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선물
앤 머로 린드버그 지음, 김보람 옮김 / 북포레스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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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파도의 리듬, 등과 다리의 맨살에 닿는 햇볕, 머리칼을 흩날리는 바람과 물보라의 위로를 받으며 해변을 따라 한참을 걷는다. 일렁이는 파도에 몸을 숨겼다 나타나길 반복하는 도요새처럼. 그리고는 흠뻑 젖은 채 비틀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하루를 온전히 홀로 보낸 자의 벅찬 마음으로. 밤의 어둠이 한 입 베어물기 전의 둥근 보름달처럼 흡족한 마음으로. 서둘러 입술을 갖다대야 할 만큼 넘치도록 가득 찬 잔처럼 충만한 마음으로. _51


중년의 작가가 2주간의 휴가를 바닷가에서 보내며 삶, 인간관계 등에 대한 깊은 사색이 담겨있는 책이다.
소라고둥, 달고둥, 해돋이조개, 굴, 아르고노트 등 소라와 조개껍데기를 인생을, 특히 여성의 삶에 빚대어 표현하고 있다.
50년 전 쓰여진 것도 놀라운데, 50년이 지나서도 이토록 공감이 되는 글이라니 놀라웠다.
책은 얇지만 문장 문장에 깊은 사색이 담겨있어, 나도 절로 차분하게 글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게 해준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바다의 선물』, 모래 위 발바닥을 닿으며 사각사각 걷고 싶어진다. 

아니, 어쩜 바닷가에서 보내는 휴가 동안에 소라와 조개 껍데기를 보며 인생의 깊은 통찰력을 갖는건지 놀랍다.
(나라면 그냥 좋다고 놀았을 것 같은데..)

소라고둥에서 소박함의 평온함을, 달고둥에서 고독과 내면의 샘을 채우는 시간을, 해돋이조개에서 순수한 관계를, 굴에서 삶의 투쟁을, 아르고노트에서 자유를 깨닫는다.
정말 제목 그대로 바다가 준 선물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풀어내며 내게 닿는다.

바쁘고 복잡할 때, 정신없을 때, 지칠 때, 내면을 들여다볼 시간이 필요할 때 읽으면 깊은 사색과 함께 마음이 절로 차분해질 것이다.
살다 조금은 지칠 때 이 책과 함께 나도 바닷가로 가 여유로움을 즐기며 깊은 사색의 시간을 갖고싶다. 



참된 안정은 소유나 획득, 요구나 기대, 희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관계에서 안정은 향수에 젖어 지난날을 돌아본다거나 두려움 또는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앞날을 기다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관계 속에 충실히 살면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만 얻을 수 있다. 인간관계 역시 섬과 같은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지금, 여기 있는 모습 그대로 그리고 그들의 한계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섬은 바다에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다는 것을, 꾸준히 파도가 찾아오지만 그런 파도도 이내 떠나간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날개 달린 삶, 밀물과 썰물, 단속성의 안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_122

아름다움이 드러나려면 여백이 있어야 하니까. 여백이 있어야 일도 사물도 사람도 자기만의 의미를 갖게 되며, 그래서 더 아름다워진다. 나무는 텅 빈 하늘을 배경으로 바라봐야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악보의 선율에도 앞뒤 여백이 있을 때 의미가 더해진다. 촛불은 밤의 여백 속에서 활짝 피어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여백의 손길을 닿으면 의미를 얻는다. 한쪽 모서리에 그려넣은 추초로 여백의 미를 살리는 동양화처럼. _128​


[북포레스트에서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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