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34.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안다고 믿는 모든 것과, 고통에 대한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필연성에 대한 진부한 모든 말들을 전염병처럼 피해야만 한다는 것을.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있어서도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하며, 죽음을 말할 때는 사랑을 이야기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열정 어린 목소리로 말해야 한다는 것을. 죽음의 고유한 특성과 사랑의 감미로움에 어울리는 세밀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 
 
죽음을 사랑과 같은 선상에 놓는 크리스티앙 보뱅. 어쩌면 사랑을 소중하고 귀하게 다루듯 죽음도 마찬가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마지막 과정인 죽음. 때로는 억울하게, 참담하게, 안타깝게 맞이하는 죽음이 있기에 비관하지 말자고 함부로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지만,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떠나는 자에게도 남아 있는 자에게도 참, 중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치 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0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김희숙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1.
예의범절에 맞는 독창성의 결여와 방정한 소심함이 지금까지 우리의 사회통념상 착실하고 반듯한 사람의 필수불가결한 자질이 되어온 만큼, 지나치게 급격히 변한다는 것은 실로 너무나 방정치 못하고 심지어 상스럽기까지 한 일로 간주됐을 테니 말이다.  


12.
'독창성 따윈 없어도 좋으니 그저 행복하고 한평생 유복하게만 살아다오.' 
 

 
 

도스토옙스키가 언급한 부분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가 갖는 갈등의 요인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하지만, 글쎄......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희망 직업이 달라졌을 뿐 개인적으로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의 글처럼 자식의 유복함을 바라는 게 잘못이라고 할 수 없기에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끝나지 않을 문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7.
완벽한 어머니란 너처럼 아무 조건 없이, 보상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고 사랑을 주고, 무엇보다 아이들만을 위해 살지 않는다. 그녀들은 다른 곳에서도, 다른 사랑으로도 산다. 모든 행동이나 '여보세요, 내 아가' 같은 모든 말속에 어머니의 사랑은 온전히 존재하지만, 그러곤 곧바로 다른 곳으로 간다.  

 
​ 


 

요즘의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보상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원을 보내면서 일정 수준의 성적이 나오기를 바라는 것은 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을 뿐, 얼마나 많은 감정적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가. 보뱅의 글은 읽는 이에 따라 아플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생각할 시간을 던져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움의 정원에서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김도연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네가 죽은 후 찾아온 가을과 겨울에 나는 너를 위해 이 작은 글의 정원을 정성스레 가꾸었다. 정원에는 노래와 이야기로 만든 두 개의 문이 있다. 노래는 나의 것이나 이야기는 내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일 뿐. / 서문에서 
 


 
시작부터 지슬렌이라는 여성에 대한 애틋함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사랑하는 이의 이야기를 자신의 노래로 만드는 연인의 마음이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평점 :
절판




판단 착오였다. 처음 이 소설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 부족의 규범에 얽매인 두 청춘 남녀가 자유를 찾아 떠나는 사랑과 모험의 대서사(?)라고 여겼다. 온갖 시련을 이겨내고 자신들을 틀렸다고 손가락질 했던 부족의 기성 세대에게 자신들이 옳았음을 증명하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이 소설이 읽고 싶었던 이유는 단지 세계의 각 지역에 있는 원주민들의 삶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소설은 나의 예상을 철저히 깨뜨렸다.  





 




 
소설은 다구, 그리고 주툰바 두 사람의 인생 여정을 각각 따라간다. 두 인물은 소설의 초반부와 거의 마지막 지점에서 만날 뿐 소설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의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주툰바가 무리를 떠난 궁극적인 이유는 규칙이나 전통 없이도 무엇이든 성취해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증명은커녕 제 발등 제가 찍은 격으로 수십 년을 수치와 모욕과 고통 속에서 살아왔고, 그제서야 자신의 오만함을 깨닫는다. 주어진 혜택을 당연 시 여겼고 부모님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으며, 자신이 강하고 누구한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가족들로부터 보호 받으며 살고 있었음을 말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그토록 증오했던 원수의 가장 잔인한 모습의 닮은꼴이 되고 말았다.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다구는 원하던 대로 '해의 땅'을 향해 여행을 떠나고, 목표를 이룬다. 이 과정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경험하게 되는데, 그는 긴 여행으로 대단한 지혜를 얻었다기보다는 귀중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자신은 살아남기 위해서 함께 일해야 한다는 그위친족의 삶의 방식을 제쳐두었고, 늦게 나마 꿈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서서 마침내 목표를 달성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잃었다. 오랜 세월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했으나 결국 출발 지점으로 돌아왔고, 그제서야 무리가 영위하는 삶의 방식을 이해한다.  




 
두 사람은 무리는 달랐으나 그위친족의 유별난 반항아들이었다. 그들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살아남는 것만이 추운 땅에서 사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는 사실과 연대를 거부했다. '해의 땅'에서는 혼자서도 살 수 있지만 '눈의 땅'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고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때론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지만 매 순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선택해 살아남았다.
 
우리는 살다 보면 원하지 않더라도 사회 혹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 혹은 채무감 때문에 원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럴 때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은 선택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렵다.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선택지 안에서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고, 일단 선택하면 가능한 나의 일부로 만들어간다. 그에 대한 결과가 비록 원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자책하지만, 그 선택을 한 우리 자신에게 잘못은 없다. 
 


어른들의 말씀을 따라 얌전히 혼인을 하지 않고 도망을 쳐 더 나쁜 운명에 휘말린 것이 새소녀의 잘못일까? 아무도 얹어주지 않은 채무감을 스스로 안은 채 자신의 꿈을 포기한 다구는 어리석을까? 그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했고, 그 운명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견뎌냈다. 그것으로 두 사람은 충분히 삶을 훌륭히 살아냈다.  
 


두 사람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앞서 힘든 시기를 지나온 이전 세대를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아마 우리 다음 세대 역시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2021년 현재처럼 인간은 뜻하지 않은 어떤 상황에 던져 지기를 반복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과정을 헤쳐 나와 미래로 향하는 것 뿐이다. 다구와 새소녀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