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악마 ㅣ 이삭줍기 환상문학 5
자크 카조트 지음, 최애영 옮김 / 열림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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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왕립 근위대 대위로 근무 중인 스물다섯 살 청년 알바로는 어느날 고참 동료 소베라노의 강신술을 목격하고 호기심이 발동한다. 마술적 지식을 얻기 위해 포르티치 동굴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이겨내야하는 단계를 거친 후 악마와 대면하고, 마침내 그와의 거래를 성사시킨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소베르노와 그의 동료들까지 환대해 향연을 벌이는데, 이때 시동으로 등장하는, 성별을 구별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비온데타가 알바로의 곁을 지키며 시중을 든다. 알바로는 자신의 임무를 뒤로 한 채 여행을 다니던 어느날, 자객들로부터 칼을 맞고 회복된 후 스스로 여성임을 밝인 비온데타와 사랑에 빠진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순간부터 비온데타의 애절하고 호소력 넘치는 유혹이 시작된다. 육체적 욕망과 향락, 부와 권력, 연금술을 동원한 마술적 지식. 존중과 존경 따위는 치워버리고 오로지 나만 바라보라고, 나만 탐하라고 협박을 가득 담아 사랑을 애걸하는 비온데타의 유혹을, 알바로는 철벽을 치며 막아내고 있지만 점점 한계에 부딪친다. 문제는 비온데타의 말이 너무나 타당하다는 데에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빌미를 제공하는 것은 언제나 인간 본인이다. 알바로가 소베르노의 강신술을 보고 욕망했던 것은 원대한 지식도, 이성적 과학도 아닌 마술적 지식과 능력이었다. 이 자체가 악마에게 유혹을 하도록 만든 원인이 된다. 소베르노는 악마의 공포를 체험하게 함으로써 알바로에게 혼령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려는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더 부추기는 셈이 된다. 그런데 애초에 소베르노가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지 않았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이런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소베르노가 알바로에게 전하는 경고는 순수한 조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면에는 예상치 못했던 기개 발휘한 알바로에 대한 질투와 시기가 없다고 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소설의 시작부터 알바로가 당하는 유혹은 우리 주변에 넘쳐난다. 육체적 욕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물질과 권력의 욕구, 과정보다는 결과를 우선하는 승부에 대한 집착, 타인을 향한 근거없는 의심과 투기.  
  

"케 부오이 Che vuoi?"
무엇을 원하는가?


악마가 알바로 앞에 나타나 묻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인간이 스스로한테 묻는 질문일 것이다. 비온데타의 유혹에 철벽을 치는 알바로가 수시로 흔들리는 까닭은 그의 말이 지극이 온당하기 때문이다(악마의 얼굴이 두 가지로 설정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일 터다). 설득력있는 비온데타의 말에 넘어가다가도 그동안 옳다고 여기며 지켜왔던 사회적 관념과 도덕성으로 버티는 알바로의 모습은 경계에서 위태롭게 매 순간을 지나오는 우리의 모습이다.


작가의 마지막 장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친듯 돌아가는 이 세상은 실제인가, 환상인가. 만약 우리가 행복해지기만 한다면 무엇을 취하든 상관이 없는 걸까.


여력이 될 때마다 챙겨 읽는 환상문학. 유럽, 남미, 아시아의 환상문학은 조금씩 다른 묘미가 있다. 남미가 에로틱하고 아름답다면 아시아는 종교나 신화적 요소가 강하다는 느낌이고, 유럽은 과학을 바탕으로 유니크하다. <모팽 양>에 이어서 읽는 프랑스 환상문학인 이 작품은 연금술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면서 인간의 탐욕을 얘기하고 있는데, 악마의 이중적 얼굴은 결국 인간의 이중성을 빗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143.
우리의 적은 인간들이 서로를 타락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계략들을 차용함으로써 그 공격 방법에 있어 놀랍게도 교묘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그는 자연을 충실하게 그리고 선택적으로 복제합니다. 그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 만한 재능들을 동원하고, 아주 꾀바르게 계획된 축제를 열고는, 열정으로 하여금 가장 유혹적인 언어를 말하도록 하지요.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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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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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나는 내가 사랑한 유일한 것을 내 인생에서 자꾸만 몰아내고 있었다. 사랑은 오래도록 변치 않는 것인 척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했다. 심지어 나라는 사람은 함께 살기 좋은 사람이고 따라서사랑도 변치 않을 것처럼 나 자신을 속였던 것 같다. 그러나 사랑이 죽어야 한다면 빨리 죽기를 바랐다. 우리의 사랑은 덫에 걸려서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조그만 짐승과도 같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그 목을 비틀어야만 했다. 
 

 
이전 작품에서도 느꼈던 바지만, 나는 이 작가의 문체가 좋다. 건조하지만 건조하지 않게 전달하는 문장들을 하나하나 주의 깊게 읽도록 하는 힘, 군더더기 없는 문장, 그 적당한 무게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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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민승남 옮김 / 엘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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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화자인 조지의 회고로 서술되는 소설은 앤과 조지, 그리고 조지의 동생 솔랜지를 중심으로 1968년부터 1990년대까지 약 30여년의 세월을 이야기한다.  









이 소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은 조지와 앤이 학교를 떠난 이후다. 조지가 비교적 일반적으로 떠올려지는 당시 여성들의 삶을 살아갔다면, 앤의 삶은 예상치 못한 급진적인 변화를 맞는다. 20여년간 재소자 신분으로 살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절대 놓지 않았던 앤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더구나 시대가 바뀜으로써 앤이 추구했던 혁명과 진보는 퇴색하고 오히려 앤 본인이 그토록 경멸했던 자신의 출신 때문에 그의 소신과 진정성까지 폄훼되는 상황에서도, 그는 바뀌지 않았다. 그야말로 앤의 무구한 이상을 곡해없이 바라본 이가 바로 다수의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는 조지다.  


법정에서 정신과 의사는, 앤의 물질적.정서적으로 유복했던 어린시절에서 결여된 것은 삶의 잔혹성이나 인간에 대한 인간의 무자비함에 직면했을 때 그것에 대처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얘기한다. 조숙한 감수성을 가진 청소년기의 앤에게 전 세계에서 저질러지는 죄악들, 역사적으로 이어져 온 죄악들은 선택받은 자로서 갖는 자기혐오와 자신이 속한 계층에 대한 증오라는 것. 판사는 앤이 응석받이로 자라 자신의 판타지 속 세상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사람을 경멸하고 증오하는 무지하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꾸짖는다. 그러면서 판사는 앤에게 '당신 부류의 마지막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데, 이 말을 앤의 변호사는 그가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일 수도 있다'고 달리 말한다. 판사가 말한 마지막 존재와 변호사가 말한 마지막 존재의 의미는 각각 무엇일까.


조지는, 앤을 소설 중반에서는 '시몬 베유'와, 마지막 부분에서는 '개츠비'에 비유한다. 앤의 삶의 결이 시몬 베유와 아주 유사함은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개츠비일까. 어쩌면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무한한 사랑과 열정, 이상이 차별받는 계층을 향한 조지의 신념과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7부]의 화자로 등장하는 동료 재소자는 앤의 면전에서 그가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다. 앤은 꼭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그 누군가는 대개 자기 자신이었다며 그가 보기에 앤은 자신을 죽이고 있었고, 그에겐 그것이 최악의 이기심으로 여겨졌다는 말과 함께 앤이 증명하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 내 생각으로는, 앤은 증명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저 삶을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냈을 뿐이다.  


소설은 [5부]와 [7부]를 제외하고 모두 조지가 화자가 되어 1인칭으로 서술한다. 5부에서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뀌는데, 3인칭이지만 조지가 관찰자 역할을 함으로써 자신을 타자화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앤이 가장 증오하고 분노하는 특권층 세상 한가운데에 자리한 조지는 처음에는 이 윤택한 생활과 다정한 부모를 버린 앤을 납득하지 못하지만, 앤조차도 몰랐던 이면들을 터너와의 대화를 통해서 알아가며 앤을 향한 더 큰 이해와 연민을 갖게 된다. 이는 조지가 살면서 경험해보지 못했던 앤의 유년 시절ㅡ다정한 아버지(연인), 경제적.문화적으로 풍요로운 생활, 자신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존재ㅡ을 잠시나마 체험하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이로써 앤의 삶을 면밀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7부]는 짧지만 앤의 수감 생활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동료 재소자의 1인칭 서술로 진행한다. 이는 앤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인물이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성을 갖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ㅡ


두 여성의 삶과 생각에 한발자국 더 들어가 보자.  


학교를 중퇴하고 여성 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한 조지는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간다. 일보다는 육아를 우선하고, 남편과 공동 대표로 있으면서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 행복감을 느낀다. 조지의 주변 여성들은 전업주부일 때 혹은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우선하는 그를 경멸했다. 그는 다른 여성들처럼 육아에 매달릴 때 왜 갇혀 사는 기분을 느끼지 못하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다만 본능적으로 아이들이 우선이었다. 전업주부로서 사는 조지를 납득하지 못하고, 왜 어머니 세대의 삶과 똑같은 삶을 살려고 하는지 의아해 하는 동시대 여성들.


우리는 간혹 성평등을 외치는 와중에 육아와 살림을 폄하하는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아이를 키우고 교육시키는 일은 가치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다. 다만 황금물질주의 시대에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육아=경제적 무능으로 치부되고 있다. 누가 할 일인지보다 누구든 반드시 해야할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앤이 콰메에게 복종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오히려 조지가 의문을 품는 모습은 우리가 짚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ㅡ 
 


앤은 학교를 떠난 후 한때 흑인 급진주의자였으나 평범한 교사로 일하는 할렘 출신 남자 콰메와 사랑에 빠진다. 콰메는 안정된 가정을 원했고, 앤의 생활 방식이 바뀌기를 바랐으며, 순종적인 아내를 요구했다. 그가 흑인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전통적으로 떠올려지는 남성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러한 앤의 태도는 아버지 터너에게 쏟아내는 비난에서도 나타난다. 어머니가 타락한 부르주아의 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어머니를 휘어잡아 교육시키지 않는 아버지의 방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앤은 왜 남녀의 불평등은 당연하게 여겼을까. 소설에서도 앤이 여성을 친구나 동료로 여기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저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로 여길 뿐(물론 콰메가 백인이었다면 앤은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라는 가정도 생각해볼만 하다). 인종 평등을 외치며 성평등은 외면했던 앤의 모순.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집단을 이루며 각자의 입장에서 평등을 외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소수자에 대한 평등을 외면하는 우리의 모습은 앤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그의 모순과 닿아있다. 
 

앤은 부모가 돈 때무에 결혼을 했다고 여겼고, 부모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돈과 피부색으로 결정된 특권층을 본인이 정해놓은 규격화된 모델 틀 안에 우겨넣은 셈이다. 돈 많은 백인에게는 진정한 사랑도, 인류애도,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백인과 부자의 특권에 수치심을 느꼈고, 계층적 죄책감은 그를 끊임없이 흔들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앤의 외골수적인 우직함이 그녀의 삶을 결정지었던 것 같다. 앤이 아버지 터너와 대화하는 데에 시간을 조금만 할애했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튼, 특권층으로서 갖는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극단적인 삶을 살았던 그의 삶은 참으로 고단했다. 비극적이되 불행하지는 않은 사람, 앤이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이 입체적인 인물을 어떻게 납득하고 이해해야할지 고민스러워 완독까지 예상보다 시간이 더 소요됐다. 스스로를 몰아붙이며 치열하게 살았을 앤이 단지 소설 속 인물에서만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전에 이미 세상과의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 수많은 '앤'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그들의 안온한 삶을 기원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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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종말
그레이엄 그린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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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1월, 비오는 캄캄한 밤에 우산도 없이 공원에서 서성이는 헨리와 1년 6개월만에 재회한 모리스 벤드릭스. 아내 세라의 부정을 의심하는 헨리는 사설탐정을 고용하기 위해 알아보는 중인데, 이러한 의심과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감정과 사설탐정을 만나보고 싶다는 감정이 뒤섞여 갈등하는 순간에 우연히 옛친구 모리스를 만나 상의하게 된 것이었다. 과거 세라와 모리스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모리스는 자신이 세라의 연인 행세를 하고 사설탐정을 만나보겠다는 제안을 한다. 모리스의 속내를 알지 못하는 헨리는 그저 그가 고마울 따름이다. 결국 헨리는 아내를 의심하고 염탐하는 덫에 걸린다. 심지어 모리스가 좋은 친구라고 여기면서.  




질투와 증오는 사랑을 부채질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개인적으로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만). 1부를 읽으면서 성마른 성격으로 느껴지는 모리스가 세라를 사랑한 것은 분명해 보이는데, 과연 질투와 증오의 다른 이름일지는 의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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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1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5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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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시야는 므이쉬킨에게 가냐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 늙은이가 자신을 가냐와 결혼시키려고 한다면서 이 결혼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를 묻는다. 므이쉬킨은 혼인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마치 기다렸다는듯 나스타시야는 공작의 말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더불어 토츠키에게 지참금으로 받기로 한 7만 5천 루블은 필요 없으며 자신을 속박했던 9년간의 대가로 주겠다고, 내일 당장 이 집을 나가겠다고, 호기롭게 말한다. 만난지 얼마 안 된 므이쉬킨의 말을 따르는 나스타시야를 납득하기 어려운 사람들. 그러나 그는 므이쉬킨이야말로 자신의 일생을 통해 처음으로 신뢰하게 된 사람이라고 얘기한다. 나스타시야가 소란을 일으키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또다시 일당을 이끌고 들이닥친 로고진. 그에게는 가냐의 집에서 약속한 돈 10만 루블이 들려있다.  사람들은 이 소동이 나스타시야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눈치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탐욕스러운 인간군상들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는 이 장면은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낯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짐작이 된다. 젊은 여인에게 민낯을 들켜버린 속물들이여, 부끄러운 줄 아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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