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장성주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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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진실이에요. 변화는 계속 진행되는거니까요. 모든 것은 어떤 식으로든 변해요. 크기, 위치, 구성, 빈도, 속도, 생각, 뭐든지요. 살아 있는 모든 것, 지극히 작은 양의 물질 하나하나,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에너지, 그 모든 것이 어떠한 방식으로든 변화해요. 난 모든 것이 모든 방식으로 변화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_384​


1993년에 쓰여진 이 책은 근미래인 2024-2027년의 시점으로 그려지고 있다.
현재 기준으로 2년이 남은 지금, 작가가 30년 전에 상상한 것들이 현재와도 충분히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기후문제부터 시작해 인종차별, 장애, 혐오, 난민, 전쟁과 다름없는 것들이 현실과 닮아 저릿하게 만든다. 
디스토피아 소설이지만, 현실같은.
우리는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걸까?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만약 초공감증후군이 더 흔한 병이었다면 사람들은 그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피치 못할 경우라면 살인을 저지르겠지만, 그랬다가는 상대방의 고통을 함께 겪거나 그 고통 때문에 폐인이 돼버릴 것이다. 모든 이가 다른 모든 이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면, 누가 고문 같은 짓을 하려고 하겠는가? 누가 남에게 쓸데없는 고통을 가하겠는가? 전에는 내가 앓는 병이 어떤 식으로든 좋은 효과를 일으키리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내 문제가 도움이 될 것도 같다. 남들에게 초공감증후군을 나눠주면 좋겠다. _200​


이것이 주인공 로런에게 다른 이들의 고통이나 쾌락을 공유하는 '초공감증후군'이 주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인 것 같다.
살아 남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살인과 강간, 방화를 하며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이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
우리는 현실을 본체만체 외면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로런은 세상이 바뀌려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며, 지구종이라는 자신 만의 믿음을 교리삼아 일기처럼 기록하고 쓰여지는 《지구종: 산 자들의 책》.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장벽 안에서도, 언젠가 떠날 장벽 바깥세상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대비가 필요했고, 변화가 필요했다. 
그렇게 변곡점에 서는 그 날이 다가오고, 혼자에서 동지가 생기고, 의심과 경계 속에서도 같은 목표의 사람들과 함께 하게 된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건 사람과 사람 사이 연대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 같다.
혼자가 아닌 사랑과 연대의 강력한 힘이 새로운 공동체에서 각자의 씨앗이 심어지고, 싹트며, 자라나 새로운 시작점이 돋아나는 과정이다.
씨앗은 뿌려졌고, 이제 빚기는 시작되었다.
속편인 『은총받은 사람의 우화』를 기다릴 차례다. ​



"그건 누구도 대비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언젠가는 무슨 일이 터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일이 얼마나 심각할지, 언제 일어날지는 알 길이 없었죠. 하지만 모든 게 나빠져만 갔어요. 기후, 경제, 범죄, 마약, 그런 것들 말이에요. 우리만 장벽 안쪽에서 느긋하게, 깨끗하고 든든하고 풍족하게 살 자격이 있다고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바깥세상에서 굶주리고 목마른 채 집도 없이 지저분하게 사는데 말이에요." _328​


[김영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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