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씨들 1 열린책들 세계문학 278
루이자 메이 올콧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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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나는 아라비아 말들로 가득한 마구간, 책이 높다랗게 쌓인 여러 개의 방을 가지고 싶어. 그리고 마법의 잉크스탠드로 로리의 음악만큼이나 유명한 작품을 쓸거야.  


위의 문장은 열두 살의 내가 가장 사랑했고, 읽을 때마다 설레었던 문장이다. 앞서 말했듯 나의 첫번째 인생소설이라고 할 만큼 나는 이 소설에 대해 어지간해서는 모르는 바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마치 다른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새로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단연코 조다. 조는 등장인물들과 대부분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고, 소소한 에피소드와 사건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며 다른 자매들과는 유독 많은 감정들을 공유한다. 또한 독보적으로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며, 스스로 가장의 역할을 떠안을만큼 가족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남다르다.  



그런데 이번에 1권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인물은 셋째 베스였다. 일단 베스의 죽음에 대한 복선이 소설 초반부에 이미 드러나 있음을 예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74.
이 세상에는 누가 자신을 필요로 할 때까지 말없이 수줍게 구석 자리를 지키며, 다른 이들을 위해서 너무나 씩씩하게 살아가는 베스 같은 소녀들이 정말 많다. 그러나 사람들은 난롯가의 작은 귀뚜라미가 울음을 멈추기 전까지는 그 희생을 깨닫지 못하고, 결국 사랑스럽고 햇살 같은 존재는 침묵과 그림자만 남기고 사라진다. 


이 부분을 곱씹고 읽다보니 책장을 넘길때마다 베스의 죽음에 가까워져간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는 새에 긴장하고 있더라는. 나이와 성별에 관계없이 타인을 향한 베스의 특별한 교감 능력은 그야말로 순수한 배려와 사랑이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ㅡ 


에이미가 학교에서 과한 체벌을 당하자 미련없이 학교를 그만두게 한 어머니, 마치 부인. 그리고 마치 부인이 메그와 조에게 말하는, 자식의 미래에 대한 바람을 말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부모(어른)의 본보기일 수 있다. 모든 부모가 그녀처럼 중심을 잡는 것도 아니고, 그녀와 같은 가치관을 갖는 것은 더더욱 아니나,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물론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무엇보다 그 시대에 딸에게 결혼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조언은 새롭게 다가온다. 작가 본인이 비혼자였기에 그 말에 더 힘이 실리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에는 19세기 미국으로 이주한 유럽인들도 사이사이 언급된다. 소설 초반 마치家 여성들이 그들의 아침밥을 포기하고 도움을 주러 간 집의 사람들은 독일인이었고, 에이미가 교실 창 밖으로 던진 라임을 받아 먹는 아이들은 아일랜드인이었다. '소녀들의 숙적인 아일랜드 아이들(p121)'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실제로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로 인해 당시 소녀들이 피해를 입었는지 알 수 없으나, 한편으로 청교도 목회자인 네 자매의 아버지를 떠올려보면 종교적 측면에서 다루어진 것인지에 대해 추측해 볼 수 있다. 가정소설이자 성장소설인 작품에서 이러한 점들을 미미하게나마 다뤘다는 점이 흥미롭다.  


기발한 발상과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개성이 넘치는 요즘 시대에 이 소설은 지나치게 교훈적이고 보수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조언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되짚어보고 순순히 인정하는 네 자매의 모습과 인간의 행복에 있어서 가난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마치 부인의 말씀은 그야말로 교과서적이며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끊임없이 사랑받는 이유가 단순히 네 자매의 알콩달콩 좌충우돌 성장기이기 때문만은 아닐 터다. 결국 인류가 행복해질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이 이 소설 안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애, 인류애, 공동체. 더불어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 사교계에 대한 로망과 허영심이 컸던 메그가 가난한 남자인 브룩을 선택한 이유도 사랑과, 건강, 평온함에 대한 가치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너무 소설적인가. 


1권을 읽으면서 불현듯 들었던 생각은, 네 자매 또래(12세~16세)에 해당하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을 주었을 때 다양한 놀이를 스스로 개발해서 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다. 피시방, 노래방, 방송 댄스 등 천편일률적인 유흥이나 진로에 관련한 특기사항이 아닌 그야말로 아무런 이해득실 없이 신나고 유쾌하고 다양한 놀이. 마치 집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고가의 캠핑 문화, 이것조차도 부담스러워 대여하는 글램핑 등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도 우리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만들어진 문화에 스스로를 끼워맞추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마 '성공적인 삶'을 위해 조직해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는 우리네 모습은 '창의력'을 강요하면서도 전혀 창의적이지 않은 삶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런지.  


중년의 나이에 이 책을 읽으면서 사춘기 시절의 불편했던 나를 들여다보는 경험도 나쁘지 않다.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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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여름 휴가다.
메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인 킹씨 네 가족은 석 달간 휴가를 떠났고, 조가 시중을 들고 말벗을 해드리는 마치 대고모도 장기간의 여행을 떠났다. 메그와 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지게 지내볼 작정이다. 여기에 베스와 에이미까지 끼어들어 공부를 잠시 쉬겠다고하자, 어머니는 흔쾌히 일주일 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원하는대로 지내보라고 한다.  


하루 이틀은 그럭저럭 게으름을 즐기며 보냈지만 슬슬 무료해지기 시작한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이벤트를 만들어대는 그들의 성향상 충분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든다(무대 장치와, 의상, 소품 등을 직접 만들어 자기들만의 연극까지 할 정도면 그 에너지가 어느 정도일지 짐작 가능하지 않은가?). 거기다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자리를 비운 어머니와 해나 때문에 엉망진창 좌충우돌이 되어버린 하루. 


어머니는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을 충실히 해야 오히려 편안한 일상이 된다는 것을 직접 느끼게 해주고 싶어했다. 그러면서 각자의 작은 짐을 짊어 지라고, 그로인해 가끔은 무겁겠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될 것이며, 오히려 짐을 지는 법을 배우면 더 가벼워질 것임을 단 한 마디의 말없이 가르친다.  


갈수록 이런 금과옥조의 조언이 점점 더 힘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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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그는 애니 모펏의 초대를 받고 2주간 그녀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모펏 집안은 상류층으로서 저택도, 그 집에 사는 사람들도 화려했기 때문에 비록 그들이 경망스러울지언정 메그는 도착 직후 압도당했다. 네 자매들 중 아버지가 파산하기 전,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여유로움을 경험했던 메그는 호화롭게 지내는 생활이 즐거웠다.  


그러나 예의없는 뒷담화와 도를 넘는 과잉친절은 메그를 불편하게 했지만, 천성적으로 자존심이 강했던 사람이기에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차라리 그 자리에 조가 있었다면 그 자리에서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집으로 돌아왔을텐데. 메그는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더 아름답게 여기는 두 남성에 의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사실 열여섯 살의 소녀가 가난에 의연하기는 쉽지 않다. 불평하면서도 늘 스스로를 다독이는 메그가 기특할 지경이다. 영상물로 만들어진 <작은 아씨들>을 보면 메그는 늘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히려 불평이 많은 소설 속 메그가 훨씬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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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열여섯 살의 무척 예쁜 그녀의 자랑은 새하얀 손이다. 꽤 큰 키에 날씬하고 가무잡잡하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표정을 가진 열다섯 살 조는 자기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사실이 가장 안타깝다. 만약 자기가 남자였다면 지금쯤 거실에 앉아 성향에 맞지 않는 뜨개질이 아닌 아빠를 따라 전장의 한가운데 있을텐데. 수줍음이 많고 어지간해서는 차분함이 흔들리지 않아 '차분한 꼬마 아가씨'라고 불리는 열세 살 엘리자베스는 마치 가문의 사랑스러운 귀염둥이다. 자신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근거없는 자신감이 넘치는 막내 에이미. 이제부터 읽어나갈 우리들의 '작은 아씨'들이다. 


비록 가난하지만 왁자지껄한 그녀들의 이벤트는 끊이지 않는다. 투덜투덜 불평불만을 털어놓으면서도 기꺼이 자신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기하고 엄마에게 선물을 해드리자는 네 자매의 기특함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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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에 인생 첫 소설을 써더랬다. 그것도 원고지 천 매에 가까운 분량으로. <작은 아씨들>의 아류작이었는데, 오마주라는 단어를 몰랐던 그 어린 나이에도 루이자 메이 올컷처럼 쓰고 싶었던건지 여기저기에 유사한 장치들을 배치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생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창고를 정리하던 엄마가 이게 뭐냐며 던져 준 원고지 뭉치를 다시 읽으면서,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얼굴까지 벌개지며 얼마나 창피했던지.  


아무튼 그렇게 난, 초등 3학년(2학년인가?)부터 중학교 입학할 무렵까지 <작은 아씨들>을 끼고 살았다. 두세번 판본을 바꿔가면서. 완역본을 읽은 건 서른이 조금 넘어서였다. 



"선물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가 아니야." 


조의 투덜거림으로 시작되는 첫문장은 언제 읽어도 나에게는 그리움이다. 등교하는 책가방에도, 피아노 학원 가방에도 늘 들어있었던 이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지 한참이 지나 이제 다시 펼친다.  


가난하고 퍽퍽한 일상 속에서 전장으로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진다. 그럼에도 현실 자매의 대화는 사랑스럽기만 하다. 읽다보니 문득, 어쩌면 내가 여자 형제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더 동경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열여섯 살 메그가 어머니처럼 동생들에게 늘어놓는 훈계가 귀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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