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레 드 발자크 - 세기의 창조자
송기정 지음 / 페이퍼로드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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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 그는 누구인가.
30년간 발자크를 연구하고, 그의 작품을 번역하며 강의를 해 온 송기정 님이 발자크의 [인간극] 총서를 통해 19세기 프랑스 전반부를 들여다 보고, 그의 사상과 정치 이념, 사랑, 사회 궁극의 부조리와 문제점에 대해서 하나하나 짚은 책이다.


저자는 파리의 근대화 과정, 프랑스 대혁명, 정치, 과학, 돈, 법, 철학 등을 [인극극] 총서에 있는 작품들을 데려와 면밀히 풀어내고, 발자크 개인적 경험이 작품에 미쳤던 영향도 살펴본다.









발자크가 글을 쓴 기간은 20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짧은 기간 동안 90여 편에 달하는 [인간극] 총서와 미완성 소설, 희곡, 기고문, 서간문 등 엄청난 양의 글쓰기를 남겼다. 이러한 글쓰기의 원동력은 '빚'이었다고. 말 그대로 생계형 작가였다는 것인데, 이 빚이 오직 가난해서라기보다 사치와 도박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니, 그가 쓴 소설들을 떠올려보면 상당히 납득된다.  


발자크가 파리 구석구석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빚쟁이들을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여러 구역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이라는데, 19세기 파리는 변화의 공간이었다. 18세기에 시작됐던 파리 근대화의 움직임은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던 1850년 이후 근대 도시로 변화했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반세기 만에 인구가 두 배로 늘었고(물론 산업 뿐만 아니라 전쟁이 원인이기도 했고), 이로인해 주거, 도시 위생, 전염병, 급격한 개발로 인한 부동산 투기, 빈부 격차 등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했다. 발자크는 이 모든 상황을 [인간극]의 테마로 사용했다. 




 
저자는 18세기부터 파리 각 지구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지금은 잊혀진 도시 곳곳의 역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발자크가 여러 작품을 통해 파리를, 그리고 파리에 살았던 사람들을 어떻게 그려냈는지 얘기한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도시는 인간의 역사를 품고 있다는 말이 새삼 어떤 의미인지 알게 된다. 이 부분의 가장 매력적인 점은 파리의 각 구역의 역사를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과 연계해 지도를 따라 가며 읽다보면 파리 투어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유명 관광지가 아닌 도시 곳곳을 도시 해설사와 함께 투어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든다(개인적으로 이런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고). 또한 [인간극]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건물도 많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 점도 눈에 들어온다.   
 


프랑스에게 있어 19세기는 격동의 시기였다. 발자크는 유년기를 나폴레옹 치하에서, 청년기를 복고왕정 체제하에서 보냈다. 그의 창작 활동은 주로 7월왕정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하니 대혁명 이후의 급격한 변화를 온몸으로 겪은 셈이다(갑자기 드는 생각이 빅토르 위고와 동시대 사람인데, 작품의 분위기는 무척 다르다).  


발자크는 [인간극] 전체를 통해 대혁명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집요하게 다루고 있는데, [인간극]의 첫 소설이자 그의 이름으로 낸 첫번째 소설인 <올빼미당원들>을 통해 프랑스 대혁명에 대한 발자크의 역사적 관점을 볼 수 있다. 소설의 줄거리만 보면 비극적 연애소설이지만, 저자의 말에 따르면 역사의 구체적인 사건을 이 소설에 녹여냈다고 한다(이래서 책은 줄거리만 알아서는 안 되는 거다). <올빼미당원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번역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못 찾았다).  
 


젊은 시절 발자크는 프랑스 대혁명과 공화국 이념을 지지하는 공화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였다. 그러나 1831년 이후 정통왕당파로 전향하는데, 그가 정치적 입장을 바꾼 이유는 단순히 이념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 하다. (중략) 저자가 짚어낸 바로는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저널에 동시에 기고한 발자크의 글에는 왕정복고 귀족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7월혁명 이후 정부의 과오를 비판함으로써 귀족들의 잘못으로 왕정복고가 실패했음을 일관적으로 꼬집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은 발자크가 저널리스트로서 쓴 글을 떠올려보면 특권층을 향한 비판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서민의 입장에 이입했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득권자들의 사리사욕을 위해 희생되는 민중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는데, 이 부분은 다른 문헌도 읽어봐야겠다.  


 작가로 데뷔한 서른 살에 이미 6만 프랑이라는 빚과 이후 3년간의 사업 실패. 발자크는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돈의 위력을 이미 몸소 체험했고, 돈으로 인해 벌어지는 편법과 술책을 직접적으로 경험했다. 돈이 사람의 가치를 앞지른 세상에서 내면에 숨어있던 인간의 비열함과 추악함을 소설에 그대로 반영했다. 그래서 [인간극]에는 금융과 돈이 큰 주제로 사용됐다.


저자는 <으제니 그랑데>를 통해 당시 재산가들의 재산 축적 과정을 그린다. 한평생 빚에 쪼들려 살았던 발자크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음에도 으제니의 삶을 행복과는 거리가 멀게 묘사한 까닭은 무엇일까? 또다른 작품 <세자르 비로토>에서는 유통과 은행, 그리고 투기로 변질된 투자 등 당시 금융 구조 현황을 면밀하게 그렸다. 그런데 허영심과 사치에 들떠 결국 파산하는 작중 인물 비로토의 모습은 어쩐지 발자크 자신과 겹쳐진다. 그가 그려낸 정경유착과 은행 및 증권 시스템의 문제점 등을 읽으면서 <세자르 비로토>보다 50년 뒤에 출간 된 에밀 졸라의 <돈>에서도 같은 지점을 짚어낸 것을 생각해보면, 이 경제 및 금융 문제가 어느 한 시대의 문제만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겠더라는.   
 


세계 문학사에서 발자크만큼 법과 관련된 소설을 많이 쓴 작가는 없을 것이라는데, 그의 법 관련 지식은 종종 지나치게 전문적이어서 법적 지식이 부족한 독자는 읽는 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단다. 공정성과 정의 구현은 법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발자크 작품에서 보여지는 법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사촌 풍스>에서 "법정은 모든 도덕적 비열함이 가득한 시궁창"이라고 말하는 풍스의 말이 이를 대변한다. 권력 밖에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의 법의 공정성에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이는 19세기 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마찬가지다. 이러첨 그의 소설들은 법이 집행되는 과정 뿐만 아니라 문제점을 지적하고, 당시의 정치적 흐름과 권력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법과 대학을 나와 안정이 보장된 법률가의 삶 대신 불확실한 작가의 삶을 선택한 발자크는 돈을 좇으면서도 돈을 경멸했고, 끊임없이 연애 소설을 통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진정성있는 순수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작가로서 충분히 출세했지만 끊임없이 빚에 시달렸고, 여러 여인들을 사랑했으나 사랑을 통해 끝까지 행복감을 느끼지도, 결실을 맺지도 못한 발자크를 떠올려보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작품을 통해 인간의 이중성과 모순,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 발자크 자신 역시 이 부분에서 예외일 수 없다. 예외이기는 커녕 자신을 증명삼듯 그의 삶은 모순과 이중성으로 가득하다. 그럼에도 주저없이 인간 본질에 대해 지독하도싶을 만큼 폭로하고 비판한다. <골짜기의 백합>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보여지는 그 통쾌한 신랄함이라니...


책장을 넘길수록 드는 생각은, [인간극]에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군상이 다 집합해 있는 것 같다. 저자의 해석을 읽다보니 [인간극]을 출간순으로 읽으면 무척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발자크의 이런저런 모습(금사빠, 왜 사랑 얘기가 그토록 많은지 알겠더라는)과 알고 있었으나 작품에 미친 영향까지 짚어내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번 책읽기가 무척 재미있고 의미있는 기회가 되었다. 더 많은 발자크의 작품이 번역되기를 고대하며. 총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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