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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순례
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2년 1월
평점 :

말이 없는 침묵 속에서만 태어나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는 귀가 들리건 들리지 않건, 표면적인 차원에서는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_91
마음과 깊이 연결된 수어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될수록 도처에 널린 소박한 '목소리'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목소리'를 내면 상대방도 '목소리'로 답했다. 모호한 구석이라곤 없이 명확하게 전달되는 그 '목소리'를 눈으로 들었다. 나에게서 상대방에게, 상대방에게서 내게. 목소리가 돌고 돌았다. 돌고 도는 목소리를 느낄수록 얼어붙었던 목소리에 피가 돌고 온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_21
보청기를 끼고 발음훈련을 통해 소리를 내는 법을 훈련했던 사이토 하루미치.
소소한 호기심을 물어도, 답변 보다는 발음에 대한 칭찬이나 질책이 가득했던 나날.
일반학교에서 고등학교는 농학교로 진학해 수어로 건넨 "안녕"이라는 인사에 오롯이 "안녕"이라는 인사가 돌아왔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하는 저자.
'귀가 듣지 못하니,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라는 소극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다양한 '목소리'로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직작가 사이토 하루미치의 여정이 담겨있는 『목소리 순례』
보이는 목소리.
내리는 목소리.
피어나는 목소리.
만져지는 목소리.
온 몸으로 느끼는 목소리.
이렇듯 다양한 감각으로 느껴지는 목소리들.
다양한 언어, 다양한 감각들의 목소리들의 표현으로 내가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편견이 깨져나가는 순간이었다.
작은 목소리들이 하나씩 쌓여 대화가 되고, '듣는다'의 의미를, '목소리'의 의미를, '소통'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다양한 감각으로,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시선들로 우리가 느끼는 세세한 감각 하나하나가 소중해진다.
빛을 활용한 사진들로, 그 속에서 건네주는 목소리가 보여지는 느낌이 내게 닿는다.
표지의 겹쳐있는 듯한 사진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며, 사진은 또다른 이야기가 되어 흐른다.
수어의 표정부터 음성이 아닌 다양한 대화 방식을 통해 깨닫는 여러 감각이 돋아난다.
태양 아래, 햇살 아래, 빛 속에서의 여러 감각들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내면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목소리 순례』에 이어,
저자의 또 다른 책, 언어와 감각이 서로 다른 한 가족의 일상이 담겨있다는 『서로 다른 기념일』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서로 다름을 통감할수록 '당신'이라는 타인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새로워진다. '당신'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빛이 더해진다. 대화란 이해할 수 없는 다름을 서로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다름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 하는 행위였다. _138
필담과 수어 통역은 '쓸데없는' 대화를 생략하고 의미만 요약하여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분명히 용건을 해결하는 데는 그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의미 있는 말만으로 마음이 통하느냐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가치 없어 보이는 사소하고 '쓸데없는' 말에 모든 인격이 응축되기도 한다. 그처럼 '쓸데없는' 대화가 대수롭지 않게 쌓인 자리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싹튼다. _227
말과 관련한 실패를 거듭하면서, 이윽고 '작은 목소리'의 존재를 깨달았다.
손을 잡는 것, 눈높이를 맞추고 바라보는 것, 다가가는 것, 만지는 것, 식탁을 둘러싸고 함께 식사하는 것, 인사를 수천수만 번 꾸준히 주고받는 것.
오직 그런 행동으로만 전할 수 있는, 한없이 침묵에 가까운 '작은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한다. 거북이걸음처럼 천천히 다가오는 '작은 목소리'를 쌓아야 간신히 자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짜 말'이다. _241
[다다서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