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3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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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트리다테스 왕이 진군을 시작해 비티니와의 국경인 헤라클레이아까지 당도했다. 폰토스 국왕이 비티니아를 접수할 작정이라는 소식은 로마에도 전해졌다. 미트리다테스 왕의 입장에서 보자면 혈통, 태생, 근접성을 모두 따져봤을 때 비티니아는 로마가 아니라 폰토스에 귀속되어야 했으므로 로마가 비니티아를 가로채는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폰토스 국왕은 헤러쿨레이아에서 로마의 반응을 살피며 기다리고 있었다. 
 


총독의 죽음으로 킬리키아 총독 직이 공석인 탓에 타르소스에 주둔중이던 2개 군단은 아시아 속주를 도우려고 나서지 않았다. 에페소스와 사르디스에 주둔중인 핌브리아군 2개 군단을 페르가몬으로 불러들이기는 했으나 페르가몬에서 비티니아로 군대를 파견할 낌새가 안 보였다. 8월이 되자 두 집정관 루쿨루스와 마르쿠스 코타가 원로원의 승인을 받아 미트리다테스 문제를 직접 해결하기로 했다. 비티니아는 별도의 속주로 분리되어 마르쿠스 코타가 담당하게 되었고, 킬리키아는 루쿨루스에게 돌아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시아 속주의 운명은 예측 불가의 상태에 놓였다. 
 


한편 로마의 사정은 이렇다. 현 집정관 루쿨루스의 동생 바로 루쿨루스가 다음해 수석 집정관으로 당선되었고, 빌런 가이우스 베레스는 사악한 수완으로 재력가 크라수스를 끌어들여 여전히 재물을 긁어모으고 있었다. 이러한 부정부패와 태만, 사리사욕은 이들만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고, 원로원은 미트리다테스 왕과의 전쟁을 심각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폰토스의 군대가 코앞까지 들이닥쳤음에도 원로원은 어떠한 합의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융쿠스에 대한 항의가 빗발쳐 로마로 소환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술라의 독재와 공포정치가 옳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술라가 죽자마자 스스로 로마의 기둥이라고 자처하는 원로원의 방만한 모습을 보면서 술라의 모순이 다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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