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을 찾아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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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저자로 대부분 기억하겠지만 나에게는

<처음처럼>이라는 소주의 서체로 더 익숙하다. 내가 술을 좋아해서 그런것이 아니라

(사실 술은 입에도 안 댄다.) 집 근처 가게에 크게 붙어있는 소주광고때문이다.

길을 오가며 한번씩 쳐다볼때마다 처음처럼의 굵직한 서체는 왠지 처음을 잊지 말라는

초심의 메세지를 주는 듯해 마음과 자세를 가다듬게 된다.

 

언제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깊은 성찰를 느낄 수 있는 그의 책에 실망을

한 적이 없는지라 새로운 책을 발견하게 되자 기쁘게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변방을 찾아서>는 신영복 교수가 자신이 쓴 글씨가 있는 곳을 찾아가 그 글씨를 쓰게된

연유와 의미, 인연을 맺은 사람들과 글씨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낸 책이다.

해남 땅끝마을의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강릉의 허균.허난설헌 기념관, 충북 제천에

있는 박달재, 충북 괴산에 위치한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오대산 상원사,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비와 김개남 장군 추모비, 서예전에 출품했던  <서울>이 걸려 있는

서울특별시 시장실, 그리고 고 노무현 대통령의 묘석이 있는 경남 봉하마을등 모두

8곳이다.

 

그의 글씨들이 대체로 변방에 있다보니 제목도 자연스럽게 <변방을 찾아서>가

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해남의 땅끝마을이었는데, 서울공화국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땅끝이고, 낙후해가는 농촌이며, 시골초등학교 그것도 분교인 변방인

것이다.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이 있는 강릉은 어떤가? 조선시대에도 변방이었지만,

강릉의 중심은 이율곡과 신사임당이 있는 오죽헌이다. 대궐같이 성역화되어 있는

오죽헌에 비해 그곳은 변방인 것이다. 벽초 홍명희 문학비도 먹빛이 바래고 빗물에

씻기어 읽기 어려울 정도로 잊혀진 비이며, 반공, 반북 논리속에 월북한 홍명희도

설 자리가 없는 변방이다.

 

하지만 그는 변방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 변방을 단순히 공간적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변방을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으로 바라본다.

중심부가 아니라 변방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은 것이다.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이라고 말한다.

 

사실 박물관가든지 기념관을 가든지 현판을 자세히 보지는 않는다. 특이하거나 인상적인

경우에는 눈길을 끌지만 그것도 글씨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경우고, 그 글씨가 주는 의미에

대해서 따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글씨라는 것이 그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고민을

담기도 하고 글씨를 쓴 사람의 사상과 생각이 다 담겨져 나온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기 나와있는 글씨가 다 특별한 글씨이고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서울> 이라는 작품은 디자인과 문화가 어울려졌을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의미가 가장

인상적이였다.

 

한글은 한자와 달라서 상형문자가 아니고 기호문자라 형상화하기 쉽지 않음에도 

서울이라는 글자를 북악과 한강으로 형상화하기로 마음먹고  '서'자를 산처럼, '울'자를

강물처럼 형상화했다고 한다.

 

 

글씨를 보다보니 정말 산에 올라가서 한강이 흐르는 서울을 내려다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기호에 불과한 서울이라는 글자로 이렇게 완벽하게 서울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옆에 시 한 구절을 지었다.

 “북악무심오천년(北岳無心五千年) 한수유정칠백리(漢水有情七百里)”가 그것이다.

북악은 왕조를 상징하고 한수는 민초를 상징하며 북악은 5천년 동안 백성들의 고통에

무심하였지만 한수는 민초들의 애환을 싣고 700리 유정하게 흐르고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울을 북악과 한강으로 표현한 것도 놀랍지만 북악과 한강을 다시 왕조 권력과 민초의

애환으로 대비하며 조선시대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글씨로 나타냈다는 것에

감탄이 나온다.

 또한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다. 나는 서울시청이 북악이기보다는 한강수이기를

바란다”는 부분에선 저 낮은 곳에서부터의 무언가가 울컥거렸다. 민초들의 애환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서이다. <변방을 찾아서>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소통과 공감,화해가

그 속에 다 담겨져 있는 것이다.

 

세상에는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에 자기를 잘 맞추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을 자기에게 맞춘다는 의미가 세상을

인간적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이라면 글자 그대로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이처럼

우직한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은 조금씩 새롭게 바뀌어 왔다고 한다.

조선시대 허균,허난설헌이 그랬고 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사람이다. 모두 변방의

사람들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변방이 어떻게 창조의 공간이 되고 희망이 되는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참 많은 생각을 안겨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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