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노 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종이봉투는 쉽게 구겨졌다.
'시제품'이 없다.
그 순간, 싸늘한 공포가 온몸을 뒤덮었다.
잃어버렸다. 말도 안 돼.
글자 그대로 온몸이 싸늘해졌다. 상반신에서 핏기가 가신다. 54​


온다 리쿠표 '패닉 코미디'의 경쾌한 출발점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무더운 한여름의 도쿄역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도미노가 시작된다


온다 리쿠는 《유지니아》의 묘한 분위기가 인상적이라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만나게 된 《도미노》 시리즈의 '패닉 코미디'는 과연 어떤 분위기일지 궁금해졌다. 첫 시작부터 등장인물 한마디에 나와있는 28명의 등장인물을 보고 조금 걱정했는데, 다행히 읽다보면 금새 익숙해지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꾸덕꾸덕 덥고 습하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하는 7월의 오후. 우산이 날아가는 장면에서부터 뭔가 심상치않은 일들이 벌어질 것 같다는 강력한 예감이 전해져온다. 우산에서 시작해 도미노같은 형상이 촤르르르 이어진다. 왜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했을까 싶었는데, 도미노 형상을 위한 크나큰 준비라는 것을. 전혀 연관이 없던 사람들이 각자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모여드는 상황들이 눈송이에서 눈덩이가 되듯 점점 커지게 된다. 돌고도는 폭탄, 과연 폭탄의 운명은...?

캐릭터마다 각자만의 개성이 드러나 있어서 읽는내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겐지와 요시히토 장면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동상이몽같은 장면에 엄청 빵빵 터졌다. 같은 상황, 전혀 다른 감상. 정말이지 '패닉 코미디'답게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진지하면서도 웃긴 장면들이 너무나 넘쳐났다. 심각할수록 왜 웃긴거지? 정신없는 날씨도 한몫한것 같다. 마지막까지 불안의 한줄기는 남겨두고 끝나 더욱 많은 상상을 일으킨다. 정말 굉장한 하루였다.

후속작 《도미노 in 상하이》 등장인물을 슬쩍보니, 중복된 등장인물들이 있어 벌써부터 더욱 궁금해진다.​



"정말 굉장한 하루였어요." 344

그것은 또 다른 도미노의 이야기이며, 앞으로 쓰러질지도 모르는 다른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347​


[비채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맞은 자전거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버지의 자전거를 개조하고 변형하고, 다시 조립한 행복표 자전거가 틀림없었다. 지난 이십 년간 어디에 있던 걸까? 어떤 곳을 지나온 것일까? 68



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를 소개하는 띠지의 문구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리브로 앵쉴레르 수상 작가" "대만 최초 맨부커상 노미네이트" 이 문구 덕분에 과연 우밍이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감이 생겼다.

1992년 타이베이의 가장 큰 상가가 허물어지던 날, 아버지가 자전거와 함께 사라졌다. 그로부터 이십 년 후, 사라진 자전거의 궤적을 쫓던 청 앞에 아버지의 자전거가 나타난다.

아버지의 자전거 하나로 시작된 이야기는 단순히 자전거 자체가 아닌 더 큰 세계를 품고 있었다. 자전거에 둘러싼 여러 사람들의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한데 모아지며 각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점차 확장되어간다. 각자의 의미와 감정이 담겨져 있던 자전거에는 그들의 역사들이 겹겹이 쌓여져가고 있었다. 나조차도 처음 실려있던 자전거 그림을 보았을 땐 단순히 정보성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야기들이 쌓아지며 다시 나타나는 자전거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게도 의미가 더해지는 듯했다.

곳곳에 전쟁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이 소설은 또 하나의 역사의 이면을 품고 있었다. 역사적 사실 속 환상적인 요소를 통해 몽환적인 슬픔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스며든 전쟁의 상흔들과 전쟁으로 인해 동물들에게 새겨진 죽음과 고통들. 전쟁은 끝났지만 그들에겐 끝나지 않은, 생생함 속에서 시간이 계속 이어져가는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자전거를 타는 건 한 사람의 인생과 진정으로 만나는 것과 같아요."라는 압바스의 말처럼 《도둑맞은 자전거》를 펼치며 그들의 인생을 만나보는건 어떨까?



"사비나에게 자전거를 주면서 단 한 가지 조건만 걸었어요. 자전거 주인이나 자전거와 관련 있는 사람이 나타나면 돌려주라는 것이요. 사실 난 그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청 선생이 내 앞에 있네요." 360


이야기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떻게 흘러왔는지 알 수 없는 그 순간에 존재한다. 어째서 시간에 마모되고도 여전히 겨울잠을 자듯 어디선가 살아 있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이야기는 늘 깨어나 숨결을 따라 우리 몸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늘처럼 척추를 따라 머릿속으로 들어간 뒤 때로는 뜨겁게 또 때로는 차갑게 심장을 찔러댄다. 433


[비채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 받았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녕의 의식
미야베 미유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런 불만과 고민은 언제나 피를 흘리는 상처 같았다. 그 피는 언제 멎었을까. 언제 아물었을까. 상처는 흔적을 남겼고, 지금도 눈에 보인다. 아팠던 시절의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나이 먹는 건 이런 것이다. 146, 「나와 나」


미야베 미유키, 영화 <화차>의 원작소설 작가로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제대로 읽어보긴 처음이다. 작년부터 유명 작가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재미가 생기고 있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감이 물씬 생겼다. 

『안녕의 의식』은 미야베 미유키의 첫 SF 소설집으로, 오늘날의 사회문제를 SF로 풀어 8편의 단편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아직 SF 소설이 좀 어렵게 느껴졌는데, 『안녕의 의식』은 SF 소설이라기보단 현실을 살짝 비틀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이야기에 집중하기 어렵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나'에 대해,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는 소설이었고, 섬뜩함과 따스함이 함께 공존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요즘 개인적으로 생각의 늪에 빠져 좀처럼 벗어나고 있질 못해서 그런가 특히 「나와 나」와 「별에 소원을」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겼던 것 같다. 「나와 나」를 읽으며 내 모습을 대입해본다. 10년 혹은 2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과거의 내가 상상했던 미래와 다른 나를 보며 실망할까?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후회할까? 「별에 소원을」 속에 나오는 것처럼 내가 보는 모습이 스스로의 심성을 반영한다면, 지금의 내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습은 어떤 형태를 하고 있을까?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다시금 차분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한다. 과거의 나에겐 희망을, 지금의 나에겐 사랑을, 미래의 나에겐 용기를 건네주고 싶다.

이밖에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곳곳에 아이러니함을 남겨주는 이야기도, 조금씩 조여오는 긴장감과 공포심에 두려움을 느낀 이야기도 담겨있다. 이야기마다 여러 각도로 생각을 뻗어나가게 하며,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이 세계에서 나는 더는 인간이 아니면 좋겠다. 이 세계에는 인간보다 로봇이 어울린다. 아니라면 다들 저렇게, 저 여자애처럼, 로봇을 위해 울고 로봇을 걱정하며 로봇과 마음을 나누려 할 리 없다. 로봇을 하나 조립할 때마다 나는 인간에게서 멀어져간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아무리 해도, 로봇은 되지 못한다. 그것이 답답해서, 원통해서……. 나는 때때로 소리 내어 울고 싶어진다. 그것은 참으로 인간다운, 로봇은 결코 하지 않는 행위이지만. 194, 「안녕의 의식」​


[비채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사 신박한 정리 - 한 권으로 정리한 6,000년 인류사
박영규 지음 / 김영사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가 역사를 남기는 이유는 생존 방법을 축적하고 전달하여 생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함이다. 그런 까닭에 역사 역시 인류가 고안한 생존 무기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9)


한 권으로 정리한 6,000년 인류사

책을 읽다보면 가끔 내가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느끼곤 했다. 학창 시절 시험을 위해 공부했던 건 많이 휘발되고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 것만 잡고 있었던 것 같아, 이번 기회에 세계사를 한번 정리해주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 읽게 되었다. 

대다수의 세계사 서적은 유럽사와 중국사 위주로 서술되어 있고, 유럽사 또한 서유럽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반면 『세계사 신박한 정리』는 이런 편향적인 세계사의 틀을 벗어나 유럽, 중동, 인도, 중국의 역사를 균등하게 다루고 있다. 시대 구분법 또한 서양 중심에서 벗어나 동서양을 아우를 수 있는 경제활동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채집시대 (산업제로시대) → 농업시대 (1차산업시대) → 공업시대 (2차산업시대) → 상업시대 (3차산업시대) → 지식시대 (4차산업시대)​

학창 시절엔 공부라고 생각해서 재미없고 지루하기만 했던 역사였는데,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관심이 가게 되니 확실히 머릿속에 잘 들어오는 것 같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잘 몰랐던 중동, 인도 역사 부분은 새로웠고, 기존에 알고 있던 부분도 함께 채워지고 정리되며 세계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중간 중간 한국사도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어 세계사와 한국사를 매칭해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역사는 계속 기록될 것이기에, 역사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들여다봐야겠다.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 소크라테스에서 갈릴레오까지의 철학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
뱅상 자뷔스 지음, 니코비 그림, 양영란 옮김, 요슈타인 가아더 원작 / 김영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자가 되려면, 우선 자기 자신한테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해. (18)


소크라테스에서 갈릴레오까지의 철학

이 책은 요슈타인 가아더의 <소피의 세계> 를 원작으로 만화로 재탄생한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1>이다. 원작 <소피의 세계>가 궁금하긴 했는데, 철학이라는 무게감에 쉬이 도전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만난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덕분에 만화라는 매개로 조금은 부담감을 내려놓고 철학에 다가갈 수 있었다. 

"너는 누구니?"

어느 날, 소피에게 온 편지. 편지에서 글씨가 나오고 소리가 들리고, 사람이 나오며 입체적인 철학 수업이 시작된다. 1권에서는 고대 그리스,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고,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을 만화 속 인물로 만나볼 수 있다. 

중간중간 현실적인 문제인 기후위기, 여성 문제를 다루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소피의 모습에서 우리도 각자만의 생각을 가지며 나아가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철학이라는 단어에서 막연히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무게감이 느껴졌는데, 철학 놀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봐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철학자들이 던지는 질문과 그 질문의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는 것. 철학은 일상 생활에서도 뻗쳐 있으며, 다양한 사유를 하며 나를 채워나가는 것 같다. 

<만화로 보는 소피의 세계 2>에서는 데카르트부터 현대 철학자들을 다루며 2023년 가을에 출간된다고 한다. 2권 역시 기대중이다.


하지만 난, 내 삶은 내가 책임질 거라고요. (261)​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