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마이오세 유인원 가운데 
아프리카에 살았던 것으로 확인된 것만14개 속이다. 
화석을 통해 알려진 마이오세 유인원은 
전부 30종이넘는다. 
...
유인원들에게 사건이 발생했다.
마이오세의 기후가 차가워지고 숲이 줄어들었다.
...
마이오세 유인원의 화석 기록은
약 800만 년 전 이후 사라졌다.
오늘날의 유인원들은
이전의 다양성이 남긴 빈약한 흔적이다. - P277

과거를 향한 여정에는 
부서진 뼈 화석만 필요한 게 아니라 
고대 세상에 대한 정보도 필요하다. 
아르디가 걸어 다닌 흙, 아르디가 올랐던 나무, 
먹은 음식, 만난 동물, 
그리고 아르디를 해친 육식동물까지. - P293

연구자들은 확보한 모든 데이터를 통해, 
아르디피테쿠스 라미두스가 
숲에 살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초지는 아니었다. 
나무가 있는 초지도. 
17년간의 연구 끝에 내놓은 최종 보고서에서 
검사와 같은 목소리 톤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초지 환경은 초기 호미니드의 진화를 이끈 주요 동력이 아니었다."

 매체들이 17년간의 연구 결과를 
앞다투어 보도하는 가운데, 
화이트는 사바나 가설의 종말을 선언했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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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전례 없는 안락함과 안정을 누리며 
성장한 결과물이에요. 
내일의 세상이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할 건 
오늘날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엉망진창이 된 세계를 
물려받게 될 거예요. 
정말로 저는 다가올 세상에 아이들을 대비시킴으로써 
훨씬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 - P564

"자, 자." 내가 연주한다. 
"모두 진정하고 자리에 앉아."
아이들은 배정받은 책상으로 서둘러 오더니 
조용히 앉아서는 수업이 시작하기를 기다린다.
"여기서 빛의 속도를 말해줄 수 있는 사람?"
아이들 열두 명이 발톱을 들어 올린다. - P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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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은 바니시에 따른 고유한 색깔과 
나무를 깎는 방식의 디테일이 달라, 
조류학자들이 깃털로 새의 종류를 분별하듯 
크레모나의 현악기 제작자들은 
대체로 크레모나산 악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 P24

안드레아 아마티는 우선 자기 자손들이 물려받을,
그리고 크레모나에 와서 현악기 제작 일을
배울 모든 이들이 따르게 될 
바이올린 제작 체계를 완벽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심지어 15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등장하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 (Antonio Stradivari, 1644?~1737) 역시 안드레아 아마티가 사용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방법으로 악기를 제작했다. - P34

아마티 바이올린은 
안드레아 아마티가 크레모나에서 최초 모델을 
제작한 이후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세계 최고 바이올린으로서의 위치를 지켰고, 
마치 외교관처럼 이탈리아 여러 지배자들의 궁전을 
섭렵했다. 
가문의 힘과 위대성을 기념하고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우의적 가장 행렬에서 
음악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 P41

오직 바이올린만을 위한 음악도 다량 작곡되면서
진군의 보조를 맞추었다. 

특히 베네치아의 확산세가 대단했다. 
성업 중인 음악 인쇄소와 출판사를 보유한 도시가 
바로 베네치아였기 때문이다. 

로마, 밀라노, 나폴리, 피렌체, 페라라 등의 도시도 
이미 16세기부터 각자 인쇄소와 출판사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오로지 악보 발간에만 집중하는 회사가 
있는 도시는 베네치아가 유일했다.

1530년부터 1560년 사이 베네치아에서 제작된 
악보의 양이 같은 기간 온 유럽에서 발간된 
양보다 더 많았을 정도였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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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멍청하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는 똑똑해졌다.
이건 진보다. - P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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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은 무엇인가가,
한때 존재했던 희귀한 이족보행 유인원을 
아프리카 전역에 걸쳐 늘어나게 했다는 것이다. 
인류 가계도는 최소한 유인원의 기준에서는 
더 코즈모폴리턴적이 됐다. 
약200만 년 전부터 호모속이 아프리카에 등장해 
유럽과 아시아로 퍼졌고 
지구 전역의 대륙을 점령했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종인 호모사피엔스는 
모든 서식지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 전체를 뒤바꾸고 지구 너머까지 탐사했다. 
그러는 동안, 다른 거대 유인원들은 
좁은 생태계 틈에 갇힌 채 멸종을 향해 서서히 나아갔다. - P257

생물학적 분류는 
진화에 대해 전혀 모를 때 발명된 개념이다. 
근대 분류학 체계는 스웨덴 식물학사 칼 린네가 18세기에 확립했다(그는 "Homo sapiens"처럼 속 이름을 대문자로 쓰고 다음에 종 이름을 소문자로쓰는 학명 체계를 발명했다). 

종을 정의하면서, 
린네는 그리스 철학에서두 가지 개념을 빌렸다. 
하나는 플라톤의 이데아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이다. 
이것들은 실체를 정의하는 특징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들이 전체 종의 대표 개체를 의미하는 
모식표본에 남아 있다. 
이런 좁은 정의는 실제 살아 있는 종을 대상으로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다(어떤 개인이 전체 인류를 포괄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하는 종에게는 
더욱 문제가 많다. - P259

왜 인류 조상은 다른 포유류처럼 
활발히 새로운 종으로 분화하지 않았을까? 
마이어는 
"특정 분야에 특화되지 않는 데에 특화됐기 때문"
이라고 추정했다. 
다시 말해 인류 조상은 많은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였다는 것이다. 
반대로, 스페셜리스트는 
좁은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며 다양한 종으로 
더 잘 분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 P261

한때는 전 세계에 최소 네 종의 고대 인류 조상이 
호모 사피엔스와 공존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우리가 이 멸종한 인류들 가운데 
일부를 알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우리 유전체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우리 조상과 이종 짝짓기를 했다는 뜻이다.
...
사실 많은 유전학자들은 이러한 고대 인류들을
더 이상 종으로 지칭하지 않고,
대신 "메타 개체군metapopulatin"이라는 말을 썼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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