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레나는 알고 있다
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지음, 엄지영 옮김 / 비채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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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타는 성당 종탑에 목을 맨 채로 발견되었다. 이미 숨진 상태로. 비가 내린 어느 날 저녁에. 그것, 그날 내린 비가 절대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엘레나는 알고 있다. 모두들 입을 모아 자살이었다고 말한다 해도. 그들이 아무리 자살이라고 우기든, 아니면 침묵을 지키든, 금방 비가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어두컴컴할 때 리타는 절대 성당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반박할 사람은 없다. 47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파이널리스트

처음부터 의문이 가득한 리타의 죽음. 성당 종탑에 목을 맨 리타를 발견 후 신고를 하며 출동은 미사 이후에 오라고 말하는 신부님. 리타는 비가 오는 날이면 성당 근처에는 가지 않았다는 말을 귀 기울여주지 않는 경찰. 자살했다는 주장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리타의 남자친구.

딸이 자살이 아닌 살해당했다고 생각한 엘레나는 딸의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쉽지 않은 발걸음을 내딛는다. 파킨슨 병을 지닌 엘레나는 움직임에 많은 제약이 있다. 소설 첫 시작부터 엘레나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묵직하게 느껴지며 몰입감을 준다. 느리지만 한 걸음에 담겨있는 힘이 나에게도 전해지며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이 소설은 이십 년 전 리타가 도왔고 구해줬던 이사벨에게 가기까지의 여정과 엘레나와 이사벨의 만남으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의문이 가득했던 리타의 죽음이 이사벨을 만나며 한순간에 휘몰아친 소용돌이에 휩쓸려버린 느낌이 들며 나는 혼돈의 한가운데로 떨어진다.

우리는 자신에게는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종종 잊곤 한다. 나에게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내가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뒤바뀌기도 한다. 이사벨을 만나며 쉽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깨지기 시작한다.

리타는 자신이 멋대로 판단한 타인의 기준이 자신에게 닥쳐오며 깨닫게 된 건 아니었을까. 엘레나도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딸의 모습과 다른 딸의 모습들을 알게되면서 어쩌면 딸의 죽음에 대해 엘레나는 알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것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신도 모른채 가슴 깊숙히 숨겨두었던 건 아니었을까.

파킨슨 병을 통해서 우리가 기대해 온 모든 것에 대한 억압과 제한을 표현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추리 소설의 형식을 띄지만 사건의 흐름보다는 경직해져가는 몸의 감각들이 더욱 두드러지며, 소설을 통해 여러 질문들을 던져내고 있다. 이 질문들을 떠올리며 다시금 뒤집어보며 생각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생각하는 것과 내가 경험하게 된다면 달라질 것들을 어쩌면 나는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모든 게 너무 다르군요. 엘레나가 말한다. 뭐가 다르다는 거죠? 내가 생각했던 것하고도 다르고, 내가 여기, 당신네 집에 오려고 마음먹었을 때하고도 너무 달라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여기 오지 않았을 거예요. 212

난 그 아이를 사랑했고, 그 아이도 나를 사랑했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거야 의심할 까닭이 없겠죠. 이사벨이 말한다. 우리만의 방식으로요. 엘레나가 덧붙여 말한다. 하지만 이사벨로서는 굳이 그런 설명이 필요 없기 때문에 바로 대답한다. 그런 건 언제나 우리 자신만의 방식대로 이루어지죠. 244


[비채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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