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3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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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부르군두스와 필경사 둘만 데리고 날렵한 배 한 척을 빌려 조용히 동방으로 향했다. 나흘만에 프리에네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행정관 멤논을 찾아가 여드레 안에 4개 군단에 준하는 민병대를 소집해 마이안드로스 강가의 마그네시아에 집결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물론 총독의 지시라는 선의의 거짓말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전투 소집을 기다리고 있던 멤논은 기대에 차 공문 확인 요청도 없이, 카이사르의 정체에 대해 한치의 의심도 없이 아시아 민병대 소집 작업에 나섰다. 카이사르는 다른 한편으로 부르군두스를 앙키라의 갈라티아 족장 데이오타로스에게 보내 협공 작전을 요청한다. 카이사르가 대적할 상대는 폰토스 장군 에우마코스와 변절자 마르쿠스 마리우스였다. 참... 간도 크지. 원로원 의원이지만 민간인 신분으로 민병대를 소집하다니. 
 


에우마코스는 비옥한 땅을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쾌적하고 평화롭게 지나다 보니 페르가몬 외곽에 주둔 중인 로마군을 깔보게 되었다. 방심한 폰토스 장군은 밤을 보내면서 방버벽을 세우지도 않고 마치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처럼 굴다가, 어두운 밤을 틈타 완벽한 로마식 대형의 4개 군단이 나타나자 너무 놀란 나머지 저항하지 못했다. 에우마코스와 그의 선임 보좌관들은 남은 군대와 마르쿠스 마리우스의 상황은 살필 겨를도 없이 도망갔다. 템브리스 강까지 도망 온 에우마코스는 갈라티아의 톨리스토보기족이 마르쿠스 마리우스 군대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을 목격했고, 결국 수천 명이 전사했다. 에우마코스는 젤라로 돌아갔고, 마르쿠스 마리우스는 직접 미트리다테스를 찾아나섰다. 
 


카이사르는 승리를 거머쥔 아시아 속주의 민병대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고 규율을 가르치며 아시아 속주의 운명은 주민들의 손에 달려 있고 그들 자신이 방어할 능력이 있다며 사기를 고무시켰다. 엠논은 카이사르에게 신전 내부에 그의 조각상을 세우겠다고 말하고, 카이사르는 이를 받아들인다. 스물여섯 살, 그는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군대를 승리로 이끌었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승리가 다른 방식으로 소식이 전해지기 전에 루쿨루스를 만나기 위해 페르가몬으로 향했다. 예상했던대로 루쿨루스는 위법을 하지는 않았지만 체계를 지키지 않은 카이사르를 맹비난했고, 기소하는 일은 없겠으나 인정할 수 없으며 다른 어떤 총독의 군관으로도 임명되지 못하게 할 거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러나 우리의 카이사르가 어떤 사람인가. 집정관에게 한마디도 지지않고 논리정연하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모습이라니. 루쿨루스의 의문의 패다. 
 


루쿨루스가 비교적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인간적으로 카이사르를 싫어한다해도 그에게 새로운 임무를 지시한다. 지중해에서 해군 소탕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기테이온에 있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하급 군관으로 보낸다. 하급 군관 신분에 어긋나는 언행을 한다면 군사법정에 세우겠다는 엄포를 덧붙여서. 더구나 카이사르가 미움을 받는 안토니우스 집안 사람의 하급 군관으로. 카이사르의 외삼촌인 또 다른 집정관 마르쿠스의 코다의 말이 딱 맞다. 루쿨루스나 카이사르나 독선적이기는 마찬가지. 카이사르, 갈 길이 구만리다. 그런데 되는 사람은 어떻게든 된다더니. 행운을 빌었던 큰외삼촌의 죽음이 카이사르에게는 행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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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3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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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리다테스 왕이 진군을 시작해 비티니와의 국경인 헤라클레이아까지 당도했다. 폰토스 국왕이 비티니아를 접수할 작정이라는 소식은 로마에도 전해졌다. 미트리다테스 왕의 입장에서 보자면 혈통, 태생, 근접성을 모두 따져봤을 때 비티니아는 로마가 아니라 폰토스에 귀속되어야 했으므로 로마가 비니티아를 가로채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폰토스 국왕은 헤러쿨레이아에서 로마의 반응을 살피며 기다리고 있었다. 
 


총독의 죽음으로 킬리키아 총독 직이 공석인 탓에 타르소스에 주둔중이던 2개 군단은 아시아 속주를 도우려고 나서지 않았다. 에페소스와 사르디스에 주둔중인 핌브리아군 2개 군단을 페르가몬으로 불러들이기는 했으나 페르가몬에서 비티니아로 군대를 파견할 낌새가 안 보였다. 8월이 되자 두 집정관 루쿨루스와 마르쿠스 코타가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 미트리다테스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로 했다. 비티니아는 별도의 속주로 분리되어 마르쿠스 코타가 담당하게 되었고, 킬리키아는 루쿨루스에게 돌아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시아 속주의 운명은 예측 불가의 상태에 놓였다. 
 


한편 로마의 사정은 이렇다. 현 집정관 루쿨루스의 동생 바로 루쿨루스가 다음해 수석 집정관으로 당선되었고, 빌런 가이우스 베레스는 사악한 수완으로 재력가 크라수스를 끌어들여 여전히 재물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이러한 부정부패와 태만, 사리사욕은 이들만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원로원은 미트리다테스 왕과의 전쟁을 심각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폰토스의 군대가 코앞까지 들이닥쳤음에도 원로원은 어떠한 합의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융쿠스에 대한 항의가 빗발쳐 로마로 소환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술라의 독재와 공포정치가 옳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술라가 죽자마자 스스로 로마의 기둥이라고 자처하는 원로원의 방만한 모습을 보면서 술라의 모순이 다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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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나의 선택 3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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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살, 원로원에 입성한지 5년차. 카이사르는 죽어가는 니코메데스 왕으로부터 호출을 받는다.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니코메데스 왕은 카이사르를 비티니아 왕국의 후계자로 삼고 싶다고 하지만, 카이사르의 설득으로 비티니아를 로마에 유증한다. 따라서 비티니아는 로마의 아시아 속주에 편입됐다. 



새로 부임할 비티니아의 총독에게 위임할 준비를 끝낸 카이사르는 비티니아를 출발해 한두 해 정도 공부할 계획으로 로도스 섬으로 향한다. 밀레토스를 떠난 후 해적과 마주한 카이사르는 자신의 몸값을 더 올린다. 몸값이 낮다고 자존심 상해서 펄쩍 뛰는 모습이라니. 해적 소굴에서 몸값이 도착하는 40일 동안 해적 소굴 인근을 관찰하면서 아주 안락하고 유쾌하게 보내고, 카이사르는 몸값을 치른 뒤 해적 소굴을 빠져나와 사흘 후 로도스 섬에 도착했다.  그리고 로도스 섬 도착 두 시간 만에 삼단 노선 열 척과 군인 500명을 마련해 다시 해적 소굴로 향했다. 절대 찾을 수 없다는 해적 소굴을 되짚어 간 카이사르는 약속대로 해적 두목 폴리고노스를 쇠고랑 채웠다. 두목조차 처음 드나들 떄에는 백 번도 넘게 헤맸다는 그곳을 단 한 번에 찾아간 방법은 파타라와 해적 섬 사이의 만의 개수를 세어났던 것. 이런 영악한 남자를 보았나. 



이 사건을 통해 카이사르는 로마에 의해 로도스 해군력 약화로 인해 해적이 세를 키우게 됐고, 해적 근절을 위해 해군력을 증강하면 반란을 우려한 로마로부터 압박을 받는 현실적인 문제를 알게 된다. 이렇게 카이사르는 로마 제국이 처한 현실적은 문제들을 하나둘씩 알아감과 동시에 현명한 문제 해결과 탐욕에 대한 절제로 명성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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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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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법을 지키는 것과 공평한 것이고, 불의는 법을 어기는 것과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법은 모든 것과 관련해, 모든 사람의 공통 유익 또는 귀족들의 유익 또는 미덕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통치하는 자들의 유익을 위해 무언가를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정치 공동체를 위해 행복과 행복의 요소들을 만들어내고 보전하는 것을 우리는 정의롭다고 한다.  



자기 자신과 친구들에게 악덕을 행하는 자가 가장 나쁘고, 자신의 미덕을 자신이 아니라 남에게 행하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다. 미덕과 정의의 실체는 같지만, 이 둘을 정의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남과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본 것이 정의이고, 그 자체로 어떤 종류의 성품이냐 하는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 미덕이다. 정의는 한 종류가 아니고, 미덕들 전체를 가리키는 정의와 구별되는 다른 정의가 분명 존재한다. 모든 시민을 교육하려고 제정된 법을 지키는 행위를 통해 온갖 미덕이 만들어진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과 훌륭한 시민이 되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나쁜 악행은 자신에게 저지른 것이고, 가장 좋은 미덕은 남에게 행하는 것, 그리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과 훌륭한 시민이 다르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각에 감탄하지 안을 수 없다. 현재 우리는 전자의 경우 반대로 행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에 대한 구분이 없으니 말이다.  



불의한 행위와 불의한 것, 정의로운 행위와 정의로운 것은 다르다. 정의든 불의든 실제로 행했을 때에만 불의(혹은 정의)한 행위가 되지만, 행하기 전에는 행위는 존재하지 않고 불의(정의)만 존재한다. 그렇다면 행하지 않는 정의는 진정한 정의라고 볼 수 있는가? 여기에서도 자발성 여부가 중요하다. 정의(불의)가 비자발적으로 행했다면 그것은 정의(불의)라고 할 수 없다. 자발적일 때에만 그 행위는 비난 혹은 칭찬 받을 수 있다. 자발적 방조 혹은 방관 역시 불의라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비자발적으로 행한 불의한 행위 중에서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은 모르고 했더라도 무지가 아니라 자연적이지도 않고 이난적이지도 않은 감정으로 한 잘못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내 생각을 뒷바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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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마코스 윤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42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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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덕은 감정과 행위와 관련이 있어 자발성과 비자발성을 구분해야 한다. 더 큰 해악을 당할 것이 두려워서 또는 어떤 고귀한 목적을 위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가 비자발적인지 자발적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행위의 원인이 외부에 있고 강요당한 행위자가 원인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면, 그 행위는 강요로 보인다. 무지 때문에 어떤 행위를 했지만 후회하는 사람은 비자발적으로 한 것이라고 본다면, 후회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경우로, 자발적으로 하진 않았지만 비자발적인 것도 아니다.  자발적이냐, 비자말적이냐는 결국 행위 이후 가책과 고통을 느끼느냐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일 터다. 



어떤 행위를 비자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어떤 행위와 관련한 구체적인 상황과 대상에 대한 무지로 그렇게 했을 때만 해당한다. 동정과 용서는 이런 대상일 때에 가능하다. 그런데 무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위의 대상과 목적이다. 강요나 무지 떄문에 행한 것이 비자발적인 행위라면, 어떤 행위의 원인이 행위자 자신에게 있고, 행위자가 그와 관련된 구체적인 것을 알고 있었다면 그 행위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이성적 선택은 미덕의 본질에 속하기에, 성품을 구별해내는 데 행위보다 더 탁월한 역할을 한다. 이성적 선택이 자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자발적인 것이 이성적 선택보다 범위가 더 넓다. 예를 들어 자발적 선택은 동물도 가능하지만, 이성적 선택은 인간에게서만 볼 수 있다. 이성적 선택은 바람이나 의견이 아니다. 우리가 직접 할 수 있는 것만 이성적 선택의 대상이다. 즉 어떻게 할 것이냐만이 이성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의견을 가졌다고 해서 가장 좋은 이성적 선택을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 할 만한 것을 숙고한다. 우리가 숙고하는 것은 대체로 특정 방식으로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불확실해 결과를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가 숙고하는 것은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먼저 목적을 세워 놓은 후에, 그 목적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수단을 통해 달성할 것인지를 숙고한다. 즉 목적을 이루는 데 필요한 것이 숙고 대상이다. 예를 들면 빵을 만드는 것은 목적, 빵을 어떤 재료와 방식으로 만들지를 고민하는 것이 숙고, 빵이 맛이어지기를 원하는 것은 바람이다. 이는 이성적 선택이 목적이 아니라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관련되어 있음을 말한다. 바람은 목적과 관련되고, 숙고와 이성적 선택은 목적을 이루는 것과 관련되므료, 후자와 관련된 행위는 이성적 선택에 따라 자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미덕도, 악덕도 우리의 책임이다. 



미덕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좇다보면 결국 개인 양심과 도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습관으로 당연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부터의 교육이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만취 범죄자에 대한 부분인데, 현대와는 정반대의 시각이라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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