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엘리엇 부 지음 / 지식노마드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늘 그렇듯 책 제목은 중요하다. 사람과 만날을 때도 첫인상이 그 사람을 판단하듯

책 제목 또한 얼굴 역할을 하기때문이다. 도발적인 책 제목탓에 이 책은 시선을 붙든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감각적인 제목과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전혀 도발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만든다.

 

이 책의 매력은 독특함에 있다. 제목만 보고서는 어떤 책인지 감이 안왔지만 일단

책장을 넘기자 기발한 책 구성에 매료되었다.

작가는 '수집'을 기록했다고 한다. 마치 찰스 다윈이 5년동안 비글 호로 항해를 하면서

자연공간의 단편들을 수집한 결과를 기록하여 '종의 기원'이라는 위대한 책을

출간했듯이 그도 5년동안 킨들(kindle) 호를 타고 다니면서 인문공간의 단편들을

수집한 것을 책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엔 킨들 호가 뭐지? 하다가 아마존의 전자책

서비스를 의미하는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그가 말하는 인문공간의 단편들이란 셰익스피어와 칸트, 마크 트웨인를 비롯한

인류의 모든 위대한 저자들이 쓴 고전과 영화 등에서 발췌한 인상적인 글귀였다. 그것을 

그가 정한 6가지 주제인 Money, Life, God, Art, Statecraft, Anxiety로 나누어 정리해

놓은 것이 바로 이 책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인 것이다.

 

이 책의 독특한 점이 뭐냐하면 가령 Life 부분에선

'누가 인생이 공평하대? 어디 써 있어?' 라는 시나리오 작가인 윌리엄 골드먼의 말에

이어 '인생이 아무 조건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의무는 없다'는 소설가 마가렛

미첼의 말이 이어지고  SF작가인 레이 브레드버리의 '얻는 법을 배우기 전에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 말이 이어지는 식이다. 

 

“나는 좋은 책은 대게 하나의 독창적인 생각이 있고, 대부분은 한 문장으로 표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라는 작가의 말처럼 각각의 사람들이 한 말을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장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사실 읽다보니 어떤

부분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못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들을 적절하게 전해주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도록

수만권을 들춰보고 들춰본 그의 인내와 끈기에 내용을 떠나서 감탄을 하면서 읽었다.

여기에 인용된 사람들만 해도 272명(그 중엔 작가의 딸인 민희도 포함되어 있다.)이고

700여개의 글귀가 인용되었다고 하니 작가가 그동안 읽은 책들이 얼마나 방대한지

미루어 짐작이 된다.

 

그 밖에도 작가는 또 하나의 독특한 구성으로 책을 꾸몄는데 마치 위대한 인물들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듯한 특이한 방식이다.

 

세상은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세상?

다섯 살짜리 우리 딸도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  - 엘리엇 부

 

 

지혜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모든 책들은 잠자는 폐품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에 지칠 때, 짜증, 교만, 꼼수 따윈 없는 죽은 이들을 벗 삼아라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죽은 자와의 대화가 더 가치 있는 순간이 있다. - 엘리엇 부

 

 

책에는 도덕적 구분이 없다.

잘 쓴 책과 못 쓴 책 만이 존재할 뿐.  - 오스카 와일드

 

자기는 항상 잘 써!   - 엘리엇 부

 

우리가 흔히 명언이라 일컫는 말을 듣다보면 한번쯤은 반박하고 싶을 때도 있고

공감할때도 있다. 그렇게 구시렁 거리던 것들을 작가는 과감하게 수면 위로 끌어내어

거침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보인다. 가벼운 말장난같은 것들도 있지만 다른 사고,

의외의 통찰력을 살펴볼 수 있는 뼈 있는 말들도 있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자살을 할까, 커피나 한 잔 할까? 라는 알베르 카뮈말엔

뭐라고 대답했을까?

그 커피숍이 어딘지 좀 알려주삼 - 엘리엇 부

 
이런 독특한 구성이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지만 ,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유로 
가득찬 작품을 쓴다면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올 것 같다. G.K.체스터튼 말처럼
멋진 책은 다 읽은 후에 작가가 엄청 친한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것
같다. 벌써 다른 작품이 기대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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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갯벌
오준규 지음 / 계간문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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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년 전에 가족들과 함께 강화도로 갯벌체험행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갯벌에 살고있는

게와 조개를 맘껏 볼 수 있다는 말에 신이 난 아이와 함께 강화도에 도착하니 행사를

주체한 환경운동연합에서는 조개등을 채취하는 체험이 아니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것이 목적이라며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잠시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살아 있는

갯벌 생물을 장난감으로 여기고 생명이 사는 갯벌을 놀이터로 여기는 기존의 체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조개를 채취하는 대신 수건으로 눈을 가리고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한줄로 이동하면서 맨발로 갯벌의 감촉을 느껴보는 갯벌 느끼기 체험을

시작했다.

갯벌 생물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조심 내딛으며 맨발에 느껴지는 말랑말랑한 갯벌의

감촉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듯했다. 갯벌이 살아있음을, 그 속에

깊이 숨어있던 무수한 생물들이 꿈틀거리고 있음을 그처럼 적나라하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갯벌이 수많은 생명체가 살고 있는 생명의 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뜻깊은 경험이였다.

 

그런데 그런 갯벌이 사라지고 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평택항, 여수 율촌산업단지

등의 건설로 이미 대규모 갯벌이 사라졌다.

오준규 작가는 새만금 개발사업으로 사라져 버릴 또 하나의 거대한 갯벌에 주목했다.

그래서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서서히 죽어가는 서해 갯벌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오만한 인간의 행동이 빚어내는 불행의 기록을 한컷 한 컷 담아 사진집을 낸 것이다.

총 6장으로 나뉘여 있는 이 사진집은 제목만 봐도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들을

고스란히 유추할 수 있다.

1.사람들이 떠난 적막한 바다는

2.아름다웠던 갯벌의 빛깔은 서서히 제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3.자연의 황폐함은 인간의 황폐함과 직결된다.

4.남겨진 것들

5.몸을 낮추고 보니

6.버릴 수 없었던 삶의 터전

 

갯벌은 어민들의 생계터전이다.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해 생계를 이어가고 갯벌을 벗삼아

살았던 어촌의 풍경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어민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고 있다.

 

 

 

한창 개발중인 새만금. 이제 이 곳은 갯벌이 아닌 거대한 인간의 문화가 세워질거라고

작가는 말한다. 한번 사라진 갯벌은 다시 만들어지는데 수백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조망해야 할텐데

걱정이다.

 

 

 

 

아름다웠던 갯벌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갯벌은 싱싱한 조개를 토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모두 입을 벌이고 생명을 잃어버린 모습들 뿐이다.  갯벌과 함께 수많은 생물이 사라져

버렸다. 한번 사라진 생물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자연과 공존해야 하는 사람도 

사라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갯벌의 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을까? 아니 또 어떤 풍경들이 사라져 갈 것인가?

언제까지 개발을 앞세워 환경을 희생시킬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갯벌은 우리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원인데 이제 아이와 손잡고 갯벌을 걸어가는

모습은 영영 다시할 수 없는 추억의 산물이 될지도 모른다.

 

 

좋은 사진이란 이런 것인가 보다. 구구절절 설명이 없어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단박에 알아챌 수 있기 때문이다.  환경에 귀 기울이라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사진마다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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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살기 5년차 혼자살기 시리즈 1
다카기 나오코 글.그림, 박솔 & 백혜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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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대엔 누구나 한번쯤은 독립을 꿈꿀것이다. 그 꿈을 실현한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여전히 꿈으로만 간직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나만의 공간과 생활을 꿈꾸었지만

결국은 혼자살기를 이루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은 화려한(?) 독립에 대한 갈망을 풀어줄 거라는 희망에 차서 읽기 시작했다.

 

일단 이 책은 유쾌하다. 도쿄에서 혼자 살아가는 30대 여성의 사소하고 아기자기한

생활이 재기발랄한 그림과 맛깔스런 글로 혼자살기의 즐거움을 보여준다.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목욕을 할 수있고, 마음대로 사람을 초대할 수도 있고, 낮잠을

방해 받을 일도 없고, 큰소리로 콧노래를 맘껏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실컷 울기도 하는 등 어쩌면 별거 아닌것 같은 작은 일에 기뻐하며

화려하지도 않고 거창하지만 않지만 자유로운 혼자살기의 즐거움을 전한다.

 

또한 혼자살기 5년차의 경험으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실질적인 노하우도 가득들어있다.

밥을 지을 때 한 번에 많이 해서 냉동실에 저금해 놓고 먹는 방법이나, 혼자 먹는 끼니를

행복하게 챙기는 요령들과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50엔짜리 동전을 모으는

돼지저금통을 키워나가는 것 등 혼자살기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팁들도 매력적이다.

 

혼자살든 결혼생활을 해서 가족과 살든 생활인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인지

공감가는 부분도 많다.

가령 식사 메뉴를 고를 때는 그날 싸게 살 수 있는 재료로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가

기본이라는 것과 각 슈퍼들이 반값세일하는 시간을 모조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과

반값스티커가 붙어있는 물건은 봉투 안쪽에 담는 다는 소심하고도 생생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바게트 빵을 사고 나왔을 때 멋쟁이 파리지앵이 된 것 같다는 부분에선 완전

공감되면서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바게트빵을 사면 일부러 자르지 않고 시장바구니에

삐죽히 나오게 하고 이런 날은 터벅터벅 거리며 다닐게 아니라 플레어스커트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야 하는데 하며 구시렁거리는 내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살기를 철저히 즐기는 모습에 부러움을 품다가도 가끔은 쓸쓸한, 그런

'혼자살기 5년차' 이야기엔 괜시리 울적해지기도 했다.

열심히 요리를 만들어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못하고 누구에게 칭찬받을 일도 없이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한다거나, 집에 가도 깜깜하고 아무도 없다는 외로움,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경우 등 그 중에서도 아플때에도 바로 누울 것이

아니라 미리 슈퍼에 가서 장을 봐야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 둔 뒤 누워야 하는

`드러눕기 준비`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엔 혼자 산다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님을

핑크빛 로망을 꿈꾸던 나에게 현실의 냉혹함을 일깨워주었다. 

스스로 먹을 죽을 끓여야 하는 서글픔, 누군가 옆에 있어줬으면 하는 것들은 혼자살아보지

않으면 겪어보지 못할 일들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어려움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면서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강해져 가는

작가의 변화된 모습은 무척 사랑스럽다. 일본도 그렇지만 우리나라도 여자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만만한 사회가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꼭 호화롭고 근사하게 꾸며야만 혼자 살기의 달인이 되는 것은 아닐것이다. 설령 특별한

것이 없더라도 오롯이 자기만의 공간을 영위하면서 씩씩하게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은

혼자살기를 꿈꾸는 이들에게 좌충우돌할 어려움에 대한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작가의 책들을 검색해보니 혼자살기 5년차의 후속작으로 혼자살기 9년차의 책도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나와있었다. 혼자살기 1년차와 5년차의 변화된 모습 비교도 

즐거웠는데 달인의 경지에 오른 9년차의 모습은 어떨지 무척 궁금하다.

물론 여전히 소소한 하루하루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독립을 꿈꾸는 여성들을 위해 알토란

같은 즐거움을 전해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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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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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로 대부분 기억하겠지만 나에게는

<처음처럼>이라는 소주의 서체로 더 익숙하다. 내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사실 술은 입에도 안 댄다.) 집 근처 가게에 크게 붙어있는 소주광고때문이다.

길을 오가며 한번씩 쳐다볼때마다 처음처럼의 굵직한 서체는 왠지 처음을 잊지 말라는

초심의 메세지를 주는 듯해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언제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깊은 성찰를 느낄 수 있는 그의 책에 실망을

한 적이 없는지라 새로운 책을 발견하게 되자 기쁘게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변방을 찾아서>는 신영복 교수가 자신이 쓴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가 그 글씨를 쓰게된

연유와 의미,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글씨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해남 땅끝마을의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강릉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충북 제천에

있는 박달재, 충북 괴산에 위치한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오대산 상원사,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와 김개남 장군 추모비, 서예전에 출품했던  <서울>이 걸려 있는

서울특별시 시장실,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석이 있는 경남 봉하마을등 모두

8곳이다.

 

그의 글씨들이 대체로 변방에 있다보니 제목도 자연스럽게 <변방을 찾아서>가

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해남의 땅끝마을이었는데, 서울공화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땅끝이고, 낙후해가는 농촌이며, 시골초등학교 그것도 분교인 변방인

것이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이 있는 강릉은 어떤가? 조선시대에도 변방이었지만,

강릉의 중심은 이율곡과 신사임당이 있는 오죽헌이다. 대궐같이 성역화되어 있는

오죽헌에 비해 그곳은 변방인 것이다. 벽초 홍명희 문학비도 먹빛이 바래고 빗물에

씻기어 읽기 어려울 정도로 잊혀진 비이며, 반공, 반북 논리속에 월북한 홍명희도

설 자리가 없는 변방이다.

 

하지만 그는 변방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 변방을 단순히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변방을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으로 바라본다.

중심부가 아니라 변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이라고 말한다.

 

사실 박물관가든지 기념관을 가든지 현판을 자세히 보지는 않는다. 특이하거나 인상적인

경우에는 눈길을 끌지만 그것도 글씨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경우고, 그 글씨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글씨라는 것이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고민을

담기도 하고 글씨를 쓴 사람의 사상과 생각이 다 담겨져 나온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기 나와있는 글씨가 다 특별한 글씨이고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 이라는 작품은 디자인과 문화가 어울려졌을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의미가 가장

인상적이였다.

 

한글은 한자와 달라서 상형문자가 아니고 기호문자라 형상화하기 쉽지 않음에도 

서울이라는 글자를 북악과 한강으로 형상화하기로 마음먹고  '서'자를 산처럼, '울'자를

강물처럼 형상화했다고 한다.

 

 

글씨를 보다보니 정말 산에 올라가서 한강이 흐르는 서울을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호에 불과한 서울이라는 글자로 이렇게 완벽하게 서울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옆에 시 한 구절을 지었다.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가 그것이다.

북악은 왕조를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를 상징하며 북악은 5천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700리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울을 북악과 한강으로 표현한 것도 놀랍지만 북악과 한강을 다시 왕조 권력과 민초의

애환으로 대비하며 조선시대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글씨로 나타냈다는 것에

감탄이 나온다.

 또한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다. 나는 서울시청이 북악이기보다는 한강수이기를

바란다”는 부분에선 저 낮은 곳에서부터의 무언가가 울컥거렸다. 민초들의 애환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서이다. <변방을 찾아서>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소통과 공감,화해가

그 속에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을 자기에게 맞춘다는 의미가 세상을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면 글자 그대로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이처럼

우직한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조금씩 새롭게 바뀌어 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허균,허난설헌이 그랬고 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사람이다. 모두 변방의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변방이 어떻게 창조의 공간이 되고 희망이 되는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참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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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의 시대 - 강준만이 전하는 대한민국 멘토들의 이야기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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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책 제목대로 멘토의 시대다. 텔레비전을 켜면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으례

멘토가 나오고, 신문을 보면 대학생 멘토가 전해주는 공부의 비법같은 노하우가 즐비하다.

인터뷰 기사를 보면 당연한 듯이 당신의 멘토는 누구냐 라는 질문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책 제목도 멘토가 들어가는 책들이 넘실거린다. 

기원전 그리스 사람인 멘토르에서 따온 멘토라는 이름은 '스승'이라는 말대신 더 많이

쓰이게 되고 왠지 더 있어 보인다.

 

사실 멘토들이 하는 말은 위로나 공감, 원론적인 수준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임에도

그것에 위안받고 상처가 아무는 것을 보면 멘토링이 거창한 개혁같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작년에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때 '아니 이 정도의 위로와 말에 청춘들이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나'라고 청춘의

나약함에 대해 삐딱한 시선으로 봤는데 그야말로 "그까짓 위로로 무엇이 달라지느냐'라고

폄하할 문제가 아니었다.

 

강준만 교수도 그 점에 주목했다. 고민과 좌절과 상처로 마음의 출발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면, 위로는 그 어떤 사회과학적 메시지보다 더 값진 것일 수 있음은

간파하였다.

그래서 희망이 위로가 되고 위로가 희망이 되는 시대에 대표적인 멘토 12명을 꼽아 그들이

던지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살펴보고 왜 이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멘토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탐색했다.

 

또한 멘토에 대한 유형 분류를 시도하였는데, 이를테면 안철수는 선망형 멘토로,인격,

품위형 멘토로는 문재인을, 순교자형 멘토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김어준은 교주형 멘토로

분류하였다.

 

모든 분들이 나름대로 내 관심을 끌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찾아서 읽어본

멘토는 박원순 시장님 부분이었다.

텔레비전을 틀면 나오는 부정부패와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 치솟은 물가 등 짜증나는

기사들이 넘치는 요즘에 유일하게 살맛나는 이야기를 던져주는 분이기 때문이다.

 

선해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불도우저처럼 강력하게 밀어부쳐서 해 나가는 서울시정

활동은 사회정의에 갈증을 느껴온 나에게 벅찬 감동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온라인으로 시장취임식을 하는 신선한 충격을 주며 시작한 시장직의 면면를 보면 말만

앞세우고 이미지 관리에만 주력한 전직 시장들과는 질적으로 다름이 느껴지며 철저하게

실천을 앞세우는 모습에 진정성이 느껴지는 분이다.

강준만 교수도 역할 모델이 예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을 희생하며

강한 신념과 열정으로 시민운동가의 길을 간 삶의 모습때문에 순교자형 멘토로

규정하였다.

 

12명의 멘토들에게 각각의 일정분량을 할애했지만 저자의 의도를 보면 아무래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호감을 느낄 수 있다. 12명 중에서 1번으로 꼽은

것도 그렇고 분량도 꽤 많다. 12명 모두에게 비판적인 시각보다는 저자가 서문에

밝힌바대로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분위기이지만 안 원장에 대해서는 특히 그렇다.

나 또한 안 원장에 대한 호감도가 높기 때문에 (오죽하면 아들의 선생님으로 안 원장이

나오는 꿈까지 꾸었겠는가^^)저자의 시각에 공감하였다.

지긋지긋한 이념 논쟁에서 벗어나 안 원장이 "제가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면서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라고 말했을때 정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특정 이념이나

노선을 지지하면 모든 문제를 일관된 성향을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 관습에 한방을

먹인 것이다. 강준만도 안철수를 두고 좌우니 진보-보수니 하고 따지는 건 무의미하고

그런 구분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거라 못 박는다.

 

그가 꼽은 안철수의 매력으로 <무릎팍 도사>와 청춘 콘서트 등 엔터테인먼트 코드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신세대라는 점이였는데 이런 재미를 주는 멘토링서비스를

정당에도 적용하자는 흥미로운 제안을 마지막으로 던진다.

10대들이 교회를 재미있으니까 간 것 처럼 정당도 재미를 주는 각종 멘토링 서비스를

통해 대중을 유인하면 정치가 혐오와 저주의 대상에서 민생의 한복판에 들어서게 하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근거로 이 책에서 다룬 멘토들이

멘티들에게 재미를 주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든다.

정치를 살리지 않으면 모든 멘토링은 위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말에 공감하기

때문에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제안이지만 곰곰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방법인 듯 하다.

나꼼수가 정치의 대중화를 이룩한 것도 결국 정치에 재미를 추구한 것이니 말이다.

 

나꼼수에 대한 호불호가 있겠지만 정치적으로 김어준을 판단하기 이전에 그는 인생

상담을 해온 진짜 전문 멘토임을 사람들이 알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쓴

<건투를 빈다>나 라디오 방송 <색다른 상담소>같은 것은 인생상담이 주제고 탁월한

멘토링으로 매우 알찬 내용을 보여주었다. 나도 먼저 자신에 대한 공부부터 해야하며

자신을 객관화하라는 말에 많은 도움을 얻기도 했다. 저자도 김어준에 대해 편견없이

바라보는 것같아 왠지 기분이 좋다. 다른 멘토들의 말도 새겨들어야 할 말들뿐이지만

김어준편은 꼭 읽어 보았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김어준이 주장하는 명랑사회 구현은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명랑

사회란 모든 국민들이 즐겁게 웃으며 명랑하게 생활할 수 있는 멋진 사회다.

나는 우리나라가 넙대대한 포용력의 나라였으면 정말 좋겠다는 그의 말이 좋다. 내가

동조하지 않는 것도 그 존재를 인정하고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사회.

나도 그처럼 명랑사회인 그런 대한민국을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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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자집 2012-06-1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