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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평점 :
소설 자체만큼이나 소설이 세상에 나오는 과정으로도 유명한 <마담 보바리>는 줄거리만 읽으면 당시 기혼 여성이 간통을 저지르고 빚에 쫓겨 음독 자살한 치정 자살극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설은 당시 여성이 느꼈을 억압된 자유와 현실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결혼 생활의 권태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인간의 욕망, 사랑과 배신을 아름다운 문장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에마는, 적어도 남성은 자유롭다는 표현으로 여성의 자유가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말하고 있다.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음악과 예술을 향유하며 아름다운 사람들과 화려하게 살고 싶었던 에마가 정숙하고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에서 행복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녀에게 불운이라면 행복의 가치가 전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권위적이며 한량인 아버지 대신 생계와 가난한 살림을 책임지며 외로웠던 어머니의 기대를 받고 성장한 샤를이 가졌던 행복의 기준은 안정된 직업을 통해 가난으로 불안하지 않고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가정 생활이었을 것이다. 샤를이 에마에게 호감을 갖기 이전부터 베르토 루오 씨의 집에 호감을 가졌던 것은, 외유하는 아버지와 성마른 어머니로 인한 그늘진 자신의 집안 분위기와 다르게 그들의 따뜻한 환대에 있었고, 무엇보다 그곳에서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샤를은 결혼을 함으로써 불행하고 외로웠던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으로 전환한다. 그리하여 제 행복에 가려 에마의 불행도, 외도도 발견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외면했을 것이다.
소설에서 에마는 정열, 도취, 행복, 열정적인 사랑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어한다. 이것은 당시 여성들이 주어진 삶의 범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음을 뜻한다. 에마는 샤를을 사랑한다고 착각했고, 그가 자신의 삶을 꿈꾸던 이상으로 바꾸어 주리라 오해했다. 그녀가 동경하는 것들을 샤를은 해줄 수 없었다. 여러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나는 에마에게 우호적이지 못하다. 그녀의 불행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에마는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삶의 가치를 외부에서 찾으려고 했다. 배움보다 동경을 선택했고, 행복의 성취를 타인에게 요구했다. 나를 들여다보고 성찰하기보다 겉으로 판단되는 더 나은 삶을 좇았다. 여성으로서 갖는 무력감을 앙갚음하기 위해 아들을 낳고 싶었다던 그녀의 딸은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개인의 불행은 본인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에마가 사랑이라고 믿는 감정에 들떠 있고 빚더미에 쫓기는 동안 샤를은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에마를 사랑하고 신뢰하기 때문이었을까? 수많은 암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몰랐던 것은 혹여 자신이 열어보는 것이 판도라의 상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에마에게 죄를 묻는다면, 샤를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방치했다는 죄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에마가 죽은 후 그녀에게 달콤한 말로 사랑을 고백한 남자들은 평온한 잠자리에 들었고, 그녀는 잊혀져 갔다. 에마가 두 남성에게 잊혀져가듯, 당시 여성의 삶도 그렇게 묻혀졌을 것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메를 비롯해서 대부분 탐욕스럽고 이기적이고 비겁하기까지 하다. 어쩌면 에마 보바리는 지나치게 순수한 인물이 아니었나하는 생각이 든다. 먹고 먹히는, 타인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 생존 경쟁에서 승자가 되고자 하는 이 정글같은 세상에서 어리석을 정도로 욕망에 충실하고 그로인해 자멸한 인간의 이야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