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구 : 흙의 장벽 2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6
마리즈 콩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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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아들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일을 당하는 슬픔을 겪었습니다. 아들 중 한 명은 노예로 잡혀서 브라질로 끌려갔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다호메 왕국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들은 각자 그 낯선 땅에 아들들을 남겼습니다. 가문의 수장이 된 이상, 저는 계속해서, 우리의 조상들이 만족과 위안을 느끼실 수 있도록 흩어진 그 아이들을 전부를 한 지붕 아래 모으려고 할 겁니다. 말씀드리건대, 우리 아이들이 현재 어디 있든지 간에, 그 아이들은 세구로 향하는 길에 오를 겁니다. _291



에세 서포터즈의 마지막 책은 18세기 세구 왕국(현재는 아프리카 말리 공화국의 도시)을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 『세구:흙의 장벽』이다. 세구의 영광의 최정점인 시기를 시작으로 세구 왕국이 무너져 내리는 역사의 비극 속의 트라오레 가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총 900페이지라 나름 여유를 가지며 읽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게 나가서,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했다. 아무래도 역사 소설이기에 등장인물이 많았고, 심지어 이름이 두 개씩, 세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도시들과 밤바라족, 페울족 등 낯선 명칭들이 익숙치 않아 머리속에 정리하는데 좀 애를 먹었다. 
그렇지만 트라오레 가문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 속에 담긴 아프리카의 혼란스럽고 격정적인 시기의 역사를 그리고 있어 나는 내가 몰랐던, 내가 가본 적 없는 과거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 낯선 세계를 여행한다. 

『세구:흙의 장벽』에서 트라오레 가문의 수장인 두지카의 아들들인 티에코로, 나바, 시가, 말로발리를 통해 크게 종교와 노예 무역, 인종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방대한 내용이라 흥미로웠던 부분 위주로 적어본다.

우선 흥미로웠던 부분은 세구가 갖고 있는 샤머니즘을 토대로 물신을 숭배하는 모습이었다. 물신을 숭배하며 볼리같은 새로운 문화들을 엿볼 수 있었고, 우리가 사주를 보듯 세구에서는 주물사를 통해 점을 보며, 답을 찾아가며 맹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물신만을 숭배하는 세구에서 두지카의 장남인 티에코로가 돋보인다. 가부장제, 일부다처제, 장남 위주의 사회에서 티에코로는 세구 역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이슬람으로 개종하게 된다. 세구 밖의 세계에서 그가 경험한 건 차별과 멸시, 그리고 이슬람에 대한 믿음. 세구와 이슬람의 대립되는 그 사이, 어떻게 보면 이도저도 아닌 티에코로의 이중적인 면을 엿볼 수 있었다. 세구 식으로 나디에를 강간해서 첩으로 삼지만, 나디에에게 욕망을 느끼는 한편 나디에의 여성의 지위에 부정적으로 생각하며, 나디에가 낳은 장남이 아닌 다른 귀족 아내에게 낳은 자식을 진정한 장남을 인정하는 모습과 차별과 멸시를 당하면서도 자신 또한 차별과 멸시하는 모습에서 사람이 가진 은연중의 이중적인 모습을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다.

노예의 자식 시가와 첩인 페울족의 자식 말로발리를 통해 볼 수 있었던 모성의 그리움과 인정욕구. 시가는 티에코로와 함께 떠났지만, 큰 형과 떨어져 나귀몰이꾼을 거쳐 상인의 조수로 일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문명을 어느정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특히 가족에서의 지위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절실히 드러난다. 결국엔 가문의 수장이 되어 뿔뿔히 흩어진 그들의 아들들을 세구로 모으려고 한다. 말로발리는 큰 어머니의 사랑을 잠시간 독차지했다가 다른 아이들에게 밀려나고 첩의 자식임을 알게되며 자신의 친모를 원망하고, 다른 아이들을 질투한다. 큰 형과의 반감에 집을 떠나 결국에 만나게 되는 로마나와의 만남을 통해 물신에서의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되어 새로운 영혼으로 이어진다는 것처럼 인연과 운명의 모습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나바는 사냥을 갔다 납치되어 노예가 되어 팔려가고, 비슷한 처지인 노예가 된 아요델레(로마나)를 만난다. 아요델레에게 지옥같은 시간에서 유일한 빛이었던 나바. 나바의 죽음으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간다. 그렇게 젊은 남편의 모습으로 찾아온 말로발리. 그리고 티에코로의 자식인 모하메드와 에이샤의 관계도 눈여겨보게 된다. 이렇게 뿔뿔히 흩어진 그들의 자식들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어떤 인연과 운명을 맞이할지 이후의 이야기도 상상하게 만든다. 

아프리카의 격변기의 혼란을 어김없이 느껴볼 수 있었고, 아프리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모습과 결국 파괴되고서야 깨닫게 되는 것. 그 전에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서로 존중하며 함께 어우러 살아가야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에세 서포터즈를 하며 새로운 작가와 낯설지만 다양한 세계를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내게 세계 문학에 대한 장벽을 낮춰주었다. 6개월 동안 에세에 대한 믿음은 점점 쌓아졌고, 앞으로 나올 출간 예정작들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려진다. 




알파 기다도는 티에폴로의 시신 곁에 무너진 채였다. 조금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의 신앙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알라를 위해 알라에 의해서만 살아왔더랬다. (...) 하지만 "알라가 내 남편을 죽였다!"라는 그 외침이 머릿속에서 계속 울려 퍼졌다. 퍼뜩 보편적인 신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은 저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신을 숭배할 권리가 있으며, 인간에게서 삶의 주춧돌인 그의 신앙을 빼앗는 행위는 그를 죽음에 처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왜 알라가 파로나 펨바보다 더 가치가 나가겠는가? 누가 그렇게 결정했는가? 눈물이 얼굴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그는 마치 자신이 아버지를 빼앗기기라도 한 것처럼, 이제 자신들의 불행을 깨닫기 시작한 영지의 고아들처럼 티에폴로의 가슴팍에 이마를 댄 채였다. _459


[에세 서포터즈 활동으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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