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죄자
레이미 지음, 박소정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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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단 한 치의 허술함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팽팽하게 긴장감이 유지된다. 특히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또 하나의 진실은 가히 충격적이다. 700쪽이 넘는 분량을 하루만에 읽었으니 몰입도는 말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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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여자를 차로 유인해 강간 살해 후 시신까지 훼손해 유기하는 잔혹한 살인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범인이 체포되어 사형당해 끝난 줄 알았던 연쇄 살인 사건은 2년 후, 동일범의 소행으로 짐작되는 유사 사건이 발생한다. 강압수사로 애꿎은 남자가 사형되고, 진범이 사라진 그 진실을 아는 사람은 진범을 포함해 단 두 사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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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초반에 이미 진범을 노출시킨 작가가 이 소설에서 의도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작가는 오로지 '죄'에 집중한다. 개인의 어긋난 사랑으로 복수를 위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엽기적인 살인을 벌인 자만이 죄인일까?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사건을 은폐하고 무고한 시민을 사형장으로 보내버린 경찰, 범인을 잡기 위해 관련 없는 사람들을 범죄에 개입시키고 형사 처벌이 불가능해진 범죄자를 국가 대신 처벌하겠다고 나선 남자, 심지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스스로를 살인범의 제물로 삼는 여성. 각자가 가진 정의실현을 명분으로 행한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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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도 섣불리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거대 공권력 앞에서 법 체계에 무지한 보통의 사람들은 얼마나 나약하며, 또한 우리는 명분과 실리와 사회적 체면 때문에 많은 것들을 외면하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정도의 차이일 뿐 그들의 모습이 우리 내면 어딘가에 숨어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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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다음 세상의 희망이라고 가리키는 웨이중과 웨샤오후이를 통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어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에 고군분투할 만한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 고군분투할 만한 세상을 만들 사람은 바로 사실과 진실을 외면하면 안되는, 보통의 우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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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우스 로마사 3 - 한니발 전쟁기 ㅣ 리비우스 로마사 3
티투스 리비우스 지음,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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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전쟁기에서 한니발에게 결정적 힘을 실어주었던 칸나이 전투에서 대패를 한 로마는 이 즈음 공석인 원로원 의원 적임자조차 마땅치 않은 지경에 이르렀다. 스푸리우스 카르빌리우스는 라틴 공동체에서 두 명의 의원을 선출하자는 제안을 하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만리우스는 원로원 회의장에서 라틴인이 보이면 자신의 손으로 죽여버릴거라고 소리쳤다는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동맹국도 아닌 변방 출신의 황제가 배출된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뭐라고 했을까?  
 
 2.
로마는 집정관 임기 1년, 전쟁 지휘관을 1년에 한번씩 바꾼다. 전시에는 현명하다고 볼 수는 없는데,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이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지도자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로마'라는 대전제를 우선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개인의 사적인 감정을 보류하고 공동체적 공유 의식을 발동함으로써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학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읽혀졌다.

3.
스키피오는, 아프리카 카르타고 침공 목표는 한니발을 이탈리아에서 끌어내고, 전장을 아프리카로 옮거 전쟁을 종결짓는 것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로마 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아프리카에서의 전투는 로마에게 승리를 안겼으며, 한니발은 이 전투의 완패로, 전쟁에서도 완패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홉 살에 떠나 36년 만에 돌아온 조국에서 그가 한 일은 젊은 스키피오에게 항복 사절단을 보내는 일이었다. 스키피오가 제시한 조건은 카르타고 입장에서는 굴욕적이었다. 평화 협정은 이루어졌고 17년간의 기나긴 전쟁은 종결됐다. 화려한 개선식을 거행하며 귀국한 스피키오는 '스피키오 아프리카누스'로 불린다. 한니발의 씁쓸한 웃음은 미래를 예견했던 것일까.  
 
시간이 흐르고, 후에 스키피오는 카르타고 정복 당시 협정이 아닌 전쟁으로 종결짓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했다고 하는데, 그는 몰랐을 것이다. 어차피 50여년 뒤에 카르타고는 소멸할 것이라는 사실을. 더이상 카르타고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고 '속주 아프리카'로 남게 될 것이라는 사실 또한.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한니발이 마지막 전투에서 패배할 수 밖에없었던 이유는, 카르타고 군에게는 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고 급료 외에는 싸움에서 이겨야할 절실한 이유가 없었던 외인부대였던 반면 적지에서 패배하면 죽음 뿐이고 더하며 국가의 존망이 달린 전쟁임을 인식한 주인의식과 충성심으로 다져진 정규군임을 감안한다면 승부는 이미 결정되어진 것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4.
그 유명한 리비우스 로마사에 대해서 굳이 말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는 승자의 기록이니만큼 한니발에 대한 서술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감안하고 읽어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투스 리비우스가 말하는 한니발의 훌륭한 점은, 고국에서 먼 적의 영토에서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싸우면서 많은 흥망성쇠를 겪으며 온갖 국적의 천민들이 뒤범벅되어 언어, 관습, 예절, 종교가 다른 잡다한 무리를 굳게 결속시키고 내부 반란이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라고 적어놓았다. 티투스 리비우스가 쓴 기록을 토대로 짐작해보자면 한니발은 장수로써는 더할나위 없으나 정치가나 책략가로서는 부족하지 않았던 게 아닐까싶다. 그에게 책사 노릇을 할 만한 인물이 있었다면, 그래서 그가 자책했던 것처럼 칸나이 승리 이후 로마로 진군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결국 전투는 잘 하지만, 정치를 바탕으로 하는 전쟁에는 미숙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다른 몇 권의 로마사를 읽었지만 가독성은 가장 좋았다. 개인적으로 소설 읽듯이 술술 읽힌다는 게 리비우스 로마사의 가장 큰 장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권의 책을 함께 펼쳐놓고 읽으니 기원전 로마 시대를 살았던 역사가와 근현대 역사가가 쓴 로마서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데, 이를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4권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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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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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자체만큼이나 소설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으로도 유명한 <마담 보바리>는 줄거리만 읽으면 당시 기혼 여성이 간통을 저지르고 빚에 쫓겨 음독 자살한 치정 자살극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설은 당시 여성이 느꼈을 억압된 자유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결혼 생활의 권태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 사랑과 배신을 아름다운 문장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에마는, 적어도 남성은 자유롭다는 표현으로 여성의 자유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말하고 있다.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음악과 예술을 향유하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화려하게 살고 싶었던 에마가 정숙하고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에게 불운이라면 행복의 가치가 전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권위적이며 한량인 아버지 대신 생계와 가난한 살림을 책임지며 외로웠던 어머니의 기대를 받고 성장한 샤를이 가졌던 행복의 기준은 안정된 직업을 통해 가난으로 불안하지 않고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가정 생활이었을 것이다. 샤를이 에마에게 호감을 갖기 이전부터 베르토 루오 씨의 집에 호감을 가졌던 것은, 외유하는 아버지와 성마른 어머니로 인한 그늘진 자신의 집안 분위기와 다르게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있었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샤를은 결혼을 함으로써 불행하고 외로웠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으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제 행복에 가려 에마의 불행도, 외도도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외면했을 것이다.
 
소설에서 에마는 정열, 도취, 행복, 열정적인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한다. 이것은 당시 여성들이 주어진 삶의 범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음을 뜻한다. 에마는 샤를을 사랑한다고 착각했고, 그가 자신의 삶을 꿈꾸던 이상으로 바꾸어 주리라 오해했다. 그녀가 동경하는 것들을 샤를은 해줄 수 없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에마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그녀의 불행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에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삶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배움보다 동경을 선택했고, 행복의 성취를 타인에게 요구했다. 나를 들여다보고 성찰하기보다 겉으로 판단되는 더 나은 삶을 좇았다. 여성으로서 갖는 무력감을 앙갚음하기 위해 아들을 낳고 싶었다던 그녀의 딸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개인의 불행은 본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에마가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에 들떠 있고 빚더미에 쫓기는 동안 샤를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에마를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암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몰랐던 것은 혹여 자신이 열어보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에마에게 죄를 묻는다면, 샤를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방치했다는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에마가 죽은 후 그녀에게 달콤한 말로 사랑을 고백한 남자들은 평온한 잠자리에 들었고, 그녀는 잊혀져 갔다. 에마가 두 남성에게 잊혀져가듯, 당시 여성의 삶도 그렇게 묻혀졌을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메를 비롯해서 대부분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비겁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에마 보바리는 지나치게 순수한 인물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먹고 먹히는, 타인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생존 경쟁에서 승자가 되고자 하는 이 정글같은 세상에서 어리석을 정도로 욕망에 충실하고 그로인해 자멸한 인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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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러시아 원전 번역본) - 톨스토이 단편선 ㅣ 현대지성 클래식 34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홍대화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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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가 깨달은 삶의 진리를 다시 느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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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킹 온 록트 도어
아오사키 유고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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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폰, 차임벨, 노커가 없는 현관문. 방문자들의 맨손 노크로 어떤 손님이 문 앞에 서 있는지 추측해내는 곳. 트릭을 간파하는 데 강점이 있는 도리는 불가능 전문, 동기와 이유를 탐색해내는 데 능력이 있는 히사메는 불가해 전문. 탐정사무소 노킹 온 록트 도어다. 
 
화단에서 제법 인정받고 있는 현대미술 화가 가스미가 히데오가 자신의 집 아틀리에에서 살해됐다. 아들 류야와 미술상 미쓰코시가 시신을 발견했을 당시 등에 칼이 꽂힌 채 방 한복판에 엎어져 있었고 옆에 이젤과 캔버스도 쓰려져 있었던 것으로 봐서 그림을 그리다가 습격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아틀리에 천장은 고정식이고, 문 말고는 다른 출입구는 없으며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밀실 살인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아틀리에 벽에 걸린 가스미가의 풍경화 여섯 점을 전부 액자에서 꺼내 바닥에 내팽개쳤고, 그중 한 점은 온통 빨갛게 덧칠해 놓았다. 그리고 타살이라면 범인은 굳이 왜 아틀리에의 문을 잠근 것일까? 사건의 담당 경찰은 두 탐정이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는 우가치 기마리 경위다. 경위가 그들에게 할애한 시간은 단 10분. 그 안에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멤버 네 명으로 구성된 극단 리더가 연습실로 사용하는 맨션의 욕실에서 속옷 차림으로 죽어 있었다. 피해자는 이십 대 초반 여성으로 사인은 교살, 가느다란 끈 모양의 물건으로 목을 졸렸고 짐을 포장하려다가 습격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원 말고 나온 지문은 없었고, 남은 단원 세 명의 알리바이는 모호하다. 이 사건에서 '불가해'한 것은 범인이 시체의 머리카락을 잘라 현장에서 가져갔다는 것. 속옷 차림으로 눕혀진 시체, 짧아진 머리카락, 흐트러진 골판지 박스, 사라진 비닐 끈. 그때 도리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 이 사건은 동기가 아닌 트릭이었어! 
 
어쩐 일인지 영세 탐정사무소 노킹 온 록 도어에 사건 두 건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하나는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유품인 금고를 열어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노부가 늦은밤 자택 골목에서 쓰러져 돌아가셨는데 노인의 딸은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도리가 우가치 형사에게 부탁해서 받은 사건 현장의 사진에는 머리 옆부분에 상처가 난 노인이 엎드린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고 시체 오른쪽에는 지팡이가 떨어져 있었으며 그 옆에는 피가 엉겨 붙은 주먹 크기의 돌이 나뒹굴고 있었다. 사망 추정 시간은 오전 2시였고 목격 정보는 들어오지 않았으며 경찰이 집안을 수색한 바 혈흔이나 별다른 증거가 될만한 것이 없었으므로 사고사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도리는 사진을 보고 타살임을 확신한다. 무엇 때문에?
 
대형 통신교육 회사 하나와 스쿨의 중역 유바시 진타로가 자택 서재에서 살해당했다. 우가치 경위의 협력 요청으로 사건 현장을 찾은 두 탐정. 우가치가 건넨 사진에는 총알이 심장에 명중해 즉사한 걸로 추정되는 피해자가 위를 보고 쓰러져 있었다. 스탠드와 노트북이 켜져 있었고, 딱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총알이 날아온 곳은 집 밖 골목길. 유리창과 커튼을 관통한 각도와 시체의 위치에 위화감은 없었다. 그런데 살인범은 두꺼운 커튼 안쪽에 있어 보이지 않는 유바시를 어떻게 저격했을까? 더구나 부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제거 대상임을 알고 있어서 저격과 습격을 경계해 왔었기에 창문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한다. 단서는 방 안에 있다.
 
공터 한가운데에 보라색 옷차림을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남자의 아래쪽에는 공장 뒤편에서 그를 향해 발자국 한 줄이 뻗어 있다. 사망자는 머리가 희끗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체격이 작은 아저씨다. 몸을 웅크린 채로 시체의 팔 사이로 가슴에 박힌 식칼의 자루가 보인다. 식칼 자루에 지문은 없었으며, 쌓인 눈 표면은 남자 주변만 흐트러져 있고 그 위에 붉은 피가 옅게 배어 있다. 눈 밀실 사건이다. 사인은 가슴에 난 상처이고, 그 밖에 외상은 없으며 사망 추정 시간은 오후 11시에서 자정 사이로 추정된다. 눈이 그친 10시 이후에 살해당했다면 현장에 발자국이 한 줄 밖에 없다는 것은 범행이 불가능한 상황임을 의미한다. 단서는 눈雪. 
 
고급 호텔 마도마쓰의 연회장에서 중진 의원이었던 도자마 간조가 개회사 도중 독살로 사망한다. 개회사 직전, 도자마가 집어 든 쟁반에 놓여 있던 샴페인 잔에서만 독극물이 검출됐다. 그 상황에서 연회장의 누구도 피해자에게 독이 든 술잔을 고르도록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일곱 개의 사건을 다룬 단편연작소설 형식으로 이루어진 <노킹 온 록트 도어>는 각 에피소드마다 화자를 교차해가며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끌고 간다. 소설을 읽을수록 재미있는 구성들이 눈에 보이는데 먼저 탐정 사무소의 식구들이다. 두 명의 탐정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무소에는 고등학생 구스리코가 가사 도우미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세사람은 추리 게임을 일상의 놀이처럼 즐기는데, 이 모습은 <엘러리 퀸 시리즈>의 주나를 떠올리게 하고, 히사메가 처음 본 의뢰인 가족에게 직업과 취미를 맞추는 모습은 셜록 홈즈를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밀실 살인, 눈 밀실, 금고 다이얼 등에서 알 수 있듯 소설은 무엇보다 추리에 가장 충실하다. 
 
모든 일은 보좌관이 알아서 해주고 정작 정치인이 하는 일이란 모델처럼 꾸미고 악수를 하는 일 뿐이라는 것,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고, 인정받지 못한 분노를 극단적으로 해소하는 모습들은 현대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면들을 반영하고 있다. 
 
두 탐정에게는 친하게 지냈던 대학교 친구 두 명이 있었다. 그들 네 명 중 한 명은 범죄자를 붙잡는 직업을 택했고, 두 명은 범죄의 진상을 규명하는 직업을 택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범죄를 설계하는 직업을 택했다. 동일한 것을 추구하던 네 사람의 갈 길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은 소설보다 더 요지경 같은 씁쓸한 현실 세상을 추리로써 가볍고 깔끔하게 풀어놨다. 무거운 추리소설이 부담이 되는 독자들이라면 '노킹 온 록트 도어'를 노크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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