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한 주스 가게 - 제9회 푸른문학상 수상작 푸른도서관 49
유하순.강미.신지영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불량'이란 말을 들으면 왠지 웃음이 난다. 

뭔가 정감이 간다.  

사람을 수식할 땐 '행실이나 성품, 성적이 나쁨', 사물을 수식할 땐 '품질이나 상태가 나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단어인데,  

'최고'만을 내세우고 '좋다, 좋다'를 선전하는 세상에 살아서일까? 

스스로에게 붙이는 '불량'이라는 말은 차라리 솔직하면서도 요즘 흔히들 쓰는 말로 '쿨'하게 느껴진다.  

 

<불량한 주스 가게>만 해도 그렇다. 이런 이름의 가게가 보이면, 궁금해서라도 한번 들어가보게 될 것 같다. 정말 '불량'하지는 않을 거라는 왠지 모를 믿음과 함께 말이다.  

이 불량한 주스 가게엔 진짜 불량한 고딩이 있다. 

주먹이 세고 허우대가 좋은 친구와 잘나가는 패거리로 뽀대나게 나다니다

'배신자'를 응징한 대가로 무기정학을 받은 이 집 아들 건호. 

여행 간다며 가게를 맡기고 간 엄마가 실은 수술을 위해 입원한 것임을 안 건호는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가게를 진짜로 돌보게 된다.

병자 얼굴처럼 거칠고 누르퉁퉁한 사과가 달콤함에 놀라고, 

'피를 나눈 형제'처럼 지냈던 그 자랑스런 패거리가 진짜 친구는 아님을 깨닫고,

외상을 요구하는 폼생폼사 깍두기 아저씨들, 

메뉴에도 없는 코코넛 주스 같은 걸 찾으며 스스로를 과시하는 명품족 아줌마들을 마주치며  

건호는 여물어간다.

 

"겉만 그럴싸하다고 좋은 게 아냐. 오히려 그런 놈들이 맛은 형편없는 경우가 많거든."이라는 청과물시장 할아버지의 말을 

여러번 되씹어보게 된다. 

우리 역시, 아이를 그런 눈으로만 바라보고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속이 여물고 따뜻하고 굳센 아이가 되기보다는, 겉으로 반짝거리고 멋진 폼새를 지니는 것이 우선이라고 

그렇게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화려하고 근사하지만 차가운 세상을 보태가고 있는 것 아닐까? 

 

<올빼미, 채널링을 하다>의 유성이는 "인간들하고는 말이 잘 안 통해요."라고 괴로움을 토로한다.

올빼미를 닮은 눈 생김새에 올빼미랑 반대로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생긴 별명으로 놀림받고,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느껴지는 단절감과 소외감은 유성이를 '채널러'의 길로 이끈다.  

'내가 과연 이 세상에 쓸모 있는 인간인지' 궁금해서 채널링을 원했다는 형에게서

이 시대 많은 이들이 가진 '홀로 지구에 온 외계인보다 더한 외로움'을 만나고,

누군가의 마음을 마음을 다해 듣는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책임지는 것보다 무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유성이. 

이 말 많은 시대, 익명 뒤에 숨어 잔인한 한 마디 말로 참으로 쉽게 사람을 해치는 지구의 고등생물 인간에게 

우주가 외치는 가장 시급한 메세지 - '진정한 채널러가 되라'는 전언이 들려오는 듯한 이야기이다. 

 

어느 광고에선가.. 

'못생긴 것이 자연이다' 비슷한 카피가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인간이 만든 아름다움과 가치는 이기적이고, 고압적이고, 기만적일 수 밖에 없다. 

자연을 거스르며 얻고, 지키려 안달하는 껍데기 '모범' '일류' '지존' 따위의 것들에서 눈을 돌려 

나의 눈 속에 있는 우주를 발견하고 '열린 우주'가 되어가는 아이들... 

 

사실, 스스로에게 나는 늘, 평생 '불량'으로 비춰져야 맞는 것이지 않을까?

그래야 발전도 있고, 희망도 있는 것이니까. 

'나는 훌륭하다'라고 자신하는 사람이야말로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삐딱하지만 선하고, 엉뚱하지만 용기있고 지혜로운 아이들을 만나 참으로 행복한 책이었다. 

그 옛날, 이티가 그랬던 것처럼 밤하늘로 손가락을 뻗어 그 마음들과 교신하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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