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쏟으며 '칼에 지다'를 읽은 후 아사다 지로의 팬이 되어버린 나.. 마음이 만드는 환상 속에 귀신마저도 인간적으로 그려내는 아사다 지로는 내겐 늘 하얀 수염이 수북한, 동화에 나오는 옛날 이야기 잘해 주는 다정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다. 갑자기 부는 찬 바람에 스산한 요즘.. 오랫만에 아사다 지로의 책을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바로 집어왔다. '사고루 기담' '사고루'는 모래로 쌓은 높은 누각을 뜻한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 널리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고급 빌딩의 꼭대기 층 공중정원에 모여 자신의 명예를 위해, 또한 하나뿐인 목숨을 위해, 그리고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위해 절대로 발설할 수 없었던 귀중한 체험을 한 사람씩 이야기하는 모임의 이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들은 사람은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하는 규칙대로 다섯 사람의 기괴한 체험담이 펼쳐진다. 한 자루의 일본도를 만들기 위해 신을 불러오는 한맺힌 대장장이의 이야기 한 남자를 평생 쫓는 한 여자의 이야기 사무라이 영화 촬영장에 나타난 막부 시대 사무라이의 혼령 이야기 정원의 일부로 평생을 살아온 정원지기의 이야기 원하지도 뜻하지도 않은 우연으로 야쿠자 계의 전설이 된 사나이 이야기... 각각 너무도 다른 삶을 살아온 다섯 사람의 이야기 속에는 그들의 삶이 녹아 있다. '사고루'에 앉은 위인이라 한다면 위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엔 망설임과 두려움, 어리석음과 욕심이 함께 하기에 그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약하지만 아름다운 인간임을 생각하게 한다. 아사다 지로는 늘 독특한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사람'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 같다. 세상의 어떤 생물보다도 기괴하지만, 그 어떤 인간의 기괴함도 속을 들여다 보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는 듯... 그는 무르고 위험한 '모래 누각'으로 우리를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