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순간들 더 갤러리 101 1
이진숙 지음 / 돌베개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일반적으로 '신' 중심 중세 중반부터 '왕족,귀족'으로 그려졌던 작품들이 극찬을 받았던 작품들을 볼때마다 나에게는 하품을 연발하게 하는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첫번째 이유는 그때 시절의 역사의 무지함과  두번째는 그림의 주인공들 혹은 광경들이 이해하기엔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나 상황이 아니여서)


미술사, 인문학적 관점에서 철학적으로 보여질수 있는 이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잘 풀어준다.

저자는 인간다움을 원근법 미술학 기본개념으로 설명하여 설득하는데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되다니'하면서 묘하게 설득당한다. 


원근법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은 자기 주변 대상을 객관적으로 관찰분석 하면서 과학을 발전시키고,  세상을 그럴듯하게 재현한 완벽한 그림들이 그려낸 모순 투성이의 불완전한 인간들이었다.

그림이 손에 잡힐 듯 진실에 육박해가는 표현력을 갖게 될수록 인간의 불완전함은 숨길 수 없이 드러났다. (흡집있는 세상이 아닌)

이 책에서 언급하는 '인간다움'은 인간이기 때문에 범할 수 밖에 없었고 , 또 인간이기 때문에 성취할수 밖에 없었던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나타낸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소장품을 1분씩만 쳐다보아도 다 보는데 5년이 걸리는 러시아 '예르미타시 미술관'에서의 그림으로 정치적 중재자 역할을 했던' 루벤스' 작품들 


예르미타시 미술관 


<평화의 알레고리,1629, 루벤스 >


왜소하고 창백한 찰스 1세를 그럴듯하게 뽀샵해서 그린 정치적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

<사냥 출전 나간 영국 왕 찰스 1세 , 1635, 반 다이크>

합스부르크의 신애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작품으로 거울속에 비춰진 모습이 전부가 아닌 거울 밖에서의 제 3의 객관자의 시선으로 통찰을 프레임을 만들어낸 작품들과 

<시녀들, 벨라스케스 >

폭풍속에서 빛을 발견한 화가 윌리엄 터너까지 

인간의 불완전함을 저마다의 개성을 담아 채워진 작품들 101명이 소개 되어진다.


시대적으로는 르네상스->바로크-> 로코코,낭만주의,신낭만주의 사조에 걸쳐 여러 작가들 소제목으로 맞춰 시작되고 마지막에는 볼수 있는 장소까지 친절하게 안내된다.


왜 빠져드는 가 ? 혹시 유행이라서?

지나친 성공 과욕이 망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새로운 트랜드나 기술이 인기를 얻게 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그렇게 달리다 보면 왜 달리는 지도 모른채 열심히 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멈춰서서 '왜'라는 질문을 해야한다.아니면 그저 그렇고 그런 결과만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원근법은 소실법을 가지고 같은 크기의 사물이라도 가까운곳이면 크게 멀리는 작게 보이는 원리를 둔다.예외적으로 신이 중심인 중세 때에는 이 당연한 원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이 시대의 그림들은 눈에 보이지 현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적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거리를 염두하지 않고 제일 중요한 사람 '왕','신' '성인' 아주 크게!! 그다음 '왕','귀족' 그다음은  덜 중요한 사람들로 그려진다. 이 기준은 누가 정한것인지 !


15세기 초 처음 등장한 원근법은 폴 세잔, 피카소가 등장 할 때까지 시각적 원칙으로 군림했다.

원근법은 중세의 신분제 적인 질서에 따르지 않고 소실 점을 응시하고 있는 누구라도 !! 가능하다는 점에서 , 보이는 대로 그리는 눈앞의 진실을 우선시했다는 점이 획기적이엿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에 어느 누구도 지금-여기에 머물 수 없다. 시간 속에서 흘러감에 따라 소실 점도 달라진다.같은 풍경도 다른 위치에 서면 다르게 보이는 법이다.

진실은 서로 다른 관점들의 종합으로만 존재 할 뿐이지, 한 사람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그런 점에서 모든 학문은 진실이 가장 잘 보이는 위치와 방법론을 찾기 위한 분투의 결과물이다.


20세기까지 인간 소통의 중요한 미디어는 종이, 책,캔버스 같은 2D(평면적)였기 때문에 유지 될수 있었지만, 21세기 들어서 다양한 입체영상 시대에는 평면에서의 원근법이 하나의 고정된 것이 아닌것을 설명 필요가 없다.

그러나 21세기 소통을 위한 최첨단 도구를 다루면서 우리의 사고는 여전히 원근법적인 발전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우첼로'가 범했던 오류 ('산 로마노 전투'를 그려낸 그는 원근법의 대가로 불리울 정도 완벽하게 그려냈지만 그림의 본질, 발발원인, 역사적의미등 기본적인 역사화의 역할이 누락된다.)로 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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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빠지고 열중할수록 멈추어서 생각할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한다.

모든 일에서 인간이라는 가장 중요한 핵심을 놓치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정서적인 성장판이 일찍이 닫혀 무감해 진다. 

멈춰서 생각하자. 왜, 무엇을 위해 나는 이 일을 하고 있는가? 

(46p )


모든 것을 알지만 출구를 찾지 못할때


파르미자니노 긴목의 성모는 사물의 구성 구도 에서의 비례감의 깨짐, 신성한 성모에 그리스 로마 미술에서 옷주름을 표현한 드래퍼리 기법차용등 당시 성모상은 우아하고 성스러운 코드들을 탈피한 과감한 시도를 한다.


종교의 시대에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연인이나 가족을 버리고 종교적 순교를 하지만, 이성의 시대에는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모습을 볼수 있다.그런 행동을 하는 주인공에 대해 다양한 평가가 시대별로 다 다르다.

모험을 떠난 아더왕의 기사들을 멋있다고 평가하지만, 돈키호테는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라고 평하는 것처럼 말이다.(184p)


매너리즘에서 탈출하는 방식 , 바깥을 바라보는 것 자신이 하는 행동의 본질을 매일 성찰하지 않으면 누구에게는 매러리즘이라는 독한 이끼가 끼게 된다.(192p)


<목이 긴 성모, 파르미자니노>


재난의 바다속으로 -월리엄 터너


인간을 거친 자연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꼈다. 터너는 이 공포를 넘어 아름다움의 실체를 본다.

그리고 자연현상을 표현하는데 몰두했다. 폭풍속에서 캡쳐한듯 표현한 그의 작품은 

일반적 원근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혼돈을 몰입한듯 역동적인 구성을 택한다. 



나는 이해할수 있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나는 폭풍우의 장면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선원들에게 돛대에 내 몸을 묶게 하여 폭풍우를 관찰했다.

네시간동안 돛대에 묶여 움직일수 없었다. 그 곳을 벗어 났다면, 이런 폭풍우를 그릴수 없었을 것이다.437p(윌리엄 터너)


<바다위의 어부들 , 윌리엄 터너, 1796 >



그림을 보면서 101명의 예술가들 중에서 이럴땐 '요 모습 '저럴땐' 이 모습'으로 비춰진  내 모습들과 겹쳐진 모습들도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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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 2023-07-01 18: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전에 이진숙 저자의 미술책 본 적 있는데 좋았어요. 낯익은 그림들을 보니 반갑네요.
더운 날씨에 건강에 유의하시고 즐거운 7월 보내세요. 가필드님.^^

가필드 2023-07-01 18:2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이진숙님 여러권 많이 쓰셨었죠 모나리자님도 더운날씨 위생 더위관리 조심하시고 더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 응원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