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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차기만 백만 번 - 제9회 푸른문학상 수상 동화집 ㅣ 작은도서관 36
김리하 지음, 최정인 그림 / 푸른책들 / 2011년 10월
평점 :
"미소, 어쩌면 눈물 한 방울이 있는 영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더 키드>의 수식어이다.
이 동화책을 덮으며 내 머릿속에 떠오른 말......
그렇게, 웃음나면서도 뭉클하고 따뜻하다.
<자전거를 삼킨 엄마>는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화다.
이 엄마, 만만치 않을 것임은 틀림없다.
그런데, 이야깃속 엄마는 내 모습 같기도, 주변의 많은 엄마들 같기도 하다.
작은 경품 하나라도 받으려고 열심히 발품, 손품을 팔고, 특가세일한다고 하면 먼 곳까지도 가서 낑낑거리며 장을 봐 오며,
요즘은 거기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실속을 챙길 수 있을까 자맥질을 멈출 수 없는(인터넷의 바다에서 말이다.)
우리 엄마들.
세상엔 '여자, 남자, 아줌마'라는 세 종류 인간이 있다는 우스갯말이 더이상 실없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줌마'는 '필요'와 '의지'에 의해 '여자'로 존재하기를 거부하고 진화한, 우리의 '엄마'들이다.
그런 엄마에게, 발만 올려놓으면 하늘로 날아갈 듯 예쁜 분홍 자전거가 생겼다.
물론, 산 건 아니다. 경품 1등으로 당첨된 것.
모두들 당연히 엄마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이 자전거를, '0.1(100kg)'이라는 별명을 벗겠다는 의지력으로
온갖 수모를 겪으면서도 기어코 타고야 마는 엄마에게 큰 박수를 쳐 주고 싶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진 뚱뚱한 엄마가 창피해서 모른 척 자리를 피해버린 딸의 마음까지 보듬는 엄마의 품새에는
한 점의 '알뜰함'도 없다.
그저 우리에게, 가족에게 넉넉히 주고 싶어 당신 것은 다-자존심까지도- 사치라 여기시는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손길 한 번으로 날개를 달아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이 엄마의 자전거를 따라가게 된다.
<찍히면 안 돼!>는 덩치며, 체력, 운동감각 그 무엇 하나도 남자애들에게 뒤지지 않는, 어찌 보면 선머슴아이 같은 영서,
그리고...작은 키에 소심하지만 근성만은 인정해 줄 만한 진윤기와의 흥미진진한 대결 이야기다.
영서가 치사한 윤기의 놀림과 괴롭힘을 참아내다, 결국 윤기가 놀림거리로 삼았던 힘을 무기삼아 보기 좋게 승부를 내는
이야기의 마지막은 그 어떤 복수극보다도 통쾌하다.
자기가 놀림받는 건 그렇게 참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은 '진드기'처럼 놀리며 즐거워하는 윤기가 참 미웠다가도,
그 또한 어른들에게서 배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씁쓸해진다.
마지막까지 이기기보다는 오해를 풀려고 애쓰는 영서가 참 이쁘다.
"너, 나한테 딱 찍혔어."라는 말이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어주기를......
영서에게서 윤기가 친구를 믿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마음을 배우길 바래본다.
사실, 내 마음 속 후속작에선 이미 둘이 사이좋은 단짝친구가 되어 있다.
<발차기만 백만번>라는 제목만 보고선, 주인공이 축구선수가 되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었다.
그런데, 기대했던 발차기 장면은 뜻밖의 순간에 엉뚱한 곳에서 펼쳐진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늦은 시간까지 집에 혼자 있던 신혁이가
아랫집에서 들려오는 '밉상'에 '엄친아' 윤재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
분노를 담아 거실벽에, 바닥에 해대는 발차기...
'싸우는 소리보다 더 낯설고 듣기 싫은 웃음소리만 사라진다면 밤새도록 백만 번도 넘게 발차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신혁이의 마음이 참으로 안쓰럽다.
혼자 밥 먹는 게 싫어 주말엔 일부러 늦게 나가 식당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엄마'라는 단어 한 마디에도 상처받아 일부러 더 험하게 행동하고,
손톱 아래 새살이 드러날 정도로 자기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곤 하는 신혁이는
고민 따위는 없는 듯 밝고 바른 윤재가 자기보다 더 큰 아픔을 안고 살아왔다는 것을 알고 놀란다.
그리고, 따뜻하게 손을 내미는 윤재는 늘 부루퉁하던 신혁이의 입가에 미소를 맴돌게 한다.
둘은 이제 혼자 밥을 먹지 않아도 된다.
스스로 "설거지는 내가 할게."하는 신혁이를 보며
'내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은 달라진다.'는 오랜 지혜 하나가 떠올랐다.
그리고, 모든 것이 싫은 그 사람이 결국 나의 가장 좋은 '친굿감'일 수 있다는 즐거운 기대감도.
세 이야기 모두, 바로 우리 옆집에서 일어나고 있을 듯 친근하고,
착한 그 마음들이 전해져와 참 따뜻하다.
속상하고 억울해서 발차기를 백만 번 쯤 날리고 싶을 때, 기억하고 싶은 마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