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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딘가에 하나쯤
유희경 지음 / 달 / 2021년 7월
평점 :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의 서점지기 유희경 시인의 산문집.
'위트 앤 시니컬'의 물건들, 사람들, 풍경들에 대해 쓰여 있는 책이다. 그 속에 유희경 시인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혜화동의 오래된 서점 '동양서림' 그 안의 나선계단을 올라가면 다락방처럼 나타나는 공간인 '위트 앤 시니컬'.
가보지 않았던 곳임에도 책을 읽고있으면 눈 앞에 서점의 모습이 그려진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만의 취향이 가득찬 공간.
책을 읽으면서 시인의 취향이 담기고, 추억이 깃들고, 애정이 묻어나는 서점의 모습을 보게되니 더욱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 매번 바쁘다는 핑계 등 미루기만 했는데, 진지하게 하나씩 쌓아 나가야겠다.
비 오는 어느 날.. 눈 오는 어느 날.. 나선계단을 삐걱거리며 올라가 아늑한 조명과 풍경 소리로 나를 맞이하는 공간으로 들어가고 싶다.
책장과 책상과 의자. 그리고 인형들. 무엇보다 시집들이 나를 맞이할 것이다. 책장 사이사이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나만의 시집을 고르고 싶다.
그 때의 마음이 담긴 시집을. 나에게 울림을 줄 시집을.
하지만 실제로 방문하게 된다면 날씨보다는 맘 잡고 서울을 가야한다는 현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나선계단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누가 계단을 올라올 때, 그가 정수리부터 얼굴, 가슴과 허리 순으로 나타나 마침내 시를 좋아하는 독자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낼 때 여전히 나는 세상에 없는 신비를 목도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그 기분은 찾아올 때와 반대의 순으로 그가 사라져갈 때에도 마찬가지다. [27]
이제는 모든 불을 끌 시간. 오늘의 시집이 어제의 시집이 되고 내일의 시집으로 되어가는 그런 시간. 마침내 완전히 깜깜해진 서점에 나는 또 한참 서서 귀를 기울인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기를 기다리면서. [37]
세상에. 서점 곳곳 보이지 않는 이름표들로 가득하구나. [146]
하나둘 불빛이 사라져 이윽고 깜깜해진 서점을 난 참 좋아한다. 인근 가로등 불빛이 들이쳐 어두운 서점의 일부가 어슴푸레 드러난다. 꽃병에 꽃힌 꽃이 보인다. 흰 눈으로 시작해 하얀 꽃으로 끝이 난 하루다. 신통찮은 매출에도 어쩐지 부자가 된 것만 같아서, 웃음 지었다가 이내 거두는 그런 하루다. 어찌되었든 내일도 서점을 열어야 하고 몇 명이든 사람들을 맞이해야 할 테니까, 서점 역시 곤한 잠에 들 시간이다. 쿵 하고 소리 나게 문을 닫는다. 안녕. 오늘도 수고했어. 잘 자. 내가 서점에게 건네는 밤 인사다. [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