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사람을 위한 것
슬론 크로슬리 지음, 송섬별 옮김 / 현대문학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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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집으로 돌아와보니 도둑이 들었다. 침실 창문으로 들어와 새하얀 침대보를 짓밟고 보석을 싹 쓸어갔다. 부재 중에 낯선 자가 침범했다는 트라우마는 물론이고 도난당한 보석과 망가진 가구들을 보면서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다. 도난 사건은 내면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던 불안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거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세상을 떠난 러셀의 죽음은 저자에게 쉽사리 지워지지 못할 큰 충격을 안긴다.  






 



이 책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동료이자 친구이며 아버지 같았던 러셀과 그와의 우정에 보내는 저자의 헌사다. 러셀이 했던 말과 행동, 그가 장난처럼 던졌으나 진심이 담긴 조언과 위로 들을 천천히 되짚는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를 돌아보았던 가장 큰 부분은 위로의 방식이다. 나(혹은 제3자)의 불행을 들어 상대를 위로하지는 않았는지, 내 의도와 무관하게 (혹은 나의 무의식 안에서) 그것이 결국 나도 견뎠으니 너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단정은 아니었는지,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애도 역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를 위해 존재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앞서 언급한 위로나 섣부른 조언이 사실은 내 할 일을 다 한 것이라는 의무감이나 자위였던 건 아니였나,싶어 조금 겁이 났다고 해야할까. 


저자가 던진 인상적인 질문이 있다. 「당신과 당신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은 한 방에 앉아 문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에서는 열 수 없는 문입니다. 어느 날, 상대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마디 설명도 없이 문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버립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이 글을 읽고 한참을 생각했다. 질문을 읽자마자 곧바로 든 생각은 상대가 나가버리고나서 남겨진 '나'는 어떤 감정이 들었을지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 생각이 오래 머물다 보니 어떻게 할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왜 이런 질문을 던졌는지 궁금해졌다. 생각 끝에 떠오른 것은 상실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 상대의 세계에 '더 이상 자신의 자리가 없다'는 상실감, 무용한 존재가 됐다는 상실감.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 저자는 러셀의 결단의 동기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읽혔다. 


이 책에서 읽혀지는 러셀은 굉장히 유쾌하고 유니크한 사람이다. 물론 그에 대한 자세한 서술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 주변에 소통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해야만 했을까. 그것들이 상실감을 채워주지는 못했던 것일까. 문득, 가까운 나의 친구와 지인들을 떠올리면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게 별로 없음을 깨닫는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적확하게 쓰고 있다. 그래서 많은 페이지에서 그의 글에 동의하고 공감했다. 저자가 마지막 페이지에 남긴 짧은 「감사의 글」은 갑작스레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인지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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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물리학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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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수집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다른 생명체의 기억 속에 들어갈 수 있는 '나' 게오르기가 1913년생인 할아버지의 기억을 좇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 소설은 1990년대 불가리아의 현대사와 냉전 시대를 지나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속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생이 던지는 아이러니.
언어의 본질.
언어 혹은 이름을 잃는 슬픔.
세기가 바뀌어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전쟁의 참혹함.
시대가 가져다준 비극.
강자(침락자)에 의해 밀려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조롱, 그리고 모두가 가져야할 연민과 애도의 부재.
생기를 잃고 소멸해가는 것들의 쓸쓸함.
우리의 일상에서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늘 가까이 존재하는 죽음.
자연이 인간에게 전하는 종말론적 메시지. 
 







소설의 중요 모티브는 기억과 공감(이입), 그리고 유기遺棄이다.
특히 미노타우로스를 빗대어 유기, 차별, 학대에 대해 집중적으로 서술한다. 이것은 인간 권리와 존엄의 박탈이다. 더욱이 아이들은 전쟁과 가난에 취약한 존재다. 어른(강자, 권력자)들은 아이들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으며 언어를 허락받지 못한 아이(약자)들은 더 억압당한다. 아이(약자)들은 지속적으로 유기된다. 과거에는 이데올로기와 전쟁과 가난 때문이라면, 현대에는 단절과 고립에 의한 다른 양상의 유기가 더해졌다.   


우리가 공감하기를 저어하는 데에는 게오르기가 느끼는 것처럼 타인의 슬픔이 질병처럼 무겁게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무게감을 나눈다는 것이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소설에서 게오르기는 나이가 들면서 이입하는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사라져간다. 이는 우리가 공감하고 배려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데에 갈수록 인색해지는 것과 닿아 있다. 평등, 연민, 공감, 이입, 연대 등 공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을 '하려들지' 않기에 슬프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시대의 통로를 돌아다니면서 그들의 슬픔을 내 것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게오르기의 그 마음이, 병적인 이입의 능력이 사그라들고 있음에도 그 마음을 지키고자하는 그 애씀이, 지금 우리한테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은 아닐까. 수많은 출구가 도사리고 끊임없이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는, 삶이라는 미궁에서 헤쳐나오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기억하기, 이해하기, 손을 맞잡기. 


탄생을 비롯해 자신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 어느 것도 다시 겪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화자의 말에 깊이 공감한다. 행복했든 불행했든 지나온 시간보다는 내 앞에 놓여 있는 시간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싶다. 명치가 묵직해지는 부분이 많다. 서럽거나 분노의 슬픔이 아닌, 한 단어로 담아낼 수 없는 흐르는 시냇물같은 슬픔이 이어지는데, 슬픔으로 정화되는 듯한 이 감정이 썩 괜찮다.  


출생(프롤로그)에서 시작해 죽음(에필로그)으로 마치는 소설은 그의 이야기이자 나의 이야기이고 모두의 이야기다.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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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네 - 2025 일본 서점대상 1위 수상작
아베 아키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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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하루만에 읽어버린 소설이다. 남동생의 미스터리한 죽음과 이후 하나씩 드러나는 정황들을 통해 우리가 나 자신을 제외한 타인(때로는 자 나신까지)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문체가 수월하게 읽히고, 친해질 수 없을 것 같은 가오루코와 세쓰나의 케미가 재미를 더한다.  


남동생 하루히코의 죽음과 그의 유언장이 이어준 인연으로 가사 대행 서비스 회사 '카프네'의 무료 봉사에 참여하게 된 가오루코는 어쩌다 세쓰나와 파트너가 되어 가정 방문을 한다.  


홀로 노모를 돌봄하는 중년 남성(혹은 여성), 사별 후 단순 노무직을 전전하며 사춘기 딸과 단둘이 살고 있는 여성, 갓난 쌍둥이의 독박육아와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엄마, 아내가 가출한 후 혼자 두 살난 아들을 양육하다 지쳐버린 남성, 방치된 두 아이만 남은 집, 치매 남편을 돌보는 노부인. 두 사람이 찾아간 가정은 돌봄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다.  







 
살다보면 노력과 성실로 안 되는 일이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좌절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제 자신을 다치게 한다. 그럴수록 나 자신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가오루코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치유를 얻는다. 그렇다고 가오루코가 자신보다 불우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대적 위안을 얻었다는 오해는 금물. 오히려 그들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시선을 돌려 다른 일에 집중하고, 진솔한 대화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조금 더 나아진 '나'를 경험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받은 사랑만큼 대가를 치르듯 상대가 원하는 것에 맞춰 살고, 그로인해 지쳐간다. 성실을 강요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속박하는 세상. 그럼에도 이 고단한 세상에서 의지할 대상은 결국 사람이다. 이 소설의 키워드를 꼽자면 '도움'과 '돌봄'이다. 이 두 가지는 물리적인 것뿐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도 포함하며 어느 한쪽에서 한쪽으로의 일방이 아닌 양방이 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그래서일까, 소설의 이야기도 이야기만 각각의 인물물이 무척 흥미롭다.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보편적 인물이지만, 그들이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그들만의 이야기를 통해 새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어떤 말 못할 이야기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가오루코와 세쓰나. 정말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세쓰나가 염세적이라면 가오루코는 모든 일(심지어 탈선도)에 열정이 넘친다. 세쓰나가 다른 사람의 인정에 관심이 없는 반면, 가오루코에게는 타인의 인정과 쓸모있는 존재라는 자부심이 삶의 동력이 된다. 상대를 위로하는 방식부터, 하다못해 영화 취향까지 극과 극인 두 사람의 유대가 주는 따뜻함은 어느 독자라도 대리만족을 얻을 것이다. 


사실 읽는 내내 세쓰나에게 홀딱 반하고 말았다. 퉁명스럽고 냉정한 말투 이면에 가식 없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보살핌을 통한 위로와, 무심한 듯하지만 솔직한 조언과 배려는 지극히 현실적이라서 오히려 더 와닿는다.  


구성이나 문체 등 여러 면에서 이성과 감성이 조화로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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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 뱀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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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작가 반열에 오른 피에르 르메트르의, 그동안 출간되지 않았던 첫 번째 소설이란다. 갈래는 블랙 코미디를 곁들인 누아르. 머리말에서, 출판을 결정하면서 결점들을 발견해 어느 정도 수정해야 했으나 표현적 구절 몇 문장을 제외하고 처음 집필 그대로의 상태로 출판했다고하니 독자는 작가 스스로 판단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많다고 말한, 그야말로 그의 첫 작품을 읽을 기회가 생긴 셈이다. 
 
 





타인에 대한 공감이 전혀 없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제 분노에 지나치게 충실한 마틸드는 독자로서 연민 한 조각 생기지 않는 60대 여성 킬러다. 그녀에게는 굳이 살인청부업자를 해야할 만한 사정도, 동정을 유발할 만한 서사도 없다.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해 자신과 비슷한 사회적 계급의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사별 후 노년의 여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자식도, 반려견도, 과거에 그토록 사랑했던 연인도 안중에 없다. 남의 인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상을 죽인다는 것, 그녀에게는 밥을 먹거나 쇼핑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틸드에게 있어서 이 직업은 지루한 일상에 자극을 얻어가는 창구일 뿐이다. 이토록 잔인하고 인간미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살인 기계 같은 인물이 주인공인 소설이 있었나?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 없다. "설마..."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만큼, 소설은 독자의 작은 희망조차 완전히 저버린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라면 바로 '마틸드' 같은 인물이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는 영웅은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생각지도 못한 때에 등장한다(이 장치와 설정도 인상적이다). 


죽임을 당한 어떤 이들도, 그들에게 방아쇠를 당긴 마틸드도 '뱀'이다. 돈, 욕망, 욕정, 자극에 눈이 멀고,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의치 않고 독기를 뿜어내며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부숴버리는 자들, 그들 모두 '뱀'이다. 피해 당사자는 물론 그로 인해 고통받을 주변 사람들에 대한 안중은, 그들에게는 없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정서적 학대, 보호자를 잃은 아이와 노인, 무참히 밟혀버린 사랑, 방향이 잘못된 복수. 쓰다보니 누구라도 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완독을 하고 리뷰를 써야 하는데, 쓰는 족족 스포일러가 될 것만 같아서 난감하다. 그럼에도, 이 점만은 쓴다. 후반부 두 인물의 숨막히는 대결은 놓칠 수 없는 절정이다. 읽을 예정이라면 천천히 그 긴장감을 음미하며 읽으시기를.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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죔레는 거기에 ㅣ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30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지음, 김보국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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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750년간 이어져 내려온 왕가의 후손이자 왕위 계승자라고 주장하는 아흔두 살 요지 아저씨. 그는 더 이상 장작불을 피우지 않는 것처럼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의무만 이행한다면 더는 열정을 불사를 일은 없으리라 여긴다.  


사이사이 드러나는 요지 아저씨의 인생사를 따라가다보면 그 역시 같은 시대를 살았던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자식과는 불화가 반복되고, 나름 평온하지만 외로운 말년을 보내며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그에게 왕정복고를 꿈꾸는 방문객들이 찾아온다. 그들로 인해 아흔 살이 넘은 노인의 삶은 제대로 꼬인다. 






 
첫문장부터 의미 심장하다. 또한 첫 페이지에 쉼표를 잔뜩 찍어놓은 문장들은 가슴에 박힌다. 지금까지 읽은 작가의 소설 중 가장 임팩트 있는 도입부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머릿속에 그려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소동극 같다. 이런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나,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한다는데 하물며 왕정복고라는 엄청난 대의(?)를 도모하면서 매번 엇박자로 틀어지는 그들의 모습은 코미디처럼 웃음이 난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 있는 비관도 낙관도 아닌 공허는,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 사회적 폭력은, 슬프다. 


ㅡ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 두 군데가 특히 인상적이다.


마을에 돌아다니는 괴물 같은 개들은 낯선 사람이 보이기만 하면 곧장 떼로 달려들어 죽을 때까지 물고 늘어진다고 말하는 요지 아저씨는 그러한 이유로도 산책을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여기에서의 '괴물 같은 개'들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아흔 살이 넘은 노인, 가난한 노동자와 무명의 예술인, 그외에도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또는 무관심이라는 가해는 아닐런지.   


(여기는 살짝 스포) 요지 아저씨는 늙은 개 죔레가 죽자 이웃을 통해 새끼 강아지 한 마리를 얻었다. 그는 새끼 강아지를 데려워 곧장 죽은 죔레의 집 안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이 새끼 강아지의 이름 역시 죔레.  이 집에는 33년 동안 많은 개가 있었지만, 모두 이름이 죔레였다. 죔레는 특정 한 마리 개가 아닌 요지 아저씨의 집을 거쳐간 모든 개의 이름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이름으로 세대를 이어가는 것. 혹은 개별성을 잃어버린 채 부속품처럼 살다가 교체되듯 사라지는 인간의 숙명을 뜻하는 것. 혹은 의무처럼 삶을 이어가는 공허한 인생을 빗댄 것. 여러 생각이 스쳤는데,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렇게 단편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애초에 요지 아저씨가 원한 것은 간단하다. 누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다음 왕위 계승자를 지명하고, 계승자에게 계승 사실을 알리는 것, 그리고 평온한 노후, 이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요지 아저씨가 왕정복고와 왕좌에 앉기를 꿈꾸게 된 이유가 단지 추종자들의 부추김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흔 살이 훌쩍 넘은 노년의 끝에 이른 요지 아저씨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보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가난, 외로움, 단절, 돌봄의 부재 한가운데에 있다. 21세기의 시스템을 따라가기도 버거운 노인에게 제때 연금을 신청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그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다. 젊은 시절 소원해진 자식과의 관계는 얼어붙을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그와 유대를 맺는 유일한 존재는 개, 죔레뿐이다. 그들 둘은 서로에게 거의 절대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을테다. 자기가 정한 원칙을 지키고,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버티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온 요지 아저씨의 말년이 과연 그에게만 해당하는 일일까.  


ㅡ 


정신이 온전치 못한 노인 같다가도 사이사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판적인 시각과 촌철살인은 오직 돈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작금의 세태를 일갈한다. 작가의 작품에서는 정치, 환경 오염, 경제, 신자유주의, 복지와 돌봄, 예술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지만 반드시 짚는다(적어도 지금까지 읽은 네 권은 그렇다). 즉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들이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보통의 일상처럼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고 있으니 이러한 것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며 늘 주의를 기울여야함을 당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이 도착했을 때 동봉된 '편집자의 레터'에는 "마지막 문장을 읽으면서 이 둘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음을 애달프게 깨달았"다고 쓰여 있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작가의 작품들이 난해한 것으로 워낙 유명한데,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문학 세계를 경험하고 싶은 독자라면 (가장 최근작이지만) 『죔레는 거기에』, 그리고 『라스트 울프』를 추천한다. 무리없이 읽을 수 있으리라 단언한다. 다만 만연체가 갖는 특성은 감안해야한다.   


횡설수설,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스포를 우려해 줄인다. 300쪽을 넘어서면서부터 계속 울컥했고 눈물도 그렁그렁.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져서 별도의 독서노트에 열심 끄적이는 중이다.





※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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