해 알게되었다. 균형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이번에 한 보호 구역에서 양보를 하면 다음 번에는 유리한 입장이 되었다. 그러한 사실을 잘 기록해 두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한번 양보하면 다음 번에는 내 차례가 되니까.

나는 바로 그때 그곳에서 탕중 푸팅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을 굳혔다.

나에겐 언제까지고 이곳에 머물 생각이 있었다. 
때문에 이 기회에 이곳을떠날 생각을 완전히 접어 두기로 했다. 

내 운명은 결정되었다. 

탕중 푸팅을 떠나는 것은 오랑우탄에 대한 배반이었다. 

나는 그제야 모든 숲에는 과수꾼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 P412

생포된 오랑우탄의 수가 늘어나면서, 
나는 자연 복귀 운동을 재정비했다. 

전처럼 이들은 자유롭게 들어오고 나갔으며, 우리는 하루에 두 번 쌀과 우유 그리고 과일을 제공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오랑우탄의 배설물에서 기생충을 찾아낼 다소 값비싼 현미경을 구입했으며, 새로운 입소자들은 2주 간 격리하고 기생충 약을 먹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내 자연 복귀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는 야생 오랑우탄과 이들의 서식지인 밀림을 보호하는 데 있었으며, 이는 이들의 유전적 특성과 건강 상태뿐 아니라 이들이 밀림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함을 뜻했다.

나는 이들이 모두 같은 지역 출신이었으므로 유전적인 오염을 걱정하지는 않았다. 모든 오랑우탄은 같은 종에 속하지만, 보르네오와 수마트라의 오랑우탄은 서로 다른 아종에 속한다. 이들은 교미를 할 수 있지만, 서로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 P437

나는 서식지를 옮기라는 이들의 비슷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하지만 오랑우탄과 열대 우림을 보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광대한 원시의 열대 우림과 늪 지대를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었다. 

나는가능한 한 인간이 개입하지 않아야 함을 강조했다.

생태학적 지역주의의 환경 정책ㅡ야생의 환경을 작은 권역으로 나누지 않고, 생태계 전체를 그대로 보존할 목적으로 광대한 지역의 땅을 따로지정하는 것--오랑우탄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천년만년 살 수 있만이게 해 줄 것이었다. 

밀림은 나무들의 단순한 집합체가 아니다. 

막대한 벌목이 이루어진 지역에 아무리 나무를 옮겨 심는다 해도 1백만 년 동안 진화해 온 복잡한 밀림의 생태계를 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P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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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에는 ‘바이에른 방송 (당시에는 ‘바이에른 도이치 슈툰데)이 독자적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창단을 포기하고 콘서트협회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방송으로 중계하기로 합의한다. 

그리고 1928년 10월부터 오케스트라의 명칭도 
‘뮌헨 필하모닉‘ 으로 바뀐다. - P169

한편 지휘자 첼리비다케는 자신이 했던 약속을 착실히 지켜냈다. 단원들과 합심하여 5, 6년간의 뼈를 깎는 듯한 고된 작업을 견뎌내고 뮌헨 필하모닉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거듭나게 한 것이다. 카바스타나 켐페 시절에도 도달하지 못한 최상의 수준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첼리비다케는육체적인 한계에도 굴하지 않고 미국과 일본 투어를 성공적으로 이끌며세계적인 명성을 얻어냈다. 특히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한 뒤에 뮌헨필하모닉을 이끌고 고향 루마니아를 방문한 것은 상당히 인상 깊은 일이었다. - P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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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들은 이슬람교가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에서 결혼한 다른 여자들을 대하듯, 나를 더 정중하고 어렵게 대했다. 

이들은 또한 내가불평도 굴복도 포기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 정한 길을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나를 존경했다. 이것은 그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이다.

의 이상과 ‘단 한 가지 종에 대한 변함없는 마음은, 
다양한 계층이모여 사는 숙명론적인 인도네시아인들에게는 낯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들은 감탄하는 동시에 의아해했다.
- P356

나는 오랑우탄이 고독하다는 기존의 관념과, 
이들이 어느 누구의 생각보다 사교적일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 사이를 오갔다. 

이제야 나는 이것이양자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둘 다 맞는 이야기임을 깨닫게 되었다. 

오랑우탄들은 고독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나는 다른 연구원들처럼 이들을 ‘고독하다 고만 묘사하기보다는, ‘반은 고독하다‘거나 사교적이면서 고독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편을 택했다.

오랑우탄은 인파로 넘치는 인도에서 인사를 나누거나 심지어는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뉴욕 시민들을 연상시켰다. 다른행성에서 온 인류학자가 이러한 장면을 보았다면, 인류가 비사교적인 존재라는 결론을 내렸으리라. 하지만 이들이 멈춰 서서 시내의 한 블록에서마주치는 모든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면, 결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뉴욕 시민들은 일종의 생존의 수단으로 마음에 장막을 두르는 것이다. - P371

자급자족하는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오랑우탄은 고등한 영장류의 서열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오랑우탄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먹는 것이우선이며, 사회화는 그 다음이다. 하지만 침팬지는 다르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그 반대가 진리인 것 같을 때가 있다. 사회화가 먼저이고 먹는 것은나중 문제인 것처럼.

침팬지는 정치적인 동물이다. 이들은 사회 조직과 공동체의 사회적 예절을 익히고, 다른 침팬지의 감정 상태와 충성심 여부를 감시하고 조작하며, 연대감을 굳히고, 일을 모의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데 대단한 시간과에너지와 지능을 할애한다. 

모여 사는 것이 침팬지의 환경 적응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듯, 오랑우탄의 적응 방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다른개체와 거리를 두는 것이다.

성숙한 오랑우탄은 다른 오랑우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은 상대를 이용하거나 조작하는 일도 없다. 이들이 그토록 온순하고 순수해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그러나 침팬지가 다른 개체를 친구로 삼을 때는 반드시 이면에 동기가있게 마련이다. 친구가 많고 이 친구들의 힘이 셀수록,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숙한 오랑우탄은 다른 개체와의 관계에서얻는 게 하나도 없다. 이들의 동기는 순수하다. 베스와 카라가 함께 다니는 것은, 단지 상대방과 어울리는 게 좋기 때문일 뿐이다. - P372

그로부터 얼마 후 박사 학위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면서 나는 일정한 패턴을 발견했다. 칼이 병에 걸리기 이전 몇 달 동안 밀림에는 과일이 예외적으로 적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이 생애 최악이었다고 묘사한극성스러웠던 건기에 뒤이은 우기에는 유난히 비가 많아 과일이 남아나지않았다.

꽃은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한 채 썩어 떨어졌고, 이후 몇 년 동안은 제대로 열매를 맺은 야생 두리언을 보기가 어려웠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과일이 그렇게 부족했던 적은 없었다. 과일은 오랑우탄의 주된 생명줄이다.
밀림에 과일이 많으면 이들은 식단의 90% 이상을 과일로 채우며, 뿐만 아니라 며칠씩 과일만 먹는 경우도 있다. - P385

탕중 푸팅은 동물들만 법에 의해 보호받는, 동물 보호 구역이기 때문에이 모든 행위는 합법적인 것이었다. 

즉, 나무를 자르거나 베고, 식물을 불태우는 것은 무방했다. 오직 동물들에게만 손을 댈 수 없었다.

나는 동물 보호 구역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서식지를 보호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동물들을 보호할 수 있습니까?"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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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빌제 카펠레‘는 1882년 3월 16일에 자신들을 이끌어줄 지휘자로라이프치히의 루트비히 폰 브레너를 선출했다. 5월 5일의 음악회에는 슈테른 성악협회가 함께했고, 9, 10월에는 독일의 각 도시들을 돌며 순회연주를 했다. 그리고 곧 유명한 콘서트 기획자인 헤르만 볼프를 영입한다. 

볼프는 카펠레에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는 새로운 명칭을 선사하고, 오케스트라는 이제 베른부르크 가에 안정적인 보금자리를마련한다. 

롤러스케이트장이던 센트럴 스케이팅 링크를 수리하고 ‘필하르모니‘라 부르기로 한 것이다. 필하르모니는 1898년에 다시 한 번 보수공사를 하고 1944년까지 베를린의 대표적인 공연장으로 쓰인다. - P120

뷜로는 전문성을 갖춘 최초의 세계적인 지휘자였고, 그와 함께한 시절은 베를린 필하모닉의 첫 번째 전성기였다.  - P123

마침 권력을 잡은 히틀러 정권이 이문제를 해결한다. 

1933년 11월 1일자로 베를린 필하모닉은 ‘제국 오케스트라로, 다시 말해 선전선동부 장관 괴벨스가 관장하는 정권의 한 부서로 탈바꿈한 것이다. 

주식회사의 지분은 독일 제국으로 넘어가고, 이로써 국가가 오케스트라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이제 국가와 당의 엄격한 통제와 지배를 받아야 했고, 자율적인 운영의 시대는 끝났다. 정권의이양이 오케스트라에게 큰 변화를 안겨준 셈이다. 지금까지 지켜온 자유는 더 이상 허용되지 않았다. 

브루노 발터, 클렘페러, 블레히 등의 지휘자와 후베르만, 크라이슬러, 메뉴인, 슈나벨 같은 솔리스트들이 인종적인 이유로 필하모닉 무대에서 밀려났고, 에리히 클라이버나 프리츠 슈는 자진하여 포디엄에서 물러났다. 푸르트벵글러가 백방으로 애를 썼지만, 결국 바이올린 주자 둘과 첼로 주자 둘등 4명의 유대인 단원들이 오케스트라를 떠나야 했다. 

결국 1935/36시즌부터 베를린 필하모닉은 ‘순수한 아리아인의 오케스트라가 된다. 한편 푸르트벵글러는 추밀원 고문및 문화 생활을 통제하는 국가기관인 제국음악국의 부총재로 추대된다. - P129

1954년 12월 13일, 

베를린 필은 결단을 내렸고 베스터만의 제안으로단장은 상임지휘자 자리를 놓고 카라얀과 협상에 들어갔다. 푸르트벵글러의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베를린이 손을 내밀었을 당시,
카라얀은 밀라노 스칼라 극장의 예술감독이었다. 
다행히 그곳의 극장장기링겔리는 그를 보내주었고, 
카라얀은 뛸 듯이 기뻐하며 베를린 필하모닉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 P141

1989년 10월,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렸다. 
28년 만에 드디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것이다. 

독일이나 베를린만이 아니라 베를린 필하모닉에게도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라이프치히에서 대대적인 집회가 열리기 시작하던 무렵, 56세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베를린 필의 새로운 지휘자로선출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온전한 자율적 선거를 통해서 이루어진 첫 선택이었다. 

사실 아바도는 의외의 후보였다. 

카라얀이 지지하던 러바인무티, 바렌보임, 래틀, 마젤 등이 후보 명단에 올랐다. 래틀은 영광이긴하지만 자신이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이 자리를 고사했다. 반면 마젤은깨끗지 못한 패배자였다. 새로운 지휘자에게 집중적으로 일할 기회를 주겠다는 핑계로 베를린 필의 모든 음악회와 녹음 작업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 P152

결국 베를린 필이 아바도의 후임으로 선택한 지휘자는 래틀이었다. 그는 기꺼이 이 자리를 수락하면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오케스트라가 보조금을 주는 시 정부에 굽실거리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권리를 내세우는 이중적인 모습을 버리고 재단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그의 요구는 받아들여졌고, 10년간의 계약이 맺어졌다. 

이렇게 해서 베를린 필하모닉은 ‘재단법인 베를린 필하모닉‘으로 전환한다. 복권기금으로베를린 시의 지원을 받고, 독일 은행이 주요 후원자로 나섰다.

2002년 가을, 

베를린 전역이 "사이먼 경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포스터로 뒤덮였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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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인원들은 에덴 동산의 생존자들이었다. 

그렇지 않고는 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서로에 대한 편안함 그리고 심지어는 상대방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는 내적 충만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늘은 밝게 빛났고, 32킬로미터 밖에 있는 자바 해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 P310

인간의 관점에서보면 오랑우탄은 심한 성차별주의자였다. 암컷과 수컷의 관계에 있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이 반대로 이루어졌다. 

나는 북미 대륙의 여성들이 처음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 않음을 주장하기 시작한 1960년대에 성장기를 거친 사람이었고, 이곳 현장으로 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은책 가운데 하나는 게르마인느 그리어의 《거세된 여성》이었다.

따라서 오랑우탄 암컷과 수컷이 그토록 다르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루이스 리키는 대형 유인원의 수컷은 인간의 여자와남자를 다르게 대할 뿐 아니라, 여성 관찰자가 오랑우탄 수컷의 공격적 성향을 자극하는 일은 없다고 말했었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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