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지음 / 아카넷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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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영화감독이 집필한 서적이다. 그렇기에 책이 영화처럼 흘러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대화가 많이 있고, 내용에 유머가 넘친다. 쿠바의 현지풍경과 사람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새로운 날, 새로운 아침을 아바나에서 맞았다고 한다. 쿠바에 가면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 한 새로움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미국의 봉쇄정책에 의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낸 쿠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만큼 순수하고 또 쿠바의 독특한 분위기가 넘친다. 그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면 무척이나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쿠바! 분명히 새로운 느낌을 주지만 낯설고 불편한 면도 있다. 인터넷을 이용하기 힘들고, 스마트폰의 스마트 기능은 상당히 제한된다.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핸드폰에서 스마트한 기능은 없어도 생활하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머리가 더 맑아지고 풍부해질 수도 있다. 저자 역시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하는데, 동감한다. 한때 스마트 기능을 사용하지 않았더니 무척이나 편안했던 적이 있었다.

쿠바에 가면 찾아가야 할 명소들이 무척 많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바로 헤밍웨이의 저택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헤밍웨이의 동상 사진이 책에도 수록되어 있다.

울띠모는 마지막이라는 말이다. 쿠바에서는 기다림의 줄서기가 만연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줄이 우리 방식의 그냥 줄이 아니라고 한다. 줄을 제대로 서지 않고 자유롭게 주변에서 서성이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쿠바 특유의 자유스러움을 보여주는 면이다. 그들은 강요받지 않은 자유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민족 특유의 성격인지도 모르겠다.

쿠바의 행복지수는 얼마일까? 가난하고 못 살고 사회주의 국가이기에 행복지수가 무척이나 낮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쿠바인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롭다. 부탄과 네팔 등의 나라도 국민들이 무척이나 행복해한다. 물질이 행복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쿠바와 쿠바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쿠바 국민이 보여주는 것이 정답은 아니다. 행복의 한 길이고, 한 갈래일 뿐이다. 행복에 오를 수 있는 길은 무수히 많고,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는 개인과 나라의 몫이다.

쿠바의 도처에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서구식의 건물들이 있다. 식민지 시절의 잔재물들이다. 이에 대한 소개와 함께 건축물들도 잔뜩 보여준다.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쿠바바로크라는 독특한 건축양식을 낳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 언뜻 봐서는 서구식 건물과 비슷한데 다른 부분들이 꽤 있다.

쿠바의 혁명가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체 게바라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의 삶과 사상들을 보여주고 있고, 그를 바라보는 쿠바인들의 마음도 소개되어 있다. 동전에 양면이 있듯 체 게바라에 대해서도 호불호가 갈린다.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에 딸라 달라지는 셈이다.

영업은 하지만 주유를 할 수 없는 주유소! 정전으로 인해 주유를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사회적인 기간시설의 노후화와 부족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런 일이 쿠바에서는 나름 흔한 모양이다. 많이 익숙한 쿠바인들에게 기다림의 시간은 매우 주관적이다. 짧게 될 수도 있고, 무한대로 늘어날 수도 있는 시간인 것이다. 쿠바 특유의 느긋함이 또 다시 빛을 발한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벌어졌을 지도 모른다. 이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국민성과 나라 자체가 다른 탓이다.

외부의 시각으로 쿠바를 조명하고 있는데, 동시에 쿠바 내부의 시각으로 보는 부분들도 상당하다. 쿠바의 국민성과 걸어왔던 길들에 대해서 상세하면서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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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마운틴
데이비드 밴 지음, 조영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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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마운틴

 

열한 살 소년의 숲 속의 살인! 그리고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본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톰 아저씨! 살인자와 그를 둘러싼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집요할 정도로 넘쳐나는 설명과 사색적인 부분은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초현실적이다. 초현실이라고 해서 완전히 동떨어진 이계로 가는 것이 아닌 인류가 고민해왔던 상념들이다. 집요하게 이야기하는 내용들을 보면서 친절하지만은 않은 소설이라고 느꼈다. 성선설의 반대개념인 성악설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었다. 소년은 너무나 순진무구하다. 그렇기에 잔인한 짓을 서슴없이 하면서도 그것이 왜 잘못되었는지 깨닫지 못 한다. 인간의 질서를 미처 제대로 인지하지 못 하고 있다고 할까? 살인에 대한 인류가 걸어왔던 길들이 살인에 초점을 맞춰서 펼쳐진다. 종교적인 내용도 있고, 인간 본연의 살인 본능에 대한 탐구 이야기도 상당히 많다.

인간은 투쟁의 종족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싸우고 또 싸워왔고 지금도 싸운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 싸움이 빠진 적인 단 한 번도 없다. 싸울 대상이 없으면 같은 종족인 인류끼리도 총칼을 겨누는 데 있어 주저하지 않는다.

단순히 총을 겨누고 한 발을 쏜 행위에도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살인과 사냥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내용들이 친절하게 혹은 집요하게 펼쳐진다. 하나의 생명을 끊는 행위가 얼마나 무겁고 또 인류의 숙명인지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겠다.

기독교의 표현을 빌리면 인류는 카인의 후예라고 이야기한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원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인류의 DNA에 근본적으로 살육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카인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심정일까? 살인자를 가족으로 둔 죄인의 마음일까?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소년으로 인해 고민한다. 그리고 그 살인행위를 어떻게 뒤덮을지 수없이 많이 생각하고 또 두려워한다. 그리고 함께 있는 톰 아저씨는 공범이면서 또 약간 떨어진 위치에서 그걸 바라본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가족과 타인이라는 위치는 생각하는 자체로 많은 부분이 다를 수밖에 없다.

서사가 유려하고 집요하여 눈에 보일 것만 같다. 바로 눈앞에 있어 손으로 잡을 것처럼 선명하다. 호러소설이라는 느낌일까? 살인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캐고 또 캐다 보니 이렇게 되는 것 같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읽다가 경기를 일으킬 정도이다. 어떻게 보면 마음이 약한 것이 아닌 사회적인 규범에 익숙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살인에 대해서 무조건적으로 나쁘고 안 된다고 못을 박고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본인도 지금 살인에 대한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사유해야 할 일이지 행동으로 옮길 수는 없다.

소년은 살인을 하고 난 뒤 길을 벗어나서 계속 떨어졌다. 인류가 걸어가는 길 위에서 낙오한다는 의미인가? 일탈이다. 결국 살인은 인생을 망가뜨리는 행위다. 그리고 그 행위는 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닌 주변으로 전염된다. 살인자의 가족들 역시 인생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없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살인행위에서 오는 주는 무거운 짐이 삶의 진중한 무게 위에 보태진다.

읽다 보면 강제적으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든다. 워낙 보여주는 바가 많고 생각해야 하는 내용이 많아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전해줄 것 같다. 차후에 시간을 내어 다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그 때는 어떤 느낌이 들까 무척이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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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샤
이찬석 지음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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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샤

 

가감하여 받아들일 부분도 일부 보이기는 하지만 왕따 현실 고발 소설인 셈이다.

책을 읽으면서 무척이나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유를 찾아 날아간 한 소년의 이야기라기에 결말이 좋게 날 줄 예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터무니도 없는 오판이었다. 왕따에 대해 너무 현실적으로 다뤘기에 씁쓸함이 가득 남는다. 사회 고발적인 면이 무척이나 강한 소설이다. 고발을 통해 사회가 정화되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다. 그 노력이 빠른 시일 내에 빛을 발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나부터라도 가정에서 좋은 인성교육을 펼치고, 사회에서 한 손을 거들어야겠다.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의미가 있다. 그저 가볍게 혹은 재미있게 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말과 행동에 조심할 필요가 있다.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현실자각과 반성 등의 이유로 왕따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 이 책은 흥미와 호기심을 멀리 날려 보내고 통렬하게 반성을 촉구하게 만든다. 따돌림이 나쁘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른으로써 은연중에 왕따에 대해 방조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사회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주변과 아이들에게 사랑을 가져야 하겠다. 꿈도 있고,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아직 하고 싶은 게 잔뜩 있는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이 아프거나 극단적인 결심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면죄부를 너무 쉽게 남발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은 이미 왕따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더욱 큰 사태로 비화할까봐서 방관하거나 뒤덮기에 급급하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셈이다. 이런 땜질식 처방으로 인해 우리가 문제들 더욱 크게 만들어버렸다. 이미 사회적인 현상으로 왕따가 대두되고 있기에 채찍과 당근을 번갈아가면서 조화롭게 사용해야 한다. 사회와 어른들의 너무 미숙한 대처로 인해 아이들이 더욱 아파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겠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세계가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주변에서 눈에 불을 켜고 살펴도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부모가 왕따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 경우가 있다. 그리고 손을 쓰려고 해도 그것이 제대로 먹히지 않으면 정말 복장이 터진다.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아 걱정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으로는 빈약해졌다. 다른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생각만 해도 한숨이 푹푹 나온다.

왕따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그리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아프고 슬픈 일인지 잘 보여준다. 너무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기에 마음이 안타깝다. 가해자들은 재미삼아 한 일이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목숨이 위태롭기까지 하다. 가해자를 떠나서 인권을 존중해줘야 한다는 말들이 있는데 이걸 과연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하는가?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럼 주체는 어디로 가는 것이지?

짜샤에서 당하는 주인공과 친구 이야기를 보면 그 실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약간 과장된 측면도 있어 보이지만 크게 현실과 달라 보이지 않는다. 순진한 구석이 있는 아이들이기에 더욱 악한 짓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다. 이미 아이들 세계에서 풀어낼 문제가 아니다. 어른들과 사회의 개입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왕따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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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달고 살아남기 - 제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65
최영희 지음 / 창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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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달고 살아남기

 

완득이처럼 유쾌하다고 해서 바로 읽기고 작정한 책이다. 개성적인 인물들의 등장과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점, 재기 넘치는 전개 부분 등은 완득이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 완득이를 읽을 때처럼 키득키득 웃을 수 있다. 웃음 뒤에는 안타까움이 도사리고 있어서 약간 은 씁쓸하다. 웃음과 아픔이 도사리고 있는 책은 사회적으로 비판하는 구석이 있다.

머리에 꽃 달고 살면 사람들이 어떻게 바라볼까? 예쁘게 볼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이상한 눈빛으로 보지 않을까 싶다. 제목에서 풍기는 바가 의미심장하다. 책은 고등학생 업둥이의 자아 찾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 친부모를 대신해서 그녀를 키워주는 사람은 보통 할머니라고 부르는 나이 대다. 얼마 전에 tv를 보니 늦둥이를 출산하여 참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중년(?) 아주머니 사연을 본 적이 있다. 보통 부모가 아닌 할머니 할아버지 정도로 나이차가 많이 나면 친딸을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경우가 있다는 말이다.

업둥이를 친딸처럼 키워준 강분년은 나이가 무려 일흔여섯이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일흔여섯이면 참으로 많은 나이라고 볼 수 있다. 책에서는 그런 점을 유머스럽게 표현하고 있다. 젖가슴이 배꼽에 닳을락 말락 한다는 표현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다. 그런 강분년이는 무척이나 개성적인 인물이다. 동시에 우리 주변에서 정말로 찾아볼 수 있는 할머니이다.

업둥이 박진아는 자신의 친모일지도 모를 꽃년이에 대해 관심을 드러낸다. 자신의 뿌리를 찾으려고 하는 건 사람인 이상 인지상정이다. 처음에는 꽃년이를 궁금해 하는 이유를 그녀 자신도 몰라 한다. 아니, 감정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 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업둥이로 키워준 부모와 생물학적 친부모를 찾으려고 하는 감정이 어지럽게 뒤엉킨 셈이다.

그녀에게 남자가 꼬인다. 강신우는 그녀와 함께 동네를 떠나려고 한다. 그렇지만 박진아는 개 상놈의 후레자식 강신우에게 대답을 미룬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 박진아가 먼저 제의를 했다는데, 그 이유가 약간 웃기다. 시골마을에서는 집집의 숟가락까지 안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로 그런 경우이다. 그렇지만 소녀에게는 숨기고 싶은 비밀들이 있기 마련이다. 비밀이 들통 났을 때 소녀가 느꼈을 부끄러움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어른들이 볼 때는 대수롭지 않을지 몰라도 아이에게는 큰 치부로 남을 수 있다.

아프게 자랐기 때문일까? 주변을 헤아릴 정도로 박진아는 성숙하다. 자신만 생각하면 무턱대고 떠날 수도 있는데, 키워준 부모를 먼저 생각한다. 말없이 떠난 뒤에 남아있는 자들의 슬픔을 먼저 생각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달아나지 못 한다. 용맹한 그녀는 침묵하지만은 않는다. 비밀리에 하지 않고 대놓고 꽃년이에 대한 추적을 해나간다.

책에는 간간히 욕설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흉악하지 않고 구수한 편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들까? 욕들이 과거에서부터 조상들이 자주 사용해오던 것들이기 때문이 이런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점잖게 내뱉기 위한 욕이라고 할까?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이 든다. 예전에 욕에 관한 서적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내용들이 제대로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다.

제목에서부터 주인공의 특이함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박진아는 정말로 머리에 꽃을 달고 살아간다. 그녀의 정신세계는 광년이, 미친 년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은 인물과 대화하고, 결국에는 자신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미친 사람들 중에서는 곱게 미쳤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가 있다. 그건 개인의 힘이 아니라 주변의 힘인 경우가 많다. 주변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에 의해 미쳤다는 걸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걸 고치기 위해 노력한다.

박진아 역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꽃을 달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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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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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를 보고 난 뒤 이 작품을 읽으면 무척 남다르다. 물론 모르고 봐도 괜찮다. 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 제기하고 있는 사회적인 문제와 미래상, 인간의 존엄과 자유 등에 대해서 크게 접근할 수 없게 된다. 현대와 미래의 위험성을 11가지 주제에 맞춰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험성이 멋진 신세계와 연결된다.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는 앞에서 유토피아를 보여주면서 그 이면에 깔려 있는 부정적인 암흑세계를 이야기한다. 밝은 면을 강조하고 있는 현실에는 지독하게 어두운 면이 함께 도사리고 있다.

멋진 신세계 발표 뒤 27년 뒤에 나온 작품이라 전작의 오류를 수정하는 부분이 있고, 전작의 날카로운 통찰력이 더욱 예리하게 벼려져 있다. 개인적으로 다른 부분들보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 부분의 규제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했다. 강력범죄가 늘어나면서 과거에 비해 자유가 제한되는 경우가 많이 늘어났다. 시민들 역시 이런 부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세뇌(?)라고 해도 통할지 모르겠다.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이야기에 이런 내용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100% 똑같이 통용되느냐는 솔직히 모르겠다. 상황에 따라서 생각이 바뀐다. 우유부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세계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한 번 구르기 시작한 역사의 수레바퀴는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공포스런 현실이 상당히 가까이 다가온 것만 같다.

생명을 다루는 유전자 조작은 벌써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식물들의 유전자 조작이 전부가 아니다. 인간들도 유전자 조작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중국을 비롯한 다수 국가에서 유전자 조작을 연구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공개냐 비공개이냐의 차이일 뿐이다. 자칫하면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는 길이다.

인구과잉, 민주 사회의 선전, 독재 국가의 선전, 세뇌 등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그저 자연스럽게 여기던 것들이었는데 무척이나 위험성을 간직하고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익숙해졌다. 그래서 무덤덤하게 넘어가고는 했던 것 같다. 위험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자체가 너무나도 큰 위기라고 본다.

얻는 것이 있으면 반대로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이것이 진리다. 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류는 편안함을 얻었는데 무엇을 잃어가고 있는가?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 엄청나게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무엇을 얻고 잃어야 하는지 보다 근원적으로 고민해야만 하는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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