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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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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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베르사유 조약 체결 직후 독일은 충격과 절망을 고스란히 껴안았다. 식량과 석탄이 부족해 곤궁했고, 모든 식민지들을 포기해야 했으며, 독일 내 생산적인 산업 지역들은 적어도 향후 19년간 외국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또한 감당할 수 없는 전쟁 배상 지불 및 병력을 현제하게 감축해야 했고, 단치히 항국 관할권을 폴란드로 이관해주는 바람에 동프로이센 주와 절연되었으며 무엇보다 전쟁을 일으킨 책임을 인정하는 "유죄 조항"에 서명함과 동시에 카이저와 약 1천 명의 저명인사는 협상국 사령부로 넘겨져 전범 재판을 방야야만 했다. 독일에게는 마지막 사항이 모욕적이었고, 자존심을 상실하게 했다. 독일인들은 배고픔보다 일방적으로 교류를 끊고 추방자 대우에 더 분노를 느꼈다. 독일의 경제 붕괴와 더불어 중산층이 몰락했고, 정치적으로도 내부 분열이 일어났다.  
  
  
 

- 전쟁의 결과는 고스란히 시민들이 부담한다. 쥐도 도망갈 구멍을 주고 몰아야된다고 했거늘 살 수 없는 지경을 만들어 놓앗으니... 그나저나 슬슬 조짐이 보였으나 이에 대한 위험성을 느낀 외교관들의 보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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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3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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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는 최초로 경험한 절대 권력의 힘을 만끽하며 세상을 다른 차원에서 보게 됐다. 국정 운영이라는 대의명분을 빌미로 윤리적 제약이나 도덕으로 자유로운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호민관은 (술라 입장에서) 안타깝게도 열 명 모두 술키피우스 지지자들로 채워졌다. 그래서 술라는 정무관 직만큼은 반드시 강경파 보수주의자들로 채워야겠다고 작정했다. 사실 동방 원정을 앞두고 로마에 주둔하게 된 카푸아 군단의 불만도 해결해야할 문제였지만, 술라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는 로마 시민의 민심이었다. 로마가 아닌 술라에게 충성을 맹세한 무장 군단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한 술라를, 불구의 노장 가이우스 마리우스를 쫓아버린 그를 향한 보이지 않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어서 빨리 동방의 미트리다테스를 물리치고 전리품을 거두어 위기에 빠진 국가 재정을 구해내 마리우스의 명성을 뛰어넘어야만 시민들은 로마로 진군한 술라를 용서해줄 것이다. 술라는 1월, 로마를 떠났다. 포룸 로마눔 연단 벽에  술키피우스의 머리통을 긴 창 위에 꽂아 놓은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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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라는 자식의 혼인을 통해 정치적 동지였던 퀸투스 폼페이우스가 득이 될 것이 없다고 판단되자 자신의 지지자를 끌어들여 가차없이 제거한다. 인간 관계에 있어 오직 적 아니면 지지자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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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관 3 - 2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2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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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에게 판정패를 인정한 술라는 캄파니아로 떠났다. 라티나 가도를 타고 시골 지역을 관통한 술라는 소문을 통해 술키피우스와 원로원의 붕괴 소식과 외곽 지역 사람들은 건강상 마리우스가 지휘를 맡는데 회의적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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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푸아에 돌아온 술라는 자신의 군단 앞에서 동방 전쟁의 지휘권은 가이우스 마리우스에게 돌아갔으며 그로인해 미트리다테스의 엄청난 전리품은 마리우스 군단에게 돌아갈 것을 들어 병사들의 반발심을 조장한 후 군단을 이끌고 무방비 상태인 로마로 진군한다. 그리고 마침내 술라는 로마를 포위했다. 인술라 밀집 지역 한복판에서 맞붙은 마리우스와 술라. 무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정식 군인도 아닌 무리들이 술라의 정규 병사들을 이겨낼 수 없음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리고 술라는 합법적으로 취임한 현직 수석 집정관이었다. 로마에 남아 있으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은 기정사실이기에 마리우스와 술키피우스는 도망칠 수 밖에 없었고, 술라는 그 틈을 노려 원로원을 장악했고, 인민들을 회유함과 동시에 자연스럽게 마리우스를 깎아내렸다. 술라의 방식에 문제는 있었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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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는 더 안아가 대규모 법제 개혁을 세웠다. 그러나 문제는 새 법안을 발표하고 비준하기까지 남은 임기가 촉박하다는 것이었다. 술라의 댈레마를 풀어준 이는 카이사르 스트라보였는데, 그 해결책은 술라가 내놓은 새 법안에 대해서만 카이킬리우스.디디우스 프리마법의 의무조항을 변제시켜주는 법안을 먼저 공포하는 것이었다. 민회 통과는 로마에 주둔해 있는 군인들 덕분에 가볍게 통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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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술라, 참 교묘하고 지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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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시대의 여행자들
줄리아 보이드 지음, 이종인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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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난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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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대체로 독일 국경 밖에서 치러진 덕분에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독일의 자연은 크게 훼손된 곳 없이 아름다웠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고 몇 달 되지 않아 미국 관광객을 겨냥한 관광 홍보책을 발간하고 대대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나선다. 이 홍보 책자는 전쟁 전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며 잠시 잊혀졌던 독일의 예술.문화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쾌활한 프로파간다가 전쟁을 직접 겪어 가난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인 사람들에게는 기가 찰 노릇이었겠지만, 무엇도 본 적이 없는 미국 젊은이들에게는 오히려 전쟁 직후의 유럽 여행이라는 흥분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실상은 홍보 책자와 판이하게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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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보다 군사적 관점에서 자신들이 승자라고 믿었다는 발언에 황당함을 느낀다. 협상군의 비겁한 봉쇄 작전으로 식량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항복한 것뿐이라고 여기는데, 어떻게 이것이 패전이 아니라는 건지... . 이런 대목을 읽다보면 히틀러가 전쟁 말미에 무모한 짓을 한 것이 과연 히틀러만의 잘못인지 생각이 많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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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을 막는 제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7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윤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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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에서 <연인>의 분위기가 전해지네요. 서른여섯 살에 쓴 자전적 소설이자 어머니와의 결별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소개글에서 <연인>과는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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