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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철부지 아빠 - 제9회 푸른문학상 동화집 ㅣ 미래의 고전 26
하은유 외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왜, 제목만 보고 고개가 끄덕여지는 걸까?
'철부지'란 단어와 '아빠'가 완전히 찰떡궁합이다.
이야기를 읽기도 전에 벌써 공감이 간다.
완전히 순진할 수만은 없는 시대, 어른들의 아픔과 고민까지도 조금은 알게 되는 시기의 아이들의
이야기들이 담긴 이 작은 동화집.
어른인 내가 너무 신나게 읽었다.
첫번째 이야기 <환승입니다!>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갖게 한다.
'환승?환승이 무슨 이야깃거리가 되지?'하는 의아함.
그런데 한 페이지 읽고 나면 '아하!'하게 된다.
조금 특이하거나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이름 때문에 가지게 된 말도 안 되는 별명이나, 어린 시절 뿐 아니라 커서도 치르게 된 곤혹스런 경험들이 있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요즘엔 적지 않다. 평생 함께 있어야 하는 이유로 우리는 '이름'에 초연할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님들도 고심고심하며 숙고 끝에 아이의 이름을 지으시건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또 그 이름의 주인이 흡족해 하는 경우는 잘 없는 듯하다. 나 역시, 이름이 흔하다-어찌 생각하면 참 호강에 겨운 고민이었다-는 이유로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늘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여기 이 친구, 이름이 '환승'이다. 몇 년 전만 했더라도 아무 문제없었을 이름.
그러나, 대한민국 교통제도의 변화가 가져온 고난은 주인공을 하루에도 몇십번 괴롭힌다.
참 속태우는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을 지은 원망스런 아빠. 하지만, 바로 그 이름이, 버스에서 늘 자신을 놀릿감으로 만들며 울려퍼졌던 그 이름이 절망에 빠졌던 아빠에게 힘을 준다.
세상의 모든 것이 어쩌면 이럴 것이다. '방해물'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어느 순간 완전히 다른 뜻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을 경험하며, 우리는 좀더 너그러워지고 굳세어지며 진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 제목이 아이들보다 엄마들의 열광적인 공감을 얻을 것이 분명한 '나의 철부지 아빠'
그런데, 주인공 경태에겐 엄마가 없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
하지만,할머니와 아빠의 사랑 속에 자라서인지 그렇게 의젓하고 똘똘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하나 밖에 없는 아빠...오히려 아들의 걱정거리다.
밥만 해 놓고도 밥 하나는 기막히게 잘한다면서 스스로 정말 뿌듯해하고, 준비물도 안 챙겨주고,
밤에 친구 전화만 오면 의리를 지킨다며 뛰어나가서 친구들을 몰고 집에 오기까지 한다.
아들 생일도 그냥 넘어가고, 가끔은 아들보다 오토바이를 더 아끼는 듯 보인다.
그치만, '역시 철부자 아빠다워'하고 형 같이 편하게 생각하며 사랑했던 아빠가
미혼부였고 엄마가 살아 있다는 사실도 숨겼다는 것을 안 경태는 아빠를 원망하지만,
친구 민지 또한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해 엄마랑만 사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아이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슬픔을 생각하는 경태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그리우면서도 자신을 버린 아빠가 미워서 만나지 않는 민지를 보며.....
어른들이 아이에게 주는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경태가 아빠가 어떻게 행동하든 '그냥 그런 아빠려니'하며 받아들이는 모습은
요즘처럼 아이도 부모도 서로에게 원하는 게 많고 남이랑 비교하는 것이 당연하고 일상인 이 시대에,
'진짜 가족'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기억하게 한다.
'그냥 그런 그대로' 마음 깊이 사랑하는 존재가 아니라면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쩌면 우린 모두 가족에겐 마음껏 '철부지'처럼 굴 수 있어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는 믿음과 편안함, 그것을 또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랑이,
이 차갑고 냉정한 세상에서 우리가 온기를 유지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할 것이다.
아홉 편의 이야기 모두, 우리 아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인 어른들에게 권해주고 싶다.
각각 다른 눈으로, 다른 필체로 담아낸 이야기들이
이 시대의 아이들의 마음,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가족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창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