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녀 - 꿈을 따라간 이들의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김남주 옮김 / 이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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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의 명제가 의미심장하다. 주어진 삶과 원하는 삶의 선택. 이는 알래스카 청년들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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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 세기의 창조자
송기정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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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그는 누구인가.
30년간 발자크를 연구하고, 그의 작품을 번역하며 강의를 해 온 송기정 님이 발자크의 [인간극] 총서를 통해 19세기 프랑스 전반부를 들여다 보고, 그의 사상과 정치 이념, 사랑, 사회 궁극의 부조리와 문제점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은 책이다.


저자는 파리의 근대화 과정, 프랑스 대혁명, 정치, 과학, 돈, 법, 철학 등을 [인극극] 총서에 있는 작품들을 데려와 면밀히 풀어내고, 발자크 개인적 경험이 작품에 미쳤던 영향도 살펴본다.









발자크가 글을 쓴 기간은 20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 동안 90여 편에 달하는 [인간극] 총서와 미완성 소설, 희곡, 기고문, 서간문 등 엄청난 양의 글쓰기를 남겼다. 이러한 글쓰기의 원동력은 '빚'이었다고. 말 그대로 생계형 작가였다는 것인데, 이 빚이 오직 가난해서라기보다 사치와 도박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니, 그가 쓴 소설들을 떠올려보면 상당히 납득된다.  


발자크가 파리 구석구석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빚쟁이들을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여러 구역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라는데, 19세기 파리는 변화의 공간이었다. 18세기에 시작됐던 파리 근대화의 움직임은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던 1850년 이후 근대 도시로 변화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반세기 만에 인구가 두 배로 늘었고(물론 산업 뿐만 아니라 전쟁이 원인이기도 했고), 이로인해 주거, 도시 위생, 전염병, 급격한 개발로 인한 부동산 투기, 빈부 격차 등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발자크는 이 모든 상황을 [인간극]의 테마로 사용했다. 




 
저자는 18세기부터 파리 각 지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지금은 잊혀진 도시 곳곳의 역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발자크가 여러 작품을 통해 파리를, 그리고 파리에 살았던 사람들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얘기한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도시는 인간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말이 새삼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 이 부분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파리의 각 구역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과 연계해 지도를 따라 가며 읽다보면 파리 투어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유명 관광지가 아닌 도시 곳곳을 도시 해설사와 함께 투어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개인적으로 이런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한 [인간극]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건물도 많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 점도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에게 있어 19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발자크는 유년기를 나폴레옹 치하에서, 청년기를 복고왕정 체제하에서 보냈다. 그의 창작 활동은 주로 7월왕정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하니 대혁명 이후의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셈이다(갑자기 드는 생각이 빅토르 위고와 동시대 사람인데, 작품의 분위기는 무척 다르다).  


발자크는 [인간극] 전체를 통해 대혁명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인간극]의 첫 소설이자 그의 이름으로 낸 첫번째 소설인 <올빼미당원들>을 통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발자크의 역사적 관점을 볼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만 보면 비극적 연애소설이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을 이 소설에 녹여냈다고 한다(이래서 책은 줄거리만 알아서는 안 되는 거다). <올빼미당원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번역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못 찾았다).  
 


젊은 시절 발자크는 프랑스 대혁명과 공화국 이념을 지지하는 공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1831년 이후 정통왕당파로 전향하는데, 그가 정치적 입장을 바꾼 이유는 단순히 이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하다. (중략) 저자가 짚어낸 바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저널에 동시에 기고한 발자크의 글에는 왕정복고 귀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7월혁명 이후 정부의 과오를 비판함으로써 귀족들의 잘못으로 왕정복고가 실패했음을 일관적으로 꼬집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발자크가 저널리스트로서 쓴 글을 떠올려보면 특권층을 향한 비판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서민의 입장에 이입했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득권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희생되는 민중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는데, 이 부분은 다른 문헌도 읽어봐야겠다.  


 작가로 데뷔한 서른 살에 이미 6만 프랑이라는 빚과 이후 3년간의 사업 실패. 발자크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돈의 위력을 이미 몸소 체험했고, 돈으로 인해 벌어지는 편법과 술책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돈이 사람의 가치를 앞지른 세상에서 내면에 숨어있던 인간의 비열함과 추악함을 소설에 그대로 반영했다. 그래서 [인간극]에는 금융과 돈이 큰 주제로 사용됐다.


저자는 <으제니 그랑데>를 통해 당시 재산가들의 재산 축적 과정을 그린다. 한평생 빚에 쪼들려 살았던 발자크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음에도 으제니의 삶을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묘사한 까닭은 무엇일까? 또다른 작품 <세자르 비로토>에서는 유통과 은행, 그리고 투기로 변질된 투자 등 당시 금융 구조 현황을 면밀하게 그렸다. 그런데 허영심과 사치에 들떠 결국 파산하는 작중 인물 비로토의 모습은 어쩐지 발자크 자신과 겹쳐진다. 그가 그려낸 정경유착과 은행 및 증권 시스템의 문제점 등을 읽으면서 <세자르 비로토>보다 50년 뒤에 출간 된 에밀 졸라의 <돈>에서도 같은 지점을 짚어낸 것을 생각해보면, 이 경제 및 금융 문제가 어느 한 시대의 문제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겠더라는.   
 


세계 문학사에서 발자크만큼 법과 관련된 소설을 많이 쓴 작가는 없을 것이라는데, 그의 법 관련 지식은 종종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법적 지식이 부족한 독자는 읽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단다. 공정성과 정의 구현은 법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발자크 작품에서 보여지는 법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사촌 풍스>에서 "법정은 모든 도덕적 비열함이 가득한 시궁창"이라고 말하는 풍스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권력 밖에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법의 공정성에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이는 19세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이러첨 그의 소설들은 법이 집행되는 과정 뿐만 아니라 문제점을 지적하고, 당시의 정치적 흐름과 권력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법과 대학을 나와 안정이 보장된 법률가의 삶 대신 불확실한 작가의 삶을 선택한 발자크는 돈을 좇으면서도 돈을 경멸했고, 끊임없이 연애 소설을 통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진정성있는 순수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작가로서 충분히 출세했지만 끊임없이 빚에 시달렸고, 여러 여인들을 사랑했으나 사랑을 통해 끝까지 행복감을 느끼지도, 결실을 맺지도 못한 발자크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 발자크 자신 역시 이 부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예외이기는 커녕 자신을 증명삼듯 그의 삶은 모순과 이중성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주저없이 인간 본질에 대해 지독하도싶을 만큼 폭로하고 비판한다. <골짜기의 백합>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보여지는 그 통쾌한 신랄함이라니...


책장을 넘길수록 드는 생각은, [인간극]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군상이 다 집합해 있는 것 같다. 저자의 해석을 읽다보니 [인간극]을 출간순으로 읽으면 무척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발자크의 이런저런 모습(금사빠, 왜 사랑 얘기가 그토록 많은지 알겠더라는)과 알고 있었으나 작품에 미친 영향까지 짚어내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번 책읽기가 무척 재미있고 의미있는 기회가 되었다. 더 많은 발자크의 작품이 번역되기를 고대하며. 총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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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키스 스토리콜렉터 98
아나 그루에 지음, 송경은 옮김 / 북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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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일  
크리스티안순 근교의 한 마을, 자신의 집 헛간에서 젊은 남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시신으로 발견된다
  


2007년 3월 19일
쉰세 살 우르술라와 스물아홉 살 야콥은 첫눈에 반해 4개월간 동거 중이다. 우르술라에게는 로또에 당청된 엄천난 돈이 있었고, 이 사실은 그녀의 딸 아네모네만 알고 있다. 그런데 야콥은 그 얘기를 듣고 난 직후, 기다렸다는 듯 우르술라에게 반지를 내밀며 청혼한다. 타이밍상 의심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미리 준비된 반지와 그렇다면 오히려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야콥의 말에서 한치의 의심도 보이지 않는다. 우르술라는 그가 돈 때문에 청혼한다고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을 테지만. 기숙학교의 미술 선생으로 있는 우르술라는 야콥과 함께 꾸려나갈 새로운 인생에 부풀어 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운영할 호텔을 알아보겠다고 떠난 야콥은 우르술라의 전 재산을 인출해 사라졌다. 심지어 급여 통장까지. 








 
이쯤되면 야콥이 사기꾼이라는, 그것도 아주 계획적이고 지능적인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독자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이 3분의 1쯤 넘어가면서 궁금해지는 건 이 매끈하게 생긴 젊은 남자의 살인을 불사하는 사기 행각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도입부에서 미카엘이라는 젊은 남성이 처참하게 살해된 살인 사건과 돈 많은 여성들의 뒤통수를 치고 돈을 빼돌리는 사기 사건의 연관성이다. 그런데 작가는 때맞춰 야콥과 살인 사건의 피해자 미카엘의 접점을 보여준다.    
 


본캐는 카피라이터, 부캐는 사립탐정인 단은 딸의 부탁으로 우르술라의 사건을 맡기로 하고, 파트너 주선 포털 사이트에 야콥의 신상을 업로드하면서 본격적으로 야콥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사건은 엉뚱한 곳에서 단서가 나오고 뜻하지 않게 단의 친구인 경찰 플레밍과 서로 탐탁치 않은 공조를 시작한다.  
 


야콥 혹은 요아킴, 한때는 요하네스였던 제이의 주변 인물들과 피해자들, 그리고 포털 사이트를 통해 들어온 제보를 따라가던 플레밍과 단은 그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대면하고, 예상치 못했던 인물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사건의 중심에 다다를수록 가출, 중독, 수감, 사기에 감춰진 제이의 죄와 벌, 속죄와 가까워지면서, 독자는 사건과 별개로 감정의 반전을 맞게 된다.  









 
제이와 에릭은 당첨자들의 정보와 삶을 추적하고 관찰하면서 그들의 결핍된 부분을 주도면밀하게 파고들어 범죄를 저질렀다. 요하네스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들이 제이와 사랑에 빠진 이유가 오직 그의 외모와 젊음 때문이기만 했을까? 중년의 막바지에 혼자서 삶을 감당하며 외로움과 정서적 고립에 둘러쌓인 채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간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공허함, 전화번호 하나면 모든 개인 정보 노출이 가능한 현재의 세상에서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예수의 12제자 중에 유일하게 진실성 있는 사도라는 이유로 유다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했다던 제이, 그리고 제이가 배신했다고 철썩같이 믿었던 그의 첫사랑은 제이를 유다라고 불렀다. 유다가 사랑했던 스승에게 키스하고 배신했듯, 자신에게 그러했으므로. 그러나 살기 위해 시작한 생계 수단이 범죄가 되고, 어린 동생의 죽음에 원인 제공을 했다고 믿으며 자책해온 제이의 심정은 그의 어깨에 새겨져 있던 산스크리트어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레야시타'. 
 


개인적 감상을 별개로 범죄자에게 불행한 어린 시절이라는 서사를 입혀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에는 분명 위험 요소가 있다. 더구나 제이에게 아픈 과거가 있는 것, 그가 겉으로 보이는 날라리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죄의 무게를 덜어내면 곤란하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비록 사랑은 아니었다해도 우르술라에게 안정감을 느꼈던 제이가 사기극으로 벌어들인 돈의 쓰임을 그녀에게 말했다면, 우르술라는 흔쾌히 그에게 돈을 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제이가 호텔에서 읽고 있었던 마태복음 26장은 이렇다.
유다가 예수께 입을 맞추었다. 주교의 군대가 신의 아들을 십자가형에 처하고 체포할 수 있도록. 




악에 대한 사죄, 죄에 대한 속죄, 자신에게 씌어진 저주와 배신자의 역할. 이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신 본인일까, 아니면 타인에 의해 혹은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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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 세기의 창조자
송기정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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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발자크는 프랑스 대혁명과 공화국 이념을 지지하는 공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1831년 이후 정통왕파로 전향하는데, 그가 정치적 입장을 바꾼 이유는 단순히 이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하다. 민주주의가 막 태동한 프랑스 사회는 혼란의 연속이었고, 발자크는 7월왕정을 최악의 체제로 보았으며, 이 혼란에서 평화와 안정을 가저댜줄 수 있는 것은 강력한 권력 즉, 군주제라고 판단했다. 그는 소수 엘리트층과 군주에게 집중된 강력한 군주제와 이들을 견제한 세력인 종교가 조화를 이뤄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개인의 잇속도 무시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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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집 - 불을 켜면 빵처럼 부풀고 종처럼 울리는 말들
안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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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안희연은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와 대화 혹은 서신을 나누는 등 일상에서 만나는 단어들을 채집해 기록한다. 이 책은 그렇게 채집한 단어들에 대한 단상이다.


책을 읽으면서 특별한 감상을 느끼지 않으면 뭔가 잘못 읽었거나 혹은 내가 놓친 게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책이 있는데, 이 에세이는 마치 내가 쓴 내 이야기인 양 읽으며 공감하고, 나를 시인의 자리에 대신 앉혀 놓으면서 짧은 생각을 했더랬다.










먼저 작가를 따라 써 보는, 지금 기준으로 작은 소망을 써보자했는데, 음... 어렵다. 일단 '작다'의 기준이 모호하고, 쓰다보니 소원인지 소망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알겠더라는. 시인이 왜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에 꽂혔는지.


'헤아리며 살자'라는 말. 나도 '헤어린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람을, 식물을, 주변의 무엇을 헤어릴 수 있는 사람의 품은 얼마나 넉넉한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참 많이 한다.


친구들과 손편지를 주고 받은지 백만 년은 된 것 같다. SNS나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으로 짐작이 가능한 근황, 두 개 손가락으로 터치 몇 번이면 안부인사를 나눌 수 있는 세상(나의 지인은 아주아주 오랜 뒤에 인간은 다 퇴화되고 손가락만 남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에서 손편지가 구시대 유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귀하다. 원래 유물은 귀하니까. 그리고 아는 사람은 안다. 쓰는 맛, 기다리는 맛, 기다림 끝에 읽는 맛을.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친구가 있는 시인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나에게도 셋이나 있다(이런...). 아... 편지 쓰고 싶다(받고 싶다도 아니고). 찐하게!  


내성적인 시인은 어린시절 자신의 한자 이름이 잘못 해석되어도 또렷하게 짚어내지를 못했다고 한다. 내 이름에는 편안하고 기쁘게 살라는 할아버지와 아빠의 바람이 담겨 있다(물론 할아버지가 결정하셨고, 아빠는 이~쁜 딸이름의 어감이 남자애같다고 기어코 집에서 부르는 이름을 따로 지어 불렀다. 그 이름은 연꽃처럼 맑은 사람이되라는 뜻이었는데.). 적어도 그닥 힘들게 살고 있지는 않으니 이름의 한 글자는 그럭저럭 맞춘 듯 하다. 삶이 늘 기쁘기만 할 순 없으니.


내 삶의 '모루'는 무엇일까. 책에서의 표현처럼 후려치는 모루에 의해 휘청거리는 시절이 누군들 없었으랴. 그러나 어찌되었든 나는 여타 많은 사람들처럼 시간의 힘에 기대어 잘 지나왔고, 지나가는 중이다.  


시인이 탕종을 빗대어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얘기하는 부분에서 크게 공감했다. 나 또한 삶에서 우선하는 점은 회복력과 유연함이며, 하나 더 보태자면 탄력성이다. 유연함은 평소 마음씀이 넉넉하지 않으면 갖추기 힘들다(그래서 내가 힘들다). 회복력은 몸이든 마음이든 나 스스로 건강하기 위해 선택한 삶에 대한 태도인데, 새가슴에 뒤끝까지 긴 내가 지속적으로 유지하기에는 쉽지 않은 덕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그나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시를 번역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에서 문득, '시는 소설보다 번역하기가 훨씬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에서 오는 질감, 단어의 경중과 온도, 마음의 파도까지 담아낼 수 있는 번역이 가능하다는 것이 더 신기하다. 겨우 청소년 문학 원서만 어찌어찌 읽어내는 내 수준으로는 어림없겠다(갑자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를 번역한 분의 위대함이여!).


시인은 복숭아를 보면서 '시드 볼트'를 얘기하는데, 나는 엉뚱하게 침이 고인다. 과일 중 딸기와 복숭아를 가장 좋아하는 나는 한여름 잠깐 먹을 수 있는 복숭아의 귀함이 늘 아쉽다. 침을 삼키며 그의 글을 읽자니, '시드 볼트'의 문이 열리는 그날이 오지 않는 것이 인류와 지구가 제자리를 건겅하게 지켜내고 있다는 방증일 터다. 시인은 자신만의 '시드 볼트'를 이야기한다. 시인 뿐만 아니라 누구나 가슴 깊숙한 곳에 잠궈 놓은 '시드 볼트'가 있을 것이다. 현실의 시드 볼트와는 다르게 우리의 '시드 볼트'는 활짝 열려야 제 구실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의 '시드 볼트'가 열릴 때 기꺼이 귀담아 나눠야 할 것이다.
  


시인의 감성과 시인의 시선과 시인의 언어로 만난 일상의 찰나들. 이렇게 말을 예쁘게(오그라드는 거 말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데에 참, 오랜만에 푸근했다. 첵을 덮고 보니, 요즘 나의 상태는 시를 읽어야하는 때인 것 같다.





♤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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